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23554593

오르카는 철충 둥지를 무너뜨렸으나 역시 잔당 철충들은 완전히 뿌리를 뽑지 못 하였다. 일부 연결체들은 둥지가 함락할 때 자신들의 무리를 데리고 둥지를 이탈하였으며 현재는 오르카의 영토 안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다. 워낙 소규모인데다 코나가 이런 게릴라를 염두에 두고 영토 내 감시 및 방어를 강화했기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게릴라로 인해 얻는 피해는 오르카의 자원으로 대체되기에 왠만하면 이 게릴라들을 뿌리 뽑는 것이 중요했다. 때마침, 이런 게릴라 활동을 자주 해왔던 신속의 칸과 그녀의 앵거 오브 호드가 있었기에 게릴라 철충 수색 및 소탕은 손 쉬웠다.

하반신의 추진 장치로부터 불꽃이 뿜어져 나오면서 칸의 신과 같은 속도에 철충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게릴라 철충들은 폐허 도시의 공터에 꼼짝 없이 포위된 상태였다. 장비에 장착된 칼날이 가동되었고 칸은 그 칼날을 이용하여 철충들을 절단했다. 칸의 공격에 센츄리온이 쓰러졌다. 센츄리온을 잃은 철충 게릴라 부대는 더더욱 당황한듯 하였고 오합지졸이 된 이들을 카멜과 워울프가 한 꺼번에 처리하였다. 하늘 위에서 페더가 도망치고 있는 연결체 스토커를 발견했다.

"스토커가 소규모 철충 분대들과 함께 도주하고 있어요!"

"사령관, 들었겠지? 부탁한다."

스토커와 철충 분대들이 도망치고 있는 와중 무언가가 그들을 지나쳤다. 스토커는 왼팔이 어깨 채로 절단되었음을 눈치챘다. 곧이어 한 인간의 형상이 나타나 부드럽지만 재빠른 연격으로 스토커 주변의 철충들을 양단하였고, 마지막은 스토커의 목을 쳐 참수했다. 스토커의 떨어지는 머리는 마지막으로 보았다. 마치 벽화의 성기사처럼 갑주와 금속제 가면을 쓰고, 검은 후드를 쓰고 롱소드를 들고 있는 여성을.

도망치는 게릴라 부대를 성공적으로 섬멸한 그녀는 가면을 벗어서 공기의 시원함을 느꼈다. 이마에 땀이 가득 맺혀있었기에 보다 더 시원한 것 같았다. 뒤이어 칸과 앵거 오브 호드가 도착했다.

"훌륭하다, 사령관."

칸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를 칭찬했고 그녀, 코나는 베시시 웃으며

"모두가 훌륭하죠!"

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코나의 실전 투입이 허가되고 나서 코나는 놀라울 정도의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다. 철충 게릴라 소대를 단신으로 섬멸하는 것은 물론 연결체와의 1대1 일기토 끝에 연결체를 참살하는 등 모두를 놀라케 하는 전적을 세우고 있었다. 검의 초고열 기능을 끈 그녀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후우, 열심히 뛰었더니 배고파요."

"그럼 돌아가서 함께 식사나 하지."

"어어, 마침 좋은 술이 있거든."

워울프가 한 잔 하자는 제스쳐를 취했고 카멜은 그런 그녀의 뒤통수를 퍽 치면서

"또 술 타령이야!"

워울프를 꾸짖었다. 페더는 그러던 말던 칸과 코나의 투샷을 마구마구 찍고 있었다. 주둔지의 게릴라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목적으로 코나는 잠시 오르카 호에서 나와 주둔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 코나를 호위하기 위해 앵거 오브 호드, 아머드 메이든, 몽구스 팀, 컴패니언 시리즈들이 함께 하선했고 일부 배틀 메이드 역시 함께 하선했다.

카페테리아에서 앵거 오브 호드와 코나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작게 썬 구워진 고기들을 접시에 담은 칸과 브라운 소스를 부은 미트볼을 맛있게 먹는 코나, 그리고 여전히 왁자지껄한 앵거 오브 호드의 분위기로 카페테리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수다스럽게 변했다. 그리고 이런 수다스러운 분위기에 맞춰 몽구스 팀들 역시 카페테리아에 도착했다.

"어? 사령관~!"

미호가 가장 먼저 코나에게 달려가 그녀의 뒤를 안았고 코나는 미호에게서 나는 향긋한 냄새로 바로 그녀를 알아차렸다.

"아, 미호 씨. 임무 다 끝나셨나보네요?"

"응! 오늘도 헤드샷으로 끝냈어!"

"우리들이 주의를 좀 많이 끌어줬지만!"

핀토가 웃으면서 허세 섞인 미호의 말에 허점을 넣었다. 미호는 조용히 하라듯이 손가락으로 쉿 하는 제스쳐를 가졌지만

"이 드라코 님이 안 막아줬으면 계속 누워있었을 걸!"

드라코가 확인사살을 더 하였다. 불가사리도 거기에 편승했다.

"오늘은 확실히 미호가 조금 느리긴 했지. 사령관한테 자랑할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 만들고 싶댔나?"

"야!! 그건 비밀로 하랬잖아!"

버럭 소리지르는 미호가 무척 귀여운 터라 코나를 비롯한 칸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몽구스 팀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홍련은?"

홍련은 어딨냐는 물음에 드라코가 답해주었다.

"엄마는 잠깐 목욕하러 갔어! 먼지를 뒤집어썼거든! 당뇨처럼!"

"당뇨가 아니라 담요야."

불가사리가 지적해주자 드라코는 눈을 반짝였다.

"역시 패트릭이야! 똑똑하다니까!"

"그니까 패트릭이 누군데...."

한창 시끌벅적한 테이블을 들은 누군가가 주방에서 나타났다. 하치코는 코나를 비롯한 모두가 재밌게 수다를 떠는 것을 보고 눈을 반짝이며 다시 주방으로 휙 들어갔다. 그리고는 약 5분 뒤,

"여러분!! 하치코가 맛있는 걸 만들어왔어요!!"

그녀는 초거대 미트파이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두었다. 테이블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와지끈 하는 소리도 함께 날 정도로 크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미트파이였다.

"와! 미트파이!"

코나가 미트파이를 보자 침을 흘렸지만 다른 모두는 갑자기 입이 싹 닫혔다. 얼마 전, 딱 이런 사이즈로 하치코의 민트파이가 오르카 호 파티 때 나왔었다. 모두는 물론 언니 리리스마저 강한 민트의 냄새 때문에 괴로워 했지만 모두가 맛있게 먹어줄 거라는 하치코의 굳은 믿음 덕에 오르카 호 모두가 민트파이를 강제로 먹었어야 했다. 그 중 5퍼 정도는 모두가 먹었고 30퍼는 하치코가, 나머지는 모두 코나가 먹어치웠다. 코나가 민트를 좋아했다는 것이 모두에겐 행운이었다.

