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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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매앰! 맴! 맴!

 

"...후우.."

 

 한적한 늦여름의 오후, 중천에 걸린 뜨거운 태양의 탓인지 아니면 전날에 내린 폭우의 영향 탓인지. 후덥지근하기 그지없는 날씨에 나는 짧은 한숨을 입밖으로 후-하고 내뱉었다.

 

'씨발. 진짜 덥네. 하아..'

 

 습도는 이미 최고치, 땡볕은 이미 살갖을 태울 정도로 후끈. 살인적인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선임과 함께 산 중턱까지 타고 오르는 산비탈을 뚜벅뚜벅-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일병님. 괜찮으십니까?"

 

"야. 이게 지금 괜찮은 걸로 보여?"

 

"..."

 

 내 오른편에서 함께 군홧발을 놀리는 맞선임은 평소같은 능글맞은 미소 대신, 땀에 절은 이마와 씰룩대는 뺨을 가리키며 내게 미간을 좁혀들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맞후임이라는 위치를 망각한 채 그를 향해 투덜대기 시작했다.

 

"누가 그러게 훈련 중에 몰래 담배를 피라 했습니까? 덕분에 저도 차출되서 이 지옥길을 오르고 있잖습니까?"

 

"..."

 

"중대장님의 얼굴 기억 안 나십니까? 그 꺼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길래 저는 이제 군생활 쫑난 줄 알았습니다."

 

"..."

 

"분대장님한테는 대차게 깨지고, 결국 이 땡볕에 초소길 가로등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2인 행군행 아닙니까? 저는 무슨 죄를.."

 

"이..이 자식이. 맞선임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편하게 대하라고 하신 건 일병님입니다."

 

"..."

 

 이제는 누가 위지? 선임은 내 반박에 벌레 씹은 얼굴처럼 일그러뜨리며 아래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과장도 없으니 아무리 맞선임이라 할 지언정 맞후임을 이렇게 지옥길로 끌고 온 것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느낄 터. 근 3달이라는 시간을 봐온 눈 앞의 양반은 그런 남자였다.

 그리고 내 평가가 아주 틀리지는 않았는지 맞선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땀으로 흥건한 내 군복의 위를 툭툭 두들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내 잘못이다. 아이고.."

 

"담배는 좀 적게 태우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훈련 중 흡연은 제가 보기에도 미쳤습니다."

 

"야야. 군대 와서 할 게 뭐가 있냐. 담배 태우는 게 내 일상의 낙인데.."

 

"저도 술 좋아하지만 PX의 술병에 손도 안 댑니다. 일병님."

 

"...한 마디를 안 지네."

 

"질 건덕지가 없습니다."

 

 예예. 그러시겠죠. 맞선임은 대충 내 앞에 손사래를 치다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런 그의 언동에 나 역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을 대충 손으로 쓸어내렸다.

 

'..죽겠다. 진짜.'

 

매앰! 맴! 맴!

 

"..목청도 좋네요. 매미들은."

 

"그러게나 말이다."

 

 아스팔트 길의 왼편, 우거진 산림 너머에서 들려오는 매미들의 합창에 정신이 몽롱해지려 들자 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으려 오른편에 있는 선임에게 말을 걸어대었다.

 

"저희 언제 복귀하랍니까?"

 

"..고장난 전봇대를 찾을 때까지라는데?"

 

"이 한낮에 무슨 고장난 전봇대를..어?"

 

 기가 막힌 선임의 대답에 내 미간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갈 때즈음, 산 비탈길의 언덕 부근의 위에 무언가가 나와 선임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일병님. 쟤는 뭡니까?"

 

"어? 쟤.."

 

"-냐옹!"

 

 한 눈에 봐도, 한 귀로 들어도 눈 앞에 등장한 무언가가 어떤 생명체인지를 바로 알아먹을 수 있었다. 다만, 그 덩치가 심상치 않게 크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고양이인지, 호랑이인지. 구분도 안 가네.'

 

"냐-옹!"

 

"...쟤 뭐랍니까?"

 

"...대충 지나갈 거면 먹을 걸 내놓고 가라는 뜻 아닐까?"

 

"무슨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도 아니고. 왜 우리보고 내놔라 하는 겁니까?"

 

"저래봬도 우리보다 짬이 높을 걸. 하하하!"

