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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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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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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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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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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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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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아닌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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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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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혹시.”


  홍련이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히루메를 불렀다. 홍련이 자신을 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히루메가 퍼뜩 놀라며 홍련을 바라본다.


  “저기 벚나무 아래 있는 여자의 석상에 대해 알고 있으신 게 있나요?”


  “아. 망부석 말인가.”


  “망부석?”


  망부석.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그대는 망부석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눈치인 듯하구나.”


  “예전에 그쪽 대장군께서 알려주셨지.”


  그렇게 말하며 금란을 바라보자 금란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게 맞나보군. 히루메가 팔짱을 끼며 곤란한 듯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망부석에 대해서는 첩도 잘 알지 못하니라. 알고 있는 것은 그저 첩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것뿐.”


  “그렇게나 오래된 물건이라고?”


  “그렇다고 해도 정말 수백 년의 세월을 보낸 물건은 아닐 것이다. 아마 마을의 노인 중 한 명쯤은 알고 있겠지. 가서 물어보는 게 어떻겠느냐?”


  “그렇게 말하라고 누가 그랬어?”


  “혹 그대가 망부석에 대해 물으면 닥터가 이리 대답하라 했네. 솔직히 이게 무슨 뜻인지 첩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네.”


  솔직한 녀석이다.



  *

  “어... 주인님께서는 망부석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신가요?”


  포티아가 앞서 걷는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망부석은 이름 그대로야. 지아비를 그리워하는 돌이라는 뜻이지. 떠나간 남편을 아내가 그리워하다가 돌이 되어버렸다는 전설.”


  “...”


  홍련이 흘깃 언덕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신경 쓰이나?”


  “네... 조금 신경 쓰이네요...”


  “그런데 주인.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이제 다음 지역으로 가는 거야?”


  “아니. 우선은 동네에서 노인 NPC를 찾는다. 히루메가 그랬지. 아마 한 명쯤은 저 망부석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의 말에 홍련이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조사하시는 건가요?”


  “그리 대단한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저 망부석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히루메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아마 사이드 퀘스트 정도 아닐까?”


  솔직히 찾지 않고 그냥 간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을 것 같다만 홍련이 신경 쓰여 하니. 그리 바쁘지도 않고.


  “우선은 탐문이다. 각자 흩어져서 망부석을 조사해보고 한 시간 뒤 망부석 앞으로 모이자. 급한 일이 있으면 채팅으로 말하고.”



  *

  한 시간 뒤.


  마리아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망부석 앞에 모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한 명씩 도착할 때마다 망부석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리아는 왜 안 오는 거야? 채팅이라도 보내봐야 하나?”


  “아! 저기 오네요!”


  저 멀리 마리아가 힘겹게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길을 달려 올라온 마리아가 간신히 호흡을 가라앉혔다.


  “뭐 발견한 거 있어? 참고로 우리는 아무도 알아낸 게 없어.”


  “하아... 하아... 저기... 마을 끝에서 홀로 농사지으시는 할머니가...”


  “멀리도 갔다 왔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무언가 알아낸 것이 있다는 소리겠지. 홍련의 눈이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망부석은 100년 전에 떠나간 남자를 그리워한 여자였다고 해요. 보부상인 남자가 떠나며 돌아오면 정착해 혼례를 올리자고 여자와 약속을 맺었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군. 여자는 언덕 위에서 남자를 기다리다 돌이 돼버렸고.”


  “죄송해요. 뻔한 이야기죠?”


  뭐, 망부석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하긴 했다. 망부석에 관련된 이야기가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나.


  “대충 예상한 이야기이긴 한데, 시대를 알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네. 100년 전이라...”


  “사령관. 여기 이상한 게 있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팬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망부석 앞에 서서 무언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데? 뭐 발견한 거라도 있어?”


  팬텀의 옆으로 가니 팬텀이 망부석의 꼭 쥔 주먹을 보며 말했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는 듯합니다.”


