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다행이네요. 전 제가 그날 바로 죽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4일의 시간이 새로 생겼군요? 호호...”

   

샬럿 대장이 움직일 수 있는 오른쪽 얼굴로만 애써 웃고 있습니다. 그녀의 몸에는 지금 온갖 기계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있습니다. 그녀를 치료시키는 기계가 아니라, 그녀의 목숨을 조금만 더 늘려주는 장치입니다.

   

“아르망양. 왜 그렇게 안 좋은 표정을 지어요. 전쟁에서 누군가 죽고 다치는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샬럿 대장. 저는 원래 당신이 돌발 상황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다치는 것을 막지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좋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는거죠.

   

   

샬럿 대장은 3일 전 철충을 토벌하러 나갔습니다. 샬럿 대장은 폐하의 지휘아래에 철충들을 마구잡이로 해치웠죠. 그러다가 폐하께서 이제 충분히 처리 했으니 퇴각해도 좋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샬럿 대장은 조금 더 죽일 수 있다면서 퇴각하지 않고 철충들을 계속 해치웠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대한 토터스가 나타나 샷건을 발사했습니다. 샬럿 대장은 그 공격을 피하지 못해 쓰러졌고, 그대로 토터스에게 밟혀버렸습니다.

   

 급하게 동료들이 토터스를 해치우고 간신히 샬럿 대장을 오르카호로 데려왔지만, 상태는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정말 죽은걸로 착각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저희는 샬럿 대장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수술 했습니다. 그 결과 죽음의 순간을 조금 미룰 정도는 되었습니다만..... 너무 심하게 다친 나머지 죽음을 피하지는 못할겁니다. 샬럿 대장은 수술을 마치고 계속 혼수상태로 있다가 방금 간신히 깨어났습니다. 제 예측에 따르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4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겁니다.

   

   

폐하께서 샬럿 대장이 깨어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수복실로 오셨습니다. 샬럿 대장은 힘겹게 오른쪽 눈을 떠서 폐하를 바라봤습니다.

   

“폐하... 오셨군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나대는 바람에 한명도 죽지 않던 폐하의 업적을 깨버렸네요.”

   

폐하께서 샬럿 대장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말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오라고 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이건 분명 내 책임도 있어.”

   

“아닙니다, 폐하. 폐하께선 분명 잘 해주셨어요. 제가 따르지 못해서 이런 상태가 됐을 뿐이죠. ....정말 죄송하지만 너무 아픈데 마취제좀 놔주실 수 있나요?”

   

“알겠어 샬럿언니. 바로 놔줄게.”

   

닥터가 샬럿 대장 팔에 주사를 놓자 샬럿 대장은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닥터가 저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아르망언니. 그 동안 샬럿언니 지켜보느라고 힘들었을거 아냐. 이제 방에 가서 쉬어. 우리가 잘 지켜볼게.”

   

“알겠습니다 닥터양. 그리고 폐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폐하의 탓이 아니에요.”

   

폐하는 저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아무말 없이 샬럿을 바라보십니다. 저는 수복실을 떠나 제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방 문을 조용히 열자 침대 두 개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제가 쓰는 침대고, 남은 하나는 샬럿 대장이 쓰던 침대입니다. 아... 평소에는 문을 열면 침대에 누워서 저를 반겨주던 샬럿 대장이 계셨는데 이제는 못 보겠네요. ........ 들어가기 싫습니다. 갑판에서 바닷바람이나 맞다가 돌아와야겠습니다.

   

   

   

샬럿 대장이 깨어나고난 뒤 많은 분들이 샬럿 대장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점심까지 계속 자느라고 아무도 인사를 못했습니다. 

샬럿 대장이 다시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수복실로 내려갔습니다. 가보니 워울프님이랑 페로님, 앨리스님 등등 많은 바이오로이드분이 계셨습니다.

   

“샬럿 대장. 몸 상태는 어떠신거 같나요?”

   

“아르망양 오셨군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고 워울프님이 저에게 농담도 해주니까 고통들이 조금 가라앉는거 같아요.”

   

샬럿 대장이 지금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지만, 지금 몸 상태는 최악입니다. 분명 고통스러운데도 그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일 겁니다. 샬럿 대장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먼저 오신 분들과 얘기하도록 해야겠네요. 저는 저녁에 다시 찾아와야겠습니다.

   

일을 대강 마치고 9시가 되어서 다시 수복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수복실 멀리서부터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놀라서 수복실에 재빨리 가보니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샬럿 대장과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보였습니다.

   

“샬럿언니! 제발 진정해! 이거 맞으면 조금 괜찮아질거야! 다들 꽉 잡아줘요!”

   

닥터가 간신히 주사를 놓자 샬럿 대장은 이윽고 축 늘어져버렸습니다. 저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샬럿 대장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비명 지르는건 처음 들었거든요.... 닥터가 뒤늦게 저를 발견하고 저를 일으켜주었습니다. 그리고 폐하를 급히 수복실로 불렀습니다.

   

폐하께서 수복실로 들어오시자 닥터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래도 결정을 해야 할 때인거 같아. 점점 마취제도 안 먹기 시작하고 혈압이랑 모든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있어. 물론 3일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기는 한데.... 마취제를 계속 놓는다고 해도 고통은 멈추지 않을거야. 계속 샬럿언니를 고통스럽게 하기보다는... 보내주는게 어떨까?”