 

 언제적 군대 농담을 써먹는 것인지. 선임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한 귀로 흘린 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선 양 앞발을 다소곳이 모은 채 우리들이 제 앞으로 오기를 기다리는 동물에게 다가섰다.

 

"냐옹!"

 

"..."

 

"냐-오옹!"

 

"...진짜 먹을 걸 내놓으라는 뜻입니까? 이거?"

 

"하하하! 당돌하네! 당돌해!"

 

 흔히들 말하는 삼색 고양이의 우렁찬 포효에 나와 맞선임은 입꼬리를 피식 올린 채 군복의 주머니들을 하나 둘 두들겨 보았다. 툭툭-하고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지고 있으니 이 놈의 짬 타이거는 여전히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우리들의 손동작을 유심히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군 상의 왼쪽 주머니에서 무언가 기다란 것이 느껴진 나는 그것을 재빨리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그것은 전날 아무 생각없이 하나 사서 꿍쳐둔 소시지였다.

 

"일병님. 일병님도 뭐.."

 

 이거 하나 가지고 되려나, 싶어 곁의 맞선임에게 눈길을 돌리니 이 양반의 주머니에서는 한 갑의 담배와 라이터 하나가 삐죽이 튀어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럼없이 그걸 고양이에게로 내밀고 앉아 있었다.

 

"너도 하나 태울래?"

 

"-냐옹!"

 

"..."

 

 선임이 손에 들린 담배 한 개비를 쭉 내미니, 짬 타이거는 '장난치냐?'는 것처럼 그를 향해 목청을 세웠다. 하긴. 같은 인간인 내가 봐도 어이가 없다. 나는 고양이에게 거부당한 담배 한 개비를 자연스레 제 입술로 가져가는 선임의 뒤통수를 어이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짐승한테 좋은 거 주려하십니다?"

 

"흐흐. 이 녀석도 이게 뭔지 아는 가 보네. 냄새도 안 맡네."

 

치-익!

 

 선임의 입술에 물린 담배의 끄트머리가 붉게 달아오름과 동시에 눈 앞의 고양이, 소위 짬 타이거라 부르는 군 부대 내에 서식하는 고양이는 선임을 한번 째릿 쳐다보고선 시선을 돌려 내 손에 들린 소시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

 

"냐-옹!"

 

 반짝대는 갈색빛의 두 눈동자, 한낱 고양이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든 부담스러운 눈빛에 나는 무심코 소시지의 옆면에 달린 시뻘건 비닐 포장끈을 쭉-잡아당겼다.

 

찌-익!

 

"..근데 고양이한테 소시지를 줘도 됩니까?"

 

"음? 후우-! 뭐. 상관없지 않을까? 취사장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도 잘 먹는 녀석들인데."

 

"냐-아앙!"

 

 선임의 무관심한 한 마디에 짬 타이거는 그의 대답이 맞다는 것처럼 한 걸음 내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내 정강이 위로 앞발들을 가져다대었다. 가까이서 보니 덩치가 무슨 산만한 것이 포스가 일반 길고양이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놈이었다.

 

"얘 여기 짱입니까? 덩치가 무슨.."

 

"얼른 주고 가자. 갈 길이 멀다.."

 

"옛다. 먹고 덩치나 더 키워라."

 

"냐-옹!"

 

 반쯤 잘라 줄까 싶었으나 이 덩치라면 아예 삼켜 먹겠다 싶어 나는 대충 포장을 벗겨낸 소시지를 고양이의 입가 위로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이 녀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손에 들린 소시지의 가운데를 턱 물어 소시지의 반절을 뜯어내었다.

 

"어?"

 

툭-!

 

 이 커다란 놈의 송곳니에 반쯤 잘린 소시지가 아스팔트의 바닥 위로 툭 떨어지자 그제야 그 녀석은 내 정강이를 꾹 누지르던 양발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수풀 속에서 이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던 날강도들이 그제야 일제히 모습을 우리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부-스럭 부스럭

 

"냐-앙!"

 

"야-옹! 야옹!"

 

"애옹! 애애옹!"

 

"...한 놈이 아니었네."

 

"제대로 걸렸습니다."

 

 족히 네 다섯마리는 되어보이는 어린 녀석들이 내 발치에 툭 떨어진 소시지를 향해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자 선임과 나는 서로를 바라본 채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보니 숫놈이 아니라 암놈이었나. 나는 반절 남은 소시지의 포장을 온전히 뜯어내어 이번에는 어미 짬 타이거가 아닌 새끼들의 앞에 그걸 툭 내던졌다.

