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 년을 주인님께서 직접 만나시겠다고 하면 우습게 볼 게 뻔하다고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각하.

이런 일에 대한 명백한 사후 처리가 없다면, 다른 부대원들도 반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헌데 처벌은커녕 만나시겠다니요. 이건 각하께서 직접 하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이 일은 레오나 지휘관을 봐서라도 어물쩡 넘어가서는 안 된다. 사령관.

괜히 어리석게 봐주고 넘어갔다가는 그대의 평판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물론 그대가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다만 우리도 걱정이 될 뿐이라네. 우리 마음도 좀 헤아려 줄 수는 없는 건가?”

 




“(… … 머리 아파…)”

 

 



 

레오나를 뺀 남은 네 팀의 대장인 리리스, 마리, 칸, 아스널을 불러 회의실로 불렀다. 당연히 발할라 전원의 처리에 관한 문제였으니 다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회의실로 달려 왔다. 처음에는 내 말에 동의를 해주는 척 하더니, 내가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니 이러고 있다. 




 

 

“그래도 다들 이제 그만 해주면 안 될까?

내가 발키리를 풀어준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잖아?”

 

“풀어주는 것이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엄밀히 생각해보면 각하께서는 피해자 신분이십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나게 하는 것부터가 저희에게는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마리 대장의 말이 맞다. 사령관.

그대가 우리를 아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그대를 아낀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는 것 같군.

어찌 우리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겠나.

애초에 지휘관 내부에서 결정을 내리기로 합의한 것을 말이다.”

 

“…? 너희들이? 왜?”

 

“각하.”

 

 

갑자기 마리가 끼어들었다.

 

 

“한 가지 여쭤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응.”

 

“각하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실 계획이십니까?”

 

“... 처리라니. 난 중재를 하고 싶을 뿐이야.

지금 분위기를 보니까 한 바탕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잖아.”

 

‘그럼 발키리 부관에 대한 형벌은 무엇으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벌?”

 


 

마리가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벌이라. 아직도 나는 내가 이 아이들에게 벌을 내린다는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냥 좋은 애들인데 어떻게 벌을 내릴 수 있겠나. 무엇보다도, 난 이 아이들이 여전히 환자로 보인다. 극도로 불안정한 환자들. 어떤 벌을 내리겠다는 명확한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건… …”

 

“… 각하.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일은 엄연히 반역이고, 반란입니다.

그것도 일개 병사 한 명이 정체불명의 방식으로 사령관 전용 통신 서버를 해킹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우발적인 행위가 아닌 계획적인, 그것도 어떠한 방식을 이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중도한 범죄란 말입니다.

이걸 그냥 넘어가면 그것은 각하를 따르는 수많은 자매들을 욕보이는 행위입니다.”

 

“알아, 안다고.

… 나도 그냥 넘어가겠다는 건 아니었다고.”

 

“그러시면서 어떤 벌을 내리실지는 생각해보신 적이 없다는 말입니까?

각하께서 이 회의실에 오시고 나서 처벌이란 단어를 단 한 번도 말씀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 ...

나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떻게 처벌을 하실 생각이신지.”

 

“… …”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표정으로 마리는 나를 쏘아 붙였다. 그 막사에서 같이 웃고 떠들던 마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서슬 퍼런 눈빛이었다. 무엇이든 생각을 해야 했다. 실제로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처벌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충 싸우지만 않게 중재할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지금 여기에서 말하기에는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머리를 최대한 빨리 돌려봤다. 무슨 형벌이 제일 적당할지.

 

 



“… 며칠 근신 처리를 하면…”

 

“너무 약합니다.”

 

“아니면 탐색을 특정 시간 만큼 하게 한다면…”

 

“애들 장난도 아니고, 각하를 노린 범죄가 고작 그 정도로 끝날 일이라 보십니까?”


"... ... 이왕 할 거 그런 거라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각하께 직접 위해를 가한 일입니다.

봉사 따위로 어설프게 도움을 받는 것보다 확실하게 처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

… 그럼 너희 생각은 어떤데.”

 

“죄질에 따라 감금부터 시작해 추방까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쾅!!


갑자기 리리스가 책상을 내려찍으면서 우리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주인님을 노렸는데 고작 추방이 말이 되나요! 마리 대장!

