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정부의 지원금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사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풍기는 골목길에서 한 남성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 더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없다 하더니 이래도 남아있었구만'

 그러면서 조소를 짓는 그였으나 지금 각 집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아낙네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 이 시간이면, 아니 어느 시간이든 이 빈민촌에선 울려 퍼질리 없었던 각종 음식의 냄새에 반응해 연신 소리를 내는 배를 무시한채, 허기를 참으려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석철. 이 빈민촌의 많고 많은 평범한 잡일꾼이자 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가장이었다.

 오랜만에 맡는 맛있는 냄새에 온갖 꼴값을 떨며 난리치는 그의 위장과는 다르게 그의 머리는 이 냄새를 그리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 있을 일을 알고 있기에, 아낙들이 이 이른 시간부터 진수성찬을 차리는 이유를 알고 있기에, 그는 극저 씁쓸한 눈빛으로 담배를 꼬나물 뿐이었다.

'염병 이렇게 맛없는 담배는 오랜만이구만'
"예서 아버지 밥 다됐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부엌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들어가서 보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쌀밥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고깃국, 폭식폭신해 보이는 계란찜을 비롯한 보기만 해도 든든한 반찬들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껏 그 적은 지원금 중에서도 일부를 아껴 놓아 모은 것들을 풀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아마 다른 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석철의 배는 이제 아주 생난리를 치고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이 밥상이 고마우면서도 고깝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였을 것이다. 그가 옆에서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아내에게 이리 퉁명스레 말한 것은

"이러지 말라고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그리 말하며 밥상 옆에 서서 자신을 다정히 바라보는 아내를 보니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밥을 먹으려 밥상을 보았다. 수저가 하나 밖에 올려져 있지 않았다.

"...같이 들지"
"아니에요. 전 이따가 예서 깨면 같이 먹을게요"

 쓸데 없이 배려한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더는 아무말 않고 묵묵히 숟가락을 들어올렸다. 오랜만에 먹는 진수성찬이었으나 어딘가 쓴맛이 느껴졌다. 그만큼 이 밥상이 가진 무게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난 뒤 그는 결열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싹싹 비워드셔도 되는데"
"됐어. 나머진 예서한테나 줘"

 배가 꽉찬건 아니었다. 이런 날 배탈로 거사를 망칠 수야 없으니까. 그저 자신이 이것들을 다 먹으면 맨밥 밖에 못 먹을 가족들을 생각했을 뿐이다. 아내도 그런 마음을 아는 지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슬슬 나가려고 채비를 하고 있으면 갑자기 뜬금 없는 소릴 내뱉는 것이었다

"여보, 역시 그만두면 안ㄷ..."
"그만, 이미 끝난 얘기잖여"

 이건 이미 어저깨 얘기를 다 끝마친 것이다. 결국 그녀도 이해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아침이 풍성한 것이었을터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끊고 뭐라고 더 하려 했으나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그 눈빛에 차마 더는 뭐라하지 못하고 마저 채비를 하려고 했다.

"그래도...죽을 수도 있잖아요"
"하! 고깟 놈들이? 어떻게든 그 인형 놈들을 인정 받게 시키려는 놈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
"다치긴 하잖아요! 당신이 다치면 저랑 예서는 어떡해요!"
"염병! 이 육실헐 여편네가! 그 얘긴 이미 끝마쳤잖아! 이제와서 왜 이래!"

 정작 때가오니 덜컥 겁이 난것일까. 자꾸만 자신을 말리는 아내에게 갑작스레 소리치며 화를 내봤으나 아마 그도 약해지는 마음을 숨기려 그랬던 것이리라

 그러나 화내면서 뒤돌아 본 순간 그는 아차 싶었다. 오히려 이젠 마음이 거의 깨질 듯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평소엔 맡아볼 수 없는 냄새에 일찍 잠이 깬 그의 딸은 어서 밥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먹고 싶었으나 부모들의 심각한 분위기 때문에 입맛만 다시며 방에서 상황을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가 나서려 하자 슬슬 방에서 나오려고 간을 보고 있던 중 갑작스레 화내는 그를 보며 겁을 먹은 것이다.

 자신의 딸의 겁먹은 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자 그는 속으로 울컥하면서도 더는 이곳에 있다간 결국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서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을 나섰다.





