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설정과 다를 수 있음


같은 시리즈

그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오르카의 대부분 인원들이 모든 과업을 끝내고 잠에 든 23시 30분.

사령실은 아직도 전등이 환하게 빛을 뿌리며 조용한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으으~~"


중간에 자세를 바로잡으며 목을 좌우로 비틀어 뚜둑 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령관.

사령관의 하루는 다른 대원들 보다 늘 늦게 끝났다. 딱히 오늘만 그런 것 도 아니고 대부분의

나날을 그렇게 보내왔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주인님. 무리한 스트레칭은 오히려 몸에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주무시는 건 어떠신지요."


"아니야, 페로. 모처럼 다들 즐길만한 여름 휴가 계획을 완성하려면 아직 멀었어."


페로의 걱정어린 목소리에 사령관은 싱긋 웃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항상 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사령관은 늘 정진하고 업무에 메달렸다.


페로또한 사령관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

그렇기에 옆에서 잔소리를 하지만 사령관은 그럴 때 마다 사람좋은 미소로 넘겨버렸다.


'하아... 정말이지, 그 표정은 반칙이라구요. 주인님..'


사령관은 페로가 알고있던 멸망 전 인간님들과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주고

늘 그녀들을 생각하고 위한다. 냉정히 보자면 그는 유일하게 남은 인간으로서 그 권한을 이용해 다른 바이오로이드

동료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 철저한 소모품으로만 대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유일한 인간이자 모든 오르카 저항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이기도 했으니 군인으로써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에 복종하도록 강요 하는 것이 차라리 당연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과도할 정도로 노력했으며 늘 그녀들을 대함에 있어 진심이었다. 

그녀들에게 받는 사랑을 그 이상의 사랑으로 돌려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곁에서 봐온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페로, 미안한데 커피좀 타 주겠니? 오늘따라 좀 피곤하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페로는 사령관의 명령, 아니 부탁에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며 서둘러 찻장에 다가갔다.


'처음 뵈었을 때 부터 그러셨지.'


사령관은 처음 부임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어지간 해서는 '명령' 이라는 표현과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항상 '부탁' 하는 어투로 -아니, 어투 뿐만이 아니리라- 대하는 사령관을 봐온 페로는 그런 사령관의 모습에

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더 권위를 내세우셔도 되실건데..'


그런 생각을 마음속에 묻으며 페로는 익숙한 손길로 찻장을 열어 커피와 컵을 꺼내 옆에 놓여있는

커피포트의 물을 끓였다. 커피는 좋아하면서 정작 쓴 맛을 싫어하는 사령관의 입맛을 소소한 부분까지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페로는 능숙한 손길로 커피를 끓이고 각설탕 두개를 뜨거운 커피에 녹여낸다.


"이야~ 역시 페로! 내 입맛을 정확히 알고있네? 설탕의 갯수까지 알고있다니!"


"히얏-!"


어느새 다가온 사령관이 짓궂은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귓가에 속삭이자 페로는

괴상한 신음성을 내며 몸을 떨었다.


"으으..! 커, 커피를 쏟을뻔 했지 않습니까! 이런 장난은 그만둬주세요.."


"하하하! 미안, 그래도 놀라는 페로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 없다니까."


"하아... 정말이지.."


작전을 수립하거나 업무중의 진지하고 과묵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평상시 사령관의 모습은 저런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혼재하는 괴짜 그 자체였다.


"자, 여기 있습니다. 커피."


페로가 짐짓 토라진 듯 커피를 불쑥 내밀자 사령관이 그 커피를 받아들고 홀짝이며 그녀의 눈치를 살살봤다.


"설마... 정말 화났어?"


"흥! 얼른 드시고 업무나 계~속 하시지요."


사실 페로도 이미 이런 장난엔 익숙해 져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리리스를 제외하고 컴패니언 자매들 중에선

가장 오랜시간을 사령관의 경호와 비서 업무를 맡아온 그녀였다. 하지만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 이랄까.

그녀는 속마음과 겉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이 조금은 다를 때가 자주 있었다.