  팬텀의 말에 파티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어 망부석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 야 야! 밀지 마! 한 명씩 보자고, 한 명씩!”


  허나 그런 나의 말에도 그녀들은 물러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그녀들이 한 번씩 다 돌아보고 나서야 간신히 손을 살필 수가 있었다.


  “흐음... 확실히 뭔가 쥐고 있기는 하네. 종이인가?”


  “긴 꼬챙이를 이용하면 꺼낼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한번 해 볼까요?”


  “아니 그러다가 찢어지면 안 되니까. 이 정도면 내 게이트로 빼낼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손바닥 위에 작은 게이트를 만들었다. 작은 게이트 너머로 꼬깃꼬깃 접힌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종이를 꺼내려다 문득 등 뒤가 흉흉해 뒤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종이 꺼냈다고 궁금해서 달려들지 마라. 잘못하다가 종이 찢어지니까.”


  그렇게 말하자 일곱 명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피했다. 이것들이...


  혹 녀석들이 달려들까 조심스레 종이를 꺼내 펼쳐보자 펼쳐진 종이 위로 쓰인 글이 눈에 들어왔다.



  뒷산 그믐골 밤마다 슬피 우는 여우는 그제 지아비를 잃은 과부일진대


  눈꽃 핀 고목 아래 처녀는 어찌 눈물을 삼키기만 하는가.


  흘리는 눈물 보여 떠나가는 이 발걸음 잡을 수 없다며


  홀로 떠나가는 님 손에 꽃 한 송이 들려 보내고 눈물과 함께 삼킨 약조.


  달 차기 전 돌아오겠다 떠나간 내 님 벚꽃이 피어도 돌아오지 않으매


  홀로 나무 아래 지키는 처녀, 님을 기다리는 것이 망부석과 다름없으니


  떠나가신 님이여, 손에 쥐어진 꽃을 보신다면


  가신 발걸음 돌려 망부석에게 꽃을 돌려주러 오세요.


  떠나간 정인 울지 못하는 처녀 품의 꽃을 고쳐 줄 그날까지


  아아 나는 눈물 흘리지 않으리로다.



  “시?”


  “떠나간 남자를 그리는 시 같죠? 여자가 직접 쓴 글일까요?”


  홍련이 옆에서 내가 든 시를 흘깃흘깃 바라보기에 그녀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종이를 받아 시를 읽는 홍련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막 가슴에 와닿고 공감되는 그런 시인가?”


  나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홍련이 눈시울을 훔치며 말했다.


  “아니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내게 다시 돌려준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시, 절대 공감하고 싶지 않아요.”


  눈물 젖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머쓱해져, 사실은 조금 부끄러워져 그녀의 눈을 피해 종이를 다시 펼쳐 시를 읽어보았다.


  떠나간 남자


  망부석


  꽃


  옷고름


  “알았다.”



  *

  답 맞추기에 들어가 보자.


  떠나가는 남자에게 꽃을 건네준 여자.


  망부석에게 꽃을 돌려주러 오세요,


  “단순히 빨리 자기 곁으로 돌아와 달라는 말 아닌가요?”


  “그렇지.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니라 꽃이야.”


  꽃은 시드는 법. 꽃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보통 시들기 전의 꽃을 말하는 것이겠지.


  이 시대에 조화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처녀가 손에 넣을 정도로 값싼 물건은 아닐 터. 보통은 생화겠지.


  하지만 떠나가는 남자의 발걸음 붙잡기 싫어 눈물마저 삼키는데 서둘러 돌아와 달라며 생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금세 시들어 버리는 꽃은 남자에게 부담이 될 테니.


  꽃을 고쳐 달라는 말.


  조화가 아닌 이상에야 꽃을 고치지는 않는다.


  시들지 않지만 고칠 수 있는 조화는 아닌 꽃.


  여기까지 오면 이 시에서 나온 꽃이 진짜 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꽃이 아니면 뭔가요, 사령관?”


  “처음 망부석을 보고 포티아가 했던 말 기억 나?”


