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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찢어지고 있었다.

쏟아붓는 폭우 사이로 번개가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철충의 회로를 태운다.

저항하려고 쏘아보단 탄환은 몰아치는 폭풍 앞에서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고 헛되이 떨어질 뿐.

하늘이 손을 뻗어 지상을 쥐어 짜내는, 그야말로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광경이었으나 그것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있는 쪽은 대조적으로 평화롭기만 했다.


"죄송해요, 귀찮은 일을 맡겨서."

"아닙니다. 필요한 작전임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눈꼬리를 내리며 난처하게 웃는 레아에게, 램파트는 흔들림 없이 답했다.

램파트와 펍헤드가 미끼가 되어 기지를 점거한 철충을 유인하고, 기지에서 빠져나온 철충의 주력을 레아가 섬멸.

그 후에 잔당을 쓸어담는 정도야 지금껏 무수히 반복해온 작업 목록에 하나가 추가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참으로 간단하고 효율적인 작전이었다.

만약 철충이 근거지로 삼은 옛 해군 기지가 목표물이 아니었다면 더욱 간단해졌으리라.

건물과 철충의 구분 없이 몰아치는 태풍이 모든 걸 씹어 삼켜 버렸을 테니까.


AGS 중에도 이에 비견할 능력을 지닌 개체는 흔치 않겠지.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블랙리버나, 펙스를 이루는 각 기업의 최상위 AGS 정도나 되어야 할까.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사양의 문제.

서서히 잦아드는 바람을 가늠하며 병력의 투입 시기를 계산하던 램파트에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대단한 힘이군요. 라는 촌평으로 마무리지을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동행자에게는 적잖이 의미가 있는 발언이었던 것 같다.

임무 외 커뮤니케이션과 효율성의 관계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 뭐, 괜찮을 것이다.

살상용 로봇이나 만드는 블랙리버 따위와는 다른, 시민 편의 기능에도 충실한 오메가 산업 제품의 확장성을 어필할 기회기도 하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 낭비를 정당화하며, 램파트는 동체를 돌려 레아를 마주보았다.


"달리 생각하시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지금은 해결된 문제인데요."

"그렇다 한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으로 더욱 편해질 수도 있겠지요."


음. 방금은 제법 믿음직스러운 언동이었다.

간만에 '시민의 친구'답게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만족스러워하는 램파트에게, 레아는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과하다, 라거나."


그건- 확실히 이상한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인간 같은 관절부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고개를 기울였을 테지.


"저희는 주어진 목적에 맞춤한 능력을 지니도록 설계됩니다.

 그것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군요."


'저희'가 AGS와 바이오로이드 모두를 포함하는 말임을 레아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램파트"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램파트 씨는 동형기에 비해 많이 개조되셨지요?"

"수행해야 할 임무가 바뀌었으니 그에 따랐을 뿐입니다―."


데카 코어의 논리 회로가 단어의 뒤에 숨은 진의를 읽어내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창조된 목적과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끼셨던 것입니까?"


본디 농업용으로 설계되었음에도 누구보다 가열한 전장에 나서야 한다는 것에.

바이오로이드가 철충을 인간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신적인 부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난이도를 따지면 쉽다고 해야겠지요."


자신의 대답에 자신이 있었던 것에 비해, 돌아온 대답은 긍정이라기에도 부정이라기에도 애매했다.


*   *   *


오베로니아 레아는 강했다.

지나칠 정도로.


물론 객관적인 화력을 비교하자면 독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연합 전쟁 시절부터 비견되었던 세라피아스 앨리스와 멸망의 메이.

오르카 호에 합류한 이후라면 네오딤도 충분히 레아에게 밀리지 않는 힘을 보일 수 있겠지.

그러나 '지나침'을 정의하는 것에는 내용물을 담아둘 그릇까지 필요한 법이다.


어디까지나 전투 모듈에 의해 병기를 조작하는 앨리스-메이와 달리 본질적으로 자신이 직접 다루는 능력은 파괴와 살상에 대한 실감이 되었다.

처음부터 전쟁과 대규모의 파괴 활동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이 아니라 농업용 바이오로이드로서 제조되었기에 주어진 느긋하고 배려심 강한 성격은 그 실감에 익숙해지는 것을 막았다.

폭풍과 뇌우라는, 아무리 정교하게 다루어도 일말의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특성이 그 모든 것에 한층 깊은 불안감을 더했다.


그럼에도- 거기까지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상황의 절박함으로 개인의 부담을 억누르며 눈 앞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그릇에 가느다랗지만 결정적인 균열을 만든 것은 단 하나.

레아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시저스 리제, 다프네, 아쿠아. 아직 복원되지 못한 아이들까지.

가끔은 사고도 치고 속도 썩이지만 모두가 개성적이고,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며-

그 모두가- 앗 하는 순간 부스러질 만큼 약했다.


신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권능을 휘두르는 자신.

날아다니며 주어진 무기를 최선을 다해 사용할 뿐인 동생들.

농업에 종사할 때라면 역할에 맞는 능력이 주어졌을 뿐이라 할 수 있었을 불균형은 생명이 걸린 전장에 나서는 순간 무엇보다 무거운 족쇄가 되었다.


자신의 쌍둥이가 싸늘한 고통과 불행 속에서 영원히 잠들어버린 지금, 요정들을 책임질 여왕은 자신 뿐.


그러니까,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복원되어, 새로운 환경을 돌아보고- 안심해도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는.


*   *   *


기지 안에 남아있는 철충의 소탕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아무렴, 생체 회로 기술이 조금만 더 빨리 적용되었어도 인류를 지켜낼 수 있었으리라고 자신하는 입장에서 이 정도도 감당하지 못할 리는 없는 법.


비구름을 다시 불러올 것도 없이 숙련된 실내전으로 잔당을 깔끔하게 쓸어내고, 대강의 정보도 추출해 보고하자 레아는 수고하셨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령관의 명령으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그녀가 그렇게 고마워할 이유는 없을 텐데.

하지만-


"타인에 대한 봉사는 그 자체로 보상이지만, 당사자가 이해해 준다면 더욱 보람있게 마련이지요."

"그렇네요."


서로 나누었던 대화를 반추하며 건넨 첨언에, 레아는 소녀처럼 밝은 미소로 램파트의 미소 - 가 그려진 얼굴 - 에 답했다.


비구름이 걷힌 하늘에는 태양이 다시 빛을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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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여왕의 레아 행동은 솔직히 스작이 조진 게 제 1순위라고 보지만 굳이 이유를 만들어 붙이자면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스빈다.

사실 이 부분은 나중에 소설이랑 별개로 캐해석 시리이즈로 또 쓸 것 같긴 하빈다.


이 시리즈의 네임드 램파트(승급기체)는 외전에서 감정 모듈을 한 차례 무력화하기 전에 사령관의 설득으로 포기한 느낌이빈다.


조금 후면 리제 투표이빈다.

M조이빈다.

소중한 한 표 정말로 부탁드리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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