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River: We're your unseen, black river and fences that make you safe."

 "블랙 리버: 우리는 여러분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강이며, 울타리입니다."

-2060년 블랙 리버 코퍼레이션의 슬로건


 이후 블랙리버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는 미대륙 최대의 바이오로이드 기업은 2024년 콩코드 디펜스 시스템즈의 이름으로 생겨난 무기제조회사를 그 뿌리로 합니다. 당시 콩코드 시스템즈는 민수용 총기와 탄약 외에도 위성 네트워크와 연동되는 첨단 총기 액세서리와 소형 무인기도 개발하고 판매했는데, 이런 무인기와 액세서리는 각국의 특수부대 사이에서 은근히 인기있는 품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콩코드 시스템즈는 쓰는 이만 아는, 널리 알려진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후에도 그런 회사로 남았겠죠.

 이 회사의 운명은 리오보로스 가문이 주목하면서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리오보로스 가문은 미국에서 알아주는 재벌 가문이었고, ‘마고 인터내셔널’이라는 지주회사와 그 자회사를 통해 세계의 식량과 에너지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각종 음모론과 부정적 보도에 시달리기도 했죠. 정작 그들 자신은 개의치 않았지만요.

 여하튼 2030년대는 여러모로 앞에 있을 격류를 예고하던 시기였습니다. 환경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졌고, 그럼에 따라 농지는 줄어갔습니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린다는 것을 의미했죠. 국제적인 식량 부족은 리오보로스 가문에겐 큰 기회이기도 했고, 큰 위험이기도 했습니다. 먹을 것이 절박한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식량을 구하려 할테니까요.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식량을 구할 수도 있었고요.

 리오보로스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2020년대부터 몇몇 PMC와 장기 계약을 체결하여 자신들의 자산을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PMC들은 기본적으로 용병이어서, 그들을 계속 고용하려면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어야했으니까요. 그들은 훨씬 저렴한 ‘사병’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인간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수단도 원했고요. 

 리오보로스 가문은 이런 자신들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물색했습니다. 몇 개월에 걸친 계획 끝에 그들은 여러 방법을 동시에 시도하기로 결정하고, 그 방법 중 하나였던 ‘괴뢰기업 만들기’의 대상으로는 적당히 사업 분야가 비슷하며, 주목도가 낮고, 규모도 적당한 콩코드 시스템즈 외 5개 기업이 선정되었습니다. 2031년부터 2033년까지 마고 인터내셔널은 자신들의 사병을 조직하기 위해 총 14개 기업의 지분을 인수해 자신들의 자회사로 편입시켰습니다. 음모론자들은 이러한 마고 인터내셔널의 행보에 그 가문이 사병까지 만들 작정이라며 마고와 리오보로스를 비난했습니다. 뭐, 이건 사실이었지만 마고 측에선 일관되게 단순한 사업 확장이라고 주장했고 결정적으로 이를 증명할 증거가 없어 당시엔 그저 음모론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죠.

 그래서 마고 인터내셔널의 일련의 보안, 화기, 로봇 관련 회사들을 매입한 것은 꽤나 주목, 정확히는 걱정과 우려, 의심을 받았습니다.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되었죠. 마고는 이에 대해 무시로 답했습니다. 해명할 것은 적당히 진실과 거짓을 섞어 해명하고, 과격한 주장에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죠. 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요.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로비는 당연히 포함되었고요.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은 서서히 줄었습니다. 마고 인터내셔널의 행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행동도 줄었죠. 그들은 그렇게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콩코드 디펜스 시스템즈는 마고의 지원 하에서 규모를 빠르게 키워나갔습니다. 콩코드 시스템즈는 화기는 물론, 제대로 된 군용 무인기도 개발하고 제작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보병형, 차량형 등 다양한 유형의 무인기가 콩코드에서 개발되고 제작되어 팔려나갔습니다. 2030년대 후반의 불안한 국제질서도 콩코드 시스템즈의 성공에 커다란 역할을 해주었죠.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2044년, 콩코드 디펜스 시스템즈는 사명을 ‘실버스틸 시큐리티 인터내셔널’로 개칭하고 민간 군사 사업도 벌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제 단순히 무인기를 납품할 뿐만 아니라, 무인기를 사용하기도 하는 회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45년, 실버스틸은 새로이 생긴 민간 군사 사업 부문에서 일할 직원들을 채용했는데 그 중 한명은 전역하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전직 레인저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그가 리오보로스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졌던 수많은 사생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앙헬 리오보로스는 2006년 6월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리오보로스 가문의 당주였고, 그의 어머니는 마고 인터내셔널이 가진 최대의 자회사였던 ‘센트럴 애틀란틱 그레인즈 앤 굿즈’의 한 여직원이었습니다. 여직원이라고는 해도 꽤 높은 위치였지만요. 어쨌든 그 당주와 그 직원은 불륜 관계였습니다. 당시의 가주는 아는 이는 알 정도의 난봉꾼이었으니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죠. 앙헬 또한 그런 관계에서 나온 수많은 사생아 중 한명이었습니다.

