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3년 멸망 전쟁 중후반.


둠 브링어는 전멸했다.

아니, 전멸했다고 '처리'되었다. 


전투 중 왼쪽 눈을 잃은 AL 레이스 1기가 아직 살아있긴 했다.

허나, 쓸모가 없어진 바이오로이드는 없느니만 못한 존재였다. 

둠 브링어가 전멸했다고 처리된 이유는 그랬다.


*


 둠 브링어가 소속되어 있었던 군부대 뒷편에는 쓰지 않는 창고가 있다. 일과 시간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지만, 밤마다 이곳에서는 은밀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오늘 밤은 소대 한 개가 단체로 몰려와 쓸모없어진 AL 레이스를 범하고 있었다. 아무도 내색은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모인 군인들은 곧 인류가 멸망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철충에게 죽기 전에, 그들은 마지막 쾌락을 얻고자 버려진 창고를 찾았다.


레이스에게 그 쾌락에 취해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육체를 탐하는 자들은 어제 온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리 좀 흔들어봐, 씨발년아! 명령이다!"


짝! 


다정함이라고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거친 목소리와 레이스의 뺨을 때리는 두터운 손. 허나 그녀는 울지도 반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AL 레이스 기종 특유의 굳은 표정을 지으며 명령을 따를 뿐이었다.


레이스는 허리를 흔들며, 군인 한 명의 자지를 입에 넣었다. 왼쪽 뺨이 부풀어 가고 있었으나 아랫도리와 엉덩이를 동시에 관통하는 아린 감각은 그 사실을 잊게 하고 있었다.


"우읍."

"아프잖아, 썅년아!"


자지를 혀로 애무하는 중간중간 느껴지는 날카로운 치아가 주는 통증이 짜증났는지, 남자는 먼지와 백탁액으로 더러워진 레이스의 앞머리를 확 잡아챘다.


본래 AL 레이스는 둠 브링어의 화력을 타격 목표에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체다. 남자를 기쁘게 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았건만, 눈앞의 군인이 그녀의 사정을 이해해 줄 리가 없었다. 


"죄송, 합니다...... 인간님...... 하읏!"


레이스가 머리를 숙이며 사죄하려는 순간, 그녀의 배후에서 누군가의 손이 난폭하게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주 약간의 쾌감과, 조금 큰 고통이 레이스에게 찾아왔다. 이미 누군가에게 물리고 잡혀 상처가 잔뜩 나 있었건만, 그 위에 손톱자국이 새로 새겨졌다. 그 상처가 깊어져, 피가 흐르는 순간 레이스는 입을 열었다.


"아, 아프다......"


자신도 모르게 아프다는 말을 꺼내고 만 그녀는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차가워질대로 차가워진 군인들의 눈빛은, 그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이년이 드디어 미쳤나!"

"아윽!"


방금 레이스의 앞머리를 잡아챘던 남자가 군홧발로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 그 발길질에 레이스가 바닥을 몇 바퀴 굴러 벽에 부딪혔지만 그녀를 일으켜 주는 인간은 없었다. 


군인들 두 명이 양쪽에서 우악스럽게 레이스를 일으켰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명은 발로 오금을 차 그녀를 무릎꿇게 만들었다.  


"우리가 철충 새끼들한테 처맞고 있을 때 후방에서 편하게 쉬고 있던 년이 뭐? 아프다? 그럼 좀 더 아파 봐. 개년아."


그들 중 리더격인 남자가 꼿꼿하게 선 자신의 대물을 과시하며 성큼성큼 레이스에게 다가왔다. 커다란 남성의 물건이 점점 가까워지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을 자신의 목구멍에 쑤셔넣는 것도, 미묘하게 역한 냄새를 풍기는 정액이 얼굴에 뿌려지는 것도 이제는 싫었다. 하지만 팔을 잡고 있던 군인 한 명이 얼굴을 단단히 잡아 강제로 정면을 보게 했고, 곧 레이스의 볼에 뜨거워진 자지가 닿았다.


"생각해보니 이년 눈구멍 맛을 아직 못봤단 말이지."


리더격 남자가 실실 웃으며 자기 물건으로 그녀의 눈두덩이를 훑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총알이 눈알을 뚫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레이스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그것을 피하려 했지만 턱과 앞머리가 잡혀 있어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 제발 용서를......."