 

"엄마도 먹어야 살지."

 

"어이쿠. 우리 신병님은 마음 씀씀이가 좋으시군요?"

 

"..일병님보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담배 연기를 풀풀 내지르는 선임의 헤픈 웃음을 뒤로 하고, 나는 눈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소시지를 먹어대는 고양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애들은 대체 부대 내에 몇 놈이나 있습니까?"

 

"아마 취사장 애들도 모를 걸? 그냥 있는대로 주다보니 여기 정착하는 애들이 태반이니까."

 

"이런 건 부대에서 뭐라 안 합니까? 괜히 엉뚱한 걸 건드리면.."

 

"여기 쥐새끼가 몇 놈이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저 녀석들 머릿수보다 배로 더 있을 거다. 그러니 위에서도 뭐라 안 하지."

 

"..흐음."

 

 바깥에서는 꽤 미움살이도 많이 받는 놈들인데, 여기서는 나름 좋은 대접을 받는구나. 햙햙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심히 밥을 먹어대는 짬 타이거들을 빤히 바라보다 나는 어느 한 새끼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

 

"..."

 

 밥 먹다 말고 나와 눈싸움을 벌이는 이 검은 고양이, 연노랏빛의 홍채 속의 시꺼먼 동공으로 나와 한참을 대치하던 녀석은 먹던 소시지 조각도 내버려둔 채 재빨리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기려 들었다.

 

바-스락!

 

"...작은 놈이라 그런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네요."

 

 잡초들이 무성한 숲속 사이로 쏙-하고 들어간 검은 새끼고양이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찾으려 하니 내 뒤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선임은 귀찮다는 투로 혼잣말에 응대해주었다.

 

"저게 바로 은폐다. 은폐. 아이고. 날씨야..야. 얼른 올라가자. 에휴.."

 

"예예. 선임 말씀에 따라야죠."

 

"야-옹!"

 

"그래. 잘 먹고 지내라."

 

 앞서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는 선임의 뒤를 따르려 하니, 고양이 한 놈이 내가 멀어지려 하자 목청 좋게 날 배웅해주었다. 바깥에서는 별 관심도 두지 않던 녀석들인데, 여기서 보니 괜시리 더 챙겨주고 싶어지는 이유는 뭔지.

 

'..다음부터 소시지 하나씩 들고 다닐까.'

 

"야! 얼른 가자!"

 

"예. 예."

 

 무더운 어느 여름날, 나는 짬 타이거들과의 인연을 군생활 위에 한 줄 써내렸다. 그 이후, 내 상의 왼 주머니에는 언제나 소시지 두어 개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98)

 

 한가로운 정오의 어느 때, 영양 생산 시설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식료품 창고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로 인해 북적여대었다.

 

“대장님. 이게 식료품 창고에서 비축되던 물자 중 탈취로 의심되는 품목들이에요.”

 

“그래. 다프네. 어디 한번 보자.”

 

“대장님. 이건 저 컨테이너 내에서 발견된 상자인데요.”

 

“..안드바리. 너까지 내려올 필요는 없었을 텐데.”

 

“제 소관인 장소에서 또다시 일어난 탈취 사건이에요! 이익!”

 

“너도 화가 나긴 났구나. 좋아. 어디 한 번씩 다 훑어보자고.”

 

“네!”

 

 작달막한 창고의 내부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바깥과는 달리 시원한 에어컨과 냉풍기의 가동 탓인지, 수많은 인원이 북적여댐에도 그 누구 하나 더위를 느낄 여를 조차 없도록 그들에게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그리고 그 환경에 힘입어 한 남성을 중심으로 저마다 다른 복장의 여성들이 어깨를 맞댄 채 바닥에 놓인 상자들의 내부를 유심히 살펴볼 때, 어느 두 여성만이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주인님. 오늘도 너무 듬직하세요.”

 

“...”

 

“어머. 스토커. 왜 그렇게 축 쳐 져 있어? 주인님이랑 오붓한 시간도 보내놓고는.”

 

 어두운 창고의 내부 속에서도 은발의 머릿결을 한없이 과시하는 성숙한 여성의 물음에 그 곁에 서 있던 갈색 머리의 정원사는 연보랏빛의 두 눈동자를 부릅떠 그녀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었다.

