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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위기는 곧 기회.



더치걸은 담배를 피러 온 워울프와 그런 워울프에게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다며 흡연실까지 끌려온 칸에게 발견되었다.


“더치걸이 튼튼하게 설계되어서 다행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버티지 못했을거예요.”


다프네는 부드럽게 더치걸을 쓰다듬었다.

리제 역시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있었다.


“그래.. 잘 부탁하네. 그는 이곳에 들리지 않으니까.”


칸은 자리에서 일어나 워울프를 데리고 나갔다.

간만에 본 인류의 모습은 처참했다. 수복실 한번 오지 않는 그와는 달리, 사령관은 업무가 쌓여있는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다친 대원이 있다면 수복실로 달려와 손을 잡아주곤 했다.

그리움이란 얼마나 가슴 아픈 단어이며, 현실을 자각시켜주는 각성제인가.

칸은 냉정하게 보았을 때, 이것은 사령관이 돌아왔을 때 오르카를 더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리라 중얼거렸다.


“페더, 지휘관들을 소집시켜줘. 장소는.."


지휘관들을 어디로 불러야할까.

그는 직책이 함장인만큼, 어느 지휘관실을 가던 이상할게 없다.

그렇다면 그가 절대 오지 않을 곳은 어디인가.


"수복실로."


칸은 다시 발길을 돌려 수복실로 향했다.



#25. 꿈이 현실보다 행복하다면, 그건 악몽일까요?



더치걸은 꿈을 꿨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 백년도 전에 스러진 자매들과 사령관이 웃으면서 놀고 있었고, 쭈뼛대던 자신을 사령관이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렸다.

분명 입고 있었던 작업복은 어디있는지, 새하얀 드레스가 바람에 스쳐 나풀댄다.


“사령관, 보고 싶어..”


소녀의 대답에 사령관은 반응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하며 소녀를 바라본다.

어라? 내가 왜 사령관을 보고 싶어하지? 더치걸은 위화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본다. 꺄르륵 거리며 뛰어다니는 자매들의 모습이 왜인지 가슴에 사무쳐 눈물이 주륵 흐른다. 

그래, 모두 꿈이구나. 모두 꿈이야.. 더치걸은 눈물을 닦지도 않고 사령관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못 본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몇백년은 지난 듯 벌써 흐릿해져 그리운 얼굴이다.


“괜찮은거야..? 다친 곳은 없어..? 사령관.. 오지마.. 사령관..”


더치걸은 사령관의 웃는 얼굴을 꼬옥 안았다. 이토록 따스한데 가슴이 사무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꿈은, 꿈이란걸 아는 순간부터 행복할 수 없다. 눈을 뜨면 사라지고, 현실은 꿈보다 잔혹하다.

좋은 꿈은 얼마나 슬픈 것인가.



#26. 놈을 신께 보내라. 그 분께서 판단하시리라. 



“오지마.. 사령관..”


라비아타는 더치걸의 잠꼬대를 들으며 감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심스래 닦아주었다.


“라비아타 통령..”


“오셨군요, 칸대장.”


금방 수복실로 돌아온 칸은 자신보다 누군가가 빨리 와있단 사실에 조금 놀랐다.

탈론페더가 아무리 빠르게 집합을 걸었다 해도, 몇발자국 안움직인 자신보다 빨리 왔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령은 페더가 부른게 아니라 스스로 온거겠군. 칸은 상황파악을 빠르게 마쳤다.


“알고 계시나요? 이번 일은 제가 계획했어요. 위험한걸 알면서도, 인간님의 본성을 알고자 했죠.”


라비아타의 눈은 한없이 깊어져 슬픔으로 더치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붕대에 감긴 더치걸은 신음 소리를 내며 뒤척였다.


“권력만큼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은 없지. 통령, 죄책감을 가지지 마라. 그대는 옳은 일을 했어.”


라비아타는 말을 하지 않고 더치걸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그래, 이건 통령이 실패한게 아니야. 우리 모두의 실수지.”


레오나가 팔짱을 낀채 또각또각 들어온다.

이어서 마리와 메이 역시 들어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곤히 자고있는 더치걸을 쳐다보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칸은 항상 호탕하던 누군가가 보이지 않음을 눈치챘다.


“아스널은 어딨지?”


“..아직 복귀 안했대. 복귀를 위해 용 대장 함대에 타고 있다나봐.”


“얼마 전 사령관이 탐색 보냈다고 듣긴 했는데 꽤 멀리도 갔나보군.”