코나는 오늘은 민트파이가 아닌 것을 냄새로 느끼고 하치코에게 물었다.

"오늘은 민트가 아닌가요?"

"우, 우으...그게...저번에 민트를 전부 써버려서 그냥 미트파이 밖에 못 만들어요..."

그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치코의 파이는 맛있지만 그게 민트여서 문제였던 것이다. 오르카 호의 일부는 민트초코 등의 약간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을 좋아하긴 했지만 민트를 왕창 넣은 민트파이는 누구라도 좋아할 리가 없다. 코나와 하치코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냥 미트파이라면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렇게 카페테리아에서 미트파이 파티가 벌어지고 있을 때, 관제탑 쪽에서는 무척 소란스러웠다. 관제탑의 모든 설비로부터 붉은 점등이 나오고만 있었다. 미확인 비행체는 물론 미확인 선박까지 여럿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관제탑에서 개인 방을 차린 것과 동시에 이 곳을 맡은 LRL이 경악하였다.

"ㅅ...사...사령과아아안!!!"

권속이 아니라 사령관이라고 부를 정도로 급해진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자신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들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코나를 따라 오르카에서 내린 일부 배틀 메이드 중에는 금란 역시 있었다. 바닐라, 콘스탄챠, 금란, 블랙 웜 등이 내렸다. 조용한 곳에 앉아 풍수를 즐기고 있는 금란이 저 멀리서 어떤 검은 기운들이 느껴지자 눈을 떴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그녀는 자신의 환도를 챙겨 어디론가 향했다. 그런 금란을 옆에서 보던 블랙 웜도 만반의 전투 준비를 마치고 금란을 따라나섰다.

입 안 한 가득 미트파이를 넣은 하치코의 주위에는 한 곳만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바이오로이들로 가득 했다. 코나였다. 나이프로 미트파이를 도저히 한 입으로 다 못 넣는 크기로 잘라서 그것을 엄청난 속도로 먹어대는 코나를 모두가 신기하듯 쳐다봤다. 바보 드라코는 미트파이가 맛있다면서 먹어대고 있었기에 안 보고 있었고 칸은 이미 익숙한지 미소를 띄우며 미트파이를 조금씩 먹고 있었다. 코나, 칸, 탈론페더, 워울프, 카멜, 미호, 드라코, 불가사리, 핀토, 하치코가 전부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 있는 테이블보다 더 큰 미트파이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마지막 조각을 하치코에게 양보한 그녀는 맥주잔에 담긴 포도주스를 2초만에 들이키고 나서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입에는 빵조각, 고기조각 등이 묻어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사령관, 칠칠치 못 하군."

칸이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닦아주었고 페더는 거기에

"이, 이건! 자매같아! 언니랑 여동생 같아요! 누가 언니던 누가 여동생이던 이건 귀하군요!"

바로 카메라를 꺼내어 찰칵찰칵 찍기 시작했다. 그 때, 카페테리아에 들어온 LRL이 그녀를 불렀다.

"사령관!! 크, 큰일...아코!"

LRL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져 도끼를 던지고 말았다. 도끼가 코나의 미간을 정확히 노렸지만 코나는 나이프로 도끼를 받아내었다. 그 후 도끼자루를 손에 쥐고 LRL에게 다가가며 그녀를 걱정했다.

"LRL, 괜찮아요? 다쳤어요?"

"으으....아퍼....아, 이게 아니지! 지금 큰일났어! 뭔지도 모를 것들이 여기로 오고 있어!"

LRL이 말을 마치자마자 블랙 웜과 금란이 나타났다. 금란은 코나에게 다가가 자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느낀 것을 말하였다.

"상당한 량의 병력을 대동한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이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코나는 LRL에게 도끼를 주었고, 쪼그라 앉았던 자세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 말했다.

"전원, 전투 준비!"

코나의 호령에 모두 신속히 무기와 장비를 챙기고 바깥으로 나갔고 코나도 구석에 짱 박아둔 검집을 허리춤에 맨 후, 가면을 머리에 올려쓴 뒤에 후드를 걸치고 천천히 나갔다. 동시에 나가면서 비상 버튼을 눌러 사이렌을 울리게 해서 주둔지 상황을 전투 상황으로 만들어 다른 대원들을 즉각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셀주크와 폴른 등의 AGS들이 공격을 대기 중이고 주둔지 안에서 대기 중이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중장비까지 챙겨나왔다. 이미 거치형 포들은 모두 설치가 완료된 상태였다. 코나는 일단 그들에게 사격 명령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시력에 정신을 집중해서 마치 망원경처럼 이 쪽으로 오고 있는 수송선들과 상륙선들을 보았다. 자신들의 주둔지에 쳐들어오는 저들은 철충은 확실히 아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펙스였다. 코나는 펙스가 드디어 전쟁을 선포하고자 병력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공중의 수송기들에는 미사일과 미니건, 네이팜탄들이 가득했고 해양의 선박은 저 거리에서 여기를 포격할 수 있는 함포들을 잔뜩 탑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고 있었다.

코나는 펙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몰랐다. 혹시 병력과 병력이 부딪히는 소모전 혹은 총력전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들은 아주 불리하다. 주둔지에도 꽤나 많은 수의 병력을 대기시켜놨지만 오르카의 중심 전력은 오르카 호에 모두 포진되어있다. 이 자리에 마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홍련의 얼굴이 점점 불안감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공격하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

"현재 저희들의 숫자로는 그저 짓밟힐 뿐입니다. 지금 선제공격을 가해서 저들에게 일부 피해를 입히고 시작한다면 오르카 호에 증원을 요청해 지원병력이 빠르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

공격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코나는 만일 자신이 이렇게 꾸물대다가 여기의 모두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결국 홍련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공격 준비!"

그러자 셀주크들이 포신들을 위로 세웠고, 바이오로이드들도 화기를 앞세웠다. 브라우니들과 레프리콘들이 자주포를 발사할 준비를 끝마쳤고 모두 코나의 한 마디를 기다렸다. 금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저들의 수송선에서 무언가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전신에 철갑을 두른 무언가가 아무런 추진 장치 없이 공중에 떠있었다. 코나 역시 그 자를 보았다. 보자마자

"발포!!!"

