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사령관님은 특이한 분이시다. 

욕심도, 야망도 그 무엇하나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다.


"흐흠~ 흐흠~ 흠~"


콧노래를 부르며 업무에 열중하는 그의 옆 모습을 바라보면 늘 드는 생각이다.

무릇 인간이란 끝없는 욕망으로 대표되는 생물이다. 


하지만 눈 앞의 이 남자는 갖고 있는 것들을 항상 배풀었고 그나마 갖고있는 욕심이란 

조금이라도 더 바이오로이드들이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특이 하시네요."


"응?"


"사령관님 말이예요."


내 말에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남자. 아마 그래서 반했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난 비교적 평범한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실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유일하게 남은 인간이며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의 정점이다. 오르카 호 한 척으로 시작해 어느새 대규모 함대를 거느린 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특별했다.


그는 부정하겠지만 이게 그의 직책과 존재감을 대변해주는 유일한 표현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일평생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 또한 그를 그렇게 대해야 하겠지.


"후훗, 그렇게 생각 하신다면 제 생각이 틀린 모양이지만요."


"뭐야? 시시하게."


피식 웃고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리는 사령관. 그를 바라보며 오늘도 내 작은 수첩에

새로운 일기를 적어나간다. 내가 그에게 느낀점, 내가 그에게 바라는 점. 조금씩 눈이 쌓이듯

서서히, 천천히 일기의 빈 공간이 채워졌다.


"아이고~ 요즘들어 눈이 침침하다니까."


"최근 무리를 하시긴 했죠."


"빈말이라도 걱정은 안되는거냐?"


"네~ 네. 걱정이네요."


실없는 대화지만 이런 일상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게 된 건 언제부터 였을까.

그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딴청 피우는 일 없이 성실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나마 저런 실없는 말이라도 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지루해 하지 않을까 걱정해서겠지.


"커피라도 타 드릴까요?"


"음~ 커피 좋지. 설탕은..."


"각설탕 3개, 우유는 1/3 비율로, 맞죠?"


"역시, 시라유리!"


그의 일과는 단조롭고 지루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지금은 엄연히 전쟁중이고

그는 거대한 저항군의 사령관이니 그 업무와 일과는 하루 하루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시라유리."


"네, 사령관님."


"항상 들고다니는 수첩 말이야. 무언가 열심히 적는 것 같던데 무슨 내용이야?"


"비밀이랍니다."


"쳇."


내 수첩은 그가 호기심을 보이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사령관은 나의 즉답에

짧게 혀를치며 아쉬워 했지만 그는 휘하 바이오로이드들이 싫어하는 것들은 절대 강제하지 않았다.

그저 저렇게 짧은 감정을 보이는 것. 그것이 그가 유일하게 아쉬움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딸깍-


"비밀은 여자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법이랍니다."


커피에 각설탕을 녹이며 나는 사령관에게 윙크했다. 그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라유리는 욕심이 너무 많네."


"욕심이 많다라.. 글쎄요, 전 그렇게 욕심이 많지는 않은걸요?"


그의 작은 투정. 나는 그에게 가볍게 대답했다.


"얼마나 더 아름다워 지려고 그러는걸까?"


"...네?"


그의 대답에 순간 평정심이 흔들렸다. 하지만 나또한 백전연마의 첩보요원.

이 정도의 심리전에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후후, 사령관님이 딱 반할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야, 그건 곤란한걸~"


한 방 먹었다며 부드럽게 웃는 그를 보며 나도 입가를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그의 저 미소를 지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난 모든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다.


"이미 반했는데 더 아름다워지면 어쩌지?"


"....!"


그가 무심한 듯 말하며 서류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장난섞인 말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였다. 그는 알고있을까? 

그가 가볍게 하는 말 한 마디에 내 심장이 이토록 떨리고 흔들린다는 것을.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비유하자면 드넓은 바다와 같은 사람이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남자.

그의 바다는 나 말고도 다른이들을 같이 품어야한다.


'나 혼자서 독차지할 순 없겠지.'


그럼에도 좋았다. 그저 그의 넓은 바다같은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물방울이 되어 섞여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그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역할은 끝이다.


"여기 커피입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고마워."


그의 책상 구석에 커피를 놓고 다시 그의 옆 자리에 마련된 부관석에 착석했다.

그는 업무를 볼 때에는 진지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스타일 이었다.


'그덕분에 좋은점도 많긴 했지만..'


그는 집중하고 있을 때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업무를 보는 그의 사진을

몰래 찍어두거나 그림으로 그리고는 했다. 몇 안되는 내 취미 생활이자 그에게 내 수첩을

보여줄 수 없는 이유.


'오늘은 아주 잘 그려지네.'


늘 이렇게 술술 그림이 잘 그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모습을 더욱 완벽하게 남기는 것은

사진이 가장 좋았지만 이렇게 단 둘이서만 업무를 볼때면 사진기의 셔터 소리 때문에 자중하는 편이다.

그가 둔감한 편이라고는 해도 조심성은 늘 충분히 갖고 있어도 모자람이 없으니까.


"시라유리."


"네, 사령관님."


"지금 부관 컴퓨터로 향후 일정 계획표를 보냈거든. 그것좀 검토해줘."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갑작스러운 부름에 손이 엇나가 그의 옆모습을 그리며 삑사리가 낫지만 내색하지 않고

부관 컴퓨터를 부팅하고 들어온 일정표를 열람했다.


"좀 기네요. 혹시 이걸 전부 이번주 내에 하실 계획이신가요?"


"응, 꼭 이번주 내에 다 해야할 일들이야."


"으음..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긴 것 같은데요."


