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누구나 꿈은 있다. 단순히 먹고 싶은걸 마음것 먹는 정도의 소박한 꿈부터 세상 모든 재물을 갖고 싶다는

아주 탐욕적이고 야망 넘치는 꿈까지.. 하지만 나 커넥터 유미 17번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단 하루라도 그대의 모습을 더 보고 싶다는 것. 그대가 기억하지 못해도, 그대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단 하루, 몇 시간 만이라도 그대와 함께, 그대의 옆에서 걷고싶다.


그것이 내 꿈이다.





"으으...!! 잡혀라! 잡혀라!!"


사방 팔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폭음이 울려퍼지는 전장, 딱히 최전선도 아니고 철충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일평생을 전투와는 큰 관련이 없이 지내온 내게는 큰 공포였다.


콰앙-!!


"꺄아악!!"


전방 100여미터 앞에서 큰 폭음이 들리더니 3층짜리 작은 상가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주저앉았지만 이내 용기를 쥐어짜 다시 일어서 통신망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문제인거야~~!!"


이번 전투에서 내 임무는 통신망의 설치와 향후 작전진행의 편의를 위해 통신망을 안정도 높게 확보하는 것.

직접 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다른 이들만 못해도 나름 중요하고 핵심적인 임무라는 자부심으로 지금것 살아왔다. 


총도 잘 못쏘고 다른 이들처럼 육체적으로 강해 싸움을 잘 하는 것 도 아니지만 필사적으로 안테나에

메달려 유선망을 연결하고 혹시 유선망이 손망실 될 때를 대비해 무선망의 세팅도 끝내야한다.


"사령관님을 위해 꼭 성공 할거야...! 꼭 해내야해!"


이번 임무는 늘상 하던 평화로운 최후방에서의 임무가 아니었다. 전쟁전 인간님들이 모두 살아계실 적에도 통신망을 관리했지만

애초에 전투를 상정한 모델이 아니었으니 평화롭기 그지없는 산골 오지 등에서 통신망을 관리하며 살아왔다.


도심권에 배치된 다른 자매들을 부러워 한 적도 있었지만 철충들이 내려온 뒤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도심권에 배치되었던 자매들은 모두 철충에게 죽었다. 그리고 산골 오지에 박혀있던 나는 살아남았다. 

잔혹하게 죽임당한 그녀들도 그저 소박한 꿈을 갖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루, 또 하루. 이지적이고 유능한 도심의 커리어 우먼. 그 꿈을 향해 달렸지만 모두들 허무하게 죽었다.

그렇게 수십년을 떠돌다가 오르카호에 타게되었고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자 마지막 인간님인 사령관이 취임 하셨다.


"늘 멀리서만 바라봤지만..."


필사적으로 통신설비를 설치하고 정비하며 무서움을 떨치기 위해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했다.




"유미씨, 저 분이 사령관 각하신가봐요! 멋지지 않나요?"


"그러네요..."


첫 만남. 첫 만남은 아주 먼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렘린 옆에서 나는 그녀의 대답에

멍하니 대답했다. 그동안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은 믿지 않았지만 아주 먼발치에서 본 사령관님을 보며 난 첫 눈에 반했다.

1시간 가량 이루어진 취임식이 너무도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옆에 함께 있고싶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남은 인간님이자, 오르카호의 유일한 사령관. 나와는 근본이 다르고 신분이 달랐다.

그 후로도 아주 가끔 업무상의 일로 가까운 곳에서 볼 기회가 있었지만 서로 대화를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그는 늘 바쁜 편이었고 난 먼저 살갑게 말을 걸 용기가 없었으니까.


몇달이 흘렀을 까 사령관 컴퓨터의 인트라넷이 잘 안된다는 연락을 받아 사령관님의 개인 컴퓨터를 고치게 된 일이 있었다.

물론 일부로 사령관님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대를 골라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와 단 둘이 있을 다시없을 기회였지만 막상 그를 곁에서 보자니 너무도 두려웠다.

그가 내 눈을 마주치지 않을까봐. 그가 내 작고 초라한 몸짓에 흥미조차 보이지 않을까봐.


"안녕? 에... 유미, 커넥터 유미 맞지? 개체번호는 17번!"


"에..? 아, 안녕하세요! 커,커넥터 유미입니다! 개체번호 17번 마,맞습니다!"


