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군인 누나 오늘도 있네?”


“소년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급히 뛰어가시는군요.”


“응, 약속에 늦을 거 같거든. 그리고 소년이 아니라 마이클이야 마이클. 이제는 내 이름을 외울 때도 됐잖아.”


“그러는 저 역시 ‘군인 누나’가 아니라 불굴의 마리입니다. 물론 소년의 이름은 외우고 있지만, 저는 이쪽이 더 편합니다.”


아이가 볼을 부풀리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블랙리버 사가 자랑하는 하이엔드 급 군용 바이오로이드 ‘불굴의 마리’ C-27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표정은 근엄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순도 높은 황금을 녹여낸 듯한 그녀의 눈동자는 소년의 전신을 수없이 훑어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자그마한 체구며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까지. 마리는 꼬마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용히 숨을 골랐다.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에 팔짱을 끼고 있는 손이 움찔거렸다. 한 번만 만져보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만 내 품에 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단 한 번만이라도 범할 수 있다면!


자신의 이런 곤란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더니 곧 대단한 것을 떠올렸다는 것처럼 손가락을 튕겼다.


“그건 너무 딱딱하잖아? 그렇다면 둘 다 합쳐서 마리 누나라고 하자? 어때?”


“으응...좋군요.”


갑작스러운 소년의 제안에 마리의 표정에 일순간 균열이 일어났다. 이 정도의 자극은 반칙이었다. 왜지? 왜 이 소년은 하필 내 앞에 나타나서 나를 이토록 달구는 걸까.


“좋아! 그럼 앞으로 그렇게 부를게. 나 늦었으니까 오늘은 이만 가볼게. 잘 있어!”


소년은 마리의 손을 한번 잡으며 어설프게 악수를 하더니 도로를 건너 건물들 사이로 곧장 사라졌다. 마리는 풀려버린 눈동자를 억지로 끌어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잡은 곳에 무형의 낙인이 찍혀있는 듯했다. 그 낙인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자신의 팔로, 어깨로, 가슴으로, 그리고 하복부로 분출되었다. 지금 바디슈트의 지퍼가 미끈거리는 것은 기분 탓인가.

 

“대장, 인간님의 검문은 끝마치셨습니까? 이제 두 구역 남았습니다.”


일정을 검토하던 레드 후드가 다가와 물었다. 불굴의 마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몇 번 쥐었다 피더니 부관을 바라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아니, 오늘 순찰은 여기서 끝이다. 더 볼 필요도 없겠지. 부대로 복귀한다. 내 오후 일정은 더는 잡지 말도록. 나는 오늘 관저에서 쉴 예정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남은 일정은 없으니 푹 쉬십시오.”


마리는 레드 후드의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영내 문 앞에 다다른 그녀의 눈이 푸르게 타올랐다. 걷는 것조차 아까웠다. 어서 빨리, 한 시라도 더 빨리.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주체할 수 없이 타오르는 자신의 욕정을 식히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후...허억..하..”


시큼한 냄새가 조명이 희미한 침실을 가득 채웠다. 마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액취에 취하도록 스스로를 내버려 두었다. 열렬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조금 전까지 수도 없이 머릿속에 그렸던 소년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지금 생각해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본래 사단장인 마리가 영내를 떠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변덕을 부렸다. 부대 주위 환경을 알아두겠다는 것을 핑계로 따라오겠다는 레드후드도 물리친 채 홀로 부대를 나섰다. C-27의 부대는 지역 방위를 위해 도시 중앙에 있는 산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주변 도시와는 거리 하나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우와! 누나 키 엄청 크네?”


그날도 소년은 친구를 만난답시고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을 좋아했다.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마리가 인간 아이들에게 갖는 호감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서는 종류의 것이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원했다. 관심을 가진다기보다는 집착했다. 그녀는 슈트에 땀이 점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웃었다.


“소년께서도 곧 저만큼 자랄 겁니다.”


“진짜? 하지만 난 우유도 잘 안 먹고 잠도 늦게 자는걸.”


“클 사람은 다 크게 되어 있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건 그렇고 소년, 거리를 급하게 뛰어다니는 것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뭐야,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로 충분해. 그럼 난 간다!”


마이클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언덕 너머로 달려 내려갔다. 마리는 그 자리에 서서 소년이 언덕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저 소년, 다시 만나고 싶다. 저 소년, 내가 가지고 싶다. 마리는 그때 소년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도 정의할 수 없었다.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적나라한 감정이었다.


그날부터 부대 주변을 순찰하는 일은 마리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못 만나는 날이 더 많긴 했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불굴’이라는 명칭은 괜히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루를 볼 수 있다면, 그다음 100일을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천진난만한 표정, 아기자기한 몸짓,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분유 냄새까지, 그 모든 것이 마리를 미치게 했다. 마리의 침대 시트가 하루가 멀다고 세탁기에 처넣어진 것이 아마 그즈음부터일 것이다.


