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북한, 무주지

일본 자위대 통제구역

코헤이 원산 교구

성 디도 고아원



 "하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 하며..."


 "향기론 샤론의 꽃보다 더 아름다운..."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얼핏 들으면 개신교 찬송가 같기도 하고 또 천주교 성가 같기도 한 노래가 고아원에 울려퍼졌다. 아이들을 노래를 부르는 법은 잘 몰랐다. 악보에 적힌 음표에 따라 소리를 내기는커녕 글자도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예 제멋대로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그래도 라울의 걸걸한 목소리에 따라 어떻게든 불러보려고 애는 썼다.


 "우리는 몰랐습니다. 너무도 몰랐습니다.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고통의 때에는, 이 고통 끝에 빛이 있음을 상기하십시오. 빛으로 새긴 천년왕국을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그 다음으로 강론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잠에 들었다. 몇몇은 꼿꼿이 서 있었지만 그들도 졸려서 눈이 감기는 걸 막는다고 싸대기를 퍽퍽 쳤다. 그나마 그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소녀 한 명만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자 아이들은 고아원 건물 바깥으로 뛰어나와 공터에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면서 깔깔 웃으며 놀았다. 물론 노는 건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을 지키는 라울은 놀 수가 없었다.


 "아이고, 계란이 어디 갔담? 아, 여기 있구나."


 라울은 마지막 남은 계란들을 깨서 국에다가 풀었다. 계란국물 한 방울도 아까워, 날계란을 담은 그릇을 싹싹 긁고, 아예 그릇을 끓는 물에 잠깐 넣었다가 뺐다. 코헤이 원산 교구에서 부쳐주는 고아원 운영비는 이틀 뒤에나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식료품들을 구해서 들여놓는 건 그 다음 날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 사흘 동안은... 쌀죽만 먹어야 할 판이었다. 사흘 동안 주리다고 앙앙 우는 아이들을 어떻게 진정시킬지 암담해서, 국자를 젓던 손에 힘이 빠졌다. 


 "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


 오늘 먹고 내일 굶을 수는 있어도 내일 먹자고 오늘 굶는 건 어려웠다. 라울은 오기로 국자를 다시 잡았다. 안 된다고 말만 한다고 뭐가 되지는 않는다. 뭐라도 해야지. 안 되면 이틀간 내가 굶어서라도 조금이라도 양을 불리자, 안 되면 자위대에 가서 유통기한 지난 폐기물자라도 부탁해보자. 아무리 유통기한이 법적 분쟁을 고려해서 여유롭게 잡힌다고 해도, 유통기한 지난 것을 아이한테 먹인다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은가.


 "얘들아! 밥 먹거라!"


 "와! 밥이다!"


 밥, 이라고 외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북한 지역에서 사는 건 한을 마음에 지고 사는 일이다. 부모가 눈 앞에서 역병으로 몸져누웠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한, 가족들이 어느 나라 것인지 모르는 폭탄과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는 병사한테 죽어나간 한, 하지만 그런 한들 중에서도 못 먹은 한이 제일 컸으니까. 더 달라, 부족하다, 흘렸다, 투정 부리는 아이들에게 마음 같아서는 잔뜩 퍼주고 싶었다. 배가 문자 그대로 터질 때까지 밥을 먹이고 싶었지만, 여기서 그러면 다른 아이들은 굶어 죽으라는 소리였으니. 주린 아이들의 투정을 이를 악물고 쫓아내야 했다.


 "자! 먹었으면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야지?"


 "얘들아! 거기로 나가면 안 된다!"


 "아이고! 저건 또 뭐야?"


 밥을 먹였다고 끝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밥을 먹고 나면 힘이 솟아서 또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고아원 공터에 난 나무에 올라가는 건 약과고, 고아원 지붕에 올라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올라가서 내려오면 다행이지, 올라가긴 올라갔는데 내려가는 방법을 몰라서 지붕에 앉아 엉엉 우는 아이도 있었다. 다른 데서는 다치면 며칠 푹 쉬면 될 부상이,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곳에서는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고통스러운 장애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사고가 날까 노심초사했다.