"김씨 왔는가"
 집을 떠나 곧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온 곳은 어느 폐쇄된 경찰서였다. 아직 인간 경찰관이 있던 시절 이 근방 치안을 담당하던 곳이었으나 이곳이 완전히 몰락한 지금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표정이 않좋은거 보니 댁도 마누라한테 한소리 들었나보군"
"......"
"신경 쓰지마. 오히려 그런 말 안듣고 온 사람이 더 적을테니까. 그래도 잊지마 우리가 하는건..."
"알고 있수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후대를 위한 일이지"
"잘 알고 있구만 어서 들어가봐. 이미 꽤나 모여있어"

 경찰서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들도 이번 거사에 참여하는 이들일 터다. 대충 눈인사를 나누고 무기고로 향했다. 거기서 이번 일을 위해 모인 이들에게 무기를 나눠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자네도 와줬군"
"이제와서 빠질 수도 없지"

 무기고에 가보면 이번 일에 주모자인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상류 계층이면서도 이들과 같은 하층민에 섞여 그들을 옹호하는 이 남성은 앞으로 있을 중대한 일을 계획하고 지원하는 이였다.

  보통은 더럽다고 깔보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친근하게 대해주는 특이한 이였으나 그렇기에 이런 일까지 동참해준 것일터다.

"결국 이렇게 돼서 미안하네"
"그게 자네 탓인가 윗대가리들이 문제인거지. 그보다 더는 그런 말 말라고 했잖아. 나도 다른 놈들도 다 어떻게 될지 알고 하는 일이잖나"
"음, 알겠네. 더는 말 않지. 말이 길어졌군 자네는 4조였지? 저 망치를 받아가게"

 잡담을 조금 나누고 무기를 받았다. 겉보기엔 특이할 것 없는 커다란 망치였는데 그 질긴 인형 년들도 부술 수 있는 특수한 기술이 적용된 망치란다.

 그렇게 무기를 들고 아는 얼굴들 하고 인사 좀 나누고 있으니 곧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퍽이나 많이 모이긴 했으나 겁먹고 도망쳤는지 몇 몇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겁쟁이 놈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으로 그들을 욕하고 있다보면 모인 사람들 앞에서 아까 그 중년의 사내가 연설을 시작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우선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리들 모여 주신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얼마전 국회는 결국 인간고용할당제를 만장일치로 부결 시켰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국가가 국민을 버린 것입니다!"
"옳소!"
"더러운 정치인 놈들!"

여기저기서 그 말에 동조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정부는 인형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뺐는걸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젠 이 사회의 주인이 우리 인간인지, 아니면 저 영혼 없는 인형들인지 헷갈리는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더는 이런 사태를 방관해선 안됩니다!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젠 우리의 의견을 더 확실한 방법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점점 고조되던 회장의 분위기는 결국 그의 마지막 말에 의해 폭발했다.

"이건 혁명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되찾기 위한 혁명! 무기를 들라, 인간들이여!"

""무기를 들라! 인간들이여!""

 연설의 마지막 끝마디이자, 그들의 구호를 외친 사람들은 곧장 경찰서를 나와 시내로 향했다.



 시뻘건 피가 솟구치고 살이 뭉게진다. 그리고 그 사이로 금속이 보인다.

"이...인간님들 이러지 마세...꺄악!"
"역겨운 인형 년들! 어디 사람인척 하고 있어!"

아침까지만해도 평화롭던 시내는 어느새 아비규환이 돼있었다. 아침에 맞춰 출근하던 바이오로이드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하나 같이 어딘가 부러진 채로.

 인간이었다면 칼슘으로 이루어진 뼈가 살 밖으로 튀어나왔겠으나 그녀들에게서 튀어나온 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뼈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위대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녀들은 인간이 아니란 확신을

"전 인간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녀들 사이사이엔 인간 여성도 있었으나 시위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시간에 이 거리에 나왔다는건 어차피 가증스런 상류층의 일원이라는 것이었으니 오히려 더 힘을 담아 때리는 시위대원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위대 사이에 석철 또한 섞여 열심히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인형을 부수고 거리 곳곳을 파괴하며 인간의 권리회복을 위하고 있었다.

 부수고 부수고 부수고 또 부쉈다. 자신들의 정의가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아니 어쩌면 오롯이 그것만이 기억 나도록

 그러나 또 다른 파괴를 하려고 돌아선 순간, 정의로 혼탁해져 있던 눈이 번뜩 떠졌다.

 그곳엔 아동형 바이오로이드가, 아니 한 소녀가 있었다. 자신이 아침에 보고 나온 딸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소녀가.

 그제야 그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제야 이 혁명의 광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유혈이 낭자했다. 여기저기서 불이 타올랐다. 그리고 맨손에 저항도 못하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자신들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짭새다! 튀어!"

 석철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사람이 얼마 없는 어느 장례식장 안에서 아버지를 잃은 딸을 안은채 눈물을 흘리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앞엔 석철의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