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먹고사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 순간, 삶과 책임이 뒤바뀌는 순간 - 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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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떨이에 꽁초를 짓누른다. 깨끗하게 비워진 게 열받아서 괜히 더 드럽게 비벼서 세운다.


 ···제아무리 간절히 바란다 한들, 여기에서 꽃이 필 수 있을까. 나는 재떨이 위에 살면서, 괜히 날아든 민달래씨같은 우연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집 안 공기가 역해서 새벽같이 밖으로 나왔다. 주일헌금으로 과자를 사 먹던 어린 날이 떠오르는 주말이었다. 왼쪽 팔꿈치 언저리와 허리가 뻐근했다. 자던 곳에서 자지 못 해서 그런 듯 했다. 그게 아니면 어젯밤 오랜만에 무리해서. 



 인부들이 많이 찾는 밥집에 들어가서 싸구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켰다. 설탕에 절이듯 담근 김치와 깍두기가 달다 못해 써서 도무지 입에 맞지를 않았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구석에서 외마디 외치고 있었다. 병 입구가 마른 것을 보아, 어제부터 마시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언제 교체될 지 몰라, 같은 결론 없는 언쟁. 멍청해. 대답 없는 질문은 하지도 말아야 하는 법이다. 내가 바이오로이드를 집 안에다 들였다는 것을 저들이 알았다면, 취한 그들이 내게 돌팔매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톱니바퀴와 인간의 갈등은 극에 달해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밥그릇을 비우고 문을 나섰다. 



 죽을 힘을 다해서 꿈꾸는 거리는 몇 달째 락카칠로 화약내가 진동했고, 단어들은 하나같이 헛된 희망을 부르짖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서로 다르게 했을까. 길거리에서 불운을 덥석 주워 집에 들인 나조차도, 벌써 그들과는 길을 달리하고 있었다. 있고 없고는 속내를 부대끼게 했다. 소화하지 못하고, 모두 토해내게 했다. 다만 구석탱이에 숨어서 울컥울컥 소리를 죽여서 내었다.



 이제와서 기계들이 없어진들 어떡하라는 말이냐. 난 그녀에게서 기계 이상의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저 바보들이 틀렸다고 증명해줘, 라는 둥 이슬맺는 새벽 찬공기에 취해서. 이런 아침에 눈을 뜬다면 가끔 그들처럼 헛되게 꿈을 꿀 법도 하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개새끼들. 



 다녀왔어.


 네.


 ...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너 먹고 싶으면 해. 난 먹고 왔어.


 아..


 미안,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야. 눈이 일찍 떠져서 허기졌어.


 ..네


 ...


 ...


 안먹어?


 네.


 알겠어.


 네.


 ...


 ...


 어제는 미안했어. 내가 너무 멋대로 굴었지.


 !


 그냥, 속이 꼬여서 어쩔 줄 모르다가. 운 나쁘게 너한테 그걸 다 풀어버린 거 같아. 그러면 안 됐는데. 너도 나름대로 나를 생각해줘서 가만히 말을 들어줬던 거겠지. 고마워. 


 저는.. 좋았어요. 주인님.


 ...내가 왜 주인님이야? 


 ...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면 그만 둬. 비록 말을 심하게 했지만, 내가 아닌 말은 하지 않았어. 그렇게 주인이 되는 건 싫어. 그런 시선으로 날 거들어 주는 건 싫어. 난 나를 맹목적으로 보듬어주고, 그로인해 자신의 삶을 꺾는 데 신물이 난 사람이야. 그게 싫어서 이렇게 단칸방으로 도망쳐온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 죽을 때도 도망친 사람이고 떠날 때도 외면한 사람이야. 심지어 나와 내 엄마를 버린 아버지처럼 무책임하게 그녀들을 떠난 나 자신이 너무나 싫어서 매일 죽어버릴까 고민하는 사람이야. 


 그만 !


 ...


 그만.. 