 

“해충.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 응?”

 

“혹시 나 때문일까? 그럴 리가. 후훗.”

 

“...죽고 싶어?”

 

챠-캉!

 

 정원사의 양손에 들린 거대한 가윗날이 어느새 제 턱 아래로 슥-들어왔음에도 호박색 눈동자의 여성, 블랙 리리스는 그 칼날 위로 살며시 왼 검지를 툭 올린 채로 여유로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나도 못해본 주인님과의 산책 시간을 혼자서 즐겨놓고 심술부리긴. 잊었어? 우린 동맹이야. 스토커.”

 

“동맹은 너희 멋대로 정한 거야. 해충. 주인님은 내 주인님이야. 그 누구한테도 주인님을 넘길..”

 

“그래. 네 말이 맞아. 스토커.”

 

“..뭐?”

 

 살짝이만 올려도 얇디얇은 손가락의 피부가 갈라질 터인데, 블랙 리리스는 마치 이 칼날이 자신을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처럼 검지로 칼날의 위를 살짝이 밖으로 밀어내려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에 맞게 살짝이 열려 있던 가위의 날들은 점차 그녀의 장력에 따라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너도 그렇고, 그 요리사도 그렇고. 저기 저 작은 체구의 아가씨도 그렇고. 모두 주인님을 포기할 생각은 없잖아. 그렇지?”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이제야 알았다는 것처럼 말하지 마. 해충.”

 

“서로가 모두 라이벌인 셈이지. 그런 우리끼리 동맹을 맺니 마니 해도. 결국에는 서로가 원하는 목표는 단 하나.”

 

슥-

 

 은은하게 빛나는 가위의 날에 호박색의 눈동자를 고정하던 블랙 리리스는 왼편에서 들려오는 악우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그녀의 연보랏빛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여느 때처럼 자신의 이야기에 고개를 살포시 왼쪽으로 뉘는 악우의 모습에 블랙 리리스는 여유만만이라는 듯 그녀에게 살포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너도 갖고 싶지? 주인님의 첫 반지.”

 

“...”

 

“모두가 그걸 노리는 형국에 동맹은 무슨 동맹이니.”

 

“...그럼 우리가 그날 밤에 맺었던 합의는 어쩔 거야?”

 

“그거야 뭐. 겉으로만 유지하는 거지. 사실 너도 대충 눈치챘을 거 아니야?”

 

 이제는 완전히 자신의 목에서 떨어져 나간 리제의 가윗날에서 블랙 리리스는 자신의 검지를 톡 떼어내고선 이번에는 그 검지를 자신의 턱 아래로 가져다 대었다.

 

“요리사는 매일 주인님께 아침 식사를 직접 대접하지. 우리 부관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업무상이라는 명목하에 주인님의 곁을 따라다니지.”

 

“...”

 

“그런데 우린 뭐 하고 있어? 스토커.”

 

“...주인님이 맡기신 일이라고. 내게 중요성을 강조하던 건 너야. 해충.”

 

“맞아. 이 일도 나름 즐거워. 안드바리나 실키들이나. 보고 있으면 내 자매들이 떠올라서 귀엽기도 하고. 익스프레스들은 언제나 해맑으니 보기 좋고. 다 좋아.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시끄러워. 내 일에는 관심 꺼.”

 

“어머. 방금 보니 이제는 자매들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던데. 혹시 주인님이 널 도와주신 거려나? 아아. 역시 주인님이셔. 언제나 사람들을 잘 관찰하시는 게 똑 부러지셔.”

 

 여전히 창고의 중앙에서 상자들을 쌓아둔 채 뒤적여대는 남성의 뒷모습에 블랙 리리스는 황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작은 목소리로 그에 대한 찬사를 입 밖으로 술술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언동에 리제의 미간은 더욱더 좁혀들어갔다.

 

“해충. 언제까지 빙글빙글 이야기를 돌릴 셈이야? 응?”

 

“...가끔 보면 네 지능이 낮지는 않은 것 같다니까. 정말.”

 

“내 지능을 걱정할 시간에 네 목숨이나 걱정해. 해충.”

 

“..하여튼 두 사람에 비해 우리가 주인님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라는 거야. 스토커.”

