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남중이었는데, 분위기가 아주 개판이었음. 건물은 오래 되었고 옆에는 공고 하나 떡하니 있으니

공고의 일진들이나 내가 다니던 남중 일진들이나, 서로 담장 넘어와서 담배피고 지랄하던 학교였음.

그런 학교다보니 학생끼리 싸우는 건 일상다반사고 일진들은 괜시리 일반 학생들한테 삥 뜯거나 숙제 떠넘기는게 일상이었는데..


2학년 학년주임 하나가 새로 오면서 상황이 역전 되었음. 이 양반이 그때 기억으로는 ROTC 출신 역사쌤이었는데 덩치도 왜소한 축이고 나이도 제법 먹은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다들 그냥 노땅이구나 싶었는데


3학년 일진 중에 폭력, 담배, 음주운전 등으로 1년 꿇은 양반이 담벼락에서 담배 피는 걸 보고 아주 작살을 내놓으면서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림. 당시 시간대가 점심시간이었는데 이 양반이 담벼락에서 담배 피는 그 일진을 보고 걸어가서 걍 말도 없이 코뼈랑 어깨뼈를 박살냄. 본 녀석 말로는 담배 피는데 가까이 오지마라고 손사래 치니까 그대로 손에 있던 나무막대기로 코뼈 작살내고 존나게 팼다더라.

덕분에 학교에 앰뷸런스 오고 우리는 그거 구경하고 있었지.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교무실에서 난리가 났는데 그 학생 부모가 찾아와서 그 주임한테 고맙다고 엉엉 울어재끼는 거임. 알고보니 그 일진이 그렇게 개쳐맞고 정신 차려서 공부하기 시작했다함. 공고는 커녕 인문계는 꿈도 못 꾸던 녀석이 인문계까지 갈 성적으로 올라와서 졸업하고 그 주임한테 큰절 올리고 떠났음.


그 학년주임이 그렇게 일진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니 일진들은 아예 쭉도 못 썼고, 그때 이 양반한테 선배들이 붙인 별명이 묵향이라는 무협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칭호인 암흑마제였음. 키도 작고 왜소한 체구에 팔뚝힘은 무진장 쎄서 손가락에 잡히면 일진이고 뭐고 비 오는 날 먼지나게 존나게 맞았음.

 그렇게 2학년 학년주임 맡은 그 선생이 담임하는 반에는 각 반 일진들을 득실득실 모아둬서 그 반만 매일이 군대식으로 밥 먹고 다녔음. 한번 새치기하려던 일진이 그 양반한테 붙잡혀서 급식실 앞에서 존나 개싸대기 맞고 엉엉 울어재낀 일 이후론 우리 학년도 꽉 잡고 다님. 아침 조회 할때, 다른 쌤들이 조용히하라면 다들 무시하기 일쑤였는데 이 양반이 단상 위로 올라와서 말없이 입술 위에다 검지 올리면 일진들이 다 닥치라고 아우성일 정도.


그런 이 양반이 특이한 게 하나 있었는데 남중이다 보니 몇몇 당시 유행하던 만화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돌고 돌았는데 이걸 단속할 때 일부 만화는 오히려 애들한테 권장하고 다녔다는 거. 권장하던 만화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랑 베르세르크였음.

 둘 다 성인 만화였는데 그걸 왜 봐줬느냐하니,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단순히 로봇 만화가 아니라 청소년기에 겪을 수있는 모든 애환과 주인공의 감정 서사를 통해 난 대체 누구이며 인간은 어떻게 나고 어떻게 스스로를 깨닫는가 하는 것을 깨우치라고 했고.

 베르세르크의 경우,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며 스스로 주체성을 지니고 또 그 과정을 극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인간은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있는 건지를 고민하라고 했음.

 물론 남중새끼들은 그런 것보다 액션과 선혈이 낭자하는 거에 취해버렸고 덕분에 우리 학교 학생 절반이 중2병에 걸려서 맨날 몬헌 온라인에서 대검충이 되어버림 씨발. 선생님, 당신이 추천해준 만화 둘 다 좆됬어요.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