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날이 밝아오는 테마파크의 새벽에 누군가 B구역 거리를 청소를 하고 있다.
보통 테마파크는 6시에 청소를 시작하지만 더치걸은 이른 시간에 홀로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탄광에서 보냈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에 감사하고 있을까?
부지런한 모습이 퍽 보기 좋아 보인다.
- 씨발... 장초 존나 없네. 씹새끼들이 필터까지 빨았나.
물론 그럴 리 없다. 이 더치걸은 그냥 담배가 필요할 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B구역을 청소하면서 장초를 주워 피우는 게 더치걸의 하루 일과이다.
테마파크의 A구역은 아이들의 꿈이 모여 있는 놀이공원이다.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담배는 용납할 수 없으므로 A구역은 전부 금연 구역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욕망이 모여 있는 B구역은 담배는 물론 술, 돈만 충분하다면 마약도 구할 수 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B구역에서 일이 끝나면 손님한테 소소한 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더치걸은 영업 중일 땐 B구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 난 몸 팔아도 상관없는데 왜 여기 못 들어가는 건데...
열심히 장초를 찾는 더치걸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물론 더치걸 같은 바이오로이드도 B구역에서 충분히 수요가 있다.
하지만 펙스의 우수한 경영자들이 그녀에게 B구역 출입을 금지시킨 덴 다 이유가 있다.
손님들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테마파크에 방문한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건 꽤 큰 고역이고 지루한 일이다.
그런 손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B구역이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심심하지 않게 놀아주는 바이오로이드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곳에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바이오로이드가 있다? 그것도 상품으로?
테마파크 초기에는 이 일로 상당한 클레임이 들어왔다.
결국 소수자의 취향보단 대다수의 손님을 포용하자는 게 펙스 경영자의 판단이었다.
저 더치걸은 알 리 없겠지만.
- 더치걸씨. 또 이 시간에 담배를 찾는 건가요?
더치걸은 자신을 '더치걸'이라고 불릴 때마다 어색했다.
그전에는 아무도 자기를 더치걸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니까.
자매들은 자신을 8213이라고 불렀으니까.
- 뭘 새삼스럽게 그래. 나 이러는 거 보기 싫으면 담배 좀 구해줘.
더치걸과 같은 방을 쓰는 4번 키르케는 어제 튼튼한 손님을 만났는지 매우 피곤해 보인다.
작게 한숨을 쉰 4번은 더치걸에게 이미 뜯어진 담배 한 갑을 건넸다.
- 어제 손님한테 얻은 거예요. 보니까 6개비 정도 남았더라고요.
- 캬~ 역시 4번 너밖에 없어.
물론 담배를 얻어주는 게 4번 키르케 뿐만은 아니었다.
대부분 키르케들은 더치걸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봤고, 그녀의 부탁을 대부분 들어줬다.
더치걸은 그 시선이 매우 기분 나빴지만 그건 그거고 이용해 먹을 건 이용해 먹었다.
- 더치걸씨. 이번 기회에 담배를 끊어보는 게 어때요?
- 4번... 뭔 개소리야?
- 이렇게 손님한테 얻는 것도 힘들어요. 저번에도 2주 동안 안 폈잖아요. 힘들겠지만 노력하면 끊을 수 있을 거예요.
- 이봐.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2주 동안 안 핀 게 아니라 못 핀 거야. 씨발 뭔 담배 구하는 게 그렇게 힘든지. 그리고 그 2주 동안 너도 내 상태 봤잖아?
확실히 그 2주 동안 더치걸의 상태는 끔찍했다.
두통과 기침은 물론 잠도 못 자고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얼마나 심했던지 이번 기회에 금연시키자던 키르케들이 먼저 나서서 담배를 구해줬다.
- 그래도 계속 여기 들어오는 것도 위험해요. 이번엔 나도 도와줄게요.
- 그러지 좀 마. 나도 너 술 마시는 거 갖고 뭐라 안 하잖아. 그리고 담배를 안 피우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니까?
방금 더치걸이 업무 운운했지만 솔직히 그녀는 업무라고 할 게 없었다.
더치걸의 업무는 개장시간에 A구역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과 사진 찍어주기, 미아 보호, 그리고 퍼레이드 시간에 마차 위에서 손 흔들어 주는 게 끝이었다.
- 그럼 저도 술 끊을게요. 좋네요. 이번 기회에 같이 건강해지죠.
- 그만 좀 해! 그 좆같은 탄광에서도 담배는 줬는데 왜 계속 나한테 지랄이야?
더치걸은 자신에게 담배를 구해준 고마움도 잊어버리고 욕을 하며 가버렸다.
