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많이 다를 수 있음




"우리들은 음지에서 암약하며 찬란한 빛의 그림자로 활동한다.

하지만 영혼만은 양지를 지향하고 소리없는 헌신과 충성으로 늘 빛나는 달의 뒷면이 되리라."


"시라유리."


"맡겨주세요. 사령관님. 저희들의 고고한 달이 되어, 항상 밝은 빛만을 뿌려주세요.

달의 어두운 뒷면은.... 저희들로 충분합니다."


"....알겠어. 꼭 무사히 다녀와. 명령이야."






촤악!


시라유리의 얼굴에 갑자기 뿌려진 차가운 물에 정신이 돌아왔다. 잠깐 졸도했던 것일까. 그런 시라유리의 모습을 보며

오메가가 그 가증스러운 얼굴을 시라유리에게 들이밀었다.


"펙스에 숨어들어 오랫동안 기어다닌 좀벌레가 누군지 한참을 찾았는데.... 그게 너였다니."


"....무슨 소리신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걸까? 하아... 좋아. 나도 고문은 취향이 아니니까. 그저 몇가지만 말해주면 된다니까?"


특유의 도도한 표정으로 시라유리 앞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다리를 꼬고앉는 오메가. 그녀는 손에 어떤 스위치를

들고 앉아 있었다. 벌써 일주일을 넘게 이어진 고문, 그리고 지루한 취조시간. 시라유리에게 있어선 

마치 영혼을 갉아 먹히는 듯 말로 표현키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첫째, 네 작전 목표는 무엇이지? 아니, 어디까지 알아냈지?"


"....."


"둘째, 오르카 호의 정확한 위치는... 아니, 오르카 측은 우리 함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있나?"


"....."


"하아.. 도저히 말 할 생각은 없어 보이네, 아무튼.. 셋째, 네년이 항상 들고다니는 수첩. 그거 어디갔어?

거기에 적어놓았겠지. 네년의 기억모듈을 강제로 뽑아다 분석하고 싶지만... 네 반응을 보건데 그것에 대한

안전장치 정도는 해 두었겠지. 서로 힘들고 귀찮은 일은 피하자고, 우리가 그걸 찾도록 도와주면 적어도 이 고통은 끝내줄게."


마치 악마의 미소와 같이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목소리.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현혹되는 추태를 시라유리는 벌일 수 없었다.

시라유리는 지켜야 할 달님이 존재했으니까. 그 달의 빛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쯤, 미련없이...


파지지직!!!!


"꺄아아아아악!!!!!"


시라유리가 또다시 침묵을 지키고 있자 오메가가 가차없이 손에 쥐고있던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시라유리의 온몸에 도달하는 강렬한 전기충격.  마치 내장이 해집어지고 피부가 불로 지져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녀가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의자 팔걸이를 꽉 움켜쥐어서 때문일까. 모든 손톱이 으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까 뒤집혀져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아, 그래도 시라유리.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니니? 숨어들거면 완벽했어야지. 고작 이딴 반지 때문에

네 완벽한 위장이 걸렸잖아. 한심하지... 고작 그따위 쓰레기 같은 남ㅈ..."


"그 입 닥쳐. 찢어 버리기 전에."


오메가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주츰했다. 살기가 직접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다면 살기만으로도

온 몸의 살덩이가 뜯어져 나갔을 것이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네년 따위가 감히 뭐라고 하실 분이 아니야. 입 조심해."


"흐응~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고작 이따위 소꿉놀이 장난감에 마음을 빼앗겨서 중요한 임무에 실패하고..

한심한걸 한심하다고 해야지. 안그래?"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 오메가. 그녀는 시라유리의 방에서 찾아낸 서약반지를 들어올리며 시라유리를 조롱하고 있었다.

오메가가 보기에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적지에 항복한 것마냥 잠입해온 주제에

이따위 장난감을 소중히 여겨 몰래 들고오다니. 자살행위가 아닌가.


"그럼 다른건 다 필요없어. 그것만 말해. 오르카 호, 지금 어디에 있지?"


"크큭... 하하하하! 네년 보지 속에서 찾아봐. 노망난 노인네들에게 가랭이 벌려주느라 헐어버려서 그런지

네년이 자고 있을때 방으로 찾아가 쑤셔박았는데 모르고 자더라."


"이년이..!!"


파지지지지직!!!!


"꺄하아아악!!"


그 말을 끝으로 오메가는 가차없이 스위치를 누르고 최대의 위력으로 전기충격을 가하였다. 

시라유리는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아내느라 이를 꽉 깨물어 이빨이 바스러져 가루가 흩날릴 정도였다.





"지독한 년... 이봐, 저년 목숨줄 꼭 붙여놔. 절대 죽어서는 안돼. 자살을 시도할 지 모르니 감시 잘 해!"