 "에휴, 쉬는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가 끝날 것 같았지만 끝나지 않았ㄷ. 라울이 운영하는 고아원은 항상 바쁘게 돌아갔다. 어떨 때는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매일 밤 막막하던 일과가 끝나면 라울은 녹초가 되어 누웠다. 위에서 요구하는 서류는, 애석하게도 하나도 못 하고 있었다. 수많은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돌보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거기다가 서류까지 한다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힘들고 바쁘다고 변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 라울은 저녁시간이 되었는데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창고로 쓰던 쪽방을 정리하고, 밀린 서류들이 쌓인 집무실도 책잡힐까 두려워 싹 정리했다. 


 라울이 북한 땅에 발을 들이게 도와준 종교적 열성보다 더 큰 열정을 얻어서, 광기와 광신에 가까운 정신으로 의지를 내서 하는 게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종교적 열성 이전에 그는 사람이었다.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었고, 지금 그를 두렵게 할 무언가가 고아원에 찾아오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력을 증원해달라고 보고서에 쓰지 말 걸, 인력 절대부족 같은 감정적인 단어를 쓰지 말 걸,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인력이 진짜 부족해서 쓴 말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이다니! 라울은 이를 갈았다.


 인력은 항상 부족했다. 한국의 늙어빠진 민족주의자 단체, 예를 들어 우리민족...으로 시작하는, 북한이 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100년 넘게 뒤통수를 맞아놓고 아직도 강철서신을 성경마냥 주워섬기고, 온정적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멍청이들이 와서 봉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가 끝나가는데도 민족이라는 환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멍청이들은 늙어죽어가는 늙다리들 중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노인네들이 아무리 힘을 써봐야 한두번이었다. 나중 가면 같은 동포가 굶주리는 것보다 제 몸 편한 게 먼저라는 진지를 깨달았는지, 아니면 북한 지역의 실상을 보고 주체사상의 패배를 인정했는지 발길을 뚝 끊었다.


 그나마 코헤이와 연계해서 무언가 해보려던 유니세프와 국경 없는 의사회도, 기업들이 재정 지원을 줄이자 제일 먼저 북한 지역에서 발을 뺐다. 무정부지역에서 아무리 힘써봐야 알아주는 이도 없고,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후원금도 들어오지 않으니 그들 딴에는 당연한 처사였다.(날파리가 잔뜩 붙은 채 비쩍 말라서 갈비뼈를 내보이며 굶어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는 후원 광고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효과가 경험과 연구로 검증된 최고의 가난 포르노였지만, 북한 지역의 실상은 광고로 내보내도 효과가 별로 없다는 분석도 있었다.) 한국의 자선단체에서도 사회사업을 하려고 왔지만, 봉사단은 뭔가 해보려다가 이걸 하려니 저게 가로막고, 저걸 하려니 이게 가로막는 북한의 열악한 상황에 혀를 내두르고, 대한민국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에 집중하기로 하고 발을 뺐다.


 그렇면 코헤이의 뜻을 믿는 이들은 어떨까? 그들 역시도 라울이 보기에는 없느니만 못한 치들이었다. 가끔씩 일본과 한국의 코헤이 교구에서 청년부들을 모아서 청년봉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와서 하는 건 누군가를 돕는 게 아니었다.  그냥 원산이나 평양에 있는 공항에서 내려서, 현수막을 펼쳐들고 그 현수막을 따라 줄줄이 선 다음에 사진 한 장 찍는 게 전부인 이들이었다.  부모가 다니라길래 다니게 된 꼬맹이들에게 종교적 열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매주 일요일 황금같은 주말 중 2시간을 재미도 감동도 없는 예배에 소모해야 한다는 것도 뜨악한데, 보이는 것은 사막 같은 황무지요 도시에서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도 통신이 잡히지 않고, 소똥 냄새만 나는 이곳에서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무려 한 달이나 낭비해야 한다고? 


 가끔씩 그들 중에 종교적 열성을 품은 청년들도 있었지만, 이들이라고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종교적 열성으로 이 지옥 같은 곳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들은 경전에 나온 선지자들처럼, 핍박받는 민족을 이끌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찬양을 받으며 담대히 나아가는 모습을 따라하고자 했다.