적어도 팔 다리 하나는 날려야 앞뒤가 맞지 않나요!!”

 

 

리리스가 불쑥 튀어나와 소리를 쳤다. 이쪽 눈빛도 여간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아직 지휘관 내부에서도 발키리에 대한 논의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심하다 생각하지 않나? 경호대장?

지금 레오나 지휘관의 몸이 그런 상황인데, 부관까지 똑같은 꼴로 만들 생각인가?”

 

 

칸이 끼어들었다.

 

 

“심하다니! 주인님은 이 오르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아니, 이 망해버린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시죠!

그런 주인님을 분수도 모르고 노린 년을 어떻게 사지 멀쩡하게 보낼 수 있죠?!”

 

“그럼 사형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가?”

 

“당연하죠!”

 

“후우… 경호대장이 고집불통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하, 제가 고집불통이라고요?

왜, 초범이니 봐주기라도 해야 한다 말씀하실 생각인가요?

아니면, 옛날에 고생한 것을 봐서라도 정상참작을 해 줘야 하는 건가요?

누가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죠?

호드는 지휘 체계도 없으니 주인님께서 이런 일을 당하고도 아무 렇지 않은 것이 당연한 모양이죠?!!”

 

"... 내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오."


"아니!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일 것이지, 말로는 누가 그런 말을 못하겠나요?!!

그 발할라 년도 말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 발할라 내부 상황을 한 번이라도 헤어려 보시오, 경호대장

이 일은 발키리 부관, 개인에 대한 처벌로 끝날 일이지, 발할라 전원에게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일이오.

다리를 잘라버리는 게 그녀들에게 무슨 뜻인지 경호대장도 잘 알거라 생각한다만."


"하! 대장년이 그 모양이니 부관도 그 모양이겠지!!

이 참에 발할라 전원에게 경고를 해야겠죠!!

감히 주인님께 반항하는 것들에게 어떤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지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단 말입니다!!"


"경호대장!!"



칸이 소리를 높였다. 되려 그 소리에 내가 놀라버렸지만 리리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주인에 대한 충성이란 명분 앞에서 리리스는 손 쉽게 선을 넘어버린다.



"왜요!! 소리치면 내가 겁이라도 낼 것 같나요??!

내가 볼 때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건 칸 대장뿐인 것 같군요!!

하긴, 평소에 레오나 지휘관이랑 친했으니..."


"리리스!!!!"



내가 소리쳤다. 





"...

... ?!

... ... ㄴ... 네에...?"



리리스가 몸을 벌벌 떨며 나를 돌아보았다. 칸의 호통에도 아무렇지 않던 리리스는 내 목소리에만큼은 부모 앞의 아이처럼 순수해진다. 내가 대단해서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걸 보는 건 오히려 꽤나 씁쓸한 일이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까먹었니?

너희들 싸우는 걸 보려고 왔을까? 내가?"


"그...

...

...

... ... 아... 아닙니다..."


"발할라 애들은 우리 애들 아니야?

지금 내가 그런 보여주기 식 처형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 하지만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


"이런 거? 이런 게 뭔데?

다리 한 쪽 잘라서 레오나랑 똑같이 만드는 거?

지금 나보고 그 개새끼가 한 짓이랑 똑같은 짓을 하라고 종용하는 건가?"


"... ..."


"처벌? 처벌은 좋다 이거야.

근데 왜 내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하고 싶진 않은 지 아직도 모르겠니?"


"... 죄... 죄송합니다..."



바람 앞에 등불이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는지 안다면, 지금 리리스의 모습을 보고 꼭 그 짝일 것이다라고 말했을 거다. 이런 것을 보니 내가 이 애들을 보고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나 리리스는 나에 대해서라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니 나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내가 좀 더 지혜로웠더라면 더 잘 해결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중재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나도, 리리스도 전부 미숙한 것이다.




"... ... 선 넘지 마, 리리스.

방금은 나도 불쾌했어."


"... 죄송합니다... 주인님... ..."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다. 내가 있어도 이 모양이니 내가 없었을 때는 어떤 모양이었을지 예상하기 어렵진 않겠다.




"...

...

... 말이 잠깐 옆으로 샜네.

그럼 이제 마리 얘기로 돌아가자고.