공격을 명하였다. 셀주크들은 현재 다가오고 있는 선박들을 향해 곡사포를 발사했고, 자주포와 대공포들이 일제히 불꽃을 내쏘며 굉음을 울려퍼뜨렸다. 주둔지의 다른 고정포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신에 철갑을 두른 그 자는 두 손을 앞으로 내세웠다. 그의 몸에 보랏빛의 스파크가 일었고 시야경으로부터 보라색의 빛이 발산되었다. 그러자 오르카 주둔지에서 발사된 고정포들의 공격이 공중에서 터졌고, 선박으로 향하는 공격 역시 중간에 폭발했다. 자신들이 가한 공격이 모두 중간에 폭발해버리자 코나와 홍련이 당황하였고 리리스가 코나의 앞에 서서 로자 아줄을 가동했다. 홍련은 연산 능력을 써서 현재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 그녀의 눈이 하늘색으로 빛났고 그녀의 시야에 수송선과 선박의 앞에 쳐진 막을 보았다.

포스 필드. 강력한 힘으로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을 막는 방어막이 되어 공격을 막은 것이었다. 경악하는 코나와 계속 공격을 가하는 오르카 병력은 철갑을 두른 저 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포스 필드 방어막으로 인해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들은 그들의 착륙 및 하선을 내릴 수 없었다. 수송기들이 착륙하여 컨테이너로부터 철갑을 두른 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선박에는 더 많은 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그 중 일부는 고블린이었다. 코나는 그만 검을 뽑고 말았다.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싸우는 것 뿐이었다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그 때, 포스 필드가 사라졌다. 홍련은 포스 필드가 갑자기 팟 하고 없어지자 공격을 이어가라고 외치려고 했으나

"공격하다간 주둔지의 고정포들이 전부 터질 걸?"

어느새 포스 필드를 만들어냈던 자가 그녀들의 앞에 당도했다. 리리스가 두 쌍권총으로 그 자를 향해 마구 난사했으나 리리스의 공격은 그의 철갑에 맥 없이 튕겨져나갔다. 그 자는 리리스의 공격은 신경쓰지도 않고 홍련에게 주위를 둘러보라는 듯 팔을 펄쳤다. 홍련은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주포와 셀주크, 그리고 고정포들의 주위에만 포스 필드가 쳐져 있었다. 홍련은 만일 이 상태에서 공격을 명령한다면 주둔지에 설치된 고정포들이 모두 파괴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자가 입을 다시 열었다.

"그만 쏴라. 우리의 보스께서 너희들과 닿고 싶어하신다."

"당신의 보스? 그 분은 어디 계시죠?"

"이건 통보다. 제의가 아니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자는 보라색 섬광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코나는 깔끔하게 사라진 그 자를 보고 '보스' 라는 자가 누군지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일단 공격을 중지해요. 그 누구도 공격하지 마세요. 저들이 우릴 공격하지 않는 한은요."

코나는 긴장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고 계속 생각했었는데 막상 다가오니 조금 겁도 나고 초조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도끼를 꼭 안고 떠는 LRL에게 한 가지 임무를 내렸다.

"LRL, 지금 당장 관제실로 가서 오르카 호와 연락을 취하세요. 지금 당장 중앙 주둔지로 오라고."

"으....응! 라비아타라면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LRL은 서둘러 관제실로 달려갔고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며 코나가 말했다.

"...저들을 맞이하러 갑시다."

그 말에 모두 무기를 꼭 쥐고 있되 방아쇠에 손가락은 걸지 않은 채 코나의 뒤를 따라갔다. 15기의 수송기가 착륙한 상태였고 6기의 수송 선박이 정박한 상태이다. 이미 이들의 병력은 전부 내린 상태였고 이 상태에서 총 공격이 시작되면 그저 무참히 당해야만 했다. 코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느릿하게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어 오르카의 주력들이 오는데까지 벌 수 있다. 코나는 우수한 시력으로 그들을 차분히 관찰했다.

좌측에는 저번에 오르카를 습격했던 고블린과 똑같은 고블린들이 열중 쉬어 자세로 오와 열을 맞춰 서있었고, 그 우측에는 방금 그녀들에게 전언을 전달한 철갑을 두른 자들이 앞에 총 자세로 서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아까 자신들과 접촉했던 자와 다른 4명이 전투복의 깃을 잡고 서있었다. 저 5명은 다른 철갑을 두른 자들과는 다른 외형의 외골격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도 5명이 서로 달랐다. 코나는 저들이 이들의 마리, 레오나, 아스널이라 생각했다. 코나는 고블린보다는 철갑을 두른 자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레이시의 꿈에서 매튜는 철의 군대와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철갑을 두른 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했다. 고블린보다 머리 2개가 더 큰 저들은 소름돋을 만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으나 코나와 바이오로이드는 저들의 끔찍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뇌파 역시 매우 이질적이라 했었는데 그녀에겐 뇌파를 감지하는 능력이 없었기에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표정을 살펴봤다. 다들 긴장하고 있었기에 표정으로 알아보는 것은 불확실했다. 그러니 코나는 귀로 알아듣고자 소리를 집중하여 들었다. 탈론페더의 심장소리가 매우 밝게 들렸고 탈론페더의 긴장한 숨소리 역시 자꾸 밟혔다. 코나는 정말로 레이시의 꿈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느꼈다.

