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악, 그리고 여자. 어딘지 모르게 외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세 단어야말로 금시의 상황을 요약하기에 가장 알맞은 것들이리라. 

 

“뮤즈, 있어?”

 

노크와 함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방안에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사령관은 한 손에는 캔맥주 여러 병을 든 채로 다른 손은 금속으로 된 문손잡이를 당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문을 열었다가는 눈 앞에 펼쳐질 뮤즈의 민낯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음침하고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떠올리며 참아낼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 이제 들어오셔도, 돼요.”

 

평소에 쓰지도 않던 몸을 얼마나 움직였는지, 문틈으로 빼꼼 내민 뮤즈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가도, 사령관의 손에 들린 봉투를 보자 화색이 도는 것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어렴풋이 암시해주는 것 같았다.

 

그가 굳이 이곳을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뮤즈의 초대 때문이었다. 들려줄 노래가 있다고 했는데... 아무튼, 뮤즈의 부탁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업무를 마치자마자 벅찬 발걸음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지만... 편하게 계세요.”

 

듣기만 해도 축 처지는 목소리에서 그런 아름다운 음색이 나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별일을 다 겪어본 사령관이라지만 노래할 때와 평소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뮤즈의 갭은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사령관은 뮤즈의 안내에 따라 새하얀 매트가 깔린 바닥에 앉아 들고 있던 봉지를 그 옆에 내려두었다. 바닥이 이렇게 하야면 청소하기 힘들 텐데... 정돈되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위생 상태만큼은 일품이었다.

 

온통 검은색. 뮤즈의 방은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한 하얀 바닥과는 달리 벽지부터 인테리어까지 전부 까만색이었다. 어둠을 가르는 칼날처럼 벽지에 하얀 선들이 그어지지 않았더라면 불이 켜져 있는 것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앞에 놓인 둥근 간이 식탁조차 검은색이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묘한 분위기. 마치 뮤즈의 내면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 꿰뚫어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식탁 앞에 앉아 주위를 살피던 사령관은 절로 웃음이 났다. 아무리 봐도 급하게 치운 흔적이 남은 상자와 서랍 때문이었다. 대체 저곳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판도라의 상자를 눈앞에 둔 여인처럼, 그는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도덕성 사이에서 시험받았다. 뭐가 들었는지 물어보기라도 할까, 하는 생각까지 다다랐을 때 뮤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프로듀서, 그, 아. 그렇지... 음악, 들려드리려고... 불렀는데. 조금... 부끄러워서... 헤헤...”

 

“에이, 괜찮아. 뮤즈가 그랬잖아. 마음만 담겨 있으면 되지. 부담 갖지 말고 들려줘.”

 

“으으... 그렇게, 말씀하시면... 네. 그럼... 들려드릴... 까요...?”

 

“응. 아까 뮤즈가 연락했을 때부터 기대하고 있었어.”

 

“기대하시면... 안돼는데... 일단, 재생할게요.”

 

뮤즈는 떨리는 손으로 헤드셋을 끼더니 마우스를 이용해 컴퓨터를 잠시 조작하더니 수상쩍은 이름의 파일을 클릭했다. 일이 잘못된 것일까? 안색이 사색이 된 그녀가 문득 짧은 단말마를 내뱉더니...

 

‘아앙! 하앗... 하앙! 프로듀서! 흐응... 아앙! 앙!’

 

“...”

“...”

 

사령관은 그만 고개를 숙였다. 뮤즈도 마찬가지였다. 깜짝 놀라 손을 써봤지만, 긴장한 나머지 영상을 끄기는커녕 볼륨만 올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적나라하게 들리던 소리가 더 적나라하게... 퍽... 퍽... 퍽... 

 

‘하아... 사랑해요... 하악... 프로듀서...!’

 

대략 10초 정도 재생됐을 뿐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마치 영겁처럼 긴 시간이었다. 숨 막히는 1초가 10번이나 흐르는 동안 뮤즈는 농익은 토마토로 만든 케첩처럼 흐물흐물 빨갛게 녹아내리고 말았다.

 

“저기, 프로듀서! 이건...!”

 

화면에서 적나라하게 교성을 질러대던 여자는 뮤즈 자신이었다. 물론 그녀의 성기를 망가뜨릴 기세로 허리를 흔들던 남자는 사령관이었고. 며칠 전의 정사를 그 주인공들끼리 고스란히 시청한 꼴이 되어버리자 뮤즈는 생전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 분위기 어떻게 하지...? 뮤즈가 그런 눈빛을 보내왔다.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사령관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니,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 한 잔 할래?”

 

별수 있나. 이럴 때는 술이 최고지. 사령관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맥주캔을 땄다. 치익- 시원하게 방안을 울리는 탄산 소리가 아까의 기억을 담아 함께 기화되었다.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던 뮤즈는 아직 상기된 뺨을 톡톡 두드리며 의자에서 내려와 앉았다.

 

“아까 일은, 잊어주세요...”

 

“그것보다 더한 것도 많이 봤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

 

기화된 이산화탄소가 솔솔 올라오는 캔을 건네자 뮤즈는 아까의 일을 잊으려는 듯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순식간에 한 캔을 다 비우자 조금 진정된 듯했다.

 

“그런데, 원래 들려주려던 노래는 대체 뭐였어?”

 

“아, 그거요...? 음, 피아노 솔로 기반의 잔잔한 클래식 곡인데... 아직은 전주밖에, 없어서요...”

 

“좋네. 마침 방 분위기랑 잘 맞을 것 같은데? 들으면서 마시자. 자, 안주도 먹어봐. 아~”

 

뮤즈는 움찔거리다가 고개를 내밀어 손에 들린 육포를 받아먹었다. 산발인 하얀 머리카락 틈으로 비친 연보라색 눈과 마주치자 정말 삽살개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물오물 잘도 씹어 삼키는 것이 묘하게 귀여웠다.