추방이라면 어디로 보낼 거야? 지금 같은 때에 추방이랑 사형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

밖에는 철충들이 바글바글하지 않아?”

 


“그래서 적당히 철충이 없는 장소를 물색하는 중입니다.

아무리 철충이 많아도 대개 밀집된 곳에 있지, 섬이라던가 다른 장소들에는 그리 많이 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철충들은 먼저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바이오로이드에게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아마 철충 부대 한 복판에 던져 놓아도 사지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은 각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추방이 적당한 거야?”

 

“죄질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겠죠.

의도적인 행위였다면 추방이 최선이겠지만,

외부의 압박에 의한 수동적인 행위였다면 죄를 경감할 수도 있을 겁니다.”

 

“... 경감한다고 하면 다른 애들이 이해해줄까?

애당초 그게 안 되니까 이렇게 일이 커진 거잖아."


"저희의 의견도 그러하다 말하면 괜찮을 겁니다."


"어떻게?"

 

“저희도 한 부대의 장으로서 그 동안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판결도 저희가 합리적인 근거를 함께 제시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부대원들도 동의해줄 겁니다.

물론 각하의 말씀보다 우선될 수는 없습니다만, 여론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각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긴 할 겁니다.

... ... 

물론... 레오나 지휘관 역시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논외로 하죠.”


"그럼 그냥 내가 발키리를 만나는 방향으로 해줄 수는 없어?"


"그것이 상이 되었으면 상이 됐지, 처벌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저희가 발품을 판다고 해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저희도 그 부분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후우… 그래, 그렇단 말이지…”

 

 

또 내가 모르는 뭔가 복잡한 사법 체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전부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애들도 싸우거나 할 텐데, 그 새끼가 그런 거에 관심을 가졌을 일도 없으니, 자기들 나름대로 판사 역할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권한만 인정해준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 추방을 선택한 이유는?”

 

“현 시점에서는 그것이 가장 강력한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사형이나, 거열형 같은 극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그런 형벌도 있어?"


"물론 그 정도의 형벌을 받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긴 이 커다란 잠수함도 나름대로 법이 있을 텐데, 그럼 저런 형벌도 있긴 하겠지.



“… 그래. 그래서 발키리에게 극형을 제외한 가장 강력한 형벌을 내리겠다는 거지?”

 

“원래라면 극형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정상 참작할 여지가 있으니 여기에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 겁니다.”

 

“판결의 기준은?”

 

"… ...”

 

 

마리는 갑자기 말을 줄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함께 내뱉은 아스널이 말꼬리를 이었다.

 

 

"… 이번 사건은 판결의 기준보다도 다른 부대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가 더 중요하다.

그대의 성품이 의심 받는 것은 아닐 지라도, 그대는 이제 사령관의 자질을 점점 갖추기 시작하는 때 아닌가?

이번 일은 사령관에 대한 도전과 같은 일이고, 이를 처리함은 좋든 싫든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겠지.”

 

"그래서 나보고 발키리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거야?”

 

“처벌은 그대의 자유다.

어떤 결정을 내릴 지도 결국 그대에게 달렸다.

하지만 우리가 이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심각한 편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편애라니, 내가 그런...”

 

"그래, 안다. 전부 다 안다.

그대가 우리들 중 특히 더 편애하는 자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나를 비롯한 여기 있는 4명 모두가 믿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이들이 볼 때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직 그대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중 단 하나라도 이 일로 그대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마음 속에 심게 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 하아...”

 

“그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지만, 이미 여기 있는 모두는 그대를 믿고 있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그것이 그대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아니지.

이 일을 알고 있는 모두가 발키리 부관에 대한 강력한 형벌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면, 모두의 믿음에 걸 맞는 형태의 행보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러면 모두들 그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겠지. 

그리고 그건 좋은 방향이 아닐 것이다.

이미 그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대는 하나의 우상이자 구원자와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 …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것도 아닌데 뭘 자꾸 기대를 하는 건데...”

 

"… 왕관을 쓰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대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왕관을 쓰고 있으니, 그 무게도 무거울 수 밖에 없지.”

 

“나도 이 일을 그냥 넘기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벌할 것인지 명확히 말하지도 않았지.”

 

"… 쩝, 그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그 무게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

이미 한 인간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아는 자들이 그대에게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본 것이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그대가 그 동안 좋은 행보를 보여준 까닭이지.”