칸의 말에 레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설산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레오나는 이마를 고상하게 짚으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우리에게 더이상 시간이 없어. 그 자를 몰아내고, 사령관을 복귀 시키지 않는다면.. 더치걸 같은 사례가 늘어날거야.”


“얘기한다고 뭐가 달라져? 여기 중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


여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표정이 좋지 않던 메이가 입을 열었다.


“…….”


메이의 질문에 그들은 침묵했다. 원래대로라면 라비아타만큼은 그를 거부할 수 있어야 했지만 멸망 전쟁 당시 소속이 삼안에서 블랙리버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에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끝났네. 그에게 반박 한번 못하는 주제에 의미없는 시간만 보내면 뭐해? 난 가보겠어. 할 일이  많으니까.”


메이는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몸을 돌려 수복실을 나갔다.

발끈한 레오나가 메이를 타박하려고 하자 마리가 레오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수복실을 나가면서도 눈 앞에 붕대를 감은 더치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메이는 더치걸의 모습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저었으나 양갈래로 묶은 긴 머리카락이 자신의 얼굴을 때릴 뿐이었다.

제길, 제길.. 메이는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오르카를 위해, 대원들을 위해, 사모하는 사령관을 위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메이는 수복실의 문틀을 잡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지휘관들에게 작게 말했다.


“세상이 몇백번 멸망하더라도, 내게 지휘관은 한명이야. 절대로.”


메이는 말을 마치고 또각또각 나갔다.

지휘관들은 메이의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보기만 했다.


"확실히 마땅한 대책은 없네요. 더치걸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길게 얘기 할 순 없어요. 이만 해산하죠."


"...헛걸음 하게 했군. 미안하다."


바쁜 지휘관들이건만,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모인지 얼마 안되어 별 소득도 없이 해산할 수 밖에 없었다.



#27. 당신을 믿고 있어요.



[각하, 하강하겠습니다. 몸을 숨기십시오.]


떠난지 얼마 안되어 복귀하는 오르카건만, 사령관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오르카호 안에서 어떻게 숨어 지낼지 고민 했지만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탈론페더의 시크릿 포인트로 이동해서 그녀만 만난다면 일은 순조롭게 풀릴 것이다.


로크의 엔진소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고도가 낮아진다.


[승인 신청 완료, RF-87 로크 복귀합니다.]


로크의 눈이 두어번 반짝이더니 오르카호의 커다란 문이 열린다.

오르카호로 들어가기 직전 요안나와 사령관은 로크의 날개 언저리에 딱 붙어 몸을 숨겼다.


“로크 왔구나. 점검 받아야 하거든?”


포츈이 패널을 들고 로크에게 다가오자 로크는 손을 뻗어 저지했다.


[필요 없습니다.]


“음.. 알았어, 그래도 이상 생기면 바로 말해야하는거거든.”


이상할만큼 기운이 없는 포츈을 보고 사령관은 위화감을 느꼈다.

오르카호에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함을 직감했다.


“동요하지 말게나 주군. 주군의 심장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리네.”


요안나가 귓가에 속삭이자 사령관은 심호흡을 작게 두어번 뱉는다.

쿵, 쿵하고 로크가 걸음을 옮겨 본인의 정비실로 이동했다.


[…내려도 될 것 같습니다. 각하,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고마워 로크. 닥터에게 잘부탁한다고 전해줘.”


로크의 머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요안나, 따라와. 오르카호의 비밀을 보여줄게."


그는 분명 탈론페더가 자신의 모습을 이미 보았을거라고 생각하며 천장에 있는 환풍구 속으로 들어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요안나가 당황한 듯 웃으며 뒤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곤 엉거주춤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 넓은 오르카를 기어다닐 생각은 없으니 빨리 기록실로.. 분명 기록실에 있을거야..


사령관은 조심스레 환풍구를 기어다니다가 더치걸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

발로 환풍구를 막은 뚜껑을 떨어트리자, 플라스틱 판이 땅바닥에 달그락 거리며 떨어지고 사령관과 요안나는 수복실로 내려왔다.


"...타박상이로군. 전투가 아닌, 구타를 당한 흔적이네."


요안나는 누워있는 더치걸의 모습을 여기저기 훑어보며 조용히 말했다. 붕대를 벗겨볼 것도 없이, 더치걸의 상태는 중상이었다.

사령관은 거대한 분노로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하고 더치걸을 내려다보았다.


"심하군, 이 작은 아이를 어찌.."


