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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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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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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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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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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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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아닌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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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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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하늘 흩날리는 벚꽃과 이름 모를 석상이 있는 언덕 위에서 금란을 만난 우리는 그녀를 따라 이 나라의 무녀, 히루메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뜻밖이었던 것은 금란은 우리를 데리고 향한 곳은 처음 우리가 예상했던 화려한 건물이 아닌 녹음이 짙은 숲이라는 것이겠지.


  기묘한 숲이었다. 수풀이, 나뭇잎이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하게 빛났다. 마치 생명이 흘러넘치는 듯했다. 생명이 너무나도 많아 어찌할 수 없다는 듯이. 이 나뭇잎 안에 갇혀있기에 우리는 너무 짙다는 듯이.


  그와는 반대로 숲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새도, 벌레도, 짐승도 숨죽이고 있는 듯이. 아니, 마치 이 숲에 그런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들리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걸음에 밟혀 바스러지는 흙과 나뭇가지의 소리와 바람에 잘랑이는 나뭇잎 소리였다. 어쩌면 이 숲의 잎사귀가 지나치게 빛나는 이유는 이 숲에 살아가는 것들의 생명을 먹어 치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그런 고요한 숲인 주제에 빽빽한 나무 사이로 누군가 숨어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듯 누군가에게 엿봐지는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께에 걸려 나오지 않는 기침에 목젖 뒤가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몹시, 몹시도 불쾌했다.


  얼마나 숲을 걸었을까. 누군가에게 엿봐지는 느낌이 점점 강해져 이제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즈음, 나무 사이로 거대한 목조 건물이 나타났다.


  신기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언뜻 보면 교회 같기도, 법당 같기도, 그냥 건물 같기도 한 것이.


  허나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신을 모시는 신사라는 것이었다.


  신사가 뱃속에 품고 있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금란이 신사의 문을 열고 우리를 안내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지금까지 느꼈던 것은 어린애 장난이었다는 듯이 불쾌한 기운이 몸을 샅샅이 어루만졌다. 머리를 짓누르고 이죽거리는 기운에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고 짙게 내려앉은 가림막을 향해 금란이 말했다.


  "센의 대장군 금란, 무녀님의 명에 따라 용사를 모시고 왔습니다."


  "수고했다. 용사는 들도록 하여라."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에 몸을 짓누르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볍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에 파티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별말 없이 가림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섰다.


  황금빛 머리칼. 머리 위로 쫑긋 솟은 귀. 등 뒤로 찬란하게 펼쳐진 아홉 꼬리.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보이는 금빛 눈동자. 단아하게 차려입은 무녀복. 정갈하게 무릎 꿇은 모습이 정말로 기품있는 무녀를 보는 듯했다.


  평소 거의 헐벗듯이 입은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단아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이건 또 새롭다.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온 용사여, 환영하네. 첩은 이 나라를 수호하는 무녀인 히루메..."


  "가린 곳보다 못 가리는 곳이 더 많은 옷만 입고 있다가 이렇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색다르구만."


  "이익! 듣거라! 첩이 말하고 있지 않느냐!"


  음. 분위기는 달라졌어도 푼수끼 나는 성격 어디 안 갔다.


  "어흠."


  헛기침을 뱉어낸 히루메가 나를 보며 말했다.


  "센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네. 본래라면 첩의 거처인 홍월루에서 그대를 맞이했어야 하네만 지금 첩은 지금 마왕의 부하를 봉하고 있어 이곳을 떠날 수 없어서 말이네."


  "마왕의 부하가 여기 있나?"


  "지금 첩과 그대가 있는 이곳은 이 신사의 입구 부분이느니라. 신사의 안쪽은 본디 신상을 모시는 곳이네만, 마왕의 부하가 나타나 신상을 삼키고 말았느니라."


  신상을 삼켰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신상은 비록 형태뿐이라 하여도 신을 모방한 것. 그 나름대로 신력을 가지고 있지. 그런 것을 손에 넣은 마물이 사바에 나서게 된다면 어찌 될 것 같으냐."


  "그러지 못하도록 네가 여기서 마왕의 부하를 봉인하고 있는 건가?"


  음. 히루메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하게 펼쳐진 아홉 꼬리가 살랑였다.


  "신력을 가진 것이라면 첩이 억누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본디 신력을 지니지 않은 것이라 하여도. 마물은 신력을 가지지 않은 것이네만 그 마물이 움직이는 것은 신력을 지닌 신상이니 말이야. 허나 그것도 곧 한계에 다다르고 말 것이니라."


