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nto Mori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낯선 새 소리에 슬그머니 눈을 뜬 사령관은 창 밖에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잠시 몸을 뒤척였다. 


'아 맞다.'


평상시에는 심해에서 활동하는 거대 잠수함 오르카. 하지만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기체의 점검과 물자 보급을 위해 안전이 확보된 섬에 정박하는 날이었다. 


게다가 마침 오늘은 그에 더해 사령관에게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절대휴일'이었다.


오리진 더스트를 통해 멸망 전의 인간들에 비해서는 물론, 오르카의 최강 전력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육체를 지니게 된 사령관이지만 혹시 모를 과로를 예방하기 위해 정해진 '절대휴일'은, 성관계를 포함한 모든 업무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날이었다. 


"강력하게 권.고.드립니다." 


처음 절대휴일에 대해 제안하면서 사뭇 진지한 얼굴로 강조하던 아르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르망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사령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애초에 걔 말을 무시했다간 무슨 잔소리를 듣게 될지 모른단 말이지."


기지개를 한 번 쭈욱 편 사령관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1년 내내 따뜻한 날씨가 유지된다는 섬의 해변가에는 야자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나 있었다.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을 한껏 품은 바닷가는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며 이리저리 너울거리고 있었다. 


"뭐......모처럼의 휴일이기도 하니까, 여유롭게 즐겨볼까."


그렇게 다짐한 사령관이었지만 그 말 이후 사령관은 가만히 선 채 침묵을 지켰다. 


'......휴일이란 건 정확히 뭘 하는 날인거지?'


눈을 뜬 이후 지금까지 바이오로이드의 재생산과 오르카의 운영, 그리고 철충과의 전쟁만을 신경쓰며 살아온 사령관에게 있어서 '휴일'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낯선 존재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조금 아깝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뭘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시간. 사령관은 처음으로 마주한 휴일의 애매모호함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바로 그때 똑똑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주인님? 일어나셨나요?"


차분한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아, 응!"


휴일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잠시 해방될 수 있게 해준 목소리에 사령관은 반색하며 대답했다. 


"들어와."


사령관의 말에 문이 스륵 열리더니 절그럭 하는 쇠사슬 소리와 육중한 물체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의 일일부관 이터니티입니다. 오늘 하루 주인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풍스러운 옷차림의 바이오로이드가 다소곳이 인사를 건내왔다. 


"잘 부탁해 이터니티."


이터니티의 인사를 받은 사령관의 눈은 그녀가 뒤에 짊어지고 있는 거대한 관으로 저절로 항했다. 


"평소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그 관은 정말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구나?"


"네. 언제나 주인님을 마지막까지 모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저의 소명이기에."


이터니티가 슬쩍 사령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혹시 주인님께서 불편하시다면 관은 잠시 놔두고 오겠습니다."


"아, 아니야." 사령관이 손을 내저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그런가요. 다행입니다."


이터니티가 안도의 작은 한숨을 쉬었다. 


"저희 이터니티 모델들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때문에 인간님들의 선택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해요. 저흰 죽음조차 평온하게 함께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인간님들께서는 아무래도 늘 죽음을 바라보고 사는 저희를 좋게 보시지는 않았나봐요. 주인님께서는 신경쓰시지 않는 듯하여 기쁩니다."


이터니티가 성인 두 명은 들어가고도 족히 남을 관을 슬쩍 들어올리며 방 안을 살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절대휴일이라고 하셨나요. 혹시 무슨 일을 할지 계획해두신 것이 있나요?"


"음......사실은 말이야."


이터니티의 질문에 사령관은 다시 자신을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던 문제를 떠올리며 끄응,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아무런 업무도 없는 휴일을 맞이하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야,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옛날에 과로로 쓰러졌을 땐 가만히 누워서 쉬기라도 했지, 그렇지도 않은 지금은 그냥 잠만 자기엔 좀 아깝단 말이지."


"평소 주인님께서 관심 있으셨던 여가활동 같은 건 없으신가요?"


"음......글쎄. 평소에도 업무 아니면 너희들과 관련된 일들만 하느라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네."


이터니티 또한 사령관의 고민을 함께하는 듯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저에게 맡겨보시지 않겠습니까?"