정말로 바이오로이드들은 철갑을 두른 뉴 고블린들에게 이질적인 뇌파를 느끼고 있었다. 칸은 이런 이질적인 뇌파만으로도 저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들인지 깨닫고 저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 하나하나가 상당한 것임도 직감으로 깨달았다. 리볼버 캐논의 손잡이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칸은 눈을 찡그리며 저 멀리 뒤늦게 오고 있는 한 수송기를 보았다. 리리스도 뉴 고블린의 위압감과 더불어 느껴지는 묘한 불안감에 동생들의 모습을 잠시 살폈다. 모두들 포식자를 만난 피식자처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하치코는 방패로 제 몸을 숨기듯 겁을 내고 있었고 페로의 꼬리가 강아지 꼬리처럼 휙 휙 움직이면서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페더는 날개를 계속 가볍게 털고 있었다. 하지만 펜리르 만큼 눈에 띄게 경계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펜리르는 이빨을 보이면서 저 멀리 다가오고 있는 수송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르카의 인원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을 때, 수송기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다리를 내딛었고 프로펠러가 서서히 멈추면서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경사로가 내려왔고 그 안에서 2명의 뉴 고블린이 내렸다. 뉴 고블린 둘이 내려서 거리를 벌리자 뒤를 따라서 2명이 더 나왔다. 1명은 알파를 닮은 바이오로이드 레모네이드 제타였고, 다른 하나는 에이다를 닮은 레브 복사본이었다. 코나, 칸, 홍련, 리리스가 눈을 찡그린 채로 수송기의 안을 노려보았고 금란도 눈을 슬며시 뜨며 아직 내리지 않은 1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블러디 팬서는 껌을 짝 짝 씹으면서 풍선을 불면서 만일 수상한 녀석이면 큰 거 한 방 날려주고자 다른 팀원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수송기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느리고, 육중한 발걸음 소리. 코나와 금란은 그 소리가 들렸을 뿐인데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특히나 감각이 예민한 금란은 오히려 이 느낌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펜리르의 앞에 리리스가 서서 막았고 모두가 금방이라도 무기를 쓸 수 있도록 서서히 손을 올렸다. 모두를 무겁게 짓누르는 프레셔를 뿜고 있는 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오로이드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뒤로 물러났고 코나는 검을 바로 뽑았다. 코나의 눈에는 새로운 시각적인 효과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새까만 어둠으로 만들어진 촉수들이 이곳 저곳에 그 마수를 뿜었고 그 촉수들로부터에 살벌하게 충혈된 눈들이 코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코나는 검을 쥔 손을 덜덜 떨었고 마치 다리가 늪에 빠진 것 마냥 무언가가 서서히 조여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느끼는 것에 비해 지금 막 경사로를 걸으면서 내려오는 그 자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다친 환자가 걷는 것처럼 절뚝거리고 뜸을 들이는 것 같은 걸음걸이. 그의 외형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코와 귀, 그 아래의 하악 부분, 목 부분을 완전히 가리는 검은 금속질의 마스크, 그 마스크와 연결된 튜브, 뉴 고블린들이 착용하고 있는 어두운 색상의 외골격 전투복과 전투복 사이사이에 보이는 디지털 무늬, 그 자는 코트 깃을 잡은 자세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코나는 그 자의 숨소리를 들었다. 쉬익 쉬익 하는 마스크 안에 울리는 호흡 소리, 마치 천식 환자가 숨쉬는 것처럼 힘겨워보이는 호흡, 눈의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눈의 흰 자와 초록색으로 변질된 눈동자, 안면 피부에 보이는 혈관이 짙은 붉은색과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무엇보다 코나는 그로부터 가까운 죽음의 냄새가 맡아졌고 그의 심장을 비롯한 중요 기관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도 같이 불안정하다는 것도 파악했다. 특히 그의 피가 흐르는 소리가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매튜. 매튜이다. 코나가 바래왔던 자이자 코나의 뒤에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자. 코나는 이 자가 매튜라는 것을 알았다. 레이시의 꿈대로 이뤄진 모습과 그들을 이끄는 자, 최근에 들었던 그리폰의 보고에 따라 이 남자는 매튜라는 정답 외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뇌파로 파악하는 바이오로이드에겐 그는 매튜가 아니었다. 저 철갑을 두른 자들의 뇌파가 이질적이고 괴이하다면 마지막으로 나온 그의 뇌파는 별의 아이 그 이상이다. 그는 매우 천천히 코나에게 다가가고 있었으나 코나는 그저 검만 쥐고 있는 채 움직이지 못 하였다. 기어코 그가 코 앞까지 왔는데도 코나는 묵무부답.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물었다.

"...오르카 호가 오려면 좀 걸리나?"

마스크로 인해 울리는 목소리. 울리는 목소리는 충분히 컸으나 병든 사람의 목소리처럼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그럼에도 위협적이었다. 코나는 입이 열리지 않았지만 뒤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의 감정이 등을 찌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새끼고양이들이 독사를 마주한 어미의 뒤에 숨은 것 같았다. 코나는 여기서 위축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기다리시죠."

목소리를 짜내어 겨우 말하였다. 다행히 그녀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이런 반응을 기대했다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뒤를 돌아 멀리 걸어갔고 그가 가자 제타가 기다렸다는 듯이 걸어나왔다.

"안녕하신가요. 오르카의 사령관. 아직 주요 인원들이 다 오시지 않으신 것 같군요. 전 제타입니다. 제 자매는 무사한가요?"

누가 들어도 놀리는 투의 어조였으나 방금까지 죽음을 마주한 코나는 그런 어조에 사소한 짜증조차 느낄 수 없었다. 어디서 의자를 꺼냈는지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아주 편안히 쉬기 시작했고, 코나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돌아가 졸인 가슴을 진정시켰다. 뉴 고블린 하나가 어떤 액체가 담긴 통을 앉아있는 그의 앞에 내려놓자 안의 액체가 출렁이면서 통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고, 다른 뉴 고블린 두 명이 와서 투명한 고무 튜브를 통 안에 넣고 그의 마스크에 있는 크고 두꺼운 금속질의 튜브에 고무 튜브를 연결시켰다. 투명한 고무 튜브로부터 액체가 올라가 그의 마스크로 들어갔고 그는 한층 더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칸이 생각했다.

'저건 뭐지?'

"지연제이자 진정제죠. 회장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준답니다."

제타가 불쑥 칸의 생각을 답하자 칸은 조금 놀란 눈치를 보였다. 제타는 웃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표정에서 드러났답니다."

"....사령관은 아픈가?"

"...심각해요.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저런 상태가 저 분이 원하시는 거랍니다."

"무슨 소리지?"

"다른 분들이 더 오시면 들려드리죠."

앉아있는 그한테 가는 제타의 뒷모습을 보면서 칸은 뒤늦게 자신이 그를 '사령관' 이라 불렀음을 알았다. 자신의 사령관은 현재 코나이다. 아무리 그가 돌아왔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하지만 칸은 자신도 모르게 매튜를 사령관이라도 불러버렸다. 아직 미련이 있는 건가? 하고 칸은 생각했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그녀는 솔직히 생각했고 자신 못지 않게 아직 그를 떠나보내지 못 했을 자신의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

리리스는 오히려 자매들과 함께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앉아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스는 제발 자신의 이런 모습을 소완이나 리제가 보지 않았으면 했다. 리리스는 생각했었다. 어떤 모습으로든, 설령 귀신이라 하더라도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무조건 반겨주겠다고. 하지만 지금 자신의 태도와 감정을 보면 리리스는 그 때 했던 말이 매우 무안했다. 지금도 계속,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는 남자가 모습이 조금 바뀌었어도 살아돌아왔다. 그럼에도 리리스는 그를 자신이 사랑하는 그 남자로 인식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괴물처럼 보일 뿐. 리리스는 스스로도 모르게 소완이나 리제였다면 자신과는 다른 반응일 것이라고 착각했다. 리리스의 여동생들도 처치는 마찬가지였다.