 

 턱 아래에 두었던 왼 검지를 척 세우며 날카로운 눈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블랙 리리스의 말에 리제의 얼굴에 불만스러움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앞의 두 사람과 달리,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두 여성은 그녀들의 주인인 라붕이 작전관과 하루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유달리 적었다.

 

“내가 주인님께 건의한 주인님의 경호 건은 어떻게 된 줄 알아? 스토커?”

 

“..몰라. 내가 알 게 뭐야?”

 

“무려 주인님께서 직접 철회하셨어.”

 

 블랙 리리스는 자신의 개인 시간이 이렇게 허비될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실망한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일찍이 게임 내 설정상 경호에 특화된 그녀였기에, 또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제 주인이었기에 당연하게 자신의 건의가 받아들여질 줄 알았던 블랙 리리스는 설마 제 건의가 그의 선에서 내쳐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말이지. 주인님도 이 착한 리리스에게 너무 무심하셔."


 은발의 경호원은 짧은 한숨을 후-하고 내쉬며 답답한 심정을 자신의 곁에 있는 여성에서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런 평화로운 동네에 경호는 필요가 없으시다고. 오히려 부족한 인력을 메울 곳을 찾아보신다고 하셨어. 정말.”

 

“꼴 좋네. 해충. 주제도 모르고 날뛰더니. 결국에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잖아.”

 

“...그래도 완전히 거부를 당한 건 아니야. 계속해서 주인님께 어필하는 중이기도 하니까.”

 

“제 본업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거들먹거려? 나는 하다못해 주인님께 내가 가꾼 화원을 선물해드렸는데. 키킥.”

 

 본업이라는 단어가 심히 거슬린 것인지 여태껏 평탄하던 블랙 리리스의 이마 위로 찡그린 눈썹이 그려낸 주름들이 하나둘 음영을 드리우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화원을 가꿀 수 있도록 지원해준 사람이 누군지는 잊었나 보네? 이 멍청한 정원사!”

 

“네가 전해주지 않았어도 결국 내 손에 들어올 물건이었어. 해충. 이 동네에서 나 말고 누가 화원을 가꿔? 응? 할 말 없지?”

 

“...쯧! 평소에는 어벙하더니. 왜 나랑 말다툼을 할 때만 멀쩡한 거야? 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정원사를 향해 블랙 리리스는 짜증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 동네에서 화원을 가꾸는 건 결국에는 그녀일 터.

 

‘생색 좀 내보려다 괜히 덤터기만 쓴 기분이네. 정말.’

 

“하여튼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스토커.”

 

“히힛. 괜히 말주변을 돌리려고 드는 게 싸움에서 진 개를 보는..”

 

“..싸움에서 진 개는 자칫하다간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게 핵심이야. 이 멍청아.”

 

“..뭐? 너는 몰라도. 내가 왜? 주인님께서 내 화원은 얼마나 칭찬하셨..”

 

“화원을 선물해드린 정도로 이 동네에서 주인님의 마음을 얻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

 

 블랙 리리스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물음에 리제의 얼굴에 맺혀 있던 여유로운 미소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색을 확인한 블랙 리리스는 계속해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너도 대충 눈치가 있을 테니까 이야기하는 건데. 요새 주인님의 주변에 해충들이 많이 꼬이는 것 같지 않아? 정원사?”

 

“..주인님의 주변에 꼬인 해충들은 모두 내가 박멸해. 그중에는 너도 포함이야.”

 

“나는 마지막으로 해줘. 안 그래도 너랑은 언젠가 결판을 내려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이건 나쁘지 않지?”

 

“...”

 

“중요한 건 이 동네의 아이들도 주인님을 하나둘 노리기 시작했다는 거지. 우리야 주인님의 매력을 일찍이 알아채었다지만, 여기 아이들이 처음에 주인님께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지?”

 

“..아니야. 주인님께서 여기에 온 이후로 아쿠아가 많이 밝아졌다고, 다프네가 그랬어. 드리아드들도 주인님이 오신 후에야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어.”

 

“응?”

 

 설마하니 제 물음이 부정 당할 줄이야. 블랙 리리스는 보기 드물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제 말에 반박해온 리제의 얼굴을 빤히 살펴보았다. 옅은 홍조가 드리운 리제의 볼 색상에 블랙 리리스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어머. 동생들이랑 말도 터놓기 시작했구나? 처음보다 많이 발전했네. 축하해. 스토커. 후후.”