 사생아였기에 리오보로스의 성을 쓸 수 없던 앙헬은 이후에 자신의 반쪽짜리 가문을 숙청하고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다른 이름을 썼습니다. 트렌튼 리즈.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이름이었습니다. 앙헬, 아니 트렌튼은 기업의 중역이었던 어머니로부터 야망을 물려받았고, 사람을 휘어잡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는 비록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그의 피에는 미국에서 알아주는 재벌인 리오보로스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는 그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트렌튼은 자신의 반쪽 가문이 자신을 인정해주기 위해선 우선 능력이 있어야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학업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그 결과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젊었던 그는 정치가 야망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었죠. 아마 그 일이 아니었다면 그는 사회운동을 벌이고 지지자를 모으며 정치적인 기반을 쌓아갔을 겁니다.

 그의 젊었던 시절은 아버지를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만 빼면 평탄대로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의 삶에 첫 번째 굴곡이 찾아오게 되는데, 그의 어머니가 기업에서 축출당했던 것입니다. 리오보로스 가문의 당시 가주는 계속 불륜을 의심받고 있었는데, 이제 그 오래되고 깊은 비밀이 파헤쳐지기 직전에 이르자 가주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불륜과 관계된 이들을 비공개적으로 ‘숙청’했고, 내연녀 중 한 명이었던 트렌튼의 어머니 또한 그에 포함되어 기업에서 횡령죄라는 누명을 쓰고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2031년, 그는 결국 컬럼비아 대학교를 중퇴하고 그의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온갖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장성한 그는 이러한 불행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리오보로스 가문의 짓임을 알았습니다. 앙헬은 악착같이 생계를 유지하며 갖가지 고생을 했고, 이는 그가 마음 속에 독을 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리고 그 독기는 그가 가지고 있던 야망에도 스며들었죠. 트렌튼은 이제 리오보로스의 일원이 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기회를 잡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당했던 것처럼, 가문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가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기회를요.

 

 마고 인터내셔널이 잇따라 군사, 보안, 무기 부문 회사들의 지분을 사들이는 것을 본 트렌튼은 이를 리오보로스의 사병 조직 시도로 보았고, 그에 따라 미 육군 입대를 지원했습니다. 용병이 되려면 그만한 경력이 있어야했으니까요. 2032년부터 미 육군에서 복무한 트렌튼은 이후 2034년 혹독한 레인저 스쿨의 훈련을 수료하고 75 레인저연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실전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는데, 혼란스러운 2030년대의 정세 속에서 그는 팔레스타인, 코카서스, 멕시코 등 여러 곳에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경험을 쌓았습니다.

 2043년, 구 아랍에미리트령 아부다비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복부에 부상을 입은 그는 이를 계기로 군대를 나와, 2044년까지 부상을 치료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부상이 완치된 후인 2045년, 그는 이젠 실버스틸로 사명을 바꾼 뉴햄프셔의 한 무기제조 및 민간 군사 기업에 입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실버스틸의 군사 고문단 중 한 명이 되어 이후 몇 년 동안 흔히 군사용역업체들이 수행하는 업무들을 수행했고, 2050년에 들어서선 그가 희망하던 대로 무기제조부서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리를 옮긴지 몇 달 뒤, 한국의 다국적 기업인 삼안 산업이 새로운 생체형 로봇인 바이오로이드를 공개했는데, 다른 많은 이들이 그랬듯 트렌튼 또한 바이오로이드에 열광했습니다. 자율적인 사고가 가능하며,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고, 제어도 가능한 바이오로이드는 실버스틸에게 있어서, 그의 야망에 있어 완벽한 도구가 되어줄 터였습니다.