  그대도 여기까지 오며 느꼈겠지? 마물의 불쾌한 기운을. 히루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며 느꼈던 그 불쾌한 기운. 혹시나 했지만 역시 마왕의 부하와 관련된 것이었다.


  "마물의 힘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느니라. 지금은 첩이 온종일 매달려도 마물을 억누르는 것이 고작이지."


  그때, 신사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무저갱에 갇힌 죄수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에 모두가 움츠러들었지만 히루메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대만이 희망이느니라. 부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게."


  그렇게 말한 히루메가 우리를 신사 안까지 안내해 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일어나던 그녀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쓰러지는 히루메를 다급하게 안아 들자 그녀가 눈물 맺힌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가늘게 말했다.


  "다리가... 다리가 저리느니라..."


  역시 푼수끼 어디 안 간다.



  *

  "조심하거라, 그대여."


  그 말과 함께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어둑한 빛을 길잡이 삼아 본당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당 한가운데에는 늘어선 신상과 그 신상을 모시는 제단이 놓여있었다. 제단에 놓인 작은 초가 그림자로 가득한 신사를 어둑하게 밝혔다.


  거대하다. 본당을 보고 처음 떠오른 것이었다. 신사를 받치는 기둥도, 놓인 제단도, 웅장하게 늘어선 신상도,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도. 얼핏 보아도 3m는 훌쩍 넘는 신상이 움직여 팔을 뻗어도 천장에 고인 어둠에 손가락 하나 닿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없나요?"


  마리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신사 어딘가에 마왕의 부하가 있을 테지만 미약한 촛불 하나로는 밝힐 수 없는 어둠에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제단 주변을 기웃거리던 티에치엔이 제단 한가운데 텅 비어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인. 여기 이 자리만 너무 텅 비어있는 거 아냐?"


  "아마 그 자리가 마왕의 부하가 탈취했다는 신상이 있던 곳이겠지. 근데 이 마왕의 부하는 어디로 간 거야?"


  [쿠후후후후. 저는 처음부터 여기 있었답니다.]


  아주 익숙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검은 무언가가 거대한 나무 기둥을 타고 검은 하늘에서 천천히 기어 내려왔다. 스무 개의 손가락이 나무 기둥을 파고드는 소리와 불쾌한 웃음소리가 신경을 긁어내렸다.


  "이거... 여태까지 만났던 것 중에서 가장 뜻밖의 녀석이 나타났군."


  [쿠후후후후. 처음을 지켜보는 것도, 끝을 장식하는 것도 좋지만 중간에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것도 나름의 재미 아니겠습니까아?]


  쿠웅!


  기둥을 기어 내려온 괴물이 몸을 던져 우리 앞에 내려앉았다. 묵직한 충격이 심장을 훑고 지나갔다. 강직한 네 개의 검은 팔을 활짝 펼친 괴물이 우리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 알프레드! 오늘 여러분의 즐거움을 위해 이곳에 왔답니다~!]


  하나도 즐겁지 않다, 멍청아!



  *

  칠흑의 팔이 강렬한 파공음을 뱉어내며 휘둘러졌다. 간신히 고개를 숙여 주먹을 피해내고 칼을 휘둘러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주먹을 튕겨냈다. 충격으로 허공에 튀어 오른 몸을 비틀어 땅에 내려앉으며 알프레드를 향해 혀를 찼다.


  "유기체 덩어리는 건드리지도 못하겠다면서 온갖 엄살을 부리던 녀석은 어디로 갔냐?"


  [쿠후후후후! 여러분들은 지금 유기체가 아니시니까요!]


  바닥을 굴러 알프레드의 공격을 피해냈다. 굵은 팔을 휘두르며 우리를 공격하는 알프레드를 보며 내 머리는 이 가상 현실에 들어오고 나서 유래없을 정도로 머리가 빠른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의 보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아니라, 말을 할 수 없는 수준의 AI를 가지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알프레드는 평소의 알프레드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왜 알프레드는 말을 할 수 있지?


  왜 알프레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지? 


  여태껏 만났던 AGS와 알프레드가 다른 점이 뭐지?


  반대로 여태껏 만났던 AGS가 특이한 기체였을 가능성은?


  아니, 아니야. 그런 가능성은 너무 낮아. 아무리 생각해도 알프레드 쪽이 이상한 것이겠지.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뭐가 있지?


  그는 닥터와 얼마나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의 공략 방법은 뭐지?


  “사령관님!”