페로는 자신의 꼬리를 잡아서 못 움직이게 하고 있다. 계속 꼬리가 휙 휙 휘둘려지고 꼬리의 털이 곤두서고만 있었다. 하치코는 새끼 강아지처럼 끼잉 끼잉 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항상 자신을 좋아해주던 주인님이 완전히 변해버렸으니까. 펜리르는 여전히 경계심을 내리지 않았다. 펜리르의 눈에는 그저 빛 하나 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털을 가진 늑대가 보일 뿐이었다. 스노우 페더도 자꾸만 날개가 제어가 되지 않았다. 동물 유전자의 본능이 어서 이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리리스는 뉴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여서 쉬고 있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언니가 앞서 가자 동생들도 언니의 등 뒤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갔다. 그 때, 그의 주위에 있던 뉴 고블린이 찌릿 하고 그녀들을 노려보자 리리스는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뉴 고블린은 그녀들에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하지만 리리스는, 컴패니언은 듣지 않았다. 컴패니언이 점차 점차 그에게 다가가면 그의 주위를 지키고 있는 뉴 고블린들이 앞에 총 자세를 서서히 풀어 총구를 점점 그녀들에게 겨누려고 하고 있었다. 코나는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흔들리는 멘탈을 위로받고 있었고 매튜는 가장 가까이에 있음에도 자고 있는지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대고 그저 누워서 쉬익 거리는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곧 전투가 벌어질 만큼 분위기가 험악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곧 그들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멍! 멍!"

왠 개 한 마리가 컴패니언을 제치고 뉴 고블린의 다리 사이로 들어와서는 잠자는 것처럼 가만히 눈 감고 누워있는 그의 다리 위로 올라가서는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부위들을 혀로 마구 핥았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지고 있을 때 매튜가 눈을 떠서 자신의 눈가와 이마를 핥고 있으면서 꼬리에 모터를 단 것 마냥 살랑거리는 강아지를 만졌다. 하치코와 펜리르는 냄새로 바로 알아차렸다. 보리였다.

"보리ㅇ...!"

보리의 주인인 콘스탄챠가 서둘러 뛰어왔지만 매튜와 뉴 고블린을 보자마자 발걸음을 멈췄다. 매튜는 보리를 빤히 보다가 오른손으로 보리의 귀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짓에 보리가 기분 좋아했고, 곧 보리는 자신의 진짜 주인 콘스탄챠를 보자 그녀에게 달려갔다. 매튜도 다리 위에서 보리가 내려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앞에 총 유지."

뉴 고블린들에게 싸늘하게 말하여 그들의 자세를 다시 원상복구 시켰고 절뚝거리면서 콘스탄챠에게 다가갔다. 콘스탄챠의 코 앞에 선 그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콘스탄챠는 화들짝 놀라 두 손을 움츠러들었고 매튜는 그런 그녀를 계속 끌어안았다.

"ㅈ...ㅈ...주인...님?"

"콘스탄챠, 정말 보고 싶었다."

비록 외골격 때문에 콘스탄챠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느낄 수 없고 혈청의 부작용으로 후각 역시 상실해서 그녀의 향긋하고 풍만한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지만 매튜는 콘스탄챠를 안아주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콘스탄챠도 끔찍한 뇌파만을 느꼈다가 이렇게 가까이서 그를 느끼니 확실하게 이 자가 자신의 전 주인이자 여전한 사랑임을 느꼈다. 곧 그는 눈을 떠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컴패니언을 바라보았다. 콘스탄챠와의 포옹을 부드럽게 푼 그는 그녀들에게 양팔을 벌렸고 그것을 보자 하치코와 펜리르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가장 먼저 달려갔다. 하치코와 펜리르가 동시에 같은 타이밍에 그에게 돌진해 와락 끌어안았고 그 다음으로 리리스 역시 경계심을 거두고, 그 다음으로는 페더가 안심하면서, 마지막으로 페로가 주뼛거리면서 그를 포옹했다. 리리스는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를 확인하니 자신의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에 안심했다.

오르카 호 지하에 갇힌 그의 탈출을 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해진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들보다 그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어서오세요."

매튜는 그 말에

"다녀왔다."

리리스의 이마에 마스크를 부딪히면서, 마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행동했다. 찐한 포옹에 콘스탄챠도 코 끝이 아려옴을 느꼈다. 감동의 포옹을 마친 후 매튜는 모여있는 오르카에게 향했다. 그는 여전히 말을 적게 했지만 그 역시 오르카 호의 그녀들을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까 보였던 위협적인 이미지가 아닌 조금은 변했더라도 여전히 자신은 매튜라는 것을 다시 알리고 싶었다. 리리스는 행운을 빌어줬고 매튜는 그녀들에게로 향했다. 리리스가 오르카 쪽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를 보며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놀고 있군."

그 말에 신경질적으로 뒤를 획 돌아본 그녀는 그 말을 한 괘씸한 녀석을 보았다. 아까 포스 필드를 펼쳤던 뉴 고블린이었다. 헬맷을 벗은 그는 고블린과는 다르게 꽤나 곱상한 흑발의 미남이었다.

"너가 블랙 리리스였지? 꽤나 강력한 기종이라고 들었는데 외관으로는 그렇게 안 보이는군."

"...여기서 실험해보실래?"

일단은 존댓말부터 사용하는 리리스가 다짜고짜 반말부터 사용하면서 눈 앞의 뉴 고블린에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새끼 강아지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아 피식 코웃음을 쳤다.

"하, 마치 개새끼마냥 으르렁거리는군. 컴패니언 시리즈 중에서 너는 동물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너가 진짜 짐승이군?"

"나는 겨우 주인님과 만났어. 많은 시간 끝에 겨우 저 분과 만났어. 지금은 내 일생 최고의 날이라고. 간만에 기분이 좋아졌는데 지금 너가 그걸 망치고 있지. 그리고 넌 우리의 이름이 바뀐지 모르고 있었구나? 우린 더 이상 컴패니언이 아니야. 『히스(he's) 컴패니언』이지."

"....그의 반려..."

어서 꺼지라는 말을 돌려 말하면서 리리스가 권총으로 그를 겨눴다. 그는 왼쪽 눈이 한 번 꿈틀거렸고 보라색 전기가 지지직 거리면서 한 번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는 리리스와 자신의 신장 차를 이용하여 등을 숙여 리리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스의 명령이 없으니까 안 싸워. 그런데 그렇다고 너무 나대면 터지는 수 있다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너희들이 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

"그건 나랑 똑같네."

"저 분은 순수한 분노, 위대한 힘이야. 우리 뉴 고블린들은 저 분의 끝 모르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힘에 매료되었지. 너희는 저 분을 약하게 만들고 있어...."

다시 등을 펴서 리리스를 내려다보는 그는 씨익 웃었다. 리리스의 얼굴에서부터 이제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의미가 보였는지 그는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내 이름은 말 안 했지? 난 에반스다. 저 분의 뉴 고블린 서열 3위지. 지금 너 얼굴이....이제부터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너에게 한 가지 말해주지. 비록 보스가 너희들 앞에서 물러져도 보스의 진짜 모습을 보면 너희들도 겁날 거야."

"난 주인님이 무섭지 않아. 이제는."

"그럼 한 번 보고 생각해보시지."