 그렇다, 그들은 사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열성으로 깨어있고, 앞선 세대처럼 행동하는 나를 우러러볼 수단이었으니까. 부모가 오래서 온 학생들, 종교적 열성에만 빠져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들이 모인 바보들의 행진이 이 고아원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결국 고아원의 상황과 주변 동향을 파악하는 행정업무에, 아이들을 돌보는 육아업무에, 예배를 집전하는 성직자로서의 업무에, 식자재를 공수해오는 업무에, 그 식자재로 요리를 하는 업무까지. 라울은 하나에 한 명씩만 배치해도 힘들 일을 자기 혼자 다 떠맡았다. 그렇다. 신의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것처럼 미친 짓이었고, 포크로 히말라야를 깎아내려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었다. 라울은 이러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되어 천국에 갈 지 자살자가 되어 지옥에 갈 지 알 수 없었다. 라울은 24시간이 모자란 남자였다. 만약 하루가 48시간으로 늘어난다 해도, 그러면 48시간이 모자란 남자가 될 게 분명했다. 


 "빛이시여. 정녕 이 상황을 원하셨습니까?"


 그래서 라울은 인력 증원을 요청했다. 할 생각 없이 억지로 끌려온 봉사단 학생들 말고, 코헤이와 연관된 기업에 지원하려고 인턴 경력 한줄 채우러 온 운동부족 의욕부족 취준생들 말고, 온정적 민족주의에 빠져서 현실 구분을 못하는 몸만 큰 애새끼들 말고, 진짜로 이곳에서 코헤이의 뜻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마음 맞고 뜻 맞고 일 잘하는 이가 한명이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도 버렸다는 이 땅에서 그런 지덕체를 다 갖춘 인재가 이런 고아원에 떨어질 정도로 많을 리가 없다. 그래서 라울은 타협해서 일 잘하는 사람이라도 월급 쥐여서 보내달라고 간청했고, 마지막에는 행정사무만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고 보고했다.


 마침내, 그의 소원이 이뤄졌다. 이번에, 코헤이 원산교구에서 한 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라울이 당초에 원했던 것처럼, 코헤이의 뜻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었고, 마음이 잘 맞고, 뜻도 잘 맞을 인재를 그쪽으로 보내니 참고하라고 했다. 라울은 뛸 듯이 기뻤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바로 다음 줄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기껏해야 한달이면 갈 거라는 부분에서 라울의 기쁨이 꺾이고,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리고 그 마음 맞고 뜻 잘 맞을 거라는  문제의 인물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베로니카라는 부분에서 천국에 날아간 듯 행복하던 마음이 지옥에 처박힌 듯 뜨악한 마음으로 바뀐 차였다.


 "빛의 이름으로. 그분께서 우리 허름한 고아원을 총탄으로 정화하지만 않기를..."


 라울은 베로니카가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는 자비롭기를 바라며, 바람만 휭휭 부는 고아원 정문으로 나왔다. 베로니카가 온다는 소식에, 이곳에 오게 된 계기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어쩌다가 이 신의 권능도 외면하고, 세속의 권력도 버린 북한 지역에 왔는가.


 그도 열성적인 청년이던 때가 있었다. 라울은 구 북한 지역의 실상을 전해들었다. 계속 봉급과 식료가 밀리는 것에 불만을 품은 북한의 전연군단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내통해서 주민들을 데리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30만명이 탈북하는 기록적인 탈출 기록을 세우고, 그에 자극을 받은 이들이 해군이면 바다로, 공군이면 하늘로 넘어오면서 젠가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평양에서도 쿠데타와 내분이 일어나고, 백두혈통이라 불리던 김씨 일가가 전멸하면서 북한 정권이 무너졌다고 들었다. 잔혹한 통치로 이름난 북한 정권 시절을 그리워할 정도로 끔찍하게 변했다, 사람들은 굶어죽고, 아이들마저도 미래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원했다.


  그의 예상대로 고아들은 넘쳐났다. 혼란상에 남한으로 도망친 부모가 버리고 간 군식구, 내전에 휘말려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 나중에 진주한 외국 군대에게 재미로 총살당한 부모의 자식들, 일어나보니 전염병이 돌아 자기를 빼고 일가족이 전멸한 비극을 본 고아들, 태어나서 눈을 떠보니 보육원 앞에 버려져있던 천애고아들. 그 외에도, 전쟁이건 테러건, 무언가에 휘말려서 곧 죽을지도 모르는 부모들 밑에서 태어난 "예비" 고아들. 그냥 고아만으로도 고아원이 미어터질 지경인데, 부모들이 "예비" 고아들을 떠넘겨서 고아원은 초만원 상태였다. 그런데 교단에서 내려오는 운영비, 가끔씩 부모들이나 코헤이 신자가 가져다주는 식료품들은 고아원을 유지하기에는 끔찍하게 빠듯했다. 결국 남은 답은 무엇이겠는가. 라울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보였고, 베로니카가 그걸 구실로 뭐라 할까 두려웠다.