"너무 무리한것 같다 싶으면 조금 수정해도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되도록이면 본래 일정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검토 하겠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끝으로 일정표의 순서를 조절했다. 그가 이동 할 동선까지 고려해 계획표를 수정한다면

좀 무리가 따르지만 그럭저럭 소화할 수준의 일정표가 될 것이다.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지만....'


수정해도 좋다 말 했지만 그가 꼭 해야한다 했으니 무언가 더욱 중요한 일이 앞으로도

남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일을 최대한 돕고 보좌하는 것이 내가 할 일.


'그렇다면 더 고민할 것 도 없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모든 일정을 면밀히 검토해

최대한 원본을 살려야 겠어요.'


나는 오르카호의 지도까지 펴 들고 모든 부서에 연락을 돌리며 일정을 조율하고

도저히 맞지 않는 부분은 양해를 구해 상대방의 조정을 이끌었다. 이렇게 해 둔다면

그가 원하는대로 원래 일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휴.."


슬며시 사령실 구석의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간이 지나있었다. 업무의 단순 조율과

적절한 수정을 가했다면 더 빠르게 끝낼 수 있었지만 원본을 살리려다보니 시간이 늘어졌다.


"사령관님, 일정표 검토 끝났습니다. 사령관님 컴퓨터로 보낼까요?"


"응? 아, 그래 지금 보내줘."


"네."


나는 일정표를 그에게 건내고 허리와 목을 쭉 펴며 스트레칭을 했다.

과연 단시간내에 몰두해서 일을 하다보니 조금 찌뿌드한 기분이었다.


"이야~ 하나도 수정하지 않고 완벽하게 조율해뒀네, 고마워. 시라유리."


"그정도야, 제가 맡으면 간단하죠."


"유능한 부관을 둬서 다행이라니까."


"알아주시니 그나마 다행이군요."


가볍게 오고가는 대화,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업무 도중 계속 궁금했던 점을 그에게 슬며시 물어봤다.


"그런데 다음주에 어떤 일을 하시려고 그토록 타이트하게 이번 주 일정을 잡으셨나요?"


"응..? 아, 그거.."


그가 당황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기에 나도 모르게 눈매가 얇아지고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천성을 고치기는 힘들었다. '무엇이든지 일단 최대한

알아두면 좋은것이 정보다.' 첩보요원 으로써 만들어지고 훈련받은 나만의 지론이었다.


"흐응~ 흥미가 샘솟는걸요?"


"하하하... 역시 시라유리를 속이긴 힘들겠지."


무언가 반쯤 포기한 그의 어투에 나는 그를 조금 더 흔들어 보기로 했다.


"제가 따로 나선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실토할 기회를 드릴게요."


"으음.... 그래, 내일 모래면 너도 좋든 싫은 알게 될 일이었으니까."


'내일 모래?'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일 모래에 무슨 일을 할 계획이기에

내가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라고 말 한 것일까.


"방금 전 그 일정표. 내일 모래에 뭐가 있었어?"


"어디보자... 월 말 지휘관 정기 결산 회의, 마음의 편지 일괄 수령 후 검토, 보급품 결산...

그리고 오드리님과 면담이 잡혀 있네요."


그의 말대로 내일 모래의 일정표를 흝어봤지만 딱히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내일 모래라고 한 것인지 내가 감을 잡지 못하자 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드리 하면 뭐가 떠올라?"


"음... 아! 새로운 의상인가요?"


"응. 누군가에게 새롭고 '특별한' 의상을 선물 할 계획이야."


"누가될지 참 부럽네요. 전 매일같이 사령관님을 도와서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는데."


장난스럽게 내가 하소연하자 그가 멋적은 듯 뒷통수를 긁적이며 헛기침했다.


"흠! 흠!"


"푸훗, 괜찮아요. 익숙하니까요."


"그게... 너한테 줄 옷.. 아니 드레스야."


"네~ 네~ 그러시... 네?"


그의 말을 가볍게 넘기려다 그가 한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나에게 줄 드레스라니.

무슨 드레스를 주겠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 그럼 이것도 마저 처리해 주겠니?"


"아, 네!"


멍하니 있는 나에게 새로운 업무를 보내주는 사령관. 그가 보내온 문서는

뜻밖에도 서약절차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적어놓은 계획서 였다.


"이, 이건..."


"그, 그곳에 네 이름만 서명되면 그대로 진행할거야."


서약 계획서에는 (서약자 : 사령관, 시라유리) 이렇게 두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시라유리, 내 이름이 왜 들어가 있는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꽉 막혀서 돌아가지 않아

멍하니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뒤 내 앞으로 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 시라유리! 나, 나와 서약해줘! 무, 물론 평생동안 너 한명과만 서약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첫번째 서약은 무조건 시라유리, 너가 되야 한다고 새, 생각했어!"


좀처럼 보기드믄 사령관의 잔뜩 얼어붙은 모습. 아주 초창기 막 오르카호에 부임했을 당시의

풋내나는 모습. 그리운 모습... 거기까지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걸 받아주겠니?"


손까지 달달 떨면서 반지와 꽃다발을 건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우, 울지말고.. 노, 놀라게해서 미안해! 바, 받아줄거지?"


"당연하죠! 제가... 제가 얼마나... 얼마나 원했는데!"


그가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나 내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나를 그의 품으로 끌어들여 안아주었다.

드넓은 그라는 바다에 흰 백합 한 송이가 빠져들었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저 곁에 있는 것으로 행복하다.

그저 그의 뜻한 바를 이루어 주자.

그저 그라는 빛의 그림자가 되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흰 백합(시라유리)의 꽃말은 순결. 


하지만 순수한 사랑, 깨끗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뒷 배경이 있었다. 그런 뒷 배경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온 나에게

그가 넓은 품을 허락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