페로는 사령관의 장난에 화가 났다기 보다는 일종의 어리광을 부리는 중이었다.

업무에만 메달려 바쁜 사령관은 요즘 한동안 페로와 다과회를 갖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소소한 삐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암묵적으로 그들은 항상 주말에 2~3회는 시간을 내어 가볍게 피크닉을 가거나 다과회를 열고는 했지만 

요 며칠 바빴던 사령관이 잊은건지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것인지 페로와 업무상의 마주침을 제외하곤

그녀와 만나지 않았던 것이다.


"미안해, 페로. 내가 잘못했어~"


"흥, 계속 늦장 부리시면 오늘도 새벽 늦게 잠자리에 드실겁니다."


"윽..! 아, 아무튼 미안해! 빨리 업무 봐야겠네~"


사령관도 페로가 단단히 삐진 것 같자 그녀의 눈치를 살살 보며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가 모니터에

눈길을 돌렸다. 페로가 한번 삐지면 적어도 하루는 지나야 풀렸기에 지금으로선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피하고 싶은 사령관 이었다.


'하아.. 나도 모르게 짜증내고 말았어...'


사령관이 쩔쩔메며 눈치를 보다가 업무에 복귀하자 페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솔직하지 못했다. 어른스럽지 못했다. 이래서야 컴패니언의 맏언니 리리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차녀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다.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주인에게 화풀이 하고 말았다.


페로는 잔뜩 풀이죽어 후회 하면서도 다시 사령관의 맞은편 자리에 마련된 부관석에 착석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부관 업무는 이만 다 끝났고, 남은건 경호 일정표 정도네.'


한참을 업무들과 씨름하던 페로가 찌뿌드한 몸을 풀어주며 남은 경호 일정표를 정리했다.

경호 일정표는 리리스가 거의 마무리 해 두었기에 페로는 그저 약간의 미흡한 곳이라던가

오탈자 정도를 수정하는 정도로 끝냈고 그 덕에 경호 일정표는 손쉽게 끝났다.


"후... 드디어 다 했네... 주인님? 아직도 업무를... 앗.."


슬쩍 사령실 구석에 위치한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2시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 있었다.

페로는 업무를 마무리 하며 사령관의 책상을 바라보며 말하다 가볍게 탄식했다.


"주무시려면 침실에서 주무시지..."


사령관은 깜빡 잠든 모양인지 책상에 얼굴을 붙이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앞에 놓여있는 모니터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 해 둔 휴가 계획표와 각종 명령서

그리고 경계 작전 명령서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다.


페로는 능숙한 손길로 침이 흘러나온 사령관의 입가를 자신의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아내고

그가 깨지않도록 신경쓰며 그에게 의자에 걸려있는 외투를 덮어주었다.


"음... 이건 이대로 저장하고, 나머지는 부관 컴퓨터에 전송해서 마무리 해야겠다."


페로는 가볍게 업무를 분리하고 나머지 부분들을 부관용 컴퓨터에 옮겨 모든 업무들을 마무리 지었다.


"어디보자... 통신기가.."


페로는 오르카 호 안에서 쓰이는 통신기를 집어들고 지정번호 1번을 눌렀다.

지정번호 1번이 배틀메이드, 2번이 컴패니언 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질투가 났지만

이내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 기분을 고이 접었다.


"네, 주인님. 금일 당직 메이드 콘스탄챠 입니다."


"콘스탄챠 씨. 오늘 부관겸 호위인 페로입니다."


"앗, 죄송해요! 페로 양."


"아닙니다. 주인님께서 업무를 보시다 잠드셔서... 침실로 옮겨야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가볍게 통화를 끝낸 페로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사령실의 뒷정리를 시작했다. 한번 잠들면 정말 죽은 듯

자는 사령관이기에 어지간 해서는 깨지 않았다. 심지어 업어다 옮겨놔도 모르고 자는 경우도 자주 있었고

그 때문에 초창기엔 휩노스 병이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다행히 휩노스 병은 아니었다.