에반스는 텔레포트한 것처럼 보라색 스파크를 번쩍거리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리리스는 권총을 다시 총집에 넣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난입한 뉴 고블린 때문에 몹시 불쾌했지만 다시 그를 보러가자고 생각하니 리리스는 불쾌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때마침 오르카 호가 정박해서 주요 인물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였다. 모두들 매튜의 모습을 보자 기겁부터 했지만 매튜가 위협적인 외관과 목소리로 아까처럼 시니컬한 분위기를 잡는 게 아닌 정말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그녀들을 받아주니 모두들 경계를 내려놓았다. 코나는 모두가 모인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드디어 가장 하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그 전에

"저는 현 오르카 호의 사령관 코나미아 라몬즈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

"...과거, 당신께 저지른 모든 만행들을 사죄하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무릎을 꿇으려던 그녀를 제지하면서 매튜가 숨을 내쉬었다.

"후우....사과를 들으려고 온 거 아니다. 어차피 이제 용서했다. 정말로 내가 아는 코나로 돌아왔으니까."

"...그럼 이 다음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왜 저희들과 접촉하려고 하셨나요?"

"...."

"다른 인원들이 올 때까지 저도 나름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전에 펙스 소속 고블린들이 오르카 호의 주둔지로 대거 침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고블린과 지금의 고블린들이 똑같은 걸로 봐선 당신은 펙스인 게 확실하죠. 펙스의 다른 레모네이드들은 어디있죠?"

코나의 물음에 알파가 지휘관들의 사이에서 나왔다. 알파는 매튜를 보자마자

"...디에고?"

그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곧바로 제타를 휙 바라보았다. 제타도 알파의 눈빛을 눈으로 받아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매튜는 알파가 자신의 진명을 부른 것에 별로 개의치 않고 뒤에 서있는 레브 복사본을 보면서 고개짓을 했다. 레브 복사본은 염동력으로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안에 있는 다섯개의 극저온의 관을 코나에게 보여주었다. 코나는 극저온의 투명한 관 안에 다섯 레모네이드들이 잠들어있는 것을 알아봤고 다른 지휘관들도 그 모습에 놀랐다. 가장 놀란 건 알파였지만.

매튜가 다시 레브 복사본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레브 복사본은 극저온 관의 온도를 정상으로 되돌렸다. 그녀들은 총수들처럼 액화되지 않았다. 총수들은 100년 간 극저온 상태가 유지된 덕에 모든 신체기관이 속까지 얼어붙었던 반면 그녀들은 극저온 상태를 짧게 유지했기 때문에 그저 동면으로만 그쳤다. 원래부터 인간보다 더 튼튼한 바이오로이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관의 온도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관의 문짝이 열리자 다섯 레모네이드들이 일제히 눈을 뜨고 관 밖으로 걸어나왔다. 다섯 레모네이드를 대표하는 자, 오메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신가요, 오르카의 여러분."

뒤의 네 바이오로이드들도 똑같이 인사했다. 알파는 오메가의 말투가 무척 부드러워진 것부터 정중해진 것, 그리고 눈매가 안나 보르비예프 박사처럼 인자해진 것에 극도의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고는 소리 없이 제타를 향해 말했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제타도 알파의 입 모양을 보면서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으며 자신 역시 똑같이 해주었다. 이제 설명할 거라고.

레브 복사본이 설명을 대신했다.

"현재 펙스 콘소시엄은 극저온 상태로 보관되어있던 전 일곱 총수들이 사망하였고, 레모네이드 시리즈의 오메가, 감마, 델타, 베타, 앱실론의 세력이 전면붕괴 후 레모네이드 제타의 세뇌 및 재교육을 거친 결과 레드스톤으로 그 이름을 바꿨습니다. 저희 레드스톤은 오르카에게 동맹을 요청하는 바이며, 이 최고급 기종 다섯을 대가로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알파가 놀랐다. 펙스 아니 이젠 레드스톤으로 명칭이 바뀐 그들은 뜻 밖에도 오르카 호와 동맹을 맺으러 왔었고 이런 소리는 예상치 못 했던 오르카 호는 눈에띄게 의심하는 눈치였다. 현재 주둔지로 오르카의 전력이 모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매튜의 뉴 고블린 군단에게 압사당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세력 간의 전력차는 거대했다. 다른 개체들은 레드스톤의 동맹제의에 놀라면서 의심 반, 기대 반씩 섞였다. 갑자기 냅다 찾아와서는 손을 잡자고 하는데 누가 이것을 의심하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짓밟을 수 있는 이 거대한 세력이 아군이 된다면 앞으로 영토 수복과 자원 소모 문제, 그리고 철충 소탕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펙스 최고의 바이오로이드가 다섯씩이나 오르카 호에 합류되고, 동맹이 가진 다른 하나의 레모네이드까지 합친다면 일곱 레모네이드가 전부 모이는 것이다. 능률도 상당히 올라간다는 뜻이다. 지휘관 기종들은 여기서 머리를 차갑게 굴렸다.

코나가 동맹 제의에서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런 제의같은 경우엔 오르카도 무언가를 내줘야만 앞으로의 동맹 활동에 빚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코나가 레브 복사본을 보며 물었다.

"...저희가 줘야하는 대가는 뭐죠?"

"AGS 로보테크의 소유권한입니다."

코나가 입 안으로 입술을 말아들였고 지휘관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오르카 호의 척추인 부대를 그대로 넘긴다는 것은 간을 그대로 때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AGS는 우리 오르카 호의 최고 중요 부대에요. 레모네이드 다섯이 아무리 가치가 높다 한들 바꿀 수는 없습니다."

"자세히는 AGS 로보테크의 최상위 개체를 원합니다. HQ1 알바트로스, RF87 로크, 타이런트, 로버트와 Mr. 알프레드."

현 오르카 호의 설비로는 더 생산할 수 없는 최상위 AGS를 원했음을 알렸고 코나는 더더욱 망설여졌다.

알바트로스, 오르카 호의 단일개체 중 최강자이자 오르카호의 최강체.

로크, 앙헬 리오보로스가 특별제작한 최상급 AGS.

타이런트, 연합 전쟁에서 국가와 기업의 악몽으로 재림한 개체.

로버트는 위의 타이런트라는 악몽을 구현시킨 존재이며 모든 상황을 적재적소로 대응할 수 있는 프린팅 시스템과 오르카의 고성능 AI를 지닌 AGS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AI와 그 오메가와 맞대결을 어느 정도 펼쳤던 Mr. 알프레드. 