  홍련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자 눈앞으로 거대한 주먹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바닥을 굴러 주먹을 피하자 알프레드의 거대한 주먹이 바닥을 뚫고 박혔다. 알프레드가 바닥에 박힌 주먹을 빼내기 전에 검을 휘둘러 그의 팔을 잘라냈다. 알프레드의 팔은 예상외로 너무나 쉽게 잘려 나갔다.


  [으히이익! 그렇게 싹둑 잘라내다니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평소처럼 호들갑을 떨며 뒷걸음질로 물러난 알프레드가 왼팔 두 개를 펼쳐 나를 향해 휘둘렀다. 가볍게 뛰어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휘둘러지는 팔 사이로 빠져나갔다. 팔을 피해 바닥에 내려앉자마자 알프레드의 역관절 다리가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커헉!”


  날아오는 다리를 피하지 못하고 벽에 처박혔다. 흩날리는 나무 파편과 먼짓가루가 코를 간질였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쿠후후후. 쓰러진 사령관을 보면서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만은 즐기도록 할까요~.]


  알프레드가 땅에 박힌 팔을 뽑아 들어 잘린 단면에 가져다 대었다. 턱 하고 붙인 팔이 마치 처음부터 잘린 적이 없다는 듯 달라붙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잘라버린 부위는 완전히 부숴버려야 하나.’


  그것도 귀찮은 일이다. 문제는 지금은 그 방법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저 귀찮은 녀석을 빨리 때려눕히도록 할까.”


  알프레드의 주먹과 아탈란테의 방패가 충돌했다. 뒤이어 휘둘러지는 주먹을 티에치엔이 튕겨냈다. 그 직후, 두 쌍의 팔이 아탈란테와 티에치엔을 후려갈겼다.


  “게엑!”


  괴상한 소리를 내며 티에치엔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아탈란테도 알프레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쓰러진 아탈란테를 향해 알프레드가 발을 치켜들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팬텀이 나타나 알프레드의 다리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써억!


  거친 소리와 함께 알프레드의 다리가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났다. 지나치게 깔끔하게 잘려 알프레드가 금세 다리를 붙여버리고 말았지만.


  팬텀이 빠른 속도로 알프레드의 주위를 뛰어다니며 알프레드를 향해 표창을 던졌다. 알프레드가 팔을 휘저으며 팬텀을 쫓는 사이 홍련의 화살이 알프레드의 몸을 꿰뚫었다.


  [이이잇! 촐랑촐랑 토끼가 따로 없군요!]


  그렇게 말한 알프레드가 두 쌍의 팔을 들어 크게 손뼉을 쳤다.


  쩌엉! 


  손바닥이 마주친 소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와 신사를 뒤흔들었다. 팬텀과 홍련이 괴로운 듯 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박수 소리로 이 정도 파괴력이라니...!’


  알프레드가 쓰러진 팬텀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쿠후후후. 몹시 마음 아프지만 일은 해야 하는 법이지요!]


  알프레드가 팬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재빨리 팬텀과 알프레드의 사이에 끼어들어 검을 휘둘러 알프레드의 주먹을 빗겨냈다. 검을 휘둘러 알프레드의 팔을 베어낸 후 팔뚝에 검을 꽂아 휘둘러 뒤쪽의 티에치엔을 향해 던졌다. 티에치엔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날아오는 알프레드의 팔을 주먹을 휘둘러 박살 냈다. 알프레드가 멈칫한 사이 알프레드의 품으로 파고들어 팔을 하나 더 베어냈다. 춤을 추듯 회전하며 잘린 팔을 알프레드가 집을 새도 없이 조각냈다. 그 기세를 몰아붙여 알프레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팔이 두 개나 잘린 것에 당황한 알프레드가 뒤로 뛰어오르며 다급하게 말했다.


  [자...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너 같으면 기다리겠냐!"


  뒤로 물러나는 알프레드의 품에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검이 알프레드의 허리를 길게 찢어발겼다. 알프레드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을 피해 뒤로 물러나자 알프레드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에잇! 이렇게 되면 비장의 수단입니다!]


  그렇게 말한 알프레드가 어디선가 검은 구체를 꺼내 바닥을 향해 던졌다. 펑 소리가 터져 나오고 연기가 순식간에 신사를 가득 채웠다.


  "야! 니가 언제부터 연막을 썼냐!"


  [쿠후후후!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요! 뭐든지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프레드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연막 속으로 돌진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파티원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알프레드의 박수로 걸린 상태 이상 지속시간이 끝났는지 파티원들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는 것이 보였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결정타는 못 먹이는 상황이지. 두 팔을 잘라 놓은 게 그나마 안심이랄까."