그저 진짜 한 번 잠들면 정말로 잘 깨어나지 못할 뿐 이라는 사실을 닥터에게 들어서 알았을때는

페로 스스로도 엄청 황당해 할 정도였으니까.


"으음... 미안... 페로... 용서해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란 페로가 사령관을 쳐다보았지만 그저 잠꼬대 였을 뿐이었다.

그는 아까전 일이 어지간히 미안했는지 잠꼬대로 페로에게 사과를 할 정도였다.


"푸훗! 괜찮아요. 주인님. 저 화 안났어요. 그저 바쁜 주인님께 약간의 어리광을 부렸을 뿐...

전 언제 어느때나 항살 주인님의 충실한 벗이랍니다."


페로는 그렇게 대답하며 사령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그의 볼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어딘가 믿음직 스럽지 못하고 이렇게 칠칠맞지 못한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항상 자신들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일할 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하고 진중한 모습의 주인님.

가끔씩 짓궂은 장난도 치고 음흉한 변태같은 모습도 보이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을 배푸는 주인님.

그런 사령관의 모습을 페로는 사랑하게 된 것이리라.


"사랑해요. 주인님. 항상 감사해요.."


"흠, 흠!"


"히야앗! 오, 오셨나요?"


갑작스러운 헛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란 페로가 사령실의 문쪽을 바라보자 콘스탄챠가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콘스탄챠는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능숙하게 사령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를 들처 업었다.


"그, 그럼 가시죠."


페로는 당황하지 않은 척 그런 콘스탄챠 옆에 서서 따라왔지만 결국 웃음을 참지못한 콘스탄챠가

페로를 향해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런 사랑고백은 직접 하시는 편이 좋을거 같아요. 주인님께서도 정말 좋아하실 거랍니다."


"으아아아!!"


그녀의 말에 페로는 기겁하며 콘스탄챠의 입을 틀어막고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어, 어디까지.. 아니 어디서 부터 보셨나요.."


"그저 바쁜 주인님께 어리광을 부렸..."


"꺄아아악!!"


결국 다 봤다는 소리다. 페로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버렸다. 자신이 열심히 구축해 둔

도도하고 완벽한 비서라는 캐릭터가 여실히 박살나는 것 같았다.

콘스탄챠는 그런 페로를 보며 킥킥 거리면서 침실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께요."


"꼭... 꼭, 비밀로 해주세요... 특히 주인님껜... 진짜.. 진심으로 부탁드려요..."


"제가 입은 정말 무거운 편이랍니다."


콘스탄챠는 귀여운 동생을 보는듯 한 표정으로 페로를 향해 말했다.


'정말, 손 많이 가는 귀여운 여동생을 둔 느낌이네요. 리리스 씨가 부러울 정도에요.'


도도한 척 하지만 한 편으론 잔뜩 어리광 부리고 싶어하는 모습이 꼭 고양이를 박아놓은 느낌이었다.

아니, 고양이 유전자가 섞여 있으니 반쯤은 진짜 고양이가 맞나?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면서 콘스탄챠는 페로와 이것저것 이야기 하며 사령관을 침실로 모셔갔다.

그런 모습들이 눈 앞에 이 도도한 흰 고양이가 주인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도 이건 진짜라구요. 내일 주인님께서 일어나시면 꼭 직접 표현해 보세요.

정말로 행복해 하실거랍니다."


"그.. 그럴까요?"


그녀들의 대화를 들은 것일까. 사령관이 콘스탄챠의 등에 업혀 가면서 또 잠꼬대를 했다.


"히히.... 콘챠 엉덩이가 너무 이뻐.."


"흥! 주인님께선 콘스탄챠 씨의 엉덩이를 더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하하하..."


갑작스러운 사령관의 고백에 콘스탄챠가 어색한 듯 미소지었다.

하지만 퉁명스러운 어투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령관을 쏘아보던 페로의 표정이

이내 부드럽게 풀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래서 먼저 반한 쪽이 손해라고 하나봐요."


그런 주인님이기에 아마 페로의 마음을 얻지 않았을까.

도도한 흰 고양이의 가슴 한 켠에 뭉글뭉글하고 따뜻한 감정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