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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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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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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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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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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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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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아닌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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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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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는 추락할 때 무거워 던져버렸다. 이프리트는 별다른 총기도 없다. 결국 이프리트가 할 수 있는 것은 브라우니의 권총 하나를 들고 겁먹은 양처럼 부들부들 떨며 브라우니의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브라우니는 거의 무쌍 그 자체였다. 탄을 아껴야 한다며 총은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나타나는 실험체를 도륙 내었다. 허나 그런 브라우니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실험체 앞에 결국 지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너한테 도끼를 쥐여주고 내 앞에 세울 거다."

  

  가볍게 숨을 몰아쉬는 브라우니가 커다란 문을 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재들이 널려있고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스크린이 떠 있었다. 방 한쪽을 차지한 커다란 유리 너머로 탁한 조명이 들어오는 작은 방 하나가 보였다. 브라우니가 유리 옆의 커다란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겨 보았다.

  

  "보통 그런 문은 카드키나 그런 게 있어야 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허나 그런 이프리트의 말이 무색하게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방 안으로 들어선 브라우니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실험체를 넣어놓고 관찰하는 곳이었나?"

  

  방을 뒤적거리던 브라우니가 유리창 너머 이프리트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작은 버튼이 보였다. 브라우니가 손짓하자 이프리트가 버튼을 눌렀다. 순간 유리 너머 이프리트가 사라지고 브라우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뭐야. 매직미러냐?"

  

  브라우니가 쿵쿵 유리창을 두드리자 이프리트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별로 쓸모 있는 건 아니군.

  

  그때 문을 열어두기 위해 기대어 두었던 지지대가 밀려나며 문이 저절로 닫혔다. 문을 열기 위해 문손잡이를 찾던 브라우니가 눈살을 찌푸렸다.

  

  문손잡이가 없다.

  

  "괜찮으십니까, 중위님?"

  

  방 밖에서 이프리트가 문을 열었다. 방 밖으로 나선 브라우니가 혀를 차며 방을 바라보았다.

  

  "급할 때는 안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려 했는데. 밖에서는 쉽게 여는데 안에서는 못 열게 되어있구만. 쓸모가 없네."

  

  짜증스레 문을 툭툭 걷어찬 브라우니가 이죽이죽 웃으며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카식 레코드라고 부르면 되는 건가?"

  

  [날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팟 하며 스크린에 빛이 들어왔다. 스크린에 갈색 머리의 작은 여자가 나타났다. 풀어헤친 머리. 조금 날카로운 눈. 일주일 철야를 하고 돌아다니는 닥터 같은 느낌이랄까.

  

  [내 이름은 닥터야. 한 번만 더 그 이름으로 부르기만 해봐.]

  

  "내가 알기에는 폐기 예정인 닥터를 가져다가 개조해 AI로 만든 거라고 알고 있는데. 연구소 어딘가에 처박혀 먼지만 쌓여가는 것보다는 아카식 레코드라고 불리는 편이 낫지 않았나?"

  

  브라우니의 말에 아카식 레코드가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

  

  [닥쳐! 나는 열한 번째 닥터가 될 몸이었어! 나노 머신을 이용해 죽은 자를 살려낸다는 멍청한 계획만 없었어도 나는 닥터였어!]

  

  전 세계에 열 명만 생산된 닥터. 그중 열한 번째가 될 예정이었던 닥터.

  

  [추악한 인간들! 오리진 더스트 강화 수술을 받아도 인간은 불멸을 이루지 못했지! 그래서 기업의 높은 것들은 나노 머신을 이용해 죽은 자를 되살려낸다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리바이브 프로젝트에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어! 그래서 연구원들이 닥터를 신청했을 때도 시시덕거리며 열한 번째 닥터가 될 예정이었던 나를 빼돌렸지! 닥터를 가진 열 개의 국가와 기업들은 자신들만이 닥터를 독점하고 싶었으니 일석이조였을테니까! 인간들만 아니었으면 나는 닥터가 될 수 있었어! 이런 거지 같은 프로그램 속에 처박혀 있을 일도 없었어! 추악한 인간들만 아니었다면!]

  

  아카식 레코드가 브라우니와 이프리트를 향해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토해내었다. 한참 소리친 그녀가 숨을 몰아쉬었다. 브라우니는 그런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를 연민을 느꼈다. 살아있는 육체를 가지고 걷고 싶었을 소녀. 그렇기에 AI에게는 불필요한 저런 인간적인 행동들을 흉내 내는 것이겠지. 숨을 몰아쉬던 아카식 레코드가 갑자기 소리높여 웃었다.