나는 항상 먼발치에서만 보던 그가 직접 인사를 건네고 내 이름과 개체번호까지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 일부로 그가 없을만한 시간을 피해 방문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사령실에 남아있었다.

당황하는 나를 바라보며 사령관님은 그저 밝은 미소로 내게 직접 손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항상 대화를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지. 미안해."


"아, 아닙니다!"


그 후로 작업하는 내 옆에 사령관님이 의자를 끌고와 앉은 뒤 이것저것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나또한 잔뜩 긴장했지만, 동경의 대상이자 동화속 왕자님 같았던 그가 이렇게 나와 이야기를 해주고

관심을 갖고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해 그럭저럭 사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아~ 되도록이면 모든 대원들의 이름과 개체번호를 외우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도 힘들어서 말이야.

과연 스틸라인쪽 아이들은 아직도 다 못외워서 결국 인식표를 눈에 띄게 걸고 다니라고 했지만서도."


"그, 그래도 대단하세요! 저희같은 마, 말단 부하들에게 까지 관심을 갖고 대해주시고.."


"음, 난 부하라는 표현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들어."


"치, 친구요...?"


사실 그의 발언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는 절벽의 꽃 같던 사람에게서 친구라는 표현은

정말이지 당혹스러울 정도의 단어선택 이었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눈빛이 진심이라는 것을 전해왔다.


괜히 뺨이 붉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로 서둘러 작업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있다가는 동요하는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큰 실례를 저지를 것 같았다.


"다, 다 끝났어요! 이, 이제 잘 될거에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저기...!"


"아, 안녕히 계세요!"


그가 무언가 더 말 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나는 서둘러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후다닥 밖으로 도망쳤다.

그 후로 얼마나 후회했던가. 더 친해질 기회였다고 다그치는 그렘린에게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저

맥주만을 홀짝였다.


'내 주제에 어울릴 리가 없잖아요.'


그렇다. 그는 사령관. 저 높은 곳에서 우리들을 지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난 오르카 호의 일개 통신 기술자.

급이 다르고, 신분이 달랐다. 그는 더 어울리는 반려가 있을 것이다. 난 그저 멀리서 이렇게 지켜만 봐도 만족했다.


'아니, 그걸로 만족해야해요.'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몇 주 뒤, 지금 이렇게 콩볶는 듯한 총소리가 울리고 간혹가다 포탄이 떨어지는

이 곳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통신망을 설치하고 있다.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었다.


전투공병들도 그럭저럭 통신망을 설치 할 수 있었지만 이런 전문적인 통신 기술까지는 갖고있지 않을테니

결국은 나같은 통신 기술자가 해야만 완벽하게 사령관님의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해내야 해! 그래야 사령관님의 작전이 원활하게 진행될거야!"


사령관님과 지휘관들이 이번 전투를 진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로 남는 부분이 통신이었다.

험준한 산악지대의 작은 휴양도시를 점령하는 이번 작전에서 벌어질 철충과의 고지전은 통신이 불안하여

작전 진행에 큰 어려움을 겪을것이 뻔했다.


그 부분을 사령관과 지휘관들은 걱정했고 난 포츈 언니를 통해 통신망 구축 임무에 자원했다.

그가 겪는 어려움을 해결 해주고 싶었다. 그가 하는 일들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서 자원했다. 몸짓도 작고, 그의 옆에 있기에는 한참 모자른 나지만..

이런 식으로 내 지식과 기술이 그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내가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나는 그 생각과 함께 필사적으로 통신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 성공했다.


"돼, 됐다! 연결에 성공했어!"


이제 남은건 철수하는 일이다. 이 통신망을 통해 원활하게 전투 부대원들 끼리 통신이 연결되는 것 까지 확인하고

나는 부랴부랴 짐들을 챙기고 아랫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곳은 포탄이 떨어지기도 하는 전방이다.


싸움도 못하고 전투 훈련도 거의 못받은 내가 남아있어 봤자 철충들에겐 가벼운 몸풀이 상대도 되지 못할 것이다.

대충 방어 역장을 통신 기기에 연결하고 역장이 작동하는 것과 통신망이 작동하는 것 까지 확인했으니 이제 철수 해야한다.


"하아! 하아!"


무거운 통신 장비들을 들고 내 몸뚱이 보다 조금 더 큰 가방을 짊어맨 뒤 달리는 일은 체력적으로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철충들은 포로를 잡지 않기에 죽어라 달렸다. 잡힌다면 분명 살해당할 것이다.