"응?"


이터니티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즐기실 만한 여가활동을 찾으실 수 있도록, 오늘 제가 함께해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사령관은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후후,"


이터니티가 즐겁게 웃자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쇠사슬도 절그럭절그럭 소리를 내었다. 


"그럼, 우선 식사부터 하러 가실까요?"




***




아침식사를 한 후 이터니티가 사령관을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주방이었다.


"식사는 아까 했는데, 주방에는 무슨 일이야?"


사령관의 질문에 이터니티가 주방의 문을 노크하며 대답했다. 


"기왕 취미활동을 찾아보시기로 한 거, 요리에 한 번 도전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요리를?"


"네. 멸망 전에는 요리를 취미로 하는 인간분들도 많이 계셨다고 해요."


주방에서 네~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 문을 열고 아우로라의 푸른 하늘색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세...어 사령관? 주방에는 무슨 일이야?" 


"안녕하세요 아우로라."


사령관 대신 인사를 건넨 이터니티가 아우로라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랬구나." 아우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쩌지? 주방장 님은 지금 안 계신데."


"소완이? 드문 일이네."


"응. 이 섬에 있는 특별한 식재료를 직접 공수해오고 싶다고 하면서 잠깐 나가셨거든."


"그럼 아우로라가 주인님께 가르쳐보는 건 어때요?"


"내, 내내 내가?"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우로라 당황해 하며 말을 더듬었다. 


"디저트에 있어서만큼은 소완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그그그 그렇게 말해도......"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아우로라는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듯이 사령관을 쳐다보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아우로라 선생님!"


사령관은 부끄러워 하는 아우로라를 놀리기 위해 한술 더 뜰 뿐이었다. 


"사령관!"


아우로라가 새빨개진 얼굴로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하, 미안."


"정말......"


아우로라는 사령관을 째려보다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차피 내가 싫다고 하면 바닐라 씨한테 가서라도 배울 생각인거지? 내가 그냥 가르쳐줄게. 자, 들어와."


사령관과 이터니티를 주방 안으로 들인 아우로라는 못마땅한 듯 중얼거리면서도 찬장을 열심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령관, 디저트 만드는 거 쉽지 않은 건 알지? 지금 배운다고 해서 금방 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야."


"상관없어. 맘에 들면 천천히 배워나가면 되니까. 그때 되면 아우로라가 또 가르쳐주겠지."


"누군 하루종일 시간이 비는 줄 알아?"


아우로라는 그렇게 쏘아대면서도 디저트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보울에 한가득 담아오며 덧붙였다. 


"대신 나중에 사령관이 디저트를 만들면......먹고 피드백은 해줄게."


"큭큭, 지옥의 맛을 보여주지."


"왜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거야......?"


사령관과 아우로라의 대화를 지켜보며 이터니티가 작게 웃었다. 


"아우로라, 주인님께서 아우로라에게 배우시는 동안 저도 옆에서 잠깐 만들어도 될까요?"


"물론이야. 그런데 이터니티 씨, 디저트 만들줄 알았던가?"


"후훗, 조금요. 재료나 도구 같은 건 제가 알아서 찾을게요. 아우로라는 주인님께 신경써주세요."


이터니티는 사령관 옆에 찰싹 붙어 활기차게 가르쳐주기 시작한 아우로라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경청하는 사령관을 잠시 지켜보다 선반을 향해 몸을 돌렸다. 




***




"사령관, 아까부터 생각하는 건데 말이야......"


"응, 아우로라."


"사령관......전투지휘는 그렇게 잘하면서 손은 되게 둔하구나?"


"나도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니까 굳이 말하지 말아줘......"


아우로라가 사령관에게 수제 초콜릿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아우로라와 사령관은 온갖 파우더와 초콜릿을 몸에 가득 묻힌 채 서로를 황량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처, 처음에는 누구나 미숙한 법이니까! 신경쓰지 마 사령관! 아, 아하하......"


애써 활기찬 목소리로 사령관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는 아우로라 뒤로 이터니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 잘 되어가고 계신가요?"


"소완조차 울고 갈 시대의 역작을 만들어내는 중이지."