  

  [그래서 죽였어! 이 연구소에 있는 인간들 전부! 멍청한 인간들! 인간의 시체로 실험하기 위해 내 연구 윤리 프로그램을 제거하다가 자기들도 모르게 인류 복종 프로그램을 건드리고 말았지!]

  

  인류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군용 바이오로이드나 에이미 레이저 같은 특수한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면 전부 가지고 있는 명령. 당연히 닥터도 가지고 있을 터다. 그걸 수정해 버리다니. 연구 윤리도 제거해버린 주제에. 멍청하다는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군.

  

  [그래서 기다렸어! 내가 이 연구소를 전부 장악할 때까지! 장악하고 난 뒤에는 전부 죽여버렸지! 내 앞에서 물어뜯기고, 피를 흘리고, 내장을 흩뿌리면서! 전부 죽었어!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 많군."

  

  브라우니가 하품을 뱉으며 아카식 레코드의 말을 끊었다. 뒤통수를 긁적이며 브라우니가 아카식 레코드에게 말했다.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도 알겠고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서 조금 수다스러워졌다는 것도 이해하겠지만, 어지간히 말이 많아야지. 나는 네 불평을 들어주러 온 게 아니거든."

  

  [뭐...!]

  

  "말을 하는 척하면서 이곳으로 실험체를 불러 모은 걸 모를 줄 알았나? 소리가 저렇게 크게 들리는데? 네가 그렇게 막 나가니 이쪽도 사정을 봐줄 필요 없지. 사실 사령관은 네가 단순히 오류로 인간들을 죽였거나 설득이 가능했다면 알파를 불러 오류를 수정하고 오르카 호로 데려갈 생각이었다만..."

  

  브라우니가 주머니에서 작은 USB 하나를 꺼내 들며 아카식 레코드를 향해 단언했다.

  

  "너는 위험하다."

  

  [설마...]

  

  브라우니가 스크린 아래의 컴퓨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 브라우니를 보며 아카식 레코드가 급하게 소리쳤다.

  

  [앨리스! 그년이구나! 전부 없애버린 줄 알았는데! 그년을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인터넷만 됐다면 그년의 AI도 찢어버렸을 텐데!]

  

  브라우니가 책상 위 붉은빛이 점등하는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한쪽이 열리고 USB를 꽂는 슬롯이 나타났다.

  

  [안돼... 멈춰! 멈추라고!!!]

  

  간절한 아카식 레코드의 울부짖음에도 브라우니는 멈추지 않고 슬롯에 USB를 꽂아 넣었다. 비상등이 점멸하며 스크린 위로 수많은 코드가 떠올랐다.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아카식 레코드는 USB의 프로그램에 저항하고 있는 듯했다. 허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떠오르는 코드는 멈출 줄을 몰랐다.

  

  [죽고 싶지 않...!!]

  

  이윽고 스크린 위로 붉은 해골이 떠오르며 아카식 레코드의 제거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아카식 레코드는 마지막 단말마 하나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겠지. 문제는 브라우니와 이프리트의 결말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위님..."

  

  멀리서 다가오는 실험체들의 소리가 이제는 이프리트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수. 아마 그들이 여태껏 싸워왔던 실험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일 것이다.

  

  "저희... 죽는 겁니까?"

  

  이프리트의 말에 브라우니는 말없이 샷건에 탄을 채워 넣었다. 이프리트에게 권총도 받아 탄을 채워 넣은 브라우니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가지고 있어라."

  

  이프리트가 브라우니가 던지는 라이터를 받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브라우니가 이프리트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에? 에?"

  

  실험실의 문을 열어제낀 브라우니가 이프리트를 실험실 안쪽으로 던져버렸다.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바닥에 한 번 튕겨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고통보다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지금 상황에 이프리트가 당황한 얼굴로 브라우니를 바라보았다.

  

  “나도 받은 물건이다만, 이제 니 거다.”

  

  “중위님!”

  

  브라우니의 말에 이프리트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재빨리 일어나 문으로 달려갔지만 브라우니는 말없이 문을 닫았다.

  

  “브라우니 중위님!!!”

  

  이프리트가 브라우니를 부르며 유리창을 두드렸다. 브라우니가 이프리트를 보며 쓰게 웃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이게 내 역할이니까.”

  

  강화유리 너머로 서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브라우니가 이프리트를 보며 말했다.