 

“...시끄러워.”

 

“그래. 뭐. 그 이야기는 잠깐 뒤로 하고. 그럼 네가 더 위험하다는 걸 알겠네. 여기 애들이 점점 저 멀리 바닷속에 있을 남성보다 우리 주인님께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는.”

 

“...해충. 요점. 요점만 말해. 귀 아프니까.”

 

 이제는 더 듣기 귀찮다는 듯 리제의 아랫입술이 살짝이 앞으로 삐죽 튀어나오자 블랙 리리스는 마치 모의작당을 하는 악당처럼 주변에 누가 있나 없나를 확인하고선 리제의 어깨를 와락-끌어안았다.

 

“뭐 하는 거야? 해충. 이거 안..”

 

“잘 들어봐. 스토커. 이건 너한테도 손해가 아닐걸?”

 

“...뭔데?”

 

 갑작스레 자신의 어깨 위를 얼싸안은 블랙 리리스의 왼팔에 리제는 잠깐 주춤거리는 듯했으나 이윽고 이어지는 블랙 리리스의 말소리에 그녀 역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나기, 이건 우리에게는 매우 귀중한 터닝 포인트가 될 거야. 스토커.”

 

“..터닝 포인트?”

 

“그래. 오늘 아침 회의실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거, 너 기억나?”

 

“그 이벤트 담당인가 뭔가. 듣기만 해도 귀찮아 보이는 그거?”

 

“흥. 그래서 네가 아직 한 수 앞을 못 내다보는 거야. 귀찮은 거라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 직책인데. 후훗.”

 

“..자세히 이야기해봐. 해충.”

 

 행여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리제는 이제 진중한 눈빛으로 호박색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런 그녀의 호응에 블랙 리리스 역시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계속해서 자신의 계획을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닥대었다.

 

“우리가 그 요리사와 저 부관에게 밀리는 게 뭐야? 스토커.”

 

“..같이 있는 시간. 네가 방금 이야기한 거잖아.”

 

“그래. 주인님과 같이 보낼 시간이 우리에겐 극도로 적어. 어필할 점도 듬직한 맏언니라는 것뿐. 뭐, 나는 지금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요소로 어떻게 주인님과 행복한 엔딩을 맞이해?”

 

“...반지. 주인님이 주신 반지. 여기서도 가지고 싶어.”

 

“그래. 그거야. 스토커. 우리는 다시 한번 주인님께 간택 받을 몸이야. 하지만 그 순서를 남에게 넘겨주기는 그 누구보다 싫어. 안 그래?”

 

“...이 섬에 있는 해충들을 모두 베어버리면..”

 

“그랬다간 주인님께서 졸도하실걸?”

 

“...해충. 그래서 네 계획이 뭐야? 주인님의 반지를, 우리가 얻을 수 있어?”

 

“아직 반지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는 나도 몰라. 스토커. 하지만..우리가 주인님과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건. 확신해. 후훗.”

 

“...”

 

“이벤트 기획이라는 명목으로 주인님의 집무실도 들락날락할 수 있고, 그리고 네 경우에는 자매들을. 내 경우에는 보급부대 애들을 통해서 주인님과의 관계 형성에 지원사격을 받을 수 있잖아. 너만 해도 방금 아쿠아 덕분에 큰 덕을 봤으니.”

 

“...아쿠아는 그런 아이가..”

 

“가끔 보면 너 너무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니까. 정말.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아쿠아의 눈빛이 어땠는지 넌 못 봤나 보네? 그 아이. 분명 네 지원을 위해서 나선 걸 거야.”

 

“..흐..흐흥...”

 

 블랙 리리스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리제는 눈꺼풀을 반쯤 내린 채 양 손가락들을 조물조물 꼬물대었다. 만들어질 때부터 생겨난 리제 개체의 주인을 향한 특유의 독점욕, 그로 인해 발생하는 주변 상황에 대한 무관심.

 애당초 주인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을 리제였으나, 라붕이 작전관처럼 저 너머의 어느 세계에서 넘어온 그녀에게는 그녀 자신을 이해해주는 한 명의 친구가 함께였다는 것이 매우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정말이지. 처음에는 자매들이랑 멀어지려 들길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더니.’