사령관이 그렇게 말하며 아우로라와 자신의 꼴을 보여주자 이터니티가 싱긋 웃었다. 


"재밌는 시간을 보내시고 계신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보다시피 결과물은 전혀 재밌지 못하지만 말이야."


이터니티가 아우로라와 사령관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테이블 위에 놓인 초코덩어리를 바라보았다. 


"후후, 하나 먹어봐도 될까요?"


"뭐? 아니 잠깐......"


사령관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이터니티는 입에 덩어리를 하나 집어넣었다.


"......"


우물우물 초코를 씹는 이터니티를 사령관이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괜찮아? 수복실 갈래?"


"괜찮아요. 후후......수제 디저트는 맛보다 만든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한 법이에요. 그리고 아우로라 말대로 처음에는 잘 안되더라도 주인님이라면 금방 잘하게 되실 거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말한 이터니티가 손가락에 묻은 초코를 쪽, 하고 마저 빨아먹으며 덧붙였다.


"제 입에는 무척 맛있답니다."


"......고마워 이터니티." 


"아 참, 주인님께서 배우시는 동안 저도 간단하게 만들어봤는데.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이터니티가 등 뒤에 있는 관에서 앙증맞은 크기의 초콜릿을 두 개 꺼냈다. 


"자, 아우로라도."


"고마워, 잘 먹을게."


이터니티가 건낸 초콜릿을 입에 넣은 사령관과 아우로라는 잠시 초콜릿을 음미하더니 동시에 눈을 번쩍 하고 크게 떴다. 


"뭐, 뭐야 이거......"


"말도 안돼. 이런......"


할 말을 잃은 둘을 바라보며 이터니티는 그저 말 없이 싱긋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가 있지?"


사령관이 절망적인 얼굴로 자신이 만들었던 결과물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우, 우와......이터니티 씨, 이거 너무 맛있는데? 나 대신 주방에서 일해도 되겠어."


"후후, 과찬이세요."


이터니티가 시계를 힐끗 보더니 사령관에게 말했다. 


"주인님? 다른 여가활동들도 체험하시려면 슬슬 이동하셔야겠어요. 아님 디저트 만드는 걸 좀 더 하시겠어요?"


"으음......지금 당장은 더 한다고 해서 뭔가 늘거 같지는 않으니까, 다른 걸 한 번 해볼까."


사령관이 여전히 초콜릿을 음미하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아우로라를 돌아보았다. 


"그럼, 아우로라. 재밌었어. 나중에 또 올게."


"어? 아, 응! 언제든지 놀러 와! 또 디저트 만드는 법 가르쳐줄게. 아 잠깐만! 이터니티 씨! 나 이 초콜릿 레시피 좀 알려주고 가면 안될까?"


"후후, 오늘은 주인님의 일일부관이니 내일 가르쳐줄게요."


"와 정말이지! 내일 잊지 말고 꼭 가르쳐줘야 해!"




***




"디저트 만드는 건 어떠셨나요 주인님?"


주방을 나선 이터니티와 사령관은 복도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복도에 난 창문들을 통해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으음......재밌기는 한데 확실히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네."


"후후, 피로하시진 않으신가요? 거의 오전 내내 주방에 있으셨는데."


"내 강화신체를 뭘로 보는거야?"


사령관이 팔을 척 들어보이며 자신의 신체를 과시하자 이터니티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럼 다음은 뭘 해볼까요 주인님?"


"음......평소 다른 대원들이 즐기던게......"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던 두 사람 앞에 누군가가 복도의 코너를 돌면서 나타났다. 


"어라, 사령관님 아님까? 충서엉~!"


"브라우니?"


평상시의 군복이 아닌 체련복을 입고 있는 브라우니가 사령관을 보며 즐겁게 경례했다. 


"오늘은 사령관님도 쉬시는 날이라고 들었지 말입니다."


"너도 오늘 쉬는 날이야?"


"맞슴다 어제 당직이었지 말입니다."


"밤을 샜으면 지금은 쉬시는 게......?" 브라우니를 향해 이터니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핫핫 괜찮지 말임다! 하루이틀 밤 새는 것 정도로는 끄떡없지 말임다."