"네."


오메가는 난폭한 발걸음으로 취조실 밖으로 나오며 다른 인원을 시라유리 감시에 맡겼다.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고문하고, 회유하고 옛 동료들을 이용해 설득도 해 보았지만 저 지독한 년은

묵묵부답, 도발엔 도발로. 상냥한 회유에는 비아냥으로만 일관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어떻게 버티는거지?"


오만한 그녀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충성심으로 저토록 버틴다는 것인가?

지금껏 구조를 위한 제스처는 커녕 오르카호는 숨어 있기에 급급했다. 확실히 오르카호는 시라유리를 버렸다.


시라유리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그녀는 일련의 목적을 갖고 오메가 이끄는 함대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오르카를 탈출하고 떠돌다

흘러들어왔다 씨부렸지만 첩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오르카호는 비교적 정확하게

펙스 함대의 위치를 알고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라유리가 긴 포류생활도 하지않고 찾아왔을리 없다.

거기에 교란의 목적으로 왔다기에는 통상적으로 흘리는 교란정보 또한 일절 흘리지 않았다.

이는 교란목적이 아닌 무언가 탈취, 혹은 다른 부분에 목적이 있다는 심산.


거기에 이해는 잘 안가지만 가장 숨겨야할 물건을 포기하지 못하고 몰래 챙겨왔다는 것이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진짜 목적은 한동안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아, 그저 바이오로이드 들의 치맛폭에 감쌓여 숨어지내는 나약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자신이 가장 아까는 녀석을 첩자로 보낼 생각을 하다니.


듣자하니 오르카 호에는 서약의식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사령관이 가장 마음을 주는

녀석들에게 반지를 준다는데...


"부질없어."


부질없다. 오메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강자가 모든것들을 갖는 법이다.

하물며 한 군의 지도자 씩이나 된다는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반지를 준다?

옛 멸망전 인간들이 하던 혼인의식도 아니고...





오메가는 이것저것 밀린 업무를 보면서 향후 진행방향을 결정하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배신자년 알파 덕분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지만 그래도 보기좋게 탈출해서 지금은 오르카호를

추격하는 중이다. 나름 이것저것 해보기 위해 첩자를 심어놓은 모양이지만...

그 첩자도 잡았다. 


"하아.. 밖에 누구없나?"


"부르셨습니까?"


"전등을 확인해봐. 깜빡거리는 것이 거슬리는데."


"네."


깊은 생각을 방해하는 전등이 거슬렸던 오메가는 밖에 대기중이던 인원을 불러 전등의 점검을 시키고

다시 업무를 보려는데 기술요원이 전등을 떼어내자 무언가 수첩 같은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응?.. 이, 이건!"


오메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 수첩을 주워들었다. 한 손에 딱 들어올만한 작은 수첩에는

어떤 사진이 끼어있었다.


"뭐야? 아.. 그 남자의 사진인가."


사진은 업무를 보는 그 나약한 남자의 옆모습을 몰래 찍은듯한 사진. 사진의 뒷편엔 좌표로

추정되는 숫자와 합류지점 이라는 글씨가 작게 쓰여있었다.


"찾았다."


오메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첩과 사진을 챙겨들었다. 과연 그년이 한 말이 다 거짓은 아니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바로 코앞에다 숨겨놨었다니.. 잘때 숨어들었다 했나? 솜씨는 좋은년이네.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네 입냄새를 맡는것도 충분히 힘든데..."


"아직 기운이 남았나보네, 시라유리.. 걱정마 네년의 수첩을 찾았어. 지금 합류지점으로 가는 중이지."


"뭐, 뭐라고...?"


충격을 받은듯한 시라유리. 하기사 오메가도 자신의 방을 찾을 생각까진 하지 않았기에 시라유리가 지금처럼 협력적이지

않은 이 상확에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도 찾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찮은 계기로 찾았으니...


"그럼 그곳에서 잘 봐. 네 소중한 남자가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거의 발악하다시피 의자에 묶여 날뛰고 발버둥치는 시라유리를 뒤로한채 오메가가 거의 모든 주파수에

시라유리가 고문받는 장면과 오르카호와 그 사령관을 조롱하는 내용의 무전을 계속 보냈다.


한 10여분이 지난 뒤, 드디어 월척이 낚였다. 오르카호의 사령관이 견디지 못한 모양인지

먼저 오메가측에 화상연락을 걸어왔다. 합류점 일대를 계속 은밀히 돌아다니며 관측하는 중이니

오르카호가 나타난다면 바로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오메가."


"안녕하십니까? 인간님."


"시라유리는 살아있나?"


"네, '목숨만은' 붙여 두었지요."


