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누구나 어렸을 때 거창한 장래희망 하나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반지의 제왕」같은 장엄한 세계관을 가진 판타지 소설을 써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고.


하지만 누구나 그런 대작을 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소설을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중학교 때 독후감대회에서 장려상 상장 한 장 못 받았을 때? 고등학교 때 교내 소설대회 수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을 때? 웹소설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 처음으로 올린 단편소설이 욕을 먹었을 때?


그 사실을 깨달은 계기는 많았건만, 나는 글 쓰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언젠가는 뜰 것이다. 아직 쓰고 싶은 것이 많다. 내 욕망을 표현하고 싶다. 그런 이유들을 마음에 품고,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저, 사령관. 보고 싶어서 본 것이 아니에요. 그냥 컴퓨터가 켜져 있어서......."


문제는 그 글이 팬텀 돌림빵 야설이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


변명같지만 팬텀 야설을 쓴 계기는 이랬다.


웹소설 공모전에서 떨어진 데다 연재작까지 거하게 욕을 먹어 상처받은 나는 우연히 라스트오리진 채널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팬텀과 그 후배 레이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선배 선배' 소설을 본 내가 팬텀을 좋아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렇게 라스트오리진 전 지역을 클리어했을 때, 나는 팬텀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팬텀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구도 한 몫 했겠지만, 챈의 창작물 대부분이 개념글에 간 것을 보고 내가 쓴 소설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조그마한 희망이 창작욕에 불을 지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야설을 쓴 것은 아니었다. 팬텀이 마법소녀가 되거나, 후배인 레이스와 오르카호에서 유행하는 소설을 읽거나, 스카이나이츠의 뒤를 이은 아이돌이 되어 무대에 서는 내용의 극히 건전한 내용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쓴 라스트오리진 야설이 베스트 라이브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야설을 쓰면 더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겠다 싶어서 팬텀 야설을 쓰기로 했고, 팬텀이 암살자라는 것을 떠올리니 암살을 실패해서 험한 꼴을 보는 그녀가 보고 싶었을 뿐이고......


"사령관, 괜찮습니까? 식은땀이 흐르고 있어요."

"어? 응, 나는 괜찮아."


여러가지 변명이 머릿속을 생각나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설 내용은 명령만 하시면 잊겠습니다."

"아니야! 그렇게까진 하지 않아도 돼."


솔직히 저런 저급한 야설 따위는 잊어줬으면 좋겠지만 팬텀에게 명령권까지 사용하면서 잊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는 팬텀을 팔을 뒤로 돌려서 구속하고, 젖지도 않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물건을 박아 넣었다. 


"아읏!"


뻑뻑한 보지에 바로 좆이 들어와, 팬텀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처녀막이 찢어져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나오자, 군인들은 열광했다.


"대장, 이년 처녀인데요?"

"못 따먹은 새끼들이 병신이지. 씨발, 저거 보지나 좀 벌려 봐."


그녀의 울음이 목에서 올라오기도 전에, 그녀를 잡은 군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팬텀의 입에 자지를 들이댔다. 나이를 꽤 먹어 조루였던 대장은 그녀의 입에 자지를 물리자마자 사정하고 말았다. 그게 짜증났는지, 그가 팬텀의 뺨을 세게 때렸다.


"이런 젠장!"


팬텀의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그 피와 대장의 백탁액이 섞인 액체가, 그녀의 입가에서 부그르르 끓어올랐다. 그 모습이 야릇해 보였는지, 대장은 그 액체를 설태가 잔뜩 낀 혀로 핥고 바로 팬텀의 입술을 탐했다.


츄르릅, 츄르릇.


양손으로 팬텀의 얼굴을 쥔 대장이 정신없이 팬텀의 입천장을 핥아댔다. 대장의 입냄새를 맡는 것도 고통스럽건만, 뒤에서는 건장한 군인들이 그녀의 엉덩이에 자기 물건을 박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저 장면일까. 뒤늦게 나타난 남주인공(곧 오르카호의 사령관이 될 인물이다)이 그녀를 구하는 장면도 있고, 사랑을 속삭이며 키스하는 장면도 있을텐데. 그 소설의 주인공인 팬텀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죄책감과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사령관. 저런 취급은 마키나 씨의 낙원에서 사령관에게 폭력을 가했을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니,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아니고......"


나는 손사래를 쳐가며 해명했지만 팬텀은 얼굴을 붉히며 가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슬쩍 내렸다. 그제야 팬텀이 알몸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옷장에서 그나마 깔끔한 티셔츠를 꺼내 팬텀에게 건넸다.


"맹세하건대 절대 너한테 저 소설에서처럼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거야. 레이스가 나한테 너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러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네가 상상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가 장담하자, 팬텀이 배시시 웃어 보였다. 팬텀의 미소에 마음이 조금 풀린 나는 그녀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약속. 절대 너를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미야."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것을 모르는 듯, 팬텀이 물었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접어 약속 손을 만들어 주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사령관."

"하하, 감사할 것 까지는."


팬텀이 소중한 것을 감싸쥐듯 부드럽게 자기 손을 감쌌다. 그런 팬텀이 귀여워 보여서, 나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키스해 주었다. 


"그러니까 저 소설에 대한 건 생각하지 마."

"그렇다면 혹시 사령관이 쓴 다른 소설도 있나요? 사실 좀 더 읽고 싶었는데, 사령관이 안된다고 하셨으니......"

"다른 소설?"


내가 쓴 다른 소설이 있냐고 묻는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하긴 내가 야설만 쓴 것은 아니니까. 그나마 보여줄 만한 소설이 몇 가지 있는데. 뭘 보여주면 좋아할까?


1. 씹덕향 풀풀나는 마법소녀 소설

2. 연재하다가 욕먹고 내린 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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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이 너무 길어졌네. 그래도 꼭 완결은 낼 거임.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