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다른 자매들은 항상 말하고는 했다. 그분은 우리와는 근본이 다르다고, 항상 고고히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 볼 뿐...

결코 우리들의 곁에 내려오지 않는 별과 같은 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를 알아봐주길, 쳐다봐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저 그분의 휘하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의 존재는 나에겐 늘 손에 닿지않는 밤하늘의 별처럼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으으으... 덥슴다...."


"그러게 말이다... 야 121."


"일병 브라우니 121... 부르셨슴까.. 이프리트 병장님..."


"너 막사 가서 파라솔좀 챙겨와라... 사정 말하면 실키가 줄거야. 가서 하나 받아와."


"그, 그래도 경계작전인데 빠지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아, 멀리 가는것도 아니고 왕복 해봐야 20분 거리잖아. 거기에 연대장님은 다른곳에 훈련 가셨고

임펫 상사님은 장담하건데 귀찮아서 절대 지통실 밖으로 안나오셔. 마리 대장님은 사령관 각하랑

지휘관회의 가셨고. 아무도 없을거라니까. 그보다 레프리콘 너 미쳤냐? 말대꾸하게?"


레프리콘 상병과 이프리트 병장 그리고 나, 이렇게 3인이 경계를 서고있는 초소는 절묘하게

나무그늘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레프리콘 상병이 말려보려 했지만 짬으로 미는데 무슨 방법이 있으랴

그냥 젖탱이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슴다.."


"빨리 갔다와라. 그늘에서 좀 쉬게."


'으으... 결국 다녀와서도 나혼자 독박 아님까?'


마지막 말은 그저 내 생각으로 남겨놓고 무장을 챙겨 왔던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5시간을 넘게

이 땡볕 아래에서 경계를 서야한다. 이프리트 병장의 말대로 피서용 파라솔이 없다면 혹시 있을지 모를 

철충의 기습 이전에 강렬한 한여름의 햇볕에 익어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무더운 날씨에 늘 몸에 착용하는 전투조끼, 그리고 총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이프리트 병장은 빨리 다녀오라 했지만 솔직히 기력도 후달렸고 무엇보다 달리기 싫었다.


이 더운날 파라솔까지 짊어매고 다시 이 거리를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뛰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하아... 빨리 나도 진급하고 싶슴다..."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 쯤은 아무리 멍청한 나도 알고있다. 육군의 주력 보병, 쉽게 말하자면 그저 총알받이다.

평시에도 소모품인데 하물며 지금은 전시.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샘이다.


언제든 찍어내듯 수를 늘릴 수 있는 우리들의 대접이 이토록 좋아진 것도 몇년 전 부임한 마지막 인간님.

즉 사령관 각하 덕분이었다.


"별나신 분이지 말임다."


별나다. 딱히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다른 부대의 전우들에게 들어본 과거의 인간님들은

우리들을 유용한 도구, 소모품 정도로만 여기셨다고 했다. 덕분에 처음 취임식때 멀찍이에서 어렴풋이 본 사령관 각하를

보며 얼마나 긴장했는가. 하지만 그가 취임식에서 했던 말들은 예상 밖의 것들이었다. 그 중 유독 기억에 남았던


'난 너희들을 진심으로 내 가족처럼, 오랜 친구처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겠다.' 라는 말.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별 의미없이 하신 말씀인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령관 각하의 말에 거짓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불침번 근무를 서던 도중이었다. 그 날은 많은 전우들이 매복에 당해 죽거나 중상을 입었던 날이었다.

별 생각없이 순찰을 돌며 의무대에 실려가거나 하얀천에 덮혀 영현처리를 기다리는 전우였던 자들.. 그런 자들 중에

내가 섞여있지 않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그저 주어진 임무를 기계의 부속마냥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흐윽...!! 흐읍...!!"


사령실의 한 구석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슬쩍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사령관 각하가 구석에 앉아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고 계셨다. 사령관 각하의 앞에는 전사한 자매들의 사진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사진 한장 한장을 쓸어내리며 이름과 식별번호를 암기하고 계셨다.

그때 받은 감정들은 충격, 감동, 슬픔, 연민, 고독... 너무도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그때부터 사령관 각하를 위해

모든것을 기꺼이 내놓으리라 결심했다. 