 흙바람이 휘몰아쳐서 저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헬리콥터에 달린 바퀴가 땅을 짓누르며 착륙했다. 바치 저 바퀴가 라울의 가슴과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불안감에 몸이 벌벌 떨렸고, 마음이 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오락가락했다. 저 문이 열리는 시간이 참 오래도 느껴졌다. 결국 헬기 옆문이 열리며 베로니카가 내렸다.



 허벅지를 넘어 골반까지 올라온 옆트임으로 드러내는 흰 살결, 수녀복과 어울리는 검은 생머리. 겉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정체를 아는 이상 아름다움 따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앞에 멀뚱멀뚱 서서 닭 소 보는 양 어색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로터가 일으키는 먼지바람에 얼굴을 가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라울은 베로니카가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말을 건넸다.



 "베로니카 수녀님. 잘 오셨습니다."



 "여기까지 직접 나와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베로니카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라울도 깜작 놀라서 허리를 숙였다. 베로니카는 이런 타입이었지. 분노할 이유가 없을 대는 분노하지 않고 정말로 평온하지만, 분노할 일이 하나라도 생기는 순간 지옥에서 이단들을 고문하다가 올라온 악마처럼 무섭게 변한다고. 엉망인 장부? 과밀 수용? 베로니카가 어떤 걸 보고 화가 날까 두려웠다. 그래도 어쩌랴, 왔으면 대접해야지.


 "이리로 오시면 됩니다."


 "네, 신부님."


 베로니카는 라울을 따라 고아원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기름 못 먹은 지 한참 된 경첩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고아원은 라울이 보기에도 허름하고 초라했다. 유리창 군데군데에 금이 갔고, 깨진 곳은 유리를 구할 겨를도 없어 안팎으로 판자를 덧대서 보수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그런 것에 무심한 건지, 참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라울이 책잡힐 일을 하나라도 줄이려고, 호들갑을 떨었다. 무서우니까 말이 청산유수였다. 라울은 베로니카의 무거운 더플백을 양 어깨에 맨 채로 이런저런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일이 바쁘고, 애들 먹이고 하다 보니 방에 신경을 못 쓰겠더군요... 그래도 청소는 해놨으니 당분간은 머무르실 만할 겁니다."


 "아닙니다. 빛의 뜻을 따르는 이에게는 어디든 궁전이고, 무슨 음식이든 산해진미일 테니까요."


 "하하... 응?"


 휴우! 라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코헤이 신학교 비교종교학 시간에 코헤이의 원류인 기독교 교리에서 따온 게 많다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범사에 감사하라"였다. 베로니카는 코헤이의 뜻을 관철하는 집행자답게 모든 경전을 외우고 있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빛의 전당은 정결하게 관리하라는 구절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을 더 중히 여기는 모양이었다.


 "자! 여기입니다!"


 "네, 짐은 여기다가 내려주시면 됩니다."


 "네, 네."


 라울은 베로니카를 위한 쪽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부탁한 대로 더플백을 내렸다. 더플백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부피는 그렇ㄱ ㅔ크지 않은데 무겁기는 쇳덩이를 잔뜩 집어넣은 것처럼 무거우니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베로니카가 짐을 푸는 것을 도와주려고 지퍼를 열자마자, 서늘한 검은색 무쇠덩어리들이 반기는 광경을 보고 입을 가렸다. 


 "이, 이건..."