  순간 연막을 뚫고 알프레드가 돌진해왔다. 하늘 높게 치켜든 두 주먹을 망치처럼 휘두르는 공격을 아탈란테가 달려 나가 간신히 막아냈다. 치켜든 방패를 주먹이 후려갈기고 아탈란테의 두 다리가 낡은 나무 바닥을 뚫고 바닥에 박혔다.


  "이런!"


  그때, 바닥을 쓸며 거대한 팔이 날아들었다. 분명 잘라내었을 터인, 알프레드의 세 번째 주먹이.


  "뭐?!"


  "으랴아아앗! 철산고오오오!!"


  재빨리 달려 나간 티에치엔이 알프레드의 주먹을 어깨로 받아냈다. 쩌엉! 하는 강철로 바위를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알프레드의 주먹이 조각조각 깨져나갔다. 


  알프레드의 손은 잘라버려 잘게 부숴버렸다. 그런데 어째서 팔이 다시 붙어있는 거지? 재생인가? 아니, 검으로 베어버린 허리는 아직 낫지 않았다. 어째서 팔은 재생되고 허리는 낫지 않았지?


  검을 휘둘러 분명 잘라버렸을 터인 알프레드의 네 번째 팔을 떨쳐내고 아탈란테를 잡아 그녀를 알프레드의 머리 위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순식간에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은 그녀가 창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천둥과 함께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져 신사의 지붕을 박살 내고 아탈란테의 창에 내리꽂혔다. 아탈란테가 알프레드의 머리를 향해 창을 집어 던졌다.


  "내리쳐라! 천신의 창, 아스트라페!"


  창이 섬광처럼 알프레드를 향해 작렬했다. 알프레드가 간신히 몸을 비틀어 머리에 맞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몸의 절반 이상이 박살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남은 한쪽 다리로 간신히 뛰어올라 뒤로 피한 그때, 알프레드의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게이트를 열어 나타난 나와 우리 파티 최고 화력의 포티아.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린 포티아를 본 알프레드가 진땀을 흘렸다.


  [쿠후후후... 이건 진짜 큰일 난 것 같군요!]


  "이...익스플로전!"


  태초의 빛과 같은 화염이 알프레드의 몸을 집어삼켰다.



  *

  "흐에에에에..."


  기력을 다 써버리고 주저앉는 포티아를 부축하며 파티원들의 곁에 돌아갔다. 포티아를 내려놓고 파티원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힘내세요, 주인님! 벌써 절반 넘게 왔다구요! 이제 세 곳만 끝나면 닥터를 만나러 갈 수 있어요!"


  마리아가 나를 북돋우려는 듯 옆에서 양팔을 흔들며 말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쓰다듬어주려 할 때 섬짓한 무언가가 등줄기를 내달렸다.


  "모두 귀 막아!"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음이 공기를 후려갈겼다. 재빨리 귀를 막았지만 파티원 대부분은 미처 귀를 막지 못했는지 바닥을 나뒹굴었다. 무사한 것은 나와 팬텀뿐. 나와 팬텀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알프레드를 향해 달려 나갔다.


  [짜잔! 제가 돌아왔습니다!]


  연막 속에서 나타난 알프레드가 우리를 향해 외쳤다. 너덜너덜하게 박살 났던 몸은 깔끔하게 나아있었다. 이전에는 낫지 않았던 베어버린 허리까지 전부.


  한계를 모르는 재생. 저 재생을 어찌하지 못하면 알프레드는 잡지 못한다.


  허나 그 공략법도 이미 손안에 들어왔다. 이 전투에 마침표를 찍을 때다.


  알프레드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하지만, 방어력은 높은 편은 아니다. 칼질 한 번에 팔이 싹둑 잘려 나가는 것이 그 증거다.


  몸놀림이 빨라 대다수의 공격을 피하는데 집중하는 나와 팬텀은 알프레드에게 있어 극상성. 미처 걷히지 않은 연막도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하다. 꾸준히 대미지를 쌓아놓은 것이 효과를 본 듯 알프레드가 팬텀을 향해 커다랗게 팔을 휘둘렀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검을 강하게 휘둘러 알프레드의 팔을 잘라냈다. 잘린 알프레드의 팔뚝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쿠후후후! 그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팔 하나 정도는 드리도록 하지요!]