"지랄 말고 가만히 있어."


아직 멀쩡한 레이스의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렇게 남자의 자지가 눈구멍에 들어가려는 그때, 창고 문이 벌컥 열렸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추, 충성."


소위 계급장을 단 남자의 등장에, 군인들은 황급히 그에게 경례를 올렸다. 레이스를 제압하던 손길이 느슨해지자, 그녀는 마음속으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소등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나? 빨리 돌아가도록."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남자들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을 대충 주워 입고 한 명 한 명 창고를 떠났다. 


허름한 창고에, 소대장과 AL 레이스 단 둘이 남았다. 그러자 소대장은 무심하게 레이스에게 모포를 던져 주었다. 


"고맙다, 소대장."

"괜찮나?"


소대장의 질문에, 레이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방금까지 뺨을 맞고 발길질당한 통증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흐윽. 괜찮다...... 소대장."


레이스는 애써 괜찮은 척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눈물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소대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메이 대장...... 나이트 앤젤 대령......"


이미 저세상에 간 둠 브링어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레이스는 끅끅 울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알고 있는 소대장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죽었어야 했다...... 나 말고 그들이 살았어야 했다......"


대원들에 대한 레이스의 그리움이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죽은 것은 레이스의 탓이 아니었다. 소대장은 그런 그녀를 보며, 주먹으로 벽을 쳤다. 화들짝 놀란 레이스가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아무리 인류 멸망이 다가왔다고 해도,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나는......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 약한 존재를, 그녀를 제물 삼아 불안을 달래고 싶지 않아. 솔직히 말해보자면, 레이스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소대장은 레이스에게로 손을 뻗었다. 잡고 일어나라는 듯 내민 손을, 레이스는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녀가 손을 잡고 일어나자 180cm에 달하는 키 덕분인지, 소대장과 레이스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려다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은 위선이다.'


아무리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해도, 소대장은 그동안 레이스가 고통받는 것을 외면해 왔었다. 지금에서야 그녀를 탈출시켜 준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만족이 아닌가. 


"흐윽, 흐으윽......."


그가 고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는 쉴새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였을까. 소대장의 안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졌다. 그는 입을 열고, 자신의 위치에서 해서는 안되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레이스."

"소대장......?"

"나와 함께 여기서 나가지 않겠어?"


갑작스러운 제안에 레이스의 오른눈이 껌뻑였다. 군부대에서 제조되어 여태까지 이곳에서만 살았던 그녀에게, 부대 바깥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다. 게다가 철충에게 감염된 AGS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위협해 올 것이었다. 사령관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 제안에 덧붙였다.


"갖잖은 위선이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더는 네가 괴로워하는 것을 원하진 않아. 바깥은 위험하지만,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 주겠다."

"......제안은 고맙다. 하지만 나는 이 부대의 '기물'이다. 내가 탈출해 버린다면 소대장이 어떻게 될진 생각해 본적 없는가?"


레이스의 올곧은 눈빛에 소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바이오로이드'인 그녀가 자유를 얻는 대가는, 오로지 소대장에게만 돌아갈 것이었다. 그 무거움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레이스와 소대장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다 죽어. 인간도, 바이오로이드도."


소대장이 한참 동안 이어졌던 침묵을 깼다. 고통받는 레이스를 방치해도, 그녀를 데리고 탈출해도 결국에는 철충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양심을 지키고 싶다. 부탁할게, 레이스. 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자."


그는 다시 한 번 제안했다. 레이스의 심장이 두근, 두근 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뛰게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레이스는 왠지모르게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싶었다.


*


 "비가 많이 오네. 장마철이라 그런가."


소대장과 레이스가 나란히 군부대를 탈출한지 반 년이 흘렀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무릎까지 쌓였던 눈은, 찌는 듯한 더위와 쉴새없이 쏟아지는 장맛비로 바뀌어 있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둘을 잡으려는 추격자들에게 쫓겼고, 그 다음에는 철충에게 쫓겼다. 인간 병사가 쏜 총알에 레이스가 맞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고, 야영중 나이트 칙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철충들이 줄어드는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이었을까. 어쨌든, 추격자도 철충도 점점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았다. 