  [헤에. 이게 옷고름이군요. 그런데 옷고름 한쪽이 지나치게 짧지 않나요? 매듭 묶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 옷고름 한쪽이 지나치게 짧다.


  마치 가위로 잘라낸 것처럼.


  그렇다면 잘라낸 옷고름 한쪽은 어디로 갔는가.


  “그래. 남자의 손에 쥐여준 꽃이 바로 옷고름이지.”


  떠나는 남자에게 옷고름을 쥐여주며 이리저리 떠돌다 옷고름을 보고 자신이 떠오르면 곁으로 돌아와 달라는 표시.


  그리고 이곳까지 오는 도중 보았던 특이한 것.


  100년 전 벌어진 전쟁 이후 나타난 죽지 않는 괴물.


  오른손을 꼭 쥔 채로 이곳저곳 배회하는 고향을 잃은 괴물.


  망향자.


  “그 오른손 안에 뭐가 있을 것 같아?”



  *

  고요한 달빛만이 내려앉는 짙은 숲. 숲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산허리는 온통 상사화 꽃밭이라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 흐드러지게 핀 상사화 꽃밭 한가운데 산허리 걸린 달을 지금이라도 삼킬 듯 커다란, 허나 어딘가 서글픈 듯 멍하니 달을 바라보는 괴물이 있었다.


  손에 들린 것 잃을 수 없다는 듯이 오른손을 꼭 쥔 채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괴물을 유인하는 일은 팬텀과 아탈란테 두 명만 데려가기로 했다. 


  “작전대로 간다.”


  나의 나지막한 말에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아탈란테가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와 팬텀이 그 뒤를 따라 달려 나갔다. 다리 곁으로 상사화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괴물이 달에서 고개를 돌려 빠르게 달려오는 아탈란테를 바라보았다. 허나 괴물이 움직이는 것보다 아탈란테가 괴물을 방패로 쳐내는 것이 더 빨랐다.


  콰앙!


  중장비끼리 충돌한 듯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괴물이 나동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팬텀이 던진 섬광탄이 괴물의 눈앞에서 폭발했다.


  번쩍하고 빛이 터져 나오고 괴물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동그라진 괴물이 눈을 붙잡으려 할 때 아탈란테가 달려 나가 괴물의 오른 손목에 창을 찔러넣었다. 날카로운 창이 괴물의 손목을 뚫고 땅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내가 검을 휘둘러 괴물의 오른팔을 잘라내었다.


  “됐다!”


  나와 팬텀이 달려들어 굳게 쥐어진 괴물의 오른손을 억지로 펼쳐내었다. 어찌나 굳게 쥐어져 있었는지 온 힘을 다했는데도 손가락 하나만 간신히 필 수 있었다.


  그리고 벌려진 주먹 사이로 분홍색의 낡은 천이 하나 보였다.


  팬텀이 재빨리 허리를 숙여 옷고름을 쥐었다. 팬텀이 몸을 일으키는 것보다 빨리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뒤로 몸을 던졌다.


  콰앙!


  방금까지 팬텀이 있던 곳에 엄청난 속도로 주먹이 날아왔다. 괴물의 주먹에 잘린 오른손이 짓이겨졌다. 괴물이 몸을 일으켜 우리를 바라보았다. 잘린 오른손은 벌써 재생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옷고름 줘. 네가 저걸 맞으면 진짜 한 방에 죽을 것 같으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움직임은 제가 더 빠르니 제가 옷고름을 드는게...”


  “어차피 나 정도 속도만 돼도 저 괴물 공격은 문제없이 피할 수 있어. 문제는 예상치 못할 상황이지.”


  “그렇지만...”


  “거참 말 많네.”


  팬텀의 손에서 옷고름을 억지로 빼앗았다. 그리고 팔 힘만으로 억지로 팬텀을 공중으로 던지고 재빨리 굴러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괴물에게 달려들려는 아탈란테의 허리를 왼팔에 단단히 끼고 손에 쥔 옷고름이 괴물에게 잘 보이도록 한번 흔들어준 후 몸을 돌려 달아났다.