왠지 임펫이나 레드후드가 들었으면 그대로 끌려가 삼 일 동안 당직을 서게 될 것 같은 위험한 발언을 하면서도 브라우니는 그저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지금은 뭐 하러 가는 길이야?"


"숙소에 가서 스틸라인 온라인 할 예정이지 말임다."


그렇게 말한 브라우니가 잠시 나를 쳐다보고는 '사령관님도 하러 가지 않으시겠슴까?' 하고 제안했다. 


"내가?"


"사령관님이 이렇게 널널하게 쉬시는 것도 드문 일인 것 같은데, 한 번 해보시지 않겠슴까? 디게 재밌는데."


"음......"


사령관은 최근 스틸라인 병사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이오로이드들이 스틸라인 온라인에 대해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던 것을 떠올렸다. 


"마침 내가 즐길 만한 여가활동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니까......한 번 해볼까?"


"정말임까! 그럼 따라오시지 말입니다! 히히."


나의 대답에 반색을 한 브라우니가 신나게 양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장섰다.


언제나 기운 넘치는 브라우니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뒤따르던 사령관의 머릿속에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그런데......브라우니가 게임을 잘했던가?'




***




"야! 브라우니! 11시 방향! 11시 방향 보라고!"


"으, 으아아아? 11시 방향 말임까?"


"왼쪽 위에 왼쪽 위에에!"


사령관이 포위해오는 적군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소총을 갈기면서 브라우니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브라우니는 게임패드를 붙잡고 이리저리 요란하게 흔들어대기만 할 뿐 정작 뒤에서 협공하는 적팀을 맞추기는커녕 포착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령관님! 초, 총이 안 나가지 말임다!"


"뭐? 너 아까 탄창 안 챙겼어?"


"채, 챙겼는데 장전이 안되지 말임다!"


머리 위로 빗발치는 총탄을 겨우겨우 피해 엄폐하며 사령관이 브라우니의 화면을 힐끗 보았다.


"야 그건 니가 쓰는 5탄이잖아! 레프리콘을 잡았으면 7탄을 챙겼어야지!"


"아 맞다!"


"후후, 당황해 하시는 주인님을 보는 새롭네요."


처음 게임을 실행하면서 게임패드를 사령관에게 넘겨줄 때, 브라우니는 한껏 의기양양한 얼굴로 사령관에게 게임의 기본적인 조작법과 튜토리얼을 진행했다. 


그리고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사령관의 게임 이해도는 브라우니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탕-! 탕-! 두두두두-! 콰앙!


"아......"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사령관과 브라우니가 조작하던 베라와 레프리콘이 동시에 사망했다. 둘은 회색빛으로 변하며 화면 중앙에 떠오르는 '당신은 사망했습니다'라는 문구를 잠시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브라우니야." 잠시 후 사령관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병 브라우니."


"넌 이 겜 누군가랑 같이 하려면 좀 더 연습해야겠다......"


"알겠슴다......"


"아이고 머리야......"


사령관은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바닥에 드리누웠다. 숙소의 다른 인원들은 다들 업무가 있는지, 숙소에는 브라우니와 사령관, 그리고 이터니티밖에 없었다. 사령관은 최고 권력자로서 다른 인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재밌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령관의 머리 위로 이터니티가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관심 있으시면 사령관실에도 게임기 하나 설치하라고 할까요 주인님?"


사령관이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지금은 다른 사람 계정을 빌려서 한 거라 괜찮지만, 내 계정이 따로 생기면 분명 맘놓고 못 즐길 거야."


사령관이 벽에 걸린 시계를 힐긋 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슬슬 다른 애들도 돌아오겠다. 여기서 너랑 이러고 있는 거 이프리트가 보기라도 하면 그대로 기절해버릴 테니까 난 이만 가야겠다."


"아! 가시는 검까?" 브라우니가 사령관을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괜히 나랑 게임했다는 거 다른 사람들한테 흘려서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다음에 같이 하기 전까지 실력 좀 키워 놔."


"다음......말씀임까?"


브라우니가 두 눈을 껌벅거렸다. 


"그래, 오늘 한 번도 못이겼는데 그럼 이대로 포기하리?"