전부 오르카에 하나 밖에 없는 개체인데다 한 기 한 기가 그 무엇이랑 바꿀 수 없는 높은 전략적 가치를 가진 AGS였다. 만일 이들을 매튜에게 넘겨준다면 오르카 호에 생길 공백이 어느 정도일까? 코나는 그 공백을 생각하면서 다섯 레모네이드가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을까 하고 또 다시 고민했다. 이런 계산을 차갑게 굴릴 수 있었던 레오나가 코나를 대신해 말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개체들은 우리 오르카에는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전력이야. 다섯 레모네이드의 권한이 오르카로 넘어오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그 다섯 명의 레모네이드가 전력의 공백을 매꿀 수 있는지 없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았어. 아쉽게도 받아들일 수 없겠어."

다른 지휘관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매튜와 제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제타는 안쪽 가슴 주머니로부터 어느 USB를 꺼냈다.

"알바트로스 및 타이런트 등의 고위개체들의 부재로 인한 전력의 공백이 걱정이시라면 이 데이터를 넘겨드리겠습니다. 여기에는 당신들 오르카에는 없는 알바트로스, 로크 등등을 비롯한 최고급 기종의 AGS의 설계도가 존재한답니다."

코나가 그 USB의 존재와 정보에 약간 흔들렸다. 그 어떤 지휘관도, 그 어떤 고급 기종들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르카 호는 AGS 로보테크가 가장 강력한 부대이고 오르카 호에서 최강이라 불릴 존재들은 전부 이 부대의 소속이다. 하지만 문제는 고급 기종들은 재생산이 어려울 뿐더러 알바트로스 같은 최강체는 설계도 조차 없다. 로크도 리오보로스 유적에서 아직 기능이 정지되지 않은 개체인데다 타이런트는 이론적으론 생산이 가능하지만 타이런트 한 기를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자원량은 함부로 부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버트와 알프레드 역시 다시는 생산될 수 없는 개체이다. 제타는 그 USB를 알파에게 던졌다. 알파는 그 USB를 탁 받았다. 제타는 그것을 알파에게 넘겨주자 마자 코나와 AGS들의 관계를 다시금 알려주었다.

"무엇을 그리 망설이죠? 당신과 AGS 로보테크는 상당히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좋다고는 못 하죠."

"이건 당신에게도 좋은 조건이랍니다. 그저 전력이 상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당신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기계들을 넘겨줌으로서 오르카 호를 완전히 당신의 것으로 할 수 있죠."

오르카 호의 사정 정도야 우습게 알고 있는 그녀는 코나와 AGS 로보테크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것을 넘어 서로 아주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크와 타이런트, 로버트와 알프레드는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나마 알바트로스는 중립을 지키고 있기는 하나 알바트로스 역시 매튜의 경계선 쪽에 더 가까운 자다. 유일하게 에이다만이 코나의 경계선 쪽에 소속된 최고급 AGS 기종이었다. 이전에 코나는 그들과 만나 그들로부터 한 가지를 확실하게 들었다.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주인은 그 하나 뿐이다고.

코나는 알파에게 손을 내밀었다. USB를 이리 주라는 손이었다. 알파가 USB를 코나의 손 위에 놓았고 코나는 그것을 포츈에게 넘겼다. 포츈이 그것을 받아가고 나서 코나는 애초에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저희들과 손을 잡으시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이만한 병력이 있으시면서, 이만한 장비가 있으시면서....왜 당신들에 비하면 한 줌의 모래에 불과한 저희들과 동맹을 맺으시려는 거죠? 매튜 씨, 당신의 힘이라면 저희들을 소유할 수 있으실텐데요."

"...우리의 공동의 적은 지금도 강세하다."

매튜가 그 동안 다물고 있던 입을 드디어 열어 코나의 열띈 질문에 차분히 답해주었다.

"철충. 너와 나는 이미 여러 철충 둥지를 무너뜨렸지만 아직 세상은 철충들로 가득하지. 게다가 저 바다 심해에는 감히 대적할 수 조차 없는, 신과 같은 괴물들이 잠들어 있다. 아직 전 총수들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펙스는 이러한 적들에 대비하는게 아닌 너희들을 집어삼키려고만 했지. 매우 멍청하게 말이야. 만일 철충의 본대가 직접 활동을 시작해 선제 공격을 가해온다면? 언젠가 깨어날 별의 아이들이 깨어난다면? 지금 당장 깨어난다면?"

그는 코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것은 코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었다. 코나가 앉아있는 의자를 가리킨 것이었다.

"그 자리는 나도 앉아본 적이 있어 잘 알지. 바이오로이드는 우리들에게 의지한다. 최후의 남성, 최후의 여성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다. 그 자리에 앉으면서 너와 내가 느낀 것은 똑같지 않았나."

부담. 인류 문명을 멸망시킨 외계의 존재들과 그런 외계의 존재들마저 두려워하는 공포의 신들을 상대로 승리해야만 하는 상황과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었던 부담. 세상의 모든 것이, 미래가 자신의 어깨에 힘겹게 매달리고 있고 자신은 그것을 붙잡아야만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절망감과 막막함. 이것이 코나와 매튜가 동시에 느끼던 것이었다. 코나는 내색하고 있진 않지만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전장에 참가하고 싸우고 싶다는 것도 이 부담감을 덜어내려고 했던 행위에 불과하다. 그녀들을 사지로 내몰지만 자신은 안전하게 뒤에서 지휘만 하고 있다는 것이....코나에겐 버틸 수 없는 현실이었다. 친구를 사지로 내몰면서 그녀들을 친구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코나는 비록 그를 한 번 죽게 만든 것이 자신일진 몰라도 이렇게 또 자신의 처지에 공감해주는 자가 매튜라는 사실에 묘함을 느끼면서 눈물이 복 받쳐 올랐다.

"...그 부담감을 이제 벗어야 한다. 너도, 나도. 이제 더 이상 놈들에게 반응해선 안된다. 놈들이 우리에게 반응하게 만들어야 한다. 철충과 별의 아이와의 본격적인 전쟁은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쟁은 오르카의 힘으로는 무리다. 우리 레드스톤의 힘으로도 무리지. 둘이 힘을 합친다 하여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을 딛고 뛰어올라서 벽을 넘어야만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매튜는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코나를 보고는 눈동자를 굴려 다른 지휘관들 역시 보았다. 지휘관들 뿐만 아니라 이 협상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의 눈이 사뭇 진지했다. 매튜는 경계를 서는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등을 비롯한 스틸라인을 보고

"누군가는 전역을 꿈꾸고."

홍련과 몽구스 팀을 보며

"누군가는 테러가 없는 세상을 꿈꾸고."

LRL을 아이처럼 꼭 껴안고 있는 에이미를 보며

"누군가는 앞으로의 일상을 꿈꾸고."

닥터와 포츈을 보며

"누군가는 발전을 꿈꾸고."

버뮤다 팀과 티아멧을 보며

"누군가는 고통 없는 내일을 꿈꾸고."

켈베로스와 사디어스를 보며

"누군가는 척결된 범죄를 꿈꾸고."