 

금방 입안의 것을 꿀꺽 삼킨 뮤즈는 부탁대로 컴퓨터로 가 바로 아래에 있던 악마의 영상을 다시 틀지 않도록 심기일전해서 본래의 목표였던 음악을 재생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이번에야말로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이 깔리기 시작했다.

 

고요하기만 했던 방에 아름다운 음이 공기를 진동시키자 어두컴컴하지만 기품있는 방의 분위기와 맞물려 마치 음습한 골목길 단골 바에 온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오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는 사령관만의 바 말이다.

 

“와, 진짜 감탄만 나온다. 빨리 완성되면 좋겠네.”

 

단전에서 우러나온 감탄이었다. 높게 깔리는 음색, 그러나 가볍지는 않은 웅장한 파노라마가 고막을 울렸다. 신명나게 울리는 음으로 이렇게나 무게감 있는 음악을 만들다니. 그는 압도적인 재능을 몸소 체감하며 떨었다.

 

전주라고는 해도, 클래식의 일부인 만큼 음악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동안 사령관은 꽤 도수가 높은 맥주만 골라 들이키며 거나하게 취해갔다. 안주를 집어 먹는 것도 잊은 채로 술만 마시니, 아무리 술에 강한 그라도 금방 술기운에 찌드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반면 그녀는 음악을 듣는 내내 달궈진 돌바닥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취기가 올라와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사령관도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음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사령관 혼자 잔을 든 지 몇 분이나 지나갔을까. 피아노가 가장 높은 음 주변에서 맴돌며 한참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탓에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음악은 끊기고 말았다. 그러자 뮤즈는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 역시 폐기해야겠어요.”

 

분위기가 사뭇 가라앉았다. 사령관은 잔뜩 취한 듯, 상기된 채 맥주캔을 쾅 내려놓았다. 약간 남아있던 내용물이 출렁이며 바깥으로 튀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그가 되물었다.

 

“흐흣... 내가 듣기에는 좋은데에? 이 아까운 걸 왜...”

 

“마음에 안 들어요. 음은 중구난방에 독창성도 없고, 무엇보다... 제가 어떤 음악을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히끅...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네. 사령관님께... 들려드리려고 했던 건데... 이런 질 나쁜 노래를 들려드릴 수는...”

 

“... 넌 왜 노래를 만들어?”

 

“그야... 사령관님이, 제 노래를 듣고 즐거워했으면... 해서요...”

 

“하아... 그러면... 응? 된 거 아니야? 나느은... 충분히 기분 조았는데에...”

 

“으...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제 능력에 대한 신뢰가 도저히... 서질 않아요... 저는 사령관님만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사령관님께서 질 나쁜 노랠 듣고 절 미워하게 되시지는 않을까...”

 

“... 야.”

 

“ㄴ, 네?”

 

뮤즈는 등골에 오싹한 한기가 타고 흐름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뭔가 잘못됐다. 사령관의 눈빛은 전에 없이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너 내가 조아하는 거 몰라?”

 

“그, 그럴리가요...!”

 

“근데 왜!”

 

“힉...”

 

“응? 이런 씻빨... 너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했는데... 내 맘도 모르고... 에라이 염병, 다 부질없어! 여자 마음 하나 못 잡는 병신 같은 놈. 이딴 걸 사령관이라고...”

 

“프로듀서,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책상을 쾅 내려치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히익...!”

 

“하... 씨발련...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그래, 잘됐다. 지금 증명해줄게.”

 

이미 이성의 끈을 놓은 남자는 지체 없이 벌떡 일어나 잔뜩 겁먹은 뮤즈에게 향했다.

 

“프로듀서... 이러지 마세요...”

 

“벗어.”

 

“네?”

 

“벗으라고 시발. 싫냐?”

 

“읏...”

 

분명히 두려워야 할 상황 속,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그녀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할 음침한 생각이 스쳤다. 마치 자신이 관능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나는 이제부터 술에 취한 저 남자에게 범해진다. 사랑하는 남자가 이성을 잃은 채로 나를 범한다. 그런 유혹들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벗을, 게요...”

 

벽지처럼 까맣고 늘어날 대로 늘어난 헐렁한 웃옷을 벗자 그 안에서도 존재감을 숨기지 못했던 칠칠치 못한 살덩이가 무겁게 늘어졌다. 뮤즈는 묘한 흥분에 둘러싸여 시선을 피했다. 남자와의 동침에 대비해 입어둔 승부 속옷이 가슴 아래에서 하늘거렸다.

 

“음탕한 년. 처음부터 따먹힐 생각밖에 없었구나?”

“...”

 

검은 레이스에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가 수 놓인 그것을 뮤즈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붉히며 가렸다. 군살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은 뱃살이 그 아래에서 반들반들 빛나며 눈길을 끌었다. 

 

머리카락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는 분명 기대에 차 있었다. 이런 강압적인 상황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즐기는 꼴이었다.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힐끗힐끗 눈빛을 보내며 자신이 도구처럼 다뤄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남자는 뮤즈의 팔을 잡아 일으켜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어린애 같은 작은 비명을 지르며 중앙에 안착한 그녀는 이제 헐떡대며 안광을 밝혀대고 있었다. 익히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술에 취한 그는...

 

“벌려.”

 

평소에 알던 그가 아니라는 것을.

 

“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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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술마시고 강압적으로 나가면 무서워하면서도

정작 아랫도리는 축축하게 젖으면서 히토미 풀가동할 것 같음


픽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