 

 언제나 번득이는 눈동자를 상대에게 먼저 들이미는 리제의 성격이 행여 영양 생산 시설의 인원들에게 꺼려질까 싶어 언제나 제 친구를 염두에 두던 블랙 리리스는 이제 제 손아귀를 떠난 친구의 모습에 싱긋이 입꼬리를 눈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하여튼. 아쿠아의 의도는 나중에 확인하고. 우선 우리가 이벤트의 기획자들이 되었잖아? 스토커.”

 

“...응.”

 

“그런데 우리에겐 아직 수영복이 없지? 있는 거라곤 이 제복뿐. 하지만..”

 

“...그 재단사! 재단사가 수영복을 만든다고 했어!”

 

“그래. 게임 속 스토리 기억해? 뭐, 우리의 진정한 주인님은 아니었지만. 그 남성에게 수영복 한 벌을 보여주겠다고 우리가 얼마나 싸웠니?”

 

“응응.”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염려가 없어. 무려 행사 기획자 겸 진행자야. 주인님의 곁에 항시 붙어있을 수 있고, 거기에 수영복까지 중직이라는 이유로 제일 1순위로 받을 수 있겠지.”

 

“응응!”

 

“후훗.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주인님께, 우리들의 매력을 한껏 선보일 때야. 스토커. 어때? 구미가 당기지?”

 

“응!”

 

 이제는 서로 숨길 것이 없다는 것처럼 양손을 꽉 맞잡아 쥐는 음흉한 경호원과 정원사, 그리고 그 광경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던 남성은 말없이 자신의 구렛나루를 긁적였다.

 

“...”

 

“폐하. 그녀들을 왜 그리 바라보시는지요.”

 

“..아르망. 쟤들이 뭐라 떠드는 건지. 너는 알겠냐?”

 

“..여성들의 밀담에 귀를 기울이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닙니다.”

 

‘그..건 그런데. 음. 사이가 좋은 건 확실하네.’

 

 부관의 입가에 걸린 미소처럼 라붕이 작전관은 서로 의기투합하는 두 여성의 모습에 자신 역시 볼 위에 작은 보조개를 만들어내었다. 목소리가 작아 그녀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으나, 게임 속의 광경처럼 생각보다 죽이 척척 맞는 듯한 블랙 리리스와 리제의 모습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스! 리제!”

 

“-네! 주인님!”

 

“주인님!”

 

 좀 더 저들의 밝은 모습을 보고 싶은 그였으나, 이 땅의 총책임자라는 관직을 얻은 그로서는 해결해두어야 할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타-다닥!

 

“주인님. 저를 찾으셨어요?”

 

“해충! 비켜! 주인님은 날 부르셨어!”

 

“어머. 너 그새 귀가 먹은 거니? 주인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건. 내 이름이었는데?”

 

“...너희 사이 좋은 거 맞지?”

 

 방금까지 손바닥을 맞잡던 두 여성이 맞긴 한 건지, 라붕이 작전관은 제 앞에서 아옹다옹하는 두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다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고. 둘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다.”

 

“네. 주인님. 리리스에 관한 건 언제든 물어봐 주셔도 좋아요.”

 

“..그럼 리리스. 먼저 물어볼 게 있다만. 저 박스, 넌 어떻게 보냐?”

 

 라붕이 작전관이 기다란 지휘봉으로 갈색의 종이박스를 툭툭 건드리자 블랙 리리스는 아까까지의 산뜻한 미소 대신 음흉하기 짝이 없는, 혹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선글라스의 선팅 너머에 있을 그의 눈동자를 빤히 응시했다.

 

“..주인님께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셨네요. 아아. 역시 제 주인님이세요. 후훗.”

 

“..흐음. 봉합용으로 붙여둔 테이프를 날카로운 나이프로 잘라내고. 거기서 단 두 개의 음료수를 챙겨갔다라..”

 

“맞아요. 주인님. 저건 그 멍청한 파견 인원들이 했다기에는 너무 깔끔하지요.”

 

 상자를 뜯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파견 인원들이 즐겨 하던 방식은 박스의 옆면 부분을 눌러 테이프의 접착면과 박스의 옆면 틈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식품이 도난을 당한 것으로 짐작되는 박스의 테이프는 누군가 옆면을 누른 흔적도 없었을뿐더러 테이프를 베어낸 것인지 아닌지도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베여 있었다. 

 

“리제야. 여기 샌드위치, 며칠이 유통기한이지?”