캐럴과 키르케를 보며

"누군가는 즐거운 나날을 꿈꾸고."

엠프리스와 세띠를 보며

"누군가는 오염 없는 청정을 꿈꾸고."

포티아와 소완, 아우로라를 보며

"누군가는 따스한 식사를 꿈꾸고."

코코와 스파토이아를 보며

"누군가는 모험을 꿈꾸고."

페어리 시리즈를 보며

"누군가는 환상을 꿈꾸고."

D-엔터의 바이오로이드를 보며

"누군가는 오락을 꿈꾸고."

호라이즌의 소녀들을 보며

"누군가는 안전한 바다를 꿈꾸고."

퍼블릭 서번트들을 보며

"누군가는 안전을 꿈꾸고."

스카이 나이츠를 보며

"누군가는 정말로 이루고 싶은 꿈을 꿈꾸고."

컴패니언을 보며

"누군가는 작은 사랑을 꿈꾸고."

일부 배틀메이드들을 보며

"누군가는 모실 수 있는 주인을 꿈꾸고."

마리아와 콘스탄챠를 보며

"누군가는 행복을 꿈꾸지."

그리고 코나와 그녀의 옆에 서있는 지휘관 개체를 보면서

"또는....부흥을 꿈꾼다."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전부 말해주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꿈을 다시 떠올렸다.

브라우니는 항상 전역 후에 있을 일들이 궁금하고 기다려졌었다.

홍련은 멸망 이전의 홍련이 보았던 가슴 아픈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에이미는 언젠가 이렇게 LRL을 똑 닮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학교로 바래다주는 일상을 떠올렸다.

닥터와 포츈은 이전 세상에 있던 장애, 기아, 질병들이 모두 없어질 수 있는 세상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시티 가드들은 끔찍한 범죄로 망가져가는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는 세상을 상상했다.

캐럴은 후끈한 운동 경기를 응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고 키르케는 악몽 그 자체였던 곳이 앞으로는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엠프리스는 다시 얼어붙은 얼음 대륙 위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펭귄들을 떠올렸고 세띠는 나쁜 사냥꾼들에게 위협받는 일 없는 동물들의 평온을 떠올렸다.

포티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불꽃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을 상상했고, 소완 역시 자신이 모든 것을 바친 반려에게 지상의 모든 산해진미를 만들어주는 날을 상상했고, 아우로라도 자신의 커피와 쿠키 등의 디저트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랑을 상상했다.

코코와 스파토이아는 저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는 자신들을 생각해보았고

레아는 이런 파괴만 할 뿐인 능력이 아닌 거대한 화원에 비를 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아쿠아는 언젠가 만들 자신만의 커다란 화원을, 다프네는 탐스럽게 열린 과일을 바구니에 담든 자신을, 드리아드는 고개를 푹 숙인 벼를 수확하여 나오는 쌀을 만져보는 자신을, 리제는 조용한 화원을 사랑하는 남자와 단 둘이 걷는 자신을 생각했다.

D-엔터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다시 부흥한 인류에게 현실보다 훨씬 더 리얼하고, 그들의 흥미를 살 수 있는 오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호라이즌은 별의 아이가 잠들어있는 무시무시한 바다가 아닌 생명과 시원함으로 가득한 바다를 상상했다.

퍼블릭 서번트의 일부 바이오로이드는 이전부터 3D 직종이다보니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위험한 노동 환경이었다. 그러한 환경이 개선될 수 있고 사망률도 급격하게 내려가는 세상을 꿈꿨다.

스카이 나이츠의 슬레이프니르는 예쁘고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자신의 부대원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사람들의 시선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것을 꿈꿨다. 그리폰, 린트블룸, 블랙하운드, 흐레스벨그, 하르페이아도 전대장과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리리스, 페로, 펜리르, 하치코, 스노우 페더는 모두 매튜와의 아이를 꿈꾼다. 매튜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날 작고 귀여운 아이를.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해보는 것이었다.

바닐라와 금란, 블랙 웜은 평화로워진 세상에서 자신이 모실 주인님을 꿈꿨다. 앨리스는 그런 따분한 일상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 때는 자신의 이 호전성을 침대 위에서 풀자는 생각에 의도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리아와 콘스탄챠는 시끄럽게 재잘대는 어린아이들이 주위에 바글바글 모여들어서 사이좋게 간식 시간을 가지는 떄를 생각했다. 그저 타인의 아이 뿐만이 아닌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젖을 문 아이가 행복하게 잠드는 모습 또한 상상해보았다.

코나와 지휘관 개체들도 그가 하는 말에 반응했다. 인류의 부흥, 재건되는 세상, 게다가 이번에는 이전처럼 바이오로이드는 결코 소모품으로서 사라져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인류에게 소모품 혹은 도구가 아닌 가족이자 친구, 반려이자 이웃으로서 남을 것이다.

오르카의 진정한 목표, 인류가 부흥하여 폐허가 된 세상이 다시 일어서는 것. 코나의 목표, 친구들의 꿈이 이뤄지는 것. 매튜는 그렇게 거의 넘어오기 직전인 그녀들에게 결정타를 가했다.

"...이제 꿈을 꿀 때는 지났다."

매튜는 의자에서 일어나 고무 튜브를 떄버린 후 그녀에게 다가갔고, 코나도 검집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매튜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2보 거리를 둔 둘은 서로 눈을 교차하더니 곧 손을 콱 잡았다. 두 세력의 동등한 위치로서의 동맹. 그것은 모두가 환호하게끔 하였다. 마리와 아스널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옅게 웃으면서 박수를 쳤고, 메이와 레오나도 둘의 동맹을 납득해주는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칸도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면서 박수를 쳤고 용과 라비아타도 그 때 만큼은 근심과 걱정을 모두 덜어낸 표정과 박수를 힘껏 칠 수 있었다.

오르카와 레드스톤의 동맹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두 세력의 동맹은 계속 이어지는 현상을 이제 완전히 바꿀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맹을 축하하는 의미로 박수를 치고 휘파람까지 부는 이런 경사스러운 장소에서 안심하지 못 하는 둘이 있었다. 알파와 제타였다. 알파와 제타는 동일한 자매기인 만큼 둘 다 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것을 알아차렸다.

동맹의 의미로 잡은 매튜와 코나의 손. 코나의 손을 잡을 때 매튜의 눈이 한 순간 찡그러졌다. 코나와 손을 잡은 것이 불쾌하기 떄문에 찡그린 눈이 아니었다. 더 깊은...무언가가 있었다. 알파와 제타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과연 해피엔딩일지 의문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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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으로 쓰니까 드럽게 오래걸리네


글고 슬슬 이 글을 끝내야겠음. 너무 오래끌었고 이 정도면 뇌절인거같애. 저번에 끝낼 각 나왔을때 끝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