소박한 꿈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다 허무하게 죽어간 자매들 처럼.

하지만 그런 공포를 이겨내고 성공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계획에 내가 도움이 된 것이다.


"헤헤..!!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었어.. 내가..! 사령관님에ㄱ...!"


콰아앙!!


작전의 성공적인 진행에 기뻐할 사령관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달려가고 있는데 지근거리에서 포탄이 터졌다.

엄청난 충격파가 내 몸을 휘감고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아아.... 나... 사, 살아있나...."


눈을 떠보니 이미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인 밤이었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마 어딘가 잘못 된 모양이었다.


"으윽..!! 아, 아파아...."


몸에 힘을 주고 일으켜 볼 생각이었지만 복부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오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시선을 내려 복부를 바라보니 팔뚝만한 나뭇가지가 등을 통해서 복부를 관통해 박혀 있었다.

발을 움직여 보려 하자 발이 꿈틀 움직여졌지만 그 뿐이었다.


"으으...."


놀랍게도 죽을만큼 고통이 심했지만, 죽음이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차분해졌다. 이대로 죽는건가.


"그,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었어..."


아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비록 난 어딘가 구석에서 쓸쓸하게 죽겠지만...

마지막으로 내 하찮은 목숨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자한 일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미!!! 유미!!!! 어딨어!!!"


의식이 끊어질 것 같았던 순간에 어디선가 날 부르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려고 하면 목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한쪽에 쏟아져있는 가방 내용물을 뒤적여 신호탄을 쏘는 권총을 움켜쥐었다.


"....미!! 유...!!"


이제는 정말 의식이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온 기력을 다 짜내어 하늘로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그대로 의식을 놓았다.






".....어?"


난 죽은건가? 흰색의 천장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온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후세계란게 정말로 존재했나?


"어? 정신이 드니?"


누군가 말을 걸고 있었다. 막상 죽으니 누군가 반겨줄 것이란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사령관님이랑 꼭 데이트도 하고... 그러고 죽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소연이 섞인 말이 나왔다.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계획에

도움이 되었지만 그는 날 잊겠지. 그는 높은곳에서 내려보는 단 한명뿐인 사람이고 난 그런 그를 올려다보는

수많은 평범한 존재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래? 그럼 몸 다 회복되면 데이트 하자. 그러니 울지 말고. 귀여운 얼굴 다 망가진다 야."


"사, 사령...관... 님?"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사령관님이 내 옆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며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저... 살아 있는건가요...?"


"하하하. 너가 죽었다면 지금 있는 나도 유령이게? 안심하렴. 넌 살아있어. 나도 살아있고."


"하하하...하하..."


사령관님이 내 뺨에 흘러있는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


"정말 고생했어. 그리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렇게 위험한 임무에 널 투입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 아니에요! 제,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인걸요.."


"예전에 너랑 처음 대화했을 때 기억나니?"


"....네"


"그때 너가 도망가는 바람에 길게 말하진 못했지만, 너랑 꼭 친해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


인트라넷을 고치러 갔을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사령관님이 내 머리맡에 놓여있는 내 옷가지 안에

무언가를 적은 뒤 살포시 넣어두었다.


"네 옷 주머니 안에 내 개인연락망을 적어둔 쪽지를 넣었어. 푹 쉬고, 수술도 무사히 끝났고 다행히 척추나

중요한 장기들은 어찌저찌 피해간 모양이라 크게 장애가 남지는 않을 거라고 닥터가 그러더라.

환자를 계속 붙잡고 이야기 할 수는 없으니 오늘은 이만 가볼께, 또보자. 유미."


그 말을 끝으로 사령관님이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손을 흔들어 주며 떠났다.


"하...하하하...하하..! 이, 이거... 꿈 아니지...?"


"네. 꿈 아니에요. 어째 정신이 좀 드세요?"


감격에 겨워 누워있는 내 옆에 그렘린이 과일과 맥주 한 캔을 들고와 털석 주저앉았다.


"푹 쉬고 몸 추스려야죠. 그런 의미에서 맥주는 저만 마실게요. 

사령관님한테 데이트 신청까지 받았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구요?"




볼품없고, 나약하고..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던 나에게 그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항상 먼 발치에서만 바라보던 왕자님과 나 사이에 작은 연결고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