어찌나 입술을 꽉 깨물었는지, 입술이 터져 피가 났으나 사령관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몇번이고 되돌아봤던 구인류의 추악함을 기록이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자 속이 뒤집혀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심정으로 터질 듯 말 듯한 간당간당한 상태로 가만히 서있는 중이었다.

요안나는 사령관에게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흉흉한 살기에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주군, 이해는 한다만 지금은 아니네, 부디 진정하시게."


사령관은 요안나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자신의 손을 감싸는 따스한 온기에 정신이 들었다.


"사령관.. 왜 왔어.. 위험한데.."


더치걸은 사령관의 꽉 쥔 주먹을 작은 손으로 만지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엄청난 통증이 밀려와 윽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 누웠다. 더치걸의 신음소리에 안절부절하며 마저 누워있으라고 당부했다.


"괜찮아, 더치. 다 괜찮아.."


사령관이 무릎 꿇고 앉아 누워있는 더치걸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자 더치걸은 손을 뻗어 사령관의 뺨을 어루어 만졌다.

그제서야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울어 사령관.. 사령관의 잘못이 아니야.."


더치걸은 어린아이인 모습임에도 종종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가슴이 사무쳤다.

철 든 어린아이는 얼마나 슬픈 존재인가.


"있잖아, 나는 옛날에 인간들한테 많이 맞았지만.. 응.. 사령관은 달라. 고작 바이오로이드인 우리를 사랑해줘.. 그래서 우리가 찾은 첫번째 인간이 사령관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사령관은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아냐. 사령관의 존재 자체가 우리한테 구원인거야.."


더치걸은 심호흡을 두어번 하고 말을 이었다.


"정말 좋아해 사령관.."


더치걸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곤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한 촉촉한 눈이 예쁘게 휘어지며 미소 지었고 사령관은 간만에 소녀다운 표정을 한 더치걸의 얼굴을 소중히도 쳐다본다.


"나도 너희 모두를 사랑해 더치. 푹 쉬고 있어.. 꿈에서 깨고 나면, 더 행복해질테니까."


사령관은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던 더치걸의 손을 잡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정말 아름답군. 주군의 위인전에 꼭 이 내용을 담아야겠어."


"그건.. 부끄러우니까 하지마.."


더치걸은 눈을 감으며 웃는다.

꿈에서도 오지 말라며 부탁했던 당신이건만, 백전백승의 사령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약 기운인지, 눈을 감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진 더치걸은 다시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요안나, 질문이 있어."


"말씀만 하시게."


잠든 더치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사령관은 요안나에게 물었다.


"인간은 꼭 필요한걸까."


요안나는 두 눈을 감은채 잠시 침묵하곤 입을 열었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있어, 인류는 필수불가결인 존재이네."


역시 그런가 하고 중얼거리는 사령관을 요안나가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상쾌한 허브향이 갑작스레 풍기자 잠깐 놀랐으나 요안나의 심장박동 소리와 체온을 느끼며 이내 진정됐다.


"주군만 있다면, 다른 인간은 필요 없다는게 나의 의견일세. 오르카는 그대가 있는한 흔들리지 않을 것이네. 그대는 우리의 강한 성이니 어깨 위의 짐에 그대가 흔들려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할걸세."


사령관은 미소 짓는다.

최후의 인간, 세상의 마지막 희망, 인류 재건의 주역, 오르카호의 사령관. 사령관은 너무 많은 책임을 지고 있어 짐을 나눌 누군가를 갈망했다.

그렇기에, 그를 발견했을 땐 날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항상 옆에 있던 오르카대원 모두가 자신의 짐을 들어주고 있었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결국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를 구분짓던 것은 사령관 본인의 마음이었으리라.

사령관은 그의 처분에 대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갈등하였으나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도움이 됐어 요안나. 고마워."


요안나는 포옹을 풀고는 얼굴을 붉히며 짐도 여성인 몸인지라 그대를 안으니 매우 설레면서도 부끄러우면서도.. 하고 횡설수설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큭 하고 웃고는 환풍구가 아닌,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망설이지 말게. 조용히 울리는 요안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사령관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 오르카에서 숨어다닐 이유가 없어, 라고 중얼거리며 수복실에서 멀리 있지 않는 기록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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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작이었는데, 쓰다보니 길어지고..

예정보다 길어지니 횡설수설하게 되네요..


그래도 중요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꼭 쓸겁니다!

다음화엔 아마도 아자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