줄어드는 습격은 여유를 불러왔다. 소대장은 레이스에게 그나마 멀쩡한 백화점을 구경시켜 주거나, 폐허가 된 테마파크에서 멈춰버린 회전목마를 타는 등 여러가지 추억을 만들었다. 오늘은 해변에 앉아 바다를 볼 예정이었건만, 비가 와서 힘들게 되었다.


"비를 피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

 

레이스는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소대장에게 씌워주었다. 빗줄기가 조금씩 거세지고 있어, 금방 우비로는 막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레이스, 저기 동굴 보이지? 지금 내가 비옷을 입고 있으니까 조금 수색하다 들어갈게. 먼저 들어가 있어."

"알겠다."


레이스는 걱정하는 눈길로 그를 흘끗 쳐다본 뒤, 제트팩을 품에 감싸안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해안가에 위험한 것이 있나 살펴볼 요량으로, 소대장은 손전등을 꺼내려 했다. 


'어?'


그때, 어딘가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그와 함께 소대장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아니, 불길한 기운에서 멈췄으면 다행이었다. 


'추격대다. 설마 위치를 들킨 건가?'


소대장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레이스가 위험하다. '인간'인 자신은 군법으로 처리하기 위해 살려두겠지만, '기물'인 레이스는 그 자리에서 사살될 수도 있다. 


"레이스!"

"잘 왔다 소대장. 마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레이스가 따뜻해진 전투식량을 내밀었지만, 소대장은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다그쳤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추격대가 왔다고!"


이러는 순간에도 추격대는 그들을 쫓고 있을 터였다. 소대장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무능을 질책했다. 언제든지 추격대가 쫓아올 수 있는 상황에서 형편 좋게 바다 구경이나 하려 했다니.


'아니면......'


애초부터 추격대가 그들을 방관하고 있었다는 가능성이 떠올랐다. 자신과 레이스가 부대에 놀아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대장은 주먹으로 동굴 바닥을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주먹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진정해라, 소대장."


그런 그의 손을, 레이스가 부드럽게 감싸 주었다. 그녀의 입김이 소대장에게 닿자, 다급하면서도 야릇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발이 묶인 참이었다. 도주는 불가능했다.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둘의 이성도 날아가고 있었다. 이성이 흐려지자 본능이 솟구쳐 올라왔다. 소대장은 레이스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그대로 입을 맞췄다.


"우읍."


가벼운 키스로 시작했건만, 어느새 소대장은 레이스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고정시키고 혀를 집어넣었다. 어느새 그는 레이스의 숨결의 근원을 탐하고 있었다. 따스하고도 달콤한 레이스의 입천장이, 혀가 그대로 소대장에게 닿고 있었다. 


"츄릇, 하......."


레이스와 소대장의 혀가 한번 감겼다 풀렸다. 레이스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그녀에게 남자의 입술은 언제나 폭력적이었다. 


언제나 레이스를 무참히 깔아뭉개던 군인들의 입술. 입 안을 자극받아 아래가 젖기는 했지만 결코 기분이 좋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대장은 그렇지 않았다. 레이스를 탐하고 싶다는 심정은 동일하겠지만, 그에게는 그녀의 가슴 속을 간질간질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상하다. 이렇게 여기가 간질거리는 것은 처음이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키스가 끝나고, 언제까지고 붙어 있을것 같았던 소대장과 레이스의 입술이 떼어졌다. 그제야 둘은 서로를 마주볼 수 있었다. 


'레이스를,'

'소대장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마주본 것은 처음이다.'


둘의 눈동자에 서로가 담겼다. 소대장은 우비와 상의를 벗고, 레이스는 딱 붙어 있던 슈트를 벗어 가슴을 드러냈다.


"소대장...... 이렇게 조금만 안고 있어도 괜찮은가."


레이스가 그를 끌어안자, 풍만한 젖가슴과 딱딱한 복근이 동시에 그의 상체에 밀착되었다. 비에 젖어 차가워져 있던 몸이 서로의 체온으로 데워졌다. 그러자 가슴 속 간질거림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어휴, 그러니까 대장이 지금까지 처녀인 겁니다. 확 벗고 들이대면 뭐 큰일이라도 납니까?'