 

"난 좋게 좋게 하면 모두가 좋을 줄 알았는데...”

 

“모두가 좋아하고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 그대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대를 공격한 자마저 품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만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있어선 안 될 일이지.

우리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 … 난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지, 이런 방향으로는 생각 안 해봤는데.”

 

“대장으로서 신뢰를 받고 있다면, 그에 보답하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니겠나?

그 위기 가운데서 우리를 믿고 따라준 수많은 부대원들이 있었기에 나도 알 수 있었지.

그대가 모르는 것도 정상이다.

그대는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아스널은 고개를 으쓱거렸다. 나를 따르는 애들이라… 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반응을 하는 줄 모르겠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별 것 아닌 일 아닌가 하는 의심만 피어 오른다. 고작 사진 몇 장 보여준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한다. 물론 아르망과 닥터가 귀에 못이 박힐 만큼 이야기해줬으니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감정은 자꾸 반발을 하는 것을 어떡하나.

 

 

 

 

"… 그래, 알았어.

... ..."


"... ..."



옆에서 계속 침울해있는 리리스가 눈에 밟혔다. 칸이 아닌 리리스만 보고 혼냈더니 아예 말도 하지 않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것을 보았다. 리리스가 잘못했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닌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나? 그러는 모습이 또 안타깝기도 해서 일부러 차분한 목소리로 리리스에게 물었다.




"리리스?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 뭘 말씀이신가요? 주인님?”

 

“극형을 빼고는 추방이 제일가는 벌이라면서?

그럼 그 다음은 뭔데?”

 

"… 아마 투옥... 이지 않을까요...?”

 

"투옥? 오르카 호에 감옥이 있나?”

 

"물론 투옥이란 형벌이 있으니, 감옥과 비슷한 곳도 많이 있죠.

그리고 잠수함이란 특성 상 벽도 굉장히 두껍고 튼튼하죠.

게다가 이렇게 정박하고 있는 지금은 벽이 조금 부숴진다고 해도 문제 되지는 않으니 감옥으로 사용하기 부족함 없는 곳이 많아요.

물론 대부분 주인님께서 오신 다음부터는 사용된 적이 없어 관리도 된 적이 없었지만요.

그래도 일부를 개조하면 감옥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할 거에요.

실제로 감옥으로 쓰였던 곳도 있으니 금방 할 수 있을 거에요.”

 

“...

... 만들면 된다라...”

 

 

누가 만들 지는 모르겠지만 감옥으로 하는 편이 오히려 나은 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내가 발키리를 범인이라 알려준 이유는 내 손을 떠나 내가 지켜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투옥 기간은 어떻게 잡지?”

 

“주인님께서는 의견이 있으신가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뭔가 기준이 있지 않아?”

 

“그 감옥을 이용했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면서 그러시나요?

기준 같은 것을 만들고 사용했을 리가 없죠.”

 

"… … 그러네.”

 

“그리고 애초에 바이오로이드의 시간 개념은 주인님과 많이 다르답니다.

오히려 싸우지 않고 투옥하게 만드는 것부터가 전장에 서는 저희들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오히려 상 아니야?”

 

 

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몇 년 투옥살이 하는 것이 삶에 대한 박탈감을 주거나 하지는 않죠.

하지만 저희에게 투옥이란 것은 주인님께 버림 받았다는 극심한 좌절을 동반하게 한답니다.

그것이 형벌의 주된 원리죠. 멸망 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긴 했어요.”

 

"… 그럼 발키리에게는 별로 적용이 안 될 것 같은데...”

 

“그것이 저희가 추방을 유력한 형벌의 후보로 선택한 이유에요.

… 리리스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또 손톱을 물어 뜯고 있다. 불안할 때마다 보이는 리리스의 습관이다. 저것도 나중에는 한 마디 해야겠다.

 

 

"… 다른 애들도 알아?”

 

“뭘 말인가요?”

 

“발키리가 나를 따르지 않는다는 거 말이야.”

 

“그야 주인님께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다 알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 그럼 이 일을 전부 다 알고 있는 애들은?”

 

"음… 전부라면 어디까지를 말씀이신가요?”

 

“발키리가 나에게 무슨 사진을 줬는지까지 다 아는 애들.”