 때문에 트렌튼은 발빠르게 바이오로이드를 실버스틸의 주력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어렵사리 실버스틸 경영진을 설득해 거금을 들여 바이오로이드 근간기술을 삼안으로부터 사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삼안이 보안, 군사 분야보다 서비스 분야에 관심이 더 많았던 덕택에 트렌튼은 사비를 들이면서까지 어렵게 기술을 사올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독자적인 바이오로이드 개발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는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의 게놈을 실버스틸의 첫 바이오로이드에 사용할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자신이 있었고, 자부심도 있었으며, 기대도 컸습니다. 회사 내에선 이런 트렌튼더러 헛걸음을 한다며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일절 개의치 않고 바이오로이드 개발에 전념했습니다. 트렌튼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알렉스’라 이름붙여진 실버스틸의 첫 바이오로이드는 2052년 5월 시제품이 나왔고, 테스트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합니다. 실버스틸 경영진은 ‘알렉스’를 회사의 무인기 라인업에 추가하는 것을 허가하고 생산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에 뛰어드는 분명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내부적인 테스트에서 성공을 거두며 트렌튼은 자신의 작은 성공에 고무되었습니다. 그는 분명 케인이 국제 무기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확신을 증명할 기회는 머지 않아 찾아왔습니다. 실버스틸이 알렉스를 대중에게 공개한 후 1년이 지나, 요르단에서 내전이 발발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광기가 중동을 집어삼키게 두지 않겠다.’며 개입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실버스틸은 알렉스를 군용으로 쓸 수 있도록 개량한 모델인 ‘고블린’을 거의 완성한 상태였고, 미국의 요르단 내전 개입은 이제 막 완성된 고블린들에게 있어 최적의 실전 테스트 기회가 될 터였습니다. 

 2055년 9월, 미국 정부는 실버스틸을 고용했습니다. 계약 중에는 반군으로부터 탈환한 지역의 안정화도 있었는데, 트렌튼은 이를 고블린을 활용할 기회로 보았습니다. 그는 고블린을 활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군용 무기는 실전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논리 하에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고블린은 성공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그것들은 곳곳에서 나타나는 반군들과 테러리스트들을 추격하고 제압하는데 놀라울 정도의 성과를 보였고, 지역 주민들이 외국의 개입에 불만을 갖고 벌이는 시위나 폭동도 사망자 없이 비교적 평화적으로 해산시키기도 했습니다. 요르단은 여러모로 바이오로이드의 우월한 신체적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전장이었고, 각국은 이런 군용 바이오로이드의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실버스틸은 군용 바이오로이드를 알리는 데 성공했고, 트렌튼에게 이는 두 번째 성공이 되었습니다.

 고블린 모델이 요르단에서의 성과로 인해 크게 수요가 늘면서, 실버스틸은 또다른 성장기를 맞게 됩니다. 이제 실버스틸은 콜트나 레밍턴에 못지 않은 규모로 커졌고, 바이오로이드를 이용한 민간 군사 사업은 전에 없이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바이오로이드를 개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트렌턴 리즈의 입지도 나날이 올라갔습니다.

 2056년 말, 고블린의 성공에 힘입어 트렌턴 리즈는 실버스틸의 새로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큰 성공이었고, 그는 이에 한껏 고무되어 자신의 비원을 이룰 날도 멀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두 번째 내리막은 오래지 않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2057년 4월 1일, 오작동한 고블린 개체들이 모술에서 포로와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으로 퍼졌고, 만우절 학살이나 모술 참사 등으로 불리며 군용 바이오로이드의 신용을 순식간에 추락시켰습니다. 그는 그마저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효과적으로 대응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는 전량 리콜, 생산 물량에 대한 전수 조사등을 약속하며 피해자들에겐 진심어린 위로와 합당한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불타는 여론을 잠재우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습니다. 곳곳에서 고블린의 사용을 중지했고, 계약은 잇따라 파기되었습니다. 트렌튼은 CEO에 오르자마자 내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만, 사명을 바꾸면서까지 사업을 쇄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겨우 경영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앙헬의 뿌리는 이때부터 바뀐 이름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블랙 리버’였습니다.