"아아, 사령관 각하 생각을 했더니 눈앞에 사령관 각하의 헛것이 보임다.."


"아이고! 저녀석들 포기를 모르네! 응?"


"에...? 에....?! 꺄아악...읍!!!"


"뭐, 뭐야! 왜그래? 조, 조용히해! 들키겠어!!"


터덜터덜 걸어가다 갑자기 튀어나온 사령관 각하는 헛것이 아니었다. 실물이었다. 너무도 강렬한 충격에 비명을 지르자

사령관 각하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날 끌어들여 숲속의 구석진 곳으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읍..!! 으읍!!!!"


버둥거리는 나를 무시하고 한창을 끌고가던 사령관 각하가 주변을 살펴보다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좀만 조용히 해 줘. 지금 지휘관 회의에서 농땡이치고 도망나와서 날 찾는 아이들이 많아.

당황해서 끌고오긴 했는데... 일단 입 막은거 풀어줄테니 조용히 해! 알겠지?"


나는 사령관 각하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솔직히 무슨 상황인가 이해조차 가지도 않았지만

지금껏 사령관 각하를 2년 넘게 모시면서 지금이 가장 지근거리에서 본 것이었기에 심장이 너무도 쿵쾅거려

재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필사적으로 이성을 부여잡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스,승리! 사령관 각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일병 브라우니, 식별번호..!"


"쉿!"


"읍!"


나는 사령관 각하의 제지에 바로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하라 하명하셨는데 너무 긴장해서 잊어버린 것이다.


"휴, 다행히 따라오는 녀석들은 없나보네. 간신히 따돌렸나...."


"저, 사령관 각하..."


"아, 만나서 반가워. 너 인식번호가... 121번 이었지?"


"아, 네!"


상상 이상의 충격이 내 마음을 강타했다. 설마하니 사령관 각하가 일개 브라우니들의 개체번호를 기억해 주실 줄이야.

그런 마음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하아~ 너도 못난 사령관이라 생각하지? 이렇게 회의를 떙땡이치고 도망나오고 말이야."


바위에 털썩 등을 기대로 편하게 앉아 하늘을 보며 말씀하시는 그의 모습이 유독 외롭게 느껴졌다.

그의 한없이 넓고 듬직해 보였던 어깨가 작게 느껴졌다.


"그, 그렇지 않슴다! 사...사,사령관 가,각하께선 추,충분히! 머,멋지고...에 또... 조,존경스러운 분임다!"


솔직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기에 말을 엉망진창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에 사령관 각하께서 작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하하하! 멋지고 존경스럽다라... 이거 낯간지러운걸? 너무 고평가 하는거 아니야?"


"아, 아님다!"


"방금까지도 회의에서 실컷 털리다가 왔다고. 애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여름 휴가를

계획했는데 지휘관들 마음에는 들지 않는 모양이더라고. 방금까지도 실컷 혼나고 있었다니까?"


방금까지의 위축되고 고독해 보이던 표정은 어디에도 없고, 처음 뵈었을 때의 그 강인하고

멋진 모습의 사령관 각하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난 사령관 각하가 너무 고되고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주제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사, 사령관 각하!"


"응?"


"제, 제 앞이라면 언제든 우셔도 됩니다! 그, 그...! 예, 예전에 우연찮게 보고 말았슴다!

그, 전우들을 잃고.. 우시던 모습 말임다! 정말 너무 괴롭고 히, 힘들땐 울어도 된다고 배웠슴다!

저, 저는 머,멍청해서... 바보라서! 기억력이 안좋으니 금방 잊슴다! 그러니...!"


거기까지 말했을때 사령관 각하의 표정은 어딘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때 정신이 화들짝 들며

지금 내가 무슨 망언을 입밖으로 내었는가 깨달았다.


이 무슨 실례되고 건방진 말이란 말인가. 일개 병사 주제에 감히 사령관 각하에게, 그것도 절대 복종해야 할

최후의 인간님에게 이 무슨 망언인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당황하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죄,죄..죄송함다!! 제 주제에 가,감히 실언을..!!"


사령관 각하의 한쪽 손이 올라가고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충격에 대비하였다.

귀싸대기 한두대 정도로 끝나다니 사령관 각하의 자비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예상되는 충격이 아닌 다른 충격이 몰려왔다.