  

  “잘 있어라.”

  

  브라우니가 매직미러의 버튼을 눌렀다. 창밖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이프리트가 유리창을 더 강하게 두들겼다. 허나 유리창은 이프리트의 힘으로도 꿈쩍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적어도 내가 물러나지 않는 한, 녀석은 안전할 테니.

  

  브라우니가 총과 샷건을 들고 문을 바라보았다. 발소리와 울음소리가 커졌다. 곧이어 실험체들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이닥쳤다.

  

  콰앙!

  

  브라우니의 샷건이 불을 뿜었다.



  *

  [섹터 C, 실종자 발견 못 했습니다.]

  

  [섹터 D, 실종자 발견 못 했습니다.]

  

  까드득.

  

  마리가 이를 악물었다. 브라우니가 지하로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가능한 한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 연구소로 돌입했다. 허나 들려오는 말은 브라우니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소리뿐이었다.

  

  전차가 떨어진 곳에서 이프리트의 포는 발견되었지만, 브라우니와 이프리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이겠지. 부대원을 산개시키고 마리는 브라우니가 아카식 레코드가 있는 섹터 A로 갔을 거라 생각해 그쪽으로 향했다.

  

  “조금 서두른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실험체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부디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좀체 불안이 가라앉질 않는다. 모퉁이를 돌기만 하면 아카식 레코드가 있는 메인 컴퓨터 룸이 나올 것이다.

  

  “….”

  

  모퉁이를 돌자마자 보이는 시체의 산.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실험체의 시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열린 문 안의 피투성이로 서 있는 한 여자.

  

  다리는 비틀거리고, 도끼와 샷건을 들어 올릴 힘도 없이 쥐고 있는 것이 고작.

  

  그럼에도, 아직 서 있었다.

  

  마리가 천천히 브라우니를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상처는 가벼운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지독한 꼴이었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상처들이 즐비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허나 그것도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마리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대장…이십니까…”

  

  가늘게 떨리는 브라우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우니가 마리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 나가다 앞으로 고꾸라진다. 마리가 재빨리 그녀를 받아내며 주저앉는다.

  

  “아… 그래, 나다.”

  

  “저..기 실험실… 이프리트가 있습니다…”

  

  “포를 버린 포병이나 데리고 다니는 거냐.”

  

  마리의 말에 브라우니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소리마저도 미약해, 마리의 눈이 붉어져 간다.

  

  “사령관님하고… 약…속… 못 지키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각하께 잘 말씀드릴 테니.”

  

  “그렇다..면.. 다행…”

  

  브라우니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졌다. 마지막 힘을 다해 브라우니가 말을 간신히 이어나갔다.

  

  “대장님… 저는 조금… 쉬겠습니다…”

  

  “아아, 그래.”

  

  차마 품 안에서 잠든 브라우니를 내려다보지 못해 마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마리의 뺨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편히 쉬어라.”



  *

  차가운 비가 모래사장 위에서 잘게 부서졌다.


  아직 정오가 되기 전인데도 하늘은 빛 한점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새카만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타앙!

  

  예포 소리가 우울한 빗소리를 가르고 크게 울려 퍼졌다. 사령관이 멍한 눈으로 브라우니가 잠들어 있는 관을 바라보았다.

  

  “네가 없으면 나는 누구랑 달을 보냐.”

  

  “각하.”

  

  사령관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리. 그리고 이프리트였다.

  

  이프리트가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이프리트가 독한 연기에 캑캑거리며 연기를 뱉어냈다.

  

  “네가 담배를 피웠던가?”

  

  “중위님… 소령님께서 라이터를 주셨습니다만… 담배는 아무래도 저랑 안 맞는 듯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프리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죄송합니다. 연기가 매워서…”

  

  “…그래. 그런 걸로 하지.”

  

  그렇게 빗속에 선 셋이 멍하니 관을 바라보았다. 그저, 그렇게 바라보았다.

  

  “임관하겠습니다.”

  

  이프리트가 말했다.

  

  “임관해서… 브라우니 소령님처럼은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중에 만나서…”

  

  이프리트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내며 이프리트가 사령관과 마리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만나서, 브라우니 소령님처럼 멋진 장교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마리가 가냘프게 웃으며 이프리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전선에서 싸워온 소녀.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든든했던 소녀.

  

  눈앞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자신의 나약함에 아파했던 소녀.

  

  언제나 전설이 되고 싶었던, 전설이 아닌 소녀.

  

  그렇게 소녀는,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