 베로니카는 라울의 반응도 보지 않고, 더플백에서 총기들을 꺼내 하나하나 총기명을 호명했다. 산탄총, 자동소총, 저격총, 권총, 그런 속 편한 분류는 베로니카에게 통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총의 노리쇠를 당기고, 실눈을 떠서 그 안을 확인했다. 행여나 총알이 물렸을까, 아니면 미처 보지 못한 무언가가 총 안에 들어있을까 걱정하는 베로니카의 손놀림은 강박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꺼내면서 이름을 부르고 없는 물건이 있나 확인했다. 저 총기들을 일일이 다 말하는 모습을 보니 잘못하면 불호령이 아니라 모가지가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리버 제식 SM10 경기관총, 미국 산림청 법집행수사과 납품 사양 10게이지 더블 배럴 샷건, F2060 돌격소총, 드라군 7 반자동 샷건, 풀러-411 9mm 권총, K83 볼트액션 소총, K401 유탄발사기, CS6 섬광탄, 대검, 망치..."


 그나마 덜 살벌해보이는 것이 철사였지만 다른 것들 옆에 세워두니 교살용 물건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그 총들에 물릴 탄까지 전부 다 꺼낸 베로니카는 그제서야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반응을 보니 빼먹은 것은 하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라울을 돌아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부님. 혹시 여기 무기고는... 신부님?"


 "..."


 왜 이상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아이들을 돌보는 인자한 신부와 이단을 불태우는 잔혹한 수녀의 상식은 다른 세계 사람처럼 딴판이었다. 


 "그... 수녀님?"


 라울도 다른 건 몰라도 피와 살은 푸짐하게 튀는 북한 지역에서 아무 무기도 없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구 북한군 잔당은 북한에 진주한 외국 군대와, 그 외국 군대에 딸려 들어온 이들을 증오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인들, 그리고 일본과 연관된 세력들을 제일 싫어했다. 그렇기에 라울도 수틀리면 바로 총알을 흩뿌릴 수 있게 쉽게 숨길 수 있는 기관단총이랑, 여분 탄창 2개 정도는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정이야 어찌 됐건, 여기는 고아원이지 총기상이나 군사요새 같은 건 아니었으니까. 


 베로니카 그녀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북한이다. 북한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개입한 탓에, 북한 인민들의 절반을 무장시킬 수 있는 총기가 북한 인민들의 어둠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불법 총기류까지 따지면 텍사스보다 더한 총기 천국이 되었다는 곳에서,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많은 빨갱이들이 총을 꺼내들지 모르는데 이 정도는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어디를 가건 사람 100명 정도를 죽일 수 있게 무기를 챙겼다. 하지만 이 속 편한 신부는 베로니카의 마음도 모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


 "..."



 이 두 상식이 부딪쳐서 침묵을 만들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설명조차 필요없었다. 그렇기에 서로가 왜 자신들의 상식이 맞는지 설명하려니 혀가 굳으려 했다. 서로를 바라보던 와중에 이 상식의 충돌을 타협하기 위해 라울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타협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까웠지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기고라, 따로 그런 장소를 만들어두지는 않았습니다만, 지하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울은 지하로 살벌한 무기들을 옮겼다. 무기를 가지고 다닌다는 베로니카의 상식을 받아들이니, 이제는 무기 자체보다는 무기를 볼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아이들 중에 부모를 총으로 잃은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혹시라도 이 살벌한 살인무기를 보고 트라우마가 되살아날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라울은 살금살금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 바람도 무색하게 한 아이가 어두운 복도에서 나타나 라울을 가로막았다.


 "신부님! 그거 뭐에요?"


 "내일 먹을 간식이란다. 다른 곳으로 비켜줄래?"


 "간식이요? 와! 간식이다! 간식! 간식!"


 "상호야!"


간식 말고 책이라고 할 걸 그랬나. 간식이란 말에 달라붙는 아이를 보며 라울이 뒤늦게 후회했다. 간식이라는 말에 맛있는 걸 먹겠다면서 오히려 더플백에 달라붙었다. 라울이 어떻게든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손에서 더플백이 떨어지면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바닥이 울렸다.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도 주르륵 쏟아졌다. 블랙리버 제식 기관총 뭐시기, 미국 산림청 뭐시기 샷건, F뭐시기 돌격소총, 그 외 기타등등...



 신이시여.



 라울은 눈을 질끈 감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아이는 총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었다는 것일까. 그래서 무기를 봐도 울거나 겁을 먹는 반응은 보이지 않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는 신기하게 생긴 검은색 쇳덩이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 베로니카는 쪼그려앉아서, 라울이 흘린 무기들을 다시 주워담기 시작했다. 무덤덤하게 무기를 주워담는 그녀에게 아이의 관심이 돌아갔다.