  “망부석 앞까지 달린다, 가자!”


  쫓아오는 괴물을 등지고 흐드러지게 핀 상사화 꽃밭을 달려 나갔다.



  *

  괴물이 우리를 놓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망부석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괴물의 주먹이 닿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며, 던져진 돌과 나무를 피하고, 괴물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싶으면 눈앞에서 옷고름을 한번씩 흔들어 시선을 끌었다.


  괴물은 정말로 나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팬텀에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가 옷고름을 들겠다고 했지만, 괴물의 주먹에 집채만 한 바위가 단번에 부서지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저 주먹이면 아탈란테 말고는 전부 다 한 방일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괴물을 유인한 것도 세 시간이 넘게 흘렀다. 슬슬 망부석과도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의 집중력에도 한계가 다가왔다. 괴물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나를 쫓아오던 괴물이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불안한 듯, 무언가가 떠오른 듯 거친 숨을 몰아쉬던 괴물이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더니 나무를 부수며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저거!”


  그때, 음성 챗으로 숲의 절벽 위에서 상황을 살피던 홍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길이면 망부석까지 직선거리에요!]


  “길이 없는 곳도 막 부수고 지나간다 이건가!”


  저 괴물보다는 빨리 망부석에 도착해야 한다. 퀘스트 완료 조건이 어떤 것인지 모르니 혹시 모를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가볍게 뛰어올라 나무 위로 올라탄 후 나무를 징검다리처럼 밟고 홍련이 있는 절벽 위로 향했다.


  절벽 위 홍련의 앞에 선 후 다른 파티원들에게 최대한 빨리 망부석 앞으로 달려가라고 한 후 홍련의 손에 옷고름을 쥐여주었다.


  “이걸 왜 저에게...”


  “내가 가지고 있다가 놓치면 안 되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옷고름을 받는 홍련을 공주님처럼 품에 안아 들고 숲을 부수고 달려가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사령관님. 설마...”


  “꽉 잡으라고.”


  “잠시만요. 굳이 저를 이렇게 데려가시는 것보다는 저는 따로 가는 것이이이이.. 꺄아아아아악!!!!”


  드물게도 당황한 홍련을 품에 단단히 안은 채 괴물을 쫓기 위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령관님.”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급해서 그런 거야, 급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내게 쏘아붙이는 홍련을 달래며 망부석 앞에서 언덕 아래를 내려보았다.


  저 멀리 가라앉는 달을 등진 채 괴물이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이 망부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올 때마다 그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마치 파도와 만난 모래성처럼.


  그럼에도 괴물은 멈추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망부석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그가 우리 앞에 멈춰 섰을 때는 괴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조금 마른 남자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홍련을 바라보았다. 홍련이 남자에게 다가가 그에게 옷고름을 내밀었다. 천천히 팔을 뻗어 힘겹게 홍련의 손에서 옷고름을 가져간 남자가 비척비척 걸어가 망부석 앞에 섰다.


  팔이 무거운 듯 힘겹게 들어 올린 남자가 간신히 망부석의 꼭 쥔 손 위에 옷고름을 얹었다. 분홍색 옷고름이 망부석의 손에 걸려 흐르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아아...]


  말을 채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한 채 남자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빛이 되어, 바람이 되어.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오랜 시간이 걸려 당신의 곁에 돌아왔다는 듯이.


  망부석의 몸도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돌이 되어, 모래가 되어.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당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망부석이 무너지기 전, 가는 눈물 한 방울이 처녀의 뺨을 타고 이슬처럼 흩어졌다.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이 허물어지고, 저물어가는 달빛을 받아 흔들리는 벚나무 아래에는 부드러운 바람과 따듯한 돌만이 남아있었다.


  작게 눈물을 훔치는 홍련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어때, 슬픈 이야기인가?”


  “네.”


  나의 물음에 작게 대답한 홍련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절대로 공감하고 싶지 않은 슬픈 이야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