'사랑을 모르는 네가 정말 불쌍하다, 진짜. 육체관계 전에는, 무조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부대원들이 살아 있었을 때였다. 복도에서 메이와 나이트 앤젤이 싸우고 있던 것을 본 레이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랑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소중한가?'


그녀가 묻자 메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게 딱 삘이 오거든? 흠흠, 너도 나처럼 마음이 성숙해지면 알게 될거야. 우리 귀여운 레이스. 몸만 컸지 아주 애기라니까.'

'아다의 개똥철학이군요.'

'야, 나앤! 너 뭐라고 했어? 도망가냐? 거기 서!'


메이의 말대로 이 간질거림은 자신의 마음이 성숙해졌다는 증거일까? 그녀가 죽어버린 이상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레이스는 그렇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든 그렇지 않든 어느새 자신이 소대장을 사랑하게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 간질거림이 레이스의 아랫도리까지 전달된 모양인지, 그녀의 하의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소대장은 다시 한 번 레이스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 허벅지를 타고 다리 사이에 손을 댔다. 


"아읏."


자신의 국부를 살살 자극하는 소대장의 손에, 레이스가 조그마한 신음을 내었다. 허나 그녀가 소대장의 손길을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 더 자극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다시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 레이스는 소대장을 어깨에 머리를 대고 온전히 감각을 그의 손에 집중했다. 


"흐읏!"


소대장이 손을 떼자, 레이스의 다리가 풀렸다. 어느새 그녀의 다리 사이는 그의 사랑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레이스는 떨리는 손으로 벨트를 풀었다.


"으읏. 레이, 스?" 


그녀가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기자 팬티에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풀어올라있는 소대장의 고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레이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잔뜩 부푼 고간은, 레이스 마음 속의 간질거림처럼 그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의 굳은 표정에 미소가 올라왔다. 이처럼 행복할 수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고맙다, 소대장. 나 같은 것을 사랑해 줘서......"


레이스는 소대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팬티를 내리고 그의 육봉을 가슴 사이에 끼웠다. 따뜻한 감촉이 마음 속의 간질거림을 조금이나마 안정시켜주었다. 그 후 마치 입술에 하듯, 그녀는 정성스럽게 그의 물건에 키스를 바쳤다. 


"하앗!"


이번에는 소대장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이상하다. 물리적으로는 자신의 입으로 남자의 물건을 물고 핥는 건데, 왜 지금은 그 맛이 감미롭게 느껴질까?


'좀 더 맛보고 싶다.'


그러한 욕망이 레이스를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중간중간 이가 서기는 했지만 소대장이 그것마저도 흥분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입놀림이 빨라졌다. 


"으윽, 레이스, 레이스......"


사령관이 수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참을 수가 없었는지, 그의 자지에서 하얗고 탁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하읍!"


터져나온 액체가 입가를 비집고 나와 가슴에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레이스가 소대장의 물건을 입에서 빼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배낭으로 그녀의 목을 받치고 다정하게 눕혀 주었다.


레이스가 눕고 그 위를 소대장이 덮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한구석에 구속되어있던 뜨거운 마음을 해방시키듯 그녀의 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벗겼다. 


"......사랑해."


그 말과 함께 둘의 눈앞에서 그동안의 추억이 지나갔다. 처음 탈출을 제안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그들은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사랑이 싹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그 전이었을지도 모르지.'


서로의 시선이 비스듬하게 지나가자, 소대장은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자신의 자지를 레이스에게 밀어넣었다. 그동안의 행위에 안쪽까지 번들번들하게 젖어 있었는지, 꽤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그의 물건이 한번에 쑥 들어갔다.


"아읏!"


그를 받아들인 레이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금방 눈을 뜨고 부지런히 피스톤질을 하고 있는 소대장을 바라봤다. 후끈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상기된 얼굴이 그녀와 마주보고 있었다. 비와 땀이 섞인 액체가 그녀의 이마에 떨어졌다. 레이스는 처음으로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힘내서 자신을 기쁘게 해주다니. 그 감정이 벅차올라, 레이스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그가 그녀의 안을 몇 번이나 휘저었을까. 둘이 동시에 절정했다. 입을 타고 가슴과 상체를 적셨던 정액이 이번에는 그녀의 자궁에 닿았다. 