   

“적어도 하루만요.”

   

“뭐?”

   

“적어도 하루만이라도 더 기다려주세요. 샬럿 대장이랑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그래. 아르망 말대로 적어도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그리고 그 동안 샬럿이랑 많은 얘기를 해보며 정하자.”

   

저는 그날 밤 방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샬럿 대장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간이침대를 펴고 누웠습니다. 

   

잠이 안 옵니다. 

   

옛날에 제가 잠이 안온다고 하면, 샬럿 대장이 저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겠다며 노래를 불러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노래 부르는 그 소리에 잠이 더 깨버렸죠. 황당하게도 노래부르던 샬럿 대장은 부르다가 혼자서 잠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 노래를 부르다보면 잠이 들 수 있을까요?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아침 이슬에 젖어.....

   

   

귀여운 미소는.... 나를 반기어 주네......

   

   

눈 처럼 빛나는 순결은..... 우리들의 자랑.....

                                        우리들의 자랑

   

어라?

   

“샬럿 대장. 일어나셨나요?”

   

“예전에 아르망양이 그 말을 하신 적이 있었죠. 제가 그 노래를 자장가라고 불러주면 오히려 잠에서 깨버렸다고. 그 말이 진짜였네요. 그 노래를 들으니 자연스럽게 깨버렸어요.”

   

“호호. 그러니까 제가 뭐랬어요. 저를 재우고 싶다면 그냥 자장가를 안 불러주는 편이 났다고요.”

   

“알겠어요. 앞으로는 주의할게요.”

   

“.....”

   

“....”

   

“저기, 아르망양.”

   

“네?”

   

“폐하한테 전해주세요. 제가 죽는 것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꼭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시라고요. 내일 정신 없어서 말하는 걸 잊어버릴지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또 할 말이 있었는데 뭐였지... 아 맞다! 아르망양.”

   

“왜요?”

   

“늘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제 오랜 친구로 있어줘서. 아르망양이랑 함께한 모든 순간이 즐거웠어요.”

   

“.... 고마워요. 샬럿 대장”

   

“....아 그리고 찾아와 준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전하는 것도 잊지말고 전해주세요. 저를 찾아준 한명한명이 정말 고마웠다고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말도 꼭 전할게요.”

   

“......하고싶은 말은 다 했네요.”

   

“그런데 샬럿 대장. 이제는 안 아프세요?”

   

“....”

   

“샬럿 대장?”

   

아마 다시 잠든 모양입니다. 하긴 애초에 마취를 한 상태니까 금방 잠들겠죠. 이상하게 갑자기 잠이 옵니다. 눈을 감고 깊은 꿈속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 뭔가 꿈을 꾼거 같은데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주변이 갑자기 시끄럽습니다. 일어나보니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제 곁에서 울고 있습니다. 어라? 폐하도 여기 계시네요. 왜 다들 우시는 거에요?

   

   

“샬럿이 죽었어.”

   

“네?”

   

“왜 죽었는지는 우리도 모르겠어... 상태는 안 좋아도 분명 좀 더 버틸 수 있는 상태였는데...”

   

샬럿 대장이 떠나다니..... 몸에 힘이 풀려 간이침대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곧 몇몇 바이오로이드분들이 저를 부축해줬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창백한 샬럿 대장의 모습을 보자 실감이 났습니다.

   

....혹시 우리가 당신을 떠나보낼지 말지 고민하니까, 더 고민하지 말라고 떠나가신건가요? 아니면 저희가 예상했던 것 보다 당신의 고통이 커서 떠난건가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일이 닥치니까 정신이 없네요. 눈물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예상보다 충격이 커서 그런걸까요?

   

몇몇 바이오로이드 분들이 샬럿 대장의 얼굴을 이불로 가리고 수복실 밖으로 데려갔습니다. 이제 샬렷대장은...

   

   

   

멍하니 있다가 곧 정신을 차렸습니다.

   

“폐하. 샬럿 대장이 어젯 밤에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뭐? 어젯밤?”

   

“네. ‘제가 죽는 것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꼭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세요.’라는 말을 폐하에게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샬럿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구나...”

   

“아, 그리고 어제 병문안 와 준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했어요. 샬럿 대장을 찾아와준 모두가 정말 고마웠다고 전해달라 하셨어요.”

   

“그 말을 어젯밤에 했다고?”

   

“네. 그 말을 하고 다시 잠들었어요.”

   

제 말을 듣고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이 더 크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폐하도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샬럿이 그 말을 했다면... 그 말대로 해야지. 꼭 철충과의 전쟁에서 이겨야겠어....”

   

   

   

정리를 마치고 수복실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오늘 도저히 일을 못하겠어서 하루 쉬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문을 열자 침대 두 개가 보였습니다. 저는 샬럿 대장의 침대에 엎드렸습니다.

   

.... 이제야 눈물이 나네요. 샬럿 대장의 빈 침대를 보고 나서야 눈물이 나네요.

   

아, 그러고 샬럿 대장. 저 말을 못 했어요.

   

저도 샬럿 대장이 늘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요. 저의 오랜 친구로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샬럿 대장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눈물이 너무 심하게 나옵니다. 샬럿 대장이 쓰던 침대가 내 눈물로 더러워지면 안되는데...

   


어디선가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가 부르는거지? 이상하게 잠이옵니다. 아, 이 노래 정말 자장가 맞군요. 눈을 감았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샬럿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