콰득-


이를 꽉 깨물며 필사적으로 분노를 삼키는 그의 모습을 보니 오메가는 하반신의 복부가 뜨뜻하게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성이 오만한 그녀에게 이 남자가 괴로워하고 굴복하는 모습은

그녀에게 색다른 쾌감이 되었다.


"하아, 지독한 년이었지요. 손톱을 뽑아도. 바늘로 그 자리를 찔러도, 이빨을 생으로 뽑아도.

전기로 지져도...."


"그만!! 그만해!"


"어머, 무서워라. 후후훗."


"....긴말 할 필요는 없겠지. 그녀를 보여줘."


오메가가 슬쩍 옆으로 물러나고 온 몸이 벌거벗겨 져 피투성이가 된 시라유리가 의자에 묶여 구속되어 있었다.


"시라유리..!"


"저도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항복하세요. 휘하의 노리개들은 살려드리죠."


".....크흑!"


시라유리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괴로워하는 사령관을 보며 오메가는 시라유리의 수첩을 꺼내들어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섞어 조롱하듯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사령관님이 날 처음으로 불러주셨다. 너무도 기대된다.' 어머나, 소녀스러운 감상평들 이네요. 인간님."


사령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시라유리에 못박혀 있었다.

그때 시라유리가 사령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를 향해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발사코드를 승인하세요. 모실 수 있어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저희들의 희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세요.'


사령관은 시라유리의 입모양을 보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시라유리는 필사적으로 유언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들은 음지에서 암약하며 찬란한 빛의 그림자로 활동한다.

하지만 영혼만은 양지를 지향하고 소리없는 헌신과 충성으로 늘 빛나는 달의 뒷면이 되리라.'


080기관의 비공식적인 문구, 시라유리가 그동안 품어온 신념.


'괜찮아요. 사령관님.. 저희들의 존재는 잊으세요.'


가슴을 찢는 심정으로 사령관이 합류지점으로 써있던 좌표에 폭격승인을 보냈다.

폭격 담당은 둠 브링어 메이를 필두로 전술핵 투발이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합류지점 따위는 없었다. 따라서 시라유리가 남겨둔 합류지점이란 오메가의 함대를

그곳으로 유인하겠다는 뜻. 탈출 가망이 없으니 주력 함대라도 끌고 동귀어진 하겠다는 것이다.

오메가가 탑승한 함선은 방호력이 우수하고 따로 활동할테니 오메가를 죽이거나 사로잡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오메가 휘하의 주력 함대를 날려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처음부터 수첩을 결국 찾을만한 위치에 숨긴것도, 들킨 수첩을 당황한듯 발악한 것도

모두 시라유리의 계획이었다. 정체를 들킨 것 자체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지만 그래도

혹시모를 사태를 대비해 플랜B를 준비해 두었다.


탈출해서 돌아오라는 사령관의 명령은 지키지 못하겠지만...

시라유리에게 있어서 사령관의 승리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계속해서 제 잘난듯 망언을 늘여놓고 있는 오메가는 신경쓰지 않은 채 사령관은 시라유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라유리 또한 화면 넘어에 있을 그를 생각하며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돌아오라는 명령...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작전에 실패한 요원의 최후는 늘 같았어요.. 죄책감 갖지 마세요. 사령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령관은 슬픈 눈빛으로 시라유리의 마지막 입모양을 주시했다.

단 한 마디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안녕히... 그러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뭐라고 하신거죠?"


사령관이 중얼거리자 오메가가 화면 너머에서 되물었다.

최후의 작전 진행 코드 '그러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사령관이 중얼거리자

오르카호의 해치가 열리고 둠 브링어가 출격하기 시작했다.


시라유리의 희생으로 얻어낸 기회다. 실패는 없다.

사령관의 단단한 명령을 받았던 메이가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이행하러 출격했다.


사령관의 머리속에 그녀와 만나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 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와중에도 이것저것 떠들며 항복을 권유하는 오메가를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며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곱게 죽이진 않으마. 내게 잡히기 전까진 꼭 살아있어라. 오메가."


살기어린 모습에 오메가가 주춤하고 사령관은 악귀같던 표정에서 온화한 표정이 되어

시라유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 다른 이들이 널 잊어도, 난 잊지 않을께."


사령관은 그 말을 끝으로 반지를 벗어 화면에 보이도록 책상 위에 올려둔 뒤, 몇 초 있다가 통신을 끊었다.





어둠속에서 빛을 지향하고 달의 뒷편에서 달빛의 그림자 역을 맡으며 살아온 나날.

태어나면서 부터 선택지 따위는 없었고 그저 운명이기에 순응 하였지만

그 덕분에 사령관을 만났다.


"후회하진 않아요. 잊지 않으신다는 말... 감사합니다..."


시라유리가 그 말을 끝으로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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