 고개를 들자 그녀는 왕방울만한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치맛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움츠러든 다리가 떨고 있었다. 입술을 옹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상처내는 건 그만둬주세요.. 


 왜. 너가 뭔데. 너가 날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는데. 너가 내 삶에 대해서 뭘 아는데.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당신이 그러고 있는 모습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어요. 왜 내 마음을 몰라요? 날 똑바로 봐 준 사람은 당신밖에 없는데. 나에게 대화다운 대화를 건넨 사람도 당신밖에 없는데. 당신을 섬기고 싶어지고, 당신에게 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한테 그런 눈으로 시선을 건네는 사람도 당신밖에 없었어. 당신은 언제나 나를 물건 보듯이 투명하게 바라봤지. 근데 그건 당신이 나를 물건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야. 당신 안에 상실된 무언가가 모든 걸 박살내서 똑바로 볼 수가 없는거야. 아니에요?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제발 그 이상 떠들지 말아줘.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시끄러워 졌으니까. 잠깐만, 내게 잠깐만 시간을 줘. 이대로면 네 몸을 부숴버리고 말 거야. 


 ...좋아요



 방 안에는 따갑도록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했다. 아무것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인데. 다시 누군가를 죽인다면 나는 분명, 곱게 죽을 수 없다. 사람은, 한 명만 죽일 수 있고 그건 대개 자기 자신이니까. 그녀를 또 죽게 한다면. 이미 죽을 기회가 사라져버린 나는 분명 곱게 죽을 수 없다. 그 다음은 걷잡을 수 없는 낭떠러지. 아아아그다음은












 내가 한 결정이에요. 


 ...!


 주인을 섬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서. 라고 당신이 말 한다면 할 말이 없어요. 다만, 누구를 섬길 지는 내가 고른 거에요. 그거 알아요? 나는 애초부터 망가져 있었다는 거. 애초부터 삶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는 거. 삶의 이유가 사라졌다면 다시 찾으면 되는 거에요. 나는 당신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았어. 그러니까, 이렇게 명령하지 않아도 당신을 껴안을 수 있는거야. 그러니 이제는 혼자서 아파하지 말고 나와 같이 아파해요. 덜 아파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같이 표정을 찡그리는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바닐라.


 네? 주인님.


 나 지금 너에게 넣고 싶어서 미치겠어.


 ..벗을게요


 그런 말까지 했어 넌. 날 책임져 주지 않으면 난..


 

 그녀는 내 입을 막아왔다. 갑작스럽게 코 앞으로 다가온 눈망울에는 행복이 서려 있었다. 양팔 양다리로 끌어안아 왔다. 도망치지 못하게. 다른 짓 못 하게. 나를 속박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혀를 섞기 위한 키스만을 하던 애어른같던 나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녀의 입술에 땡깡을 부렸다. 아이같이 들러붙어서 살결을 핥았다. 그녀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녀 또한 그러했다. 



 생명의 샘. 대학교를 뛰쳐 나와서 막일을 해도, 내 방 안에서 먼지를 걷어내는 너는 아무래도 너무 어려. 네가 낡아빠져서 바스라질 때까지도 나는 뜬눈인 채 담배를 태운다. 약속이란 건 대개 그런 느낌이니까. 약속보다도 더한 걸 네게 주겠다. 약속보다도 질척이는 걸 네게 주겠다. 그러니 내게 안겨. 부드럽게. 샘 안으로 들어가게 해줘. 



 네 안에 영원히 있게 해줘. 내 품에서 영원히 헐떡여 줘. 내 방에서 영원히 침 흘려 줘. 내게 들려서 영원히 신음해 줘. 내게 잡혀서 영원히 눈물지어 줘. 가끔은 너무 사랑스럽기는 해도, 날 닮은 네가 헐떡이는 걸 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유리창을 깨버릴 것 같으니까. 금방이라도 담뱃불을 흘려버릴 것 같으니까. 담뱃재에 꽃을 심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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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











 저도요. 주인님.
















 이제진도느려진당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