  알프레드가 잘린 자신의 손목을 잡고 몽둥이처럼 우리를 향해 휘둘렀다. 설마 팔을 무기로 휘두를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해 팬텀이 팔에 얻어맞고 저 멀리 튕겨져 날아갔다. 간신히 날아오는 팔을 피한 나도 뒤이어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히이익! 서둘러야 합니다!]


  알프레드가 오두방정을 떨며 신사의 제단으로 향했다. 연막이 곧 걷힌다. 연막이 걷히기 전에 몸을 갈아타야 한다. 그렇게 신사의 제단에 도착한 알프레드의 눈에 보인 것은 박살 나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신상의 모습이었다.


  [아니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머리를 감싸 쥐고 발을 구르는 알프레드의 밑으로 작은 그림자가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내리자 티에치엔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겨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이건 못 피한다.


  "스으응료오옹궈어어어언!!!!"


  티에치엔의 주먹이 알프레드의 턱을 박살 내고 동그란 머리를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알프레드의 동그란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내 쪽을 향해 굴러오는 알프레드를 밟아 멈춰 세우자 알프레드가 머리에 달린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명해 주십시오!]


  "간단히 말하자면, 네 트릭이 들통났다는 거지."


  그래. 간단한 트릭.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히루메가 했던 말.


  [마왕의 부하가 나타나 신상을 삼키고 말았느니라.]


  즉, 알프레드의 몸은 신상일 뿐, 진짜 알프레드의 육체가 아니다. 알프레드의 본체는 머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진짜 알프레드일 뿐. 아무리 베고 부수어도 우리가 공격한 것은 이 신사에 있는 신상일 뿐, 알프레드의 육체가 아니다.


  고로 알프레드는 아무런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방어력이 지나치게 낮은 것도 아마 그 이유겠지. 신상은 그저 돌덩어리일 뿐이니까.


  처음 우리가 팔을 완전히 부숴버렸을 때, 아마 다른 신상의 팔을 떼어다 붙인 것이리라. 허리의 상처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아탈란테와 포티아의 공격으로 몸이 박살 났을 때도 마찬가지. 아마 온몸으로 머리만 보호했거나 포티아의 스킬에 맞기 직전 머리를 떼어 다른 신상을 향해 던졌던 것이겠지.


  "그래서 티에치엔에게 다른 신상을 전부 박살 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네가 박수를 칠 때 티에치엔은 귀를 막았어. 단지 자연스럽게 전투에서 이탈해 네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절한 척을 했던 거지. 네게 달려들기 전에 티에치엔을 신상 근처로 이동시켰다."


  사실 티에치엔에게도 기절한 척해달라는 말만 했을 뿐, 작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상을 전부 부수고 도망치는 알프레드를 박살 내는 것까지 해주었다. 다행이다. 그녀가 브라우니 같은 바보가 아니라서.


  "몸을 갈아타는 보스. 만약 네가 아니라 다른 AGS가 들고나왔다면 맞추기 더 까다로웠겠지. 너라서 맞추기 쉬웠다. 너는 이미 내 앞에서 몸을 갈아타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으니까. 컨셉에 맞춰 보스를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네 특성을 생각해 보스를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점이 오히려 독이 되었군."


  알프레드의 머리를 주워들어 눈을 마주쳤다. 짜증스러운 내 표정에 알프레드가 딴청을 피우며 내 눈을 피했다.


  "자.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다 말해. 전부 다."


  [쿠후후후후. 제가 사령관에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딱 하나입니다. 제 마지막 패턴은 자폭 패턴이라는 걸요!]


  "...뭐?"


  [폭발 범위만 반경 300m랍니다! 사령관님을 위한 깜짝 선물이니까 부디 즐겨주시길!]


  "이런, 젠장!"


  포티아의 폭격으로 벽에 난 구멍으로 알프레드를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그 후 간신히 깨어나기 시작한 파티원들을 이끌고, 정확히는 달리는 속도가 느린 마리아와 포티아를 티에치엔과 아탈란테에게 짊어지게 한 후, 신사의 입구에 있는 금란과 히루메를 향해 달려갔다.


  "오오! 그대여! 마물을 물리친 게로군!"


  "시끄럽다! 지금 그런 말 듣고 있을 시간 없어!"


  히루메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를 들쳐메듯이 안아 들고 숲을 내달렸다. 금란도 무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라 달렸다.


  쿠웅! 하는 대지가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무시무시한 화염 기둥과 함께 눈을 찌르는 섬광과 메마른 열풍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예술은 폭발입니다아아아!!!]


  저 멀리서 그렇게 외치는 알프레드의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