 

“그거라면 아마 많지는 않을 거에요.

수사가 워낙 과격하게 이뤄지긴 했지만, 그 내용 자체는 비밀리에 진행이 되었어요.

발키리 부관이 뭔가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그것 전부를 일반 부대원까지 다 알고 있는 경우는 발할라를 제외하면 많지는 않겠죠.

수사를 맡은 저희 컴패니언조차 저와 몇 명을 제외하면 자세히는 모를 거에요.”

 

"… 그래, 알았어.”

 

 

모두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면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애들이 몇 안 되는 지금이라면, 투옥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 아냐, 그래도 그걸로 하자.”

 

“하지만 그걸로 하면...”

 

“그래, 형벌은 안 되겠지.

하지만 발키리가 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애들은 많지 않을 수도 있어.”

 

"… 이미 주인님께 도전을 했다는 것부터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요?”

 

"그래, 하지만 정확히 뭘 했는지는 모르는 애들이 많다고 했잖아.

만약 모두 알고 있었다면 내가 속일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당히 속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

예를 들어 외부에서 강제로 억압을 받아 이런 일을 벌였다는 식으로?”

 

“그걸로 주인님께 도전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지 않나요?”

 

“하지만 투옥으로 끝낼 수는 있겠지.

투옥 자체가 주인에게 버림 받음으로 벌이 성립한다고 했잖아?

그러면 발키리 자체는 나를 아직 따르고 있다는 분위기만 은근히 풍기면 될 거야.

발키리는 지금 어디 있지?”

 

“스틸라인 측에서 제공한 외부 구역에 격리되어 있어요.”

 

"그래, 적당하네.

그럼 대충 만든 소문이라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거야.

여기 대다수가 나를 믿어준다면서?

그러니 발키리가 나를 아직 따르고 있다는 식의 소문을 만들 때 필요하면 내 이름도 같이 팔아.

그 믿음을 좀 이용해보자고.”

 

“그대는 참 잔인한 사람이군.”

 

 

아스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잔인한 놈이 되면 되지.

근데 네 팀이 집단으로 가서 한 때 동료였던 한 팀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덜 잔인한 일 아니겠어?”

 


"주인님, 저희는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맞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없겠지.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고 있잖아?

괴롭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그 명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 그래, 그대 말이 맞다.”

 

“그러니 난 그 명분만 없애면 될 거야.

적당히 처벌을 했다고 하면 그걸로 불만을 가질 애들은 없을 거고,

처벌도 합리적이라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과열된 분위기도 점점 사그라 들겠지.

필요하다면 내가 광대 노릇 좀 해볼 수도 있지 않겠어? 애들 관심을 딴 데로 돌려야지.

그리고 투옥은 화가 난 대다수와 발키리를 분리시킬 방법이 될 거야.

만나면 싸울 수 밖에 없는 지금 상황에서 제일 효과적인 수단 같은데, 어때?”

 

"… 오히려 대중들을 이용하겠다?

그대다운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사령관?”

 

 

칸이 내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의도는 선하잖아. 좀 봐줘.”

 

“우리 호드 대원들이 이 일로 발키리 부관에게 많이 화가 났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그래도 그 분노가 이상할 것은 아니겠지.

그대는 그런 분노의 동기를 기어코 기만하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화를 내다가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싸우다가 누구 하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이렇게 내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이 방법을 쓰지 않아서 누군가 죽게 된다면?

고작 사진으로 봤던 죽음을 내가 눈 앞에서 보면 내가 어떻게 될까?

그것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죽음을?"

 

"… ...”

 

“난 너희의 분노를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야.

난 그냥 너희들 중 누구 하나가 다치는 꼴을 죽었다 깨어나도 보기 싫을 뿐이지.

전쟁터에서 살아본 적 없이 평화에 찌든 사령관이라 어쩔 수 없다 생각해줘.

난 내가 또 미치는 꼴을 보기 싫거든.”

 

"… 알았다. 내가 실언을 했군.

미안하다.”

 

"하하, 칸이 잘못한 게 뭐가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니까 우리들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 수 있는 거지.”