 트렌튼은 고블린을 대체할 차세대 바이오로이드를 개발함과 동시에, 군용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그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보인 자세를 보면 자신의 자존심마저도 이미지 쇄신을 위해 투자한 것 같았죠. 여하튼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들의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때를 전후해서 실업 등의 바이오로이드의 등장이 일으킨 여러 문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미지와는 별개로, 그는 블랙 리버의 고객층에게 고블린의 오류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는 심어주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수백 번의 개량 과정 공개와 소프트웨어 검증, 실전 테스트에서의 결과 공개 등을 거친 결과였죠. 겨우 고객의 신뢰를 회복한 실버스틸은 다시 실적이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모술에서의 사건은 트렌튼에게 초조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아직도 모술의 고블린들이 왜 오작동해서 규범을 어기고 민간인들을 공격했는지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사실 고블린이 안전한지 확신할 수 없었고, 고블린이 만약 또다른 오작동 사례를 기록한다면 이는 실버스틸에게 복구할 수 없는 피해로 돌아올 터였습니다.

 초조함은 트렌튼에게 지금이라도 거사를 일으키라는 심리적 압박을 낳았습니다. 비록 큰 사고가 터지긴 했으나 실버스틸은 여전히 거대했고, 트렌튼 자신은 그 거대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트렌튼은 그가 실버스틸에 입사했을 때부터 그는 꾸준히 여러 수단을 통해 마고 인터내셔널과 리오보로스 가문 내에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거나 심어놓았고 지금 그는 그만의 파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세력을 만들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어머니가 전해준, 리오보로스의 일원이라는 증거들 또한 지금까지 간직해두고 있었죠. 예기치 못한 사태로 그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이제 스스로에게 선택을 강요당했습니다. 위험하지만 지금 바로 행동에 나서거나, 위험하지만 완벽한 한 순간을 노리기 위해 기다리거나. 그리고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택했습니다.

 2058년 6월 11일부터 2059년 11월 23일까지, 트렌튼 리즈와 그가 이끄는 블랙리버 바이오로이드 병력은 이전에 파악해둔 리오보로스 가문과 마고 인터내셔널의 반 트렌튼파의 제거 작업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암살 시도는 대개 사고사나 정신이상자의 우발적 살인 등으로 위장되었고, 이제는 막강해진 실버스틸의 로비력은 이런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네놈들은 사생아(bastard)인 나더러 개새끼(bastard)라 부르지만, 나를 개새끼로 만든건 네놈들이야. 알아?"

-트렌튼 리즈, 2059년, 블랙 리버 비공개 녹취록.

