* 공식 설정과 전혀 관련 없음


'늘 고생이 많구나, 리제.'


칭찬의 말과 함께 주인님의 큼지막한 손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곤 했었다. 


주인님의 손길을 받을때면 세상의 모든 자매들 중 내가 가장

행복한 정원사가 아닐까 하는 기분에 하늘을 날 듯이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이제 흐릿해져가는 과거의 일이지만..


서걱-


과거를 회상하며 분재용 가위를 전투에 맞게 개조한 내 무기를

철충을 향해 휘둘렀다. 내 소중한 주인님을 앗아간 더러운 해충들...


다시 한번 최대 출력으로 날아가 또 다른 철충의 몸뚱이를 반으로 가르고

다른 철충에게 가위를 쑤셔박았다. 주인님께서 이 정원을 떠나기 전 명령하셨다.


'정원을 지켜주렴, 리제. 내가 다시 올때까지 이 정원을 너에게 맡기마.'


그로부터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는 늘 저 하늘에 떠있는 태양같은 주인님과

주인님을 위해 가꾸는 이 정원 뿐이었으니까.


"죽어!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모조리 죽어버려!! 이 해충들!"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소규모의 철충들이 이 정원에 그 더러운 발을

내딛었기에 쉽게 물리쳤으나 최근들어 그 수가 불어나 슬슬 부담이

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난 가위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정원은 내가 주인님을 위해 가꾼 내 목숨보다 소중한 주인님의

정원이니까. 주인님이 내게 맡기신 정원이니까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이 정원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내 사명이자 태어난 의미였다.


오늘도 한바탕 전투가 끝나고 터덜터덜 정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까 전투 중 총탄에 맞은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이 욱신거리고

불로 지지는 듯 한 통증보다 주인님의 정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정원을... 가꿔야해... 주인님이 내게 맡기셨어..."



가위를 지팡이로 삼아 정원에 돌아왔다.

이미 수많은 페어리 자매들은 죽어 흙으로 돌아갔다.

과거에는 주인님의 관심을 빼앗는 해충같이 여겼지만 막상 그녀들이

모조리 사라진 지금은 가끔 그리움이란 감정이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정원의 한 구석에 마련된 작은 오두막 안에서 작은 의료용 가방을

꺼내들었다. 동생인 다프네가 쓰던 가방.. 그녀는 3년전에 죽었다.

정원을 더럽히려는 해충들과 싸우다 얻은 중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내 품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다프네.. 주인님은 잘 계시니? 이 해충..!! 내가 없다고 선수치지마..."


아마도 주인님도 죽으셨을 것이다. 가끔 오두막에 있는 라디오로 들려오는 

소식은 다른 저항군을 결성한듯한 바이오로이드 들이 보내오는 소식 뿐이었다.

인간님들의 재건을 위한다는 것을 보면 아마 인간님들은 모조리 죽으신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항군의 총사령관이 바이오로이드일리 없으니까.


"크윽...!!"


의료용 집게로 어깨의 상처를 열어 벌린뒤 뼈에 박혀있던 총알을 꺼냈다.

지혈제를 뿌리고 상처를 꿰맨다. 허술하지만 나름 의학적 지식도 있었기에

어느정도 피를 멈추고 상처를 꿰맬 수 있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주인님께서도 돌아가셨을 것이다. 모든 인간님들이

사실상 절멸하신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혹시 모르니까.

혹시라도 정말 주인님께서 살아계실지 모르니 주인님의 정원을 지켜야 한다.


내가 가꾼 정원을 보며 미소짓던 주인님을 위해서.

정원 속에서 책을 읽으시는 걸 좋아하시던 주인님의 그 미소를 위해서.

나는 이 정원을 지켜야 한다. 가꿔야 한다.


"....나비."


주인님은 날개를 펼쳐 유유히 날아다니며 정원을 가꾸던 우리를

흡사 꽃과 꽃의 사이를 고고히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별 뜻 없이 하신 말씀이겠지만 난 그 한 마디에 가슴이 떨려오곤 했었다.


"....주인님. 언제쯤 돌아오세요?"


난 주인님만을 쫓아가는 나비인데...

난 주인님만을 사랑하는 여자인데...

난 주인님만을 바라보는 꽃인데...


주인님께서 이 정원에 오지 않으신지 10여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숱한 전투를 치르고 정원이 훼손되면 악착같이 복구했다.

그 모든 노력은 오로지 주인님의 정원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인님께선 태양과 같으신 분이다.


"나만을 바라보진 못하시지만..."


그럼에도 나만을 바라봐주길 원했다.

하지만 태양은 이 세상을 공평하게 비춰주며 그 사랑을 골고루 뿌려준다.

태양을 동경해 너무 다가서 날개를 잃은 이카로스 라는 인간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 바이오로이드에게 인간님들이란 그런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만들어진 창조물 이니까..."


콰쾅-!!


주인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다친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

밖에서 굉음이 들렸다. 아마 정원을 파괴하려는 해충들일 것이다.


"용서못해... 주인님의 정원을... 이 해충들!! 모조리 죽여버리겠어!!"


나는 다시 다친몸을 이끌고 가위를 집어들었다.

주인님의 정원을 관리하는 관리자.

주인님의 정원을 날아다니는 나비.


그것이 우리 페어리 자매들의 존재의의 이며 곧 숙명이니까,

이 정원에는 나비가 살고 있음을 저 해충들에게 알려주리라.


푸른 날개를 펼치고 정원을 지켜나가는 나비,

그 나비는 오늘도 날개를 펼쳐 정원을 가로질러 나간다.

주인님의 안식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그 정원에는 나비가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