 

 

칸은 자신의 말에 볼을 붉히면서 입을 닫았다. 호드의 전략은 매우 직관적이고 효율적이다. 칸도 그럼 직관적인 요소들을 다룸에 있어 잔뼈가 굵었다. 그리고 감정, 특히 분노는 매우 직관적인 감정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탐색하는 것은 칸의 습관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추스르려는 내 방식이 직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 사령관,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나?”

 

"뭔데?”

 

“그대는 화가 나지 않나?

어째서 그대를 해하려 한 자를 이렇게 품어주는 것이지?

대다수의 인원을 속이는 작전까지 만들어가며 발키리 부관을 감싸주는 행위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자 다른 모두들도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아도 다들 궁금했던 것 같다.

 

 

"그야, 난 아직 발키리와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거든.”

 

"...? 그게 전부인가?”

 

"응, 그게 다야.”

 

"… 점점 더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만...”

 

“내가 예전에 칸과 함께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칸과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리리스는 어떻고? 마리는? 아스널은?

전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내게 줬으니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 ...”

 

“만약 내가 여기 처음 온 날 리리스가 나를 죽이려 했다면 어떨까?

평소와 달리 뭔가 어리버리한 사령관을 보고 죽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라도 했다면?

명령권도 제대로 못 쓰는 나는 바로 죽었겠지. 리리스를 내가 어떻게 막겠어?”

 

"… 주인님은 리리스를 그럴 만한 아이로 보신 건가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아무튼, 칸도, 마리도, 아스널도. 전부 자기 일로 바쁠 텐데 나에게 말을 할 시간을 줬잖아.

그러니까 나도 발키리에게 말을 할 시간을 한 번 주려고.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겠지.”

 

"… 그대를 해하려 하는 자를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너희도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했으니까 내가 살아 있는 거지.”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그대를 믿을 만 하다 생각해서...”

 

“나도 너희를 보니까 발키리를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해.

사람이 살면서 바보 같은 일 한 번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 … 그래, 그대의 의지가 이렇게 확고하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겠지.

다만 그대에게 위험이 된다 판단될 때는 거리낌없이 그대를 저지할 것이다.

그것만 약속해준다면, 앵거 오브 호드는 사령관의 결정에 따르겠다.”

 

 

칸이 먼저 시작하자, 다른 지휘관들도 뒤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스틸라인은 각하의 결정에 지지하겠습니다.”

 

“캐노니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면 충분하겠지?”

 

"... ... 저희 컴패니언도 주인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다들 이해해주니 나도 좋네.

그럼, 이제 일을 시작하자고.”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다들 일어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 명확한 요구는 아니었음에도 다들 머리 속에 각자의 방법이 벌써 떠오른 모양이다. 다들 나가자 리리스는 여전히 투옥이 불만인 듯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그냥 답답한 마음에 그랬을 뿐, 진심으로 나에게 거부의 의사를 표했던 것은 아니었다.

 








 

 

"… 닥터야, 하나는 처리한 것 같다…

… 사령관 짓도 못할 노릇이네. 진짜...”

 

 

그나마 내 생각대로 되어 다행이지만, 유능한 지휘관들을 데리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가 뭘 하기도 전에 추방이라는 구체적인 형벌을 생각해둔 것을 봐라. 그나마 지금 말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애들 논리에 꼼짝 없이 설득 당했을 것이다. 다 나간 뒤에 책상 위에 있는 보고서들을 봤는데 언제, 어디로 추방할 지, 식량 및 식수의 초기 보급은 어떤 식으로 해야 처벌로서의 추방이 성립할 것인지 등등 말로 다 하기도 힘든 내용들을 벌써 정리해서 작성했다.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럼… … 이제 발키리를 만날 차례인가.

… 

... 아니다. 그건 감옥이 완성되면 하자. 

지금은 밖에 있다고 하니까 아마 만나려고 해도 못 만날 거야.”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나도 발키리에게 물어봐야 한다. 왜 그런 것을 보냈는지, 그리고 왜 내게만 그 많은 증거들을 남겼는지 말이다.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지도 물어볼 것이다. 밖에 있는 아이들이 모여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구심점이 있어서 내게 이렇게 조직적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인지도 함께 말이다. 

 

사령관 자리도 못할 짓이다. 그나마 애들이 있으니 버티는 거지. 진짜 못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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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원래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오라이에 솔붕이 복귀 소식으로 묻힐까봐 안 해슴 ㅎㅎㅈㅅ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