 그렇게 리오보로스 가문의 25%가 넘는 인원들이 잇따라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어 비공식적으로 숙청을 당한 뒤, 트렌튼은 마지막 한 수를 두기 위해 2059년 12월 14일 매사추세츠 퀸시의 리오보로스 가문 저택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물론 바이오로이드를 대동해서요. 그는 숙청에서 예외시킨 가문의 중진들과 마고 인터내셔널의 일부 임원들을 협박하여 리오보로스 가문의 가주 자격을 강제로 얻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는 대외적으로는 트렌튼이 실제로는 리오보로스 가문의 잃어버린 자식이었고, 잇따른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가문의 일원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혈통 계승이 위태로워진 가문이 트렌튼을 가문의 가주로 추대하게 되었다는 일로 알려지게 됩니다. 석연치는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들 스스로가 그런 사연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트렌튼 리즈, 아니 앙헬 리오보로스는 이제 가문과 모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피를 통해서요. 이 은밀한 숙청은 이후에 그가 보이게 되는 잔학성과 무자비함, 그리고 망상의 프롤로그와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숙청에 따라 생긴 빈자리들을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 채웠습니다. 다만 경쟁자가 생길 것을 우려한 앙헬은 이제까지 파악한 리오보로스 가문의 사생아들의 소재를 파악해 처리할 것을 블랙리버와 기타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과정이야 어쨌건, 그는 이제 리오보로스 가문의 가주가 되어 가문을 지배하게 되었고 마고 인터내셔널은 블랙 리버의 모회사라고는 하나 사실상 그의 꼭두각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기뻐할 틈도 없이 또다른 위기를 맞게 되니, 고블린이 또다시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2060년 2월 28일, 뉴올리언스에서 벌어진 실업자 시위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루이지애나 주 경찰이 동원한 고블린들이 모술에서처럼 오작동을 일으켜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위 참여자 15명이 사망하고 34명이 경중상을 입었는데, 이는 재빨리 ‘제 2의 모술 사태’, ‘뉴올리언스 학살’ 등으로 불리며 소식이 퍼져나갔습니다. 고블린이 두 번이나 오작동을 일으켜 민간인을 살해하면서 블랙 리버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음 날, 블랙 리버는 고블린 모델을 전량 회수하여 폐기하고 이후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입장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바이오로이드 혐오 정서를 결정적으로 기폭시킨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반 바이오로이드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정치권에도 영향을 주어 미국의 각 주와 연방이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규제법을 통과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바이오로이드 사업이 주력이 된 블랙 리버 입장에서 이는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2062년 미국 연방의회가 군용 바이오로이드 생산을 금지하는 바이오로이드 규제 연방법을 통과시키면서 블랙 리버는 자신의 주력 분야에서 강제로 철수당할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연방에 대해 제대로 적개심을 품게 된 앙헬은 겉으로는 미국 정부의 조치를 따르는 척 했습니다. 고블린을 이어 차세대 군용 바이오로이드로 개발되던 ‘브라우니’ 모델은 군용에서 단순노동용 바이오로이드로 전용되었고, 블랙 리버의 민간 군사 사업 부문은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죠.

 실제는 겉과 좀 달랐습니다. 시중에 풀리는 물량을 제외하면, 브라우니들은 대부분 용도가 변경되지 않은 채로 은밀하게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옛 중국령의 군벌들에게 팔려나갔고 블랙 리버는 그 대가로서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밀수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 리버의 민간 군사 부문은 겉으로는 축소되었지만 실제로는 비밀 조직화되어 은밀하게 사업을 지속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블랙 리버는 거의 완전히 앙헬 리오보로스의 사병 조직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목격자들은 매수하거나 제거하며 은밀하게 자신의 사병들을 키워온 앙헬 리오보로스는 이젠 가문이 아닌 나라를 뒤엎을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규제가 없고 거대기업은 합당한 예우를 받는, 완전히 새로운 미국을 만드는 계획이었죠. 그는 이 계획만큼은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보아, 공개적으로 무력을 사용해 연방정부는 물론 각 주의 정부들까지 장악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가 최적의 타이밍인지는 그도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미군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대였고,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미군과 전면전을 벌여 이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는 적절한 때가 오기까지 계획을 실행할 날을 미룰 수밖에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그 기회는 머지 않아 찾아왔습니다.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정치적으로 위기를 겪던 국가들이 연달이 기업들의 반란을 맞으면서, 미국과 유럽은 이를 좌시할 수 없다고 보아 대규모 병력을 세계 각지로 파견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펙스 컨소시엄은 말레이시아 내전을 부추겼다는 의혹으로 인해서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이었죠. 앙헬은 컨소시엄의 칠인회와 접선해 자신의 기업 혁명에 동참하라며 일곱 회장을 설득했습니다. 그들 또한 앙헬처럼 자신의 사업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던 이들이었죠. 설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블랙 리버와 펙스의 야합은 미군이 대규모 해외 파병으로 인해 국내의 전력에 공백이 생긴 지금이 일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간의 회동 끝에 2070년 9월 8일을 ‘혁명의 날’로 정하죠.

 2070년 9월 8일, 마침내 때가 왔고, 그들은 행동했습니다. 이제 블랙 리버에겐 극락과 나락의 두가지 결말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여명의 세기는 '정부-기업 전쟁이 무승부로 끝났다면?','철충의 침공에서 인류가 살아남았다면?'의 2가지 가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대체 설정입니다. 공식 설정에서 참고한 부분, 새로이 지어낸 부분, 반대로 지워낸 부분, 그 외 변경점이 많기 때문에 저도 눈치 채지 못한 설정 오류나 모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 정정이나 설정에 대한 질문, 제안이 있다면 부디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