"사, 사령관 각하...?"


"고마워.. 정말 고마워. 역시 울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힘이라도 얻으니 참 마음이 놓인다."


사령관 각하가 날 강하게 끌어안고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계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얼어붙어있자 사령관 각하는 계속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항상 무서웠거든. 너희들이 날 원망하지는 않을까 하고. 내가 무능해서 죽거나 다친 전우들을

생각하며 그저 마지막 남은 인간이니 따르는 건 아닐까 했어."


"가, 각하..."


나는 갈곳을 잃은 두 손을 조심스레 사령관 각하의 허리에 감아 안아주었다.

사령관 각하는 한동안 내 품에서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이것저것 힘들었던 것들을 말씀하셨고

나는 그저 묵묵히 들으며 사령관 각하를 지탱하며 서 있었다.





"미안해, 너도 근무가 있었다며. 나중에 혼나는거 아니야?"


"그건... 어쩔 수 없지 말임다... 군대란 상급자가 젖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하는 곳임다... 괴롭슴다..."


"그 상급자로서 듣기 거북한 말이네."


"그보다 스팸이 떨어진게 더 걱정임다. 그게 마지막이었지 말임다."


사령관 각하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까먹은 비장의 스팸이었다. 아쉽지만 사령관 각하와 나눠먹을 수 있다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니, 이 빈캔은 따로 보관하여 기념할 생각이다. 세상 어느 브라우니가 사령관 각하와 직접

스팸을 나눠먹는 호사를 누려보겠는가 싶었다.


"이건 나중에 내가 갚도록 하지, 이래뵈도 사령관이라고."


"히히히, 기대하겠슴다."


하지만 사령관 각하의 말에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밤하늘의 별같은 사람이니까. 아마 오늘이 지나가면

모두 잊을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이들은 많지만 그가 내려줄 수 있는 사랑은 한정적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에게 힘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마지막 스팸 한 캔 따위야

충분히 가치를 하고도 남은 것이다.






"어휴... 그래서 그때 파라솔 받으러 갔다가 졸아서 2시간을 넘게 길바닥에서 잤다는 거에요? 정말, 

철충들이 없었던걸 다행으로 여기세요. 이번엔 이프리트 병장님이 진짜 많이 참으신 거라구요? 알기나 해요?"


"으우... 죄송함다."


나는 그날 사령관 각하와의 만남을 끝으로 2시간만에 빈손으로 돌아가야했고 당연히 분노한 이프리트 병장님의

갈굼을 몇시간이나 받아야 했다. 찾으러 백방으로 돌아다녔던 레프리콘 상병님도 걱정이 많으셨는지

엄청난 갈굼이 이어졌다.


사령관 각하와 만나서 이야기 했다고 말해봐야 믿지도 않을것이고, 사령관 각하를 팔아먹는 일따위는 절대로

할 수 없었기에 난 홀로 며칠간을 갈굼의 지옥 불구덩이를 건너야 했다.


지금도 심심하면 모든 선임들과 동기들은 그때의 일로 열심히 타박을 주고 있었다.


"아무튼, 다음부ㅌ...."


"쉬엇!!!!"


"승리!!!"


""승리""


갑자기 뛰어들어 좌우로 도열하며 자리를 잡는 컴패니언 경호실 대원들과 지금껏 얼굴도 직접 본 적 없는

리리스 경호실장이 살벌한 표정으로 우리들의 생활관에 들어와 주변을 살핀 뒤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주변의 안전을 살핀 뒤 한쪽으로 비켜서며 열중쉬어 자세로 외쳤다.


"사령관 각하께서 오십니다."


모두들 경악하며 일제히 경례를 올리며 차렷했다. 나 또한 반사적으로 경례를 하고 있는데

사령관 각하가 들어오자마자 내 쪽으로 오시더니 스팸이 잔뜩 들어있는 봉투를 건넸다.


"자, 내가 갚는다고 했지? 121. 이 스팸들, 특별히 공수해 온 것들이라고. 귀한거다? 이거."


"가, 각하..."



저 밤하늘의 별이 어느날 내게 다가왔다.

잊지않고, 지나가는 짧은 별똥별이 아닌.

내 가슴속에 길게 타오르는 태양이 되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