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매일 이 시간만 되면 시작되는 뜨거우면서도 기분 나쁜 통증은 오늘도 평온한 잠자리에서의 숙면은 꿈도 꾸지 말라고 말해주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그녀들에게 처음으로 발견되던 날, 난 한번 죽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오르카호에 실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된 신체는 죽음을 직면한 듯 뇌에서 끊임없이 도파민을 분출시켰고, 그 덕분에 통증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이 부작용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오리진더스트의 기적과 닥터의 과학력으로 완벽하게 대체된 신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지만, 그때의 사고는 정신쪽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밤만 되면 찾아오는 극심한 추위와 고독감은 잊으려하면 할수록 내 몸을 옥죄어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동안은 약물에 의존했지만, 결국

내성까지 생기는 바람에 투약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증상을 겪게 된지 약 3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해결법이 없을줄만 알았던 이 환상통은 예상밖의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수치의 도파민을 뇌에서 분출할만한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 고통을 잊어버리려면 난 계속해서 성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합법적으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성적인 봉사를 받으면 그만일텐데, 뭐가 불만인가?"


라고 말이다.


물론 그 말에 어느정도 동의를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 쳐했을때 어떻게 할 것인가?


철충들에게 기습적으로 습격을 당했던 어느날 밤, 급파된 야간조의 통솔을 맡는 중이었고 눈치없는 환상통은 지휘를 하는 중에도 찾아왔다.

오르카호의 존망과 선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하는 입장에서, 내가 취했던 행동은 뭐였는지 아는가?


그건 옆자리에 있던 레오나를 덮친 것이었다.


"사령관, 지금 뭐하는거야!! 악....아앗...다른 애들이...보잖....하읏...."


한시가 바쁜 전장이 펼쳐진 와중에, 성행위를, 그것도 지휘관객체를 덮치는 짓을 벌인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해서는 안될 짓이고,

자제해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환상통은 이성적논리를 깡그리 무시하게 할 정도로 내 몸에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세겨넣어둔 상태다.


다행스럽게도, 내 몸의 상태를 아는 선원들은 이런 일에 대해 별다른 저항없이 따라주고 있는 눈치지만, 단지 눈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내 상대가 되어주게 된 그녀들에겐 미안한 마음만 들 뿐이다.


복도를 지나던 중, 서로 인사만 했을뿐인데 그 자리에서 범해진 홍련, 오늘의 일정을 보고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비행일정에 차질이 생긴 하르페이아,

아침시중을 위해 찾아왔다가 아침식사대용 취급 받게 된 소완까지.


보통이라면 원하지 않았을 첫경험 순간을 만들어줬으니 그녀들 입장에선 서운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탐색 도중 발견한

각종 귀중품들을 선물하거나, 근사한 데이트를 마련해줘도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죄의식은 환상통과 함께 가슴 한구석에서 커져만 가고 있다.


이야기에 앞서 내 상황을 설명해줬지만, 납득하는건 어디까지나 당신들의 몫이다.

이 다음 나올 이야기는 추잡하기 그지없는 내 자신의 고해성사가 될테니, 보기 싫다면 여기서 멈춰주길 바란다.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당신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당신은 이 이야기를 읽을 자격이 있다.

지금부터, 당신은 내가 벌인 일들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좋은 시작이었을테고,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순간일수도 있는 이 상반된 뜻을 가진

단어에 대해 먼저 말해볼까 한다.


나에게 있어서 첫 경험은 잊고 싶은 순간이다. 정확히 뭔 짓을 벌인건지 기억은 나지않지만, 행위가 끝난 뒤 내가 목격했던건 변기에 쳐박혀있는

콘스탄챠의 머리와 꿈틀거리고 있는 그녀의 엉덩이였다.


약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진 상태에서 진정제를 투여하려던 그녀를 그대로 뒤에서 덮친 뒤, 좋을 대로 허리를 흔들어대다가 결국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땅바닥에 널부러진 주사기와 갈기갈기 찢겨진 그녀의 옷과 속옷, 그리고 변기에 쳐박힌 채 정신을 잃은 콘스탄챠를 발견한 나는 곧장 그녀를 데리고

의무실로 향했고, 하마터면 첫경험이 첫살인이 될 뻔한 아찔한 경험을 한 것이다.


의식을 찾은 그녀를 위해 사과의 의미로 꽃다발을 건내주었고, 그녀는 좋아하는 꽃이라며 고맙다고 말했지만, 다음날 소각장에 내가 준 것과 똑같은 꽃다발이 쳐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연한 결과다. 어느 누가 그런 일을 겪고 그런 일의 당사자가 준 꽃다발을 감사하다며 받겠는가. 예상되는 일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도로

어리숙하고 멍청했다. 


사과를 하는 법도, 여자를 다루는 법도.

나에겐 모든 것이 낮설고 처음 겪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낮설었던 첫경험은 나에게 독으로 작용했고, 이 일을 계기로 내 눈엔 그녀들이 돌아다니는 성욕처리도구로 보게 된 것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회의를 하는 도중에도, 그리고 잠들어있는 그녀들을 찾아가 내 멋대로 성욕을 풀어대는 일상을 보내며,

나는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했다.


"환상통이 심해져서, 어쩔수 없었어"


어쩔수 없었다. 

그 말 한마디면, 그녀들은 모든 것을 웃어넘겼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따위 내 알바가 아니다. 내 앞에선 웃어만 주면 그만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째서 이야기가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끝이 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건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언제 어떻게 끝날지 나 조차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다면, 이런 넋두리를 당신들에게 늘어놓지도 않았겠지.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끝까지 본 당신에겐 미안하지만, 그런다고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진 않는다.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 웃어 넘기고, 당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