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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스틸라인 야간잡담 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1212289


스틸라인 5번 탄약고 초소 근무중이 이프리트와 브라우니2892.

유격 훈련 마지막 날 임펫 원사와 따뜻한 시간을 보낸 이프리트는 평소와는 다르게 적당히 근무를 서고 있었다.


"이뱀. 궁금한게 있슴다"


브라우니2892번이 말문을 열었다.

분대원 중에서 가장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브라우니2892번의 질문에 이프리트는 머리가 아파왔다.

사고뭉치 브라우니2593번 보다는 양반이지만 이 후임도 보통내기는 아니였다.


그러나 어쩌랴.

평소처럼 후드 뒤집어쓰고 잠들기에는 오늘 당직사관인 임펫이 너무 무서웠고

적당히 무시하고 버티기에 교대 시간은 아직 50분이 남았다.


사고방식이 독특해서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긴 하지만 이따금 빵 터지는 질문을 하는 브라우니2892번 이기에

이프리트는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뭐냐?"

"저희는 왜 생리를 하는검까?"


...이 미친년이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초소 내부 카메라에 찍힌다.

이프리트는 다시 한번 임펫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성을 붙잡았다.


"뭔 뜻인지 설명 좀 해봐."

"생리는 임신이 가능하다는 뜻이지 않슴까?"

"그래."

"저희가 임신할 필요가 있슴까?"

"어... 글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임신? 바이오로이드가?

필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프리트 기종이나 브라우니 기종과 같은 군용 바이오로이드는 임신 기능이 더욱 필요 없을 것이다.

바이오로이드 중 개체별로 생리통이 심한 개체가 있으며 이는 전투력 하락을 의미한다.

근데 왜지? 왜 굳이 그런 불필요한 기능을 집어넣었지?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땐 한 대 쥐어 박을 생각이 가득했던 이프리트였지만 스스로도 궁금증에 빠졌다.

그 효율성만 추구하던 블랙리버 놈들이 왜 바이오로이드한테 임신 기능을 박았지?

임신 기능 박으면 단가도 올라가잖아?


"만들던 사람이 바이오로이드랑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스스로 말했지만 궁색한 이유였다.

그건 브라우니2892번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그럼 자기가 원하는 바이오로이드만 그렇게 만들면 되지 않슴까?

 근데 저 같은 브라우니들도 다 생리하지 말임다?"

"너 같은 바이오로이드가 취향인 인간도 있었겠지..."

"그렇다고 모든 브라우니들한테 임신 기능을 박슴까?"


그래 모든 브라우니들이 임신 기능이 있을 필요는 없지.

브라우니에게 임신 기능은 꼭 브라우니 사이에서 애를 보고싶다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기능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브라우니 숫자만큼 많을리 없다.

당장 이프리트 자신이 남자라면 과연 브라우니랑 결혼해서 애를 낳을까?

'우웩...'

이프리트는 반대다.

이 사고뭉치 브라우니를 분대원도 아니고 평생 가족으로 만든다고?

오 인간님들이시여 당신들의 가능성은 어디까지 입니까?

차라리 좀 더 투자하셔서 몸매도 더 좋고 성격도 괜찮고 왠지 아이들도 잘 돌볼 것 같은 레프리콘 모델이 어떠십니까?


"음...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사실 바이오로이드 만들 때 인간 여자가 표본이라 처음부터 당연히 임신 기능이 있는게 아닐까?

 오히려 임신 기능을 빼면 단가가 올라가는 거지."


이번 생각은 나름 그럴 듯 한 것 같다.

그래 오히려 임신 기능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고 임의로 제거하는 돈이 더 드는 것이다.

일단 바이오로이드도 생물이지 않은가?


"저희 같은 군용 바이오로이드들은 좀 더 비싸도 임신 기능 빼는게 더 좋지 않슴까?"

"야 잘 생각해봐. 브라우니가 얼마나 많이 생산됬는데. 당장 오르카호에도 브라우니가 바글바글 하잖아.

 그 애들 다 임신 기능 빼는데 돈이 들어가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겠냐?"

"어! 그렇슴다. 한 명단 참치캔 10개만 잡아도..."

"그치? 멸망 전 인간들이 생각하는 건 뻔하지.