 

“..냉장 보관 시에는 길게는 1주일이에요. 주인님.”

 

“아닐 시에는?”

 

“길어야 3일이에요. 근래에는 날씨가 더욱더 더운 추세이니, 아마 이틀 정도..”

 

“..딱 맞네. 그래.”

 

 블랙 리리스와 리제의 대답에서 얻을 걸 다 얻어내었다는 듯, 라붕이 작전관은 지휘봉으로 제 왼손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곁에 꼿꼿하게 서 있는 안드바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드바리. 탈취로 의심되는 품목들이 발견된 사이 기간은?”

 

“네. 대장님. 3일! 3일이에요!”

 

“...다프네. 여기서 누가 훔쳐갔다고 의심될 만한 빈 물건들의 발견 사이 기간은?”

 

“...3일입니다. 대장님.”

 

 두 여성의 간결한 대답에 라붕이 작전관의 눈썹이 서서히 이마의 위에 주름을 그려내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든 실마리를 붙잡았다는 것처럼, 그는 콧구멍을 씰룩대며 화를 억누르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르망. 이 행위가, 만일 반복적인 패턴을 취하고 있다면..”

 

“..결행 날짜는 오늘 저녁이 될 것입니다. 폐하.”

 

“...”

 

 절대로 틀릴 리 없는 부관의 예측에 라붕이 작전관은 손바닥을 두들기던 지휘봉을 뚝-멈춘 채로 자신의 앞에서 여전히 미소를 짓는 두 여성에게 그 역시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리스. 리제. 너희가 오늘 수고 좀 해줘야겠다.”

 

“네! 주인님. 저는 언제나 주인님의 충실한 경호원이랍니다?”

 

“주인님. 제게는 언제나 스스럼없이 명령해주세요. 저는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평소에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그녀들의 맹목적인 충성심. 다른 이였다면 부담스러워 눈살을 찌푸렸을 터였으나, 라붕이 작전관에게는 그녀들의 대답만큼 믿음직스러운 것이 없었다.

 

“..너희가 연설장에 가서. 덫을 좀 가져와야겠다.”

 

“어머. 무얼 잡는 덫인가요? 주인님. 후훗.”

 

“..뭐긴. 쥐새끼인지, 고양이 새낀지 모를. 잡범을 잡는 덫이지.”

 

“히히힛! 해충을 잡는데에도 열성이신 주인님. 리제도 주인님의 도움이 되어드릴게요.”

 

 두 여성의 힘찬 대답에 라붕이 작전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좁은 창고 안에 자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질 정도로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다프네! 오늘 생산 물자는 전부 비축 창고로 보내라! 안드바리! 오늘 저녁에 쓰일 요리 재료들은 네가 추려내서 취사장에 보내고!”

 

“네. 대장님.”

 

“예! 대장님!”

 

“드리아드들과 아쿠아는 평소처럼 굴도록!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것처럼 일상을 보내면 된다!”

 

“네! 대장님!”

 

“응! 알겠어! 대장님!”

 

“..자. 그럼. 누가 감히 겁도 없이 또 나 몰래 탈취행위를 벌이는지 기대가 되는군. 끌끌끌.”

 

“..폐하. 표정이 매우 흉물스럽습니다.”

 

 그 누가 보아도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입가에 걸어둔 채 끌끌대는 라붕이 작전관의 모습에 아르망은 평소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 

 

“걸리는 놈과 같은 생활관 놈들은 전부, 연대책임으로 묶어서 지옥으로 보내주마. 크크크.”


 라붕이 작전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의 머릿속에는 또 한번 지옥도를 경험할 불쌍한 이들의 얼굴들이 하나둘 그려졌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이 그 불쌍한 중생들을 가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실시간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다프네양. 익스프레스들도 이 날씨에는 날기가 어렵답니다. 후훗."


"날씨가 더우니 이번에는 대상들의 기초체력을 중점으로 스케쥴을 조정하겠습니다. 폐하."


 이미 그에게 물들어 버린 이 여성들에게 있어, 이러한 사소한 헤프닝쯤이야. 그와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휴가 직전에 일어난 작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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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키스 3넴 숙련 완료. 아르고스 3페 숙련 완료. 이제 로아는 숙제만 하겠다. 앞으로 1일 1연재다! 끄아아아악! ㅈ같은 비아키스! 아르고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