 "누나는 누구세요?"


 "베로니카, 코헤이 특무수녀회 48번 요원. 그리고..."


 베로니카는 무기를 담으면서 그녀 딴에는 무덤덤하게, 최대한 톤을 조정해서 말했다. 라울의 심장이 차갑게 쪼그라들었지만 아이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아주 좋다. 하지만 그 눈, 그 눈은 뜨지 말아야 했다. 가늘게 치켜뜬 눈에 드러나는 붉은 눈동자, 그 눈동자를 보고 아이가 공포에 질렸다.


 "신부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답니다."


 "히... 히익!"


 아이는 베로니카의 붉은 눈을 보았다. 어두운 방에서 마주친 붉은 눈, 라울 신부님도 애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포에 질려있는 상황.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자기가 누구를 방해한 건지 깨달았다. 그 눈은 무서웠다. 총기처럼 트라우마 때문에 무서워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무서웠다. 그게 베로니카의 붉은 눈이었다.


 "으, 으아아아!!!!"


 "상호야! 상호야! 어어! 저런!"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복도를 뛰어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아이는 어둠 속으로 뛰쳐들어가다가 넘어졌다. 하지만 넘어진 것도 잊고 걸음 보고 날 살리라며 쿵쿵 뛰어갔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아이의 뒷모습을 베로니카와 라울이 지켜보았다. 단순히 신부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말라며 주의를 줬을 뿐인데? 베로니카는 아이가 왜 도망쳤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신부님? 제가 잘못한 부분이라도 있을까요?"


 "아니, 그게... 아니, 아닙니다. 베로니카 수녀님은 아무 잘못 없으십니다. 없고말고요."


 라울은 큰일이 또 생겼다며 뒷목을 잡았지만, 그러게 이딴 살벌한 무기들을 가져와서 이 모양이냐, 같은 말을 할 수 없어서 아무 잘못도 없다고 넘겼다. 애시당초 그 아이가 달라붙지 않았다면 겪을 일도 없었을 공포니까. 내일 일어나면 하는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주의를 주자고 마음먹었다.


 "무기는 여기다가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열쇠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모쪼록 그 열쇠는 잘 간수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수류탄이라도 들고 나왔다가 핀을 뽑으면..."


 "과연. 명심하겠습니다. 신부님."


 베로니카는, 적어도 오늘은 라울에게 이건 왜 이랬냐, 저건 왜 저랬냐 책을 잡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직 어색할 때에 원칙을 다 잡아놔야 나중에 피곤한 일이 없다. 라울은 아무리 베로니카가 독불장군에 무서운 악마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이 버려진 대전차지뢰를 트램펄린 삼아 가지고 놀다가 피분수가 되었다는 이야기, 빨간색을 칠한 불발탄으로 야구를 하다가 투수가 던진 공이 방망이에 맞으면서 타자, 포수, 심판역을 맡은 아이들이 전부 사망하는 신개념 빈볼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익숙했다. 혹시라도 베로니카의 무기가 성 디도 고아원에서 그런 악몽을 만든다면... 아무리 베로니카라도 용서할 수 없을 터였다.


 "여기까지입니다. 편히 주무시기를."


 "네, 신경써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울 신부님."


 무기를 다 정리하자 아이들을 재울 시간이 되었다. 둘은 서로에게 짧게 인사했고, 라울은 아이들이 누워있는 방으로 가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상호야, 잘 자라. 미연아, 잘 자라. 정배야, 잘 자라. 침상에 누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잘 자라고 말해주었다. 침실을 한바퀴 돌고 나서 고아원의 등불을 껐다. 도시의 빛도 새어나오지 않고, 달도 구름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 해야 할 일이 끝나고, 라울은 어둠 속에서 발을 뻗어 그의 방으로 돌아갔다.


 "빛이시여. 꿈에서라도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주소서..."


 짧은 기도를 마치고 그도 잠에 들었다. 오늘의 태양은 오늘이 끝나면서 졌지만,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며 내일이 시작될 것이다. 라울의 얼굴은 베로니카라는 변수 때문에 더 복잡해져 있었다.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