 너나 나 같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만들어질 때부터 있는 기능 빼는 것 보다 그게 더 싼 거야."

"어? 그럼 마리 대장이나 레드후드 대령님은 왜 생리함까?"


이 미친년이 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뭐?"

"그분들도 생리하심다."


이프리트는 머리가 멍해졌다. 자신이나 브라우니는 같은 생활관을 쓰다 보니 서로 생리 기간인지 아닌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장 레프리콘은 의외로 생리통이 심해 그 날만 오면 티가 났다.

근데 마리 대장님이랑 레드후드 대령이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브라우니2892번이 어떻게 알지?

이 미친년이 나 몰래 상관 방에 잠입 한 건가?

나 또 임펫 원사한테 끌려가는 거야?

망상이 망상을 무는 이프리트를 구원한 건 다름아닌 브라우니였다.


"지난번 실키 상병 따라 보급품 분배 갔는데 마침 마리 대장이랑 레드후드 대령님께서 생리대 불출 받으셨지 말임다."

"아... 그분들도 군용 쓰시냐?"

"에이... 지금 오르카에 사제 생리대가 어딨슴까. 다 똑같은거 슴다."


브라우니가 당연히 아는 걸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이프리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라우니는 말을 이었다.


"근데 저같은 브라우니야 굳이 돈 들여서 바꿀 필요가 없지만, 마리 대장님이나 레드후드 대령님은 아니지 않슴까?

 그분들은 진짜 전쟁 중에 임신하면 큰일 아님까?"

"아니 그분들이랑 할 사람이 있겠..."


이프리트는 말을 멈추었다. 당장 그 불굴의 마리를 속옷만 입힌 채 사령관실에 집어 넣었던 자신 아닌가.

분명 사령관님과 마리 대장은 그날 뜨거운 밤을 보냈다.

사령관님같은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구 인류 중에 없을 리 없지 암.

그때 사람들은 정말 보통이 아니였으닌까.

분명 꽉 막힌 군인이 취향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냐. 마리 대장이나 레드후드 대령님이 취향인 사람이 분명 있었을꺼야."

"으... 전 진짜 이해 안감다.

 지난번 훈련 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돋슴다.

 그런 분들을 어떻게 아내로 맞이함까?"

"남의 취향 무시하지마 임마.

 그리고 마리 대장님이랑 레드후드 대령님도 평소에 군복만 입고 다녀서 그렇지 은근히 몸 좋아."

"어? 진짬까?"

"아 넌 못봤나? 마리 대장님이 속옷만 입고 사령관실로 들어간거?"

"전 모르지 말임다?"

"뭐야 너 탈론허브 안봐?"

"전 마리 대장님보다 가슴 크신 분들이 나오는 영상이 더 좋슴다."

"그럼 레드후드 대령님 몸매도 못 봤어? 지난번 수영복 콘테스트 때?"

"저희 그때 외곽 경계 나갔잖슴까?"

"아니 영상 떳잖아?"

"저는 넉넉하당 아님 풍만하당 소속 분들 봤슴다."

"나중에 찾아 봐봐. 대령님 평소에 관리 잘하시는지 들어갈 곳 확실히 들어가고 복근이 그냥..."


"오호... 우리 이프리트가 상관에게 이렇게 관심이 많을 줄 몰랐군.

 그래서 대령님 복근이 어떻다고?"


이프리트와 브라우니의 대화는 갑자기 나타난 임펫에 의해 끊겼다.


"으헥?! 병장 이프리트 근무 중 이상무!"

"이상 무는 무슨. 초소 근무 보내 놨더니 참 열심히 서주는군 이프리트."

"병장 이프리트!"


고층 초소 창문에서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니 기동 장비 차고 호버링 중인가 보다.

그 와중에 브라우니는 '원사짬이 되면 그 시끄러운 장비도 얌전해지나보다'라는 쓸데없는 생각 중인 것을 이프리트는 알 방법이 없었다.


"자 선택의 시간이다, 병장.

 임관 신청서를 쓰고 조용히 넘어갈껀가, 아님 나와 함께 연대장님 복근에 대해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텐가?"

"벼 병장 이프리트!"


임펫은 지난 유격 훈련 마지막 밤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프리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