'설마 소대장의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인가?'


언젠가 나이트 앤젤 대령에게 들은 것 같다. 남자가 여자의 질 안에 사정하면 아이가 생긴다고. 레이스는 다시 한 번 웃어 버리고 말았다. 오늘 하루에 얼마나 웃는 것인지.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하아, 하아......."


마침내 소대장이 레이스의 보지 안에서 자지를 뺐다. 둘 다 체력을 한껏 써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한때의 소나기였는지 어느새 하늘이 맑게 개여 있었다. 체력이 조금 돌아오자, 소대장은 레이스에게 말했다.


"레이스. 사실, 네게 숨긴 것이 있어."

"숨긴...... 것?"


소대장은 해명하는 대신 레이스가 안고 온 제트팩을 두드렸다. 


"그 제트팩, 고장났다고 하지 않았나. 나중에 해체해서 연료를 얻을 생각으로 나에게 맡긴다고 했었다."

"레이스, 내가 알려준 거 기억나?"


갑자기 소대장이 물었다. 반 년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는 레이스에게 생존 법칙과 여러가지 도구를 다루는 법을 알려줬었다. 


레이스도 알고 있었다. 이 도망생활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하지만 그때가 지금일지는 몰랐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노려봤다.


"나는 잡혀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잡히면 죽어. 미안해. 떨어지는 건 정말 싫지만 네가 죽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미끼가 될게."

"나보고 혼자 도망가라는 말인가?"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뿌득. 레이스가 이를 갈았다.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낫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가 원하는 바를 못 들은 체 한 척 할 수는 없었다. 


'솔직해지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야 나중에라도 만날 수 있지 않는가.'


그녀는 상체를 일으켜 옷을 갖춰 입고 제트팩을 등에 멨다. 그 사이 소대장은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니, 사과는 하지 않겠다."

"......"

"반드시 다시 만나는 거다, 소대장."


소대장은 말없이 권총을 레이스에게 던져 주었다. 권총을 받아든 레이스는 소대장이 가르쳐준 대로 제트팩을 작동시켰다. 그녀가 넓디넓은 하늘로 사라지자, 그는 이제서야 인사를 건넸다.


"반드시 다시 만나자, 레이스."


*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대장, 아니 사령관은 살아 있었다. 레이스를 먼저 보내고 생포된 그는 군사법원에서 전시 탈영 및 기물 횡령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뒷통수에 총알을 맞고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 보니 메이드복을 입은 바이오로이드 콘스탄챠와 금발의 새침한 바이오로이드 그리폰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그의 능력을 아까워한 상부에서 총알을 마취탄으로 바꾼 후 냉동 캡슐에 재워놓은 모양이었다. 


오르카호의 사령관이 된 후, 연결체니 레모네이드 오메가니 철의 왕자니 하는 녀석들과 엮여 바쁜 일상을 보냈었다. 그 시간동안 사령관은 여전히 왼쪽 눈이 없는 레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꼭 다시 만나자고 했으면서.'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레이스가 무사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살아서 만나자는 약속은 아직도 유효했다. 


"주인님, 콘스탄챠S2입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들어와."


그가 허락하자, 콘스탄챠가 사령관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사령관의 책상에 서류 한 장을 올려 놓았다.


"오르카에 합류하는 바이오로이드의 명단입니다."

"특이점은?"

"그녀들 중 왼쪽 눈에 안대를 한 AL 레이스 기종의 바이오로이드가 있다고 합니다."


왼쪽 눈에 안대를 한 AL 레이스 기종. 그 말에 사령관이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뭐?"

"그녀들 중 왼쪽 눈에 안대를 한 AL 레이스 기종의 바이오로이드가...... 혹시 문제가 있나요, 주인님?"

"그 바이오로이드, 지금 당장 여기로 데려올 수 있어?"

"알겠습니다, 주인님."


콘스탄챠는 고개를 끄덕인 뒤 황급히 사령관실을 나섰다. 


"드디어......"


사령관이 깨진 커피 잔을 수습하고 있을 때, 콘스탄챠가 문을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벌컥 문을 열었다. 


꼭 만나자고 말하던 입술이, 자신의 얼굴을 담았던 올곧은 금빛 눈동자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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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애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