“아아...마이클..마이클..”


마리는 사타구니를 헤집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뚝..뚝..걸쭉한 실을 만들던 자신의 ‘애정’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입을 벌렸다. 새콤하면서 야한 그것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먹여주고 싶다.’


자신의 애정을 받아들이는 소년을 상상하자, 그녀의 허리가 다시 한번 야릇하게 튀어 올랐다. 




“누나 오랜만이야!”


소년이 자신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기 전부터 그를 지켜보고 있던 마리는 표정 관리에 공을 들였다. 10일, 실로 길었던 그 10일 동안 마리는 마이클을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엇갈렸던 탓일까? 아니면 이제 이 길로는 다니지 않은 걸까? 인내심과는 별개로 마리의 욕망은 하루가 다르게 팽창했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더 많은 마약을 넣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처럼, 마이클을 원하는 그녀의 욕망은 멈출 줄 몰랐고, 끝도 없이 확장했다. 마리는 몰래 손을 넣어 코트 속에 감춰진 둔부를 한번 세게 잡았다. 침착해야지. 마이클 앞이잖아.


“오랜만에 만납니다, 소년.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푸른색 캡을 거꾸로 쓴 소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쾌활하게 웃었다. 마리가 꿈에서도 그렸던 그 웃음이었다. 슬며시 웃음을 짓던 그녀의 눈에 무언가 있으면 안 될 것이 보였다. 볼 밑에 끝이 다 헤진 반창꼬가 붙어 있었다.


“마이클...아니 소년, 다치셨나봅니다. 밴드가 붙어있군요.”


“아, 이거? 뭐 별거 아냐. 스케이트보드 타다가 넘어졌어.”


“저런, 조심하셨어야죠. 그런 상처일수록 소독에 철저해야 합니다. 이리 와보십시오.”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용 소독 스프레이를 꺼낸 마리가 허리를 굽혔다. 소년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마리는 천천히 소년이 어설프게 붙여놓은 밴드를 떼어냈다. 살이 패이지는 않았고 그저 조금 긁힌 자국뿐이었다. 마리는 그 탱글탱글한 볼을 보며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웃, 따가워!”


“이렇게 해야 흉이 안 집니다. 자, 다 되었군요.”


소독 스프레이를 뿌리고 거즈에 멸균 밴드로 처치를 끝낸 마리가 소년과 눈을 마주하며 웃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 가벼운 상처였지만 마리는 그것마저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더 해주고 싶다. 내가 뭐를 더 내줄 것은 없을까. 마이클이 밴드를 몇 번 쓰다듬더니 다시 활짝 웃었다.


“헤, 차가운 느낌이 뭔가 기분이 좋은 거 같아. 누나 고마워!”


마리는 그다음 순간의 일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끌어당겼고, 인간님들이 자주 사용하는 민간 샴푸 냄새가 났다. 아, 이 아이가 날 끌어안았구나. 날 포옹해준 건가. 마리는 손발이 점점 차가워지더니, 액체 질소를 뿌린 엔진처럼 맹렬하게 타올랐다. 막으려고 해도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몸이 들썩거리자 마이클이 포옹을 풀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문과 약간의 걱정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응? 누나 괜찮아?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데?”


가뜩이나 하얘서 홍조라도 나면 두드러지는 마리의 피부는 이제 홍시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자아의 외침이 급류처럼 휘몰아쳤다. 아아, 참을 수 없어. 참을 수 없어. 참을 수 없어. 너가 유혹한 거야. 너가 먼저 유혹한 거라고. 이제 참지 않아도 되지? 나 더 이상 안 참아도 괜찮지? 나 더는 못 참겠어.


너가 시작한 거야. 


“저, 마이클... 고마우면.., 혹시 이 ‘누나’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나요?”


“응? 오, 누나 처음으로 내 이름을 말해줬구나! 그래, 부탁 들어줄게!”


“저...저랑 같이 어디 좀..하아..가줄 수 있겠습니까? 후우...”


“응? 어디를 가는데?”


“아...다른 게 아니고...마이클한테 선물을 주려구요...흐응..그러니..같이 좀..”


“선물? 그래 좋아!”


아무것도 모르는 마이클이 마리의 손을 잡았다. 마리는 흥분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선물을 받을 생각에 들뜬 이 소년은 지금 자신이 손을 잡은 이 건장한 군인이 이미 성욕에 점령당한 욕망덩어리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얇은 베이지색 슈트가 점점 짙게 물들어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이클의 손을 잠시라도 놓칠세라 꽉 붙잡은 마리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말했다.



“자, 갈까요?”








원래 내 스타일은 여주인공 가지고 놀다가 사지 절단내는 스너프물인데


이런 로맨스물은 잘 쓰지도 못하겠고 쓰기도 힘드네..


원래는 단편으로 끝낼려다가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2부로 나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