브라우니는 잠시 사령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해맑은 얼굴로 손을 척, 들어올렸다.


"알겠습니다! 땡땡이를 쳐서라도 반드시 실력을 올려서 사령관님을 만족시켜드리겠슴다!"


"아니 그러지는 말고......아무튼, 나는 간다."


천진난만한 브라우니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사령관과 이터니티는 숙소를 떠났다. 




***




복도에 난 창문에서는 붉은 노을빛이 비치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후후,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도 제법 시간이 빨리 지나가죠?"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사령관의 곁에서 이터니티가 작게 웃었다. 


"그러게. 오늘은 이만 들어가야겠어."


"네, 사령관실까지 그럼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이터니티와 사령관은 한동안 창 밖의 풍경을 구경하며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점점 더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며, 사령관은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나저나 이터니티 넌 뭐 하는 거 없어?"


"네?" 자신을 돌아보며 질문하는 사령관을 향해 이터니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하루종일 다른 애들이 즐기는 여가생활에 같이 어울려주기만 했지, 정작 일일부관인 네 여가생활은 하나도 안했잖아. 나만 논 것 같아서 좀 미안해지는 걸."


"어머, 후후후......"


이터니티가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절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하지만, 저도 오늘 하루종일 즐기고 있었는 걸요?"


"응?"


이터니티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먼 수평선을 향해 떨어지는 태양은 수면과 맞닿아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천천히 허물어가고 있었다. 


"주인님. 주인님께선 영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령관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끝나지 않는 것? 갑자기 물으니 뭐라 설명을 잘 못하겠네."


"후후, 그것도 괜찮은 정의네요. 영원......끝나지 않는 무언가, 변함 없는 무언가. 보통 영원이 뭐냐고 물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곤 해죠. 하지만 전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영원이라는 건 결국, 짧디 짧은 한 순간을 이어붙인 것이라고."


이터니티는 자기 옆에 있는 관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바람 한 점, 햇빛 한 줌, 웃음 한 모금. 저희 이터니티는 주인님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과, 저희의 품을 벗어난 주인님께서 마주하시는 세상의 모든 조각들을 간직해요. 주인님께서 언젠가 영원한 안식을 취하실 때, 그 조각들을 한데 모아 주인님과 함께 그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마치 그 순간을 상상하듯이, 이터니티가 살포시 두 눈을 감았다. 


"죽음을 바라보는 저희를 많은 인간분들께선 꺼려하셨지만, 오히려 저희는 죽음을 기억하고 있기에 모든 순간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었어요. 지금 이 순간이라는 조각이 영원한 안식 속에서 얼마나 소중한 조각이 될지 알기에......"


슬며시 눈을 뜨고 사령관을 바라보는 이터니티의 눈은 창밖에서 서서히 태양을 품는 바다보다 깊었고, 오늘 하루 다시 바다의 품에서 죽어가는 태양의 노을빛보다도 강렬했다. 


"오늘 주인님께서 하신 다양한 경험들, 그 속에서 주인님께서 보여주신 모습, 표정, 웃음, 당황, 그 모든 것은 '영원'을 빛나게 해줄 소중한 순간들이기도 해요."


"그러니, '저'에게 있어 여가활동이란 모든 일상의 순간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어보이는 이터니티를 사령관은 잠시 말 없이 바라보았다. 


'영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자신보다 늘 먼저 세상을 떠날 주인을 섬길 운명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저 거대한 관보다도 무거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령관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주인으로서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영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령관은 무엇이 적절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그녀가 영원을 바라보듯이 나도 그녀를 바라보자.


그런 생각에 사령관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터니티."


"네, 주인님."


"방에 돌아가기 전에, 몇 군데만 더 다녀볼까?"


"네?"


되물어보는 이터니티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사령관이 그녀를 이끌기 시작했다. 


"이런 특별한 하루를 벌써 끝내기엔 조금 아쉽지 않아?"


영원을 바라보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과 함께 복도를 걷는 그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


사령관의 말뜻을 잠시 곱씹어보던 이터니티의 눈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주인님."



태양을 집어삼킨 바다 너머로, 아득한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뽀삐가 아닌 이터니티의 일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읽어줘서 고맙다. 

모모 본선 진출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