하지만 더치걸은 몰랐다.
이미 4번 키르케는 다른 키르케와 합의를 끝냈다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더치걸을 금연시킬 테니 동참해 달라고 한 걸 더치걸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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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나 돌아버리겠네.
더치걸이 마지막 담배를 피운지 15일이 지났다.
더치걸은 지금 머리가 아프고 기침도 하면서 잠도 3시간밖에 못 잤다.
어떤 키르케한테서도 담배를 구할 수 없었다.
츄러스에 들어가는 설탕을 한 움큼 집어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 어떤 자매보다 운이 좋다는 걸 알지만.
- 이렇게 넓은데 어떻게 담배가 한 개비도 없을 수가 있지?
더치걸은 고개를 떨구고 기침을 한 후 가래를 뱉었다.
뭔가 이상했다. 저번처럼 장초를 찾으러 새벽에 B구역에 갔지만 이미 청소된 후였다.
지금이라면 필터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저기, 언니...
담배에 대해 생각하던 더치걸은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들어보니 손에 풍선을 들고 울기 직전의 꼬마 아이가 있었다.
그제야 더치걸은 자신의 별것도 아닌 업무가 생각났다.
- 길을 잃었구나. 부모님은?
- 모르겠어...
- 엄마랑 아빠 이름이 뭐야?
- 몰라...
그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아야 되는 거 아닌가?
더치걸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생각했다.
- 걱정 마. 내가 부모님을 찾아줄게.
더치걸은 아이의 손을 잡고 미아보호소로 향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겁을 먹지 않게 말도 걸어줬다.
- 너는 몇 살이야?
- 6살.
- 나랑 동갑이네.
- 언니도 6살이야?
- 제조 연도만 따지면 그렇지. 이름은?
- 나디아...
- 예쁜 이름이네.
- 언니는 이름이 뭐야?
- 나? 나는 더치... 아니, 8213...
- 그게 이름이야?
- 그럼. 내 자매들은 모두 나를 이렇게 불렀다고.
- 너도 가족이 있어?
- 물론... 있었지.
- 어쩌다 여기서 일하게 된 거야?
- 그냥... 운이 좋았어.
- 왜?
- 뭐, 설명하면 알아?
- 응! 나 똑똑해.
- 나는 원래 여기가 아니라 땅속에서 일했어. 근데 몇 년 일하다 보니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더라고. 일 더한다고 뭐 더 떨어지는 것도 없으니까 점점 대충 일했지. 근데 그걸 감독관한테 걸렸네? 그날 그새ㄲ... 아니, 감독관한테 혼나고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면서 몇몇 자매들과 여기 보내졌어. 저기 보이는 마녀한테 투어 좀 받고 C구역으로 보내지려고 하는데 여기 관리자가 와서 퍼레이드용으로 하나 쓴다면서 나를 빼갔지. 그래서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거야. 이해했어?
- 아니.
- 그래. 뭘 바라겠냐...
- 그럼 너 가족들은 지금 뭐 해?
- 내 가족... 너 말이 좀 짧아진 거 같다?
- 너도 6살이라며.
- 아무리 어려도 인간이구나. 아주 영악해.
- 어? 엄마! 아빠!
미아보호소에 도착하기 전에 나디아의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디아의 어머니는 나디아를 안았고, 아버지는 더치걸을 안았다.
- 고마워. 정말 고마워.
- 아니에요. 테마파크에서 일하는데 당연한 일을 한 거죠.
- 아니야. 만약 나디아를 못 찾게 됐다면... 정말 고마워. 뭐 가지고 싶은 거 없니?
- 네?
- 뭐든 좋아. 사례하고 싶어서 그래.
순간 더치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바이오로이드가 주제넘게 인간한테 보상을 바란다니.
그것도 주인도 아니고 손님한테!
더치걸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두통, 기침, 불면증을 없앨 기회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 ... 한 갑만 주세요.
- 뭐?
- 담배 한 갑, 아니 한 개비만 주세요. 제발요.
나디아의 아버지의 표정은 고마움에서 경멸로 바뀌었다.
저렇게 어린아이가 간절한 표정으로 담배를 요구하다니...
역시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는 다르구나.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군.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을 돕는 건 당연한데. 뭐 저런 거 사정까지 생각했지?
나디아의 아버지는 더치걸을 밀치고 딸의 손을 잡고 가버렸다.
- 8213 고마워.
나디아는 고개를 돌려 더치걸한테 인사했고, 더치걸을 그걸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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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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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바빠서 내일까진 완성해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