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관련 없음

한 겨울, 사랑했던 그를 그리우며 레오나

말하지 못한 사랑을 품고 당신을 그리우며 그리폰

넓은 초원에서 그를 그리우며 

언제나 곁에 있었던 그를 그리우며 리리스



"오랜만이오, 그동안 적적하지 않았소?"


펄럭이는 망토를 한 손으로 차분히 억누르며 용은 눈 앞의 바다에 술을 뿌리고 쓸쓸히 바다를 보고있다.

철충과의 전쟁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전쟁은 승리하였고 사령관이 남겨놓은 인간의 유전샘플을 이용해 인류의 재건도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는 지금, 

가장 축하받고 가장 치하받아야 할 사령관은 그녀의 곁에 남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미안하오. 그때 곁에 남았어야 했거늘..."


죄책감에 고개를 깊게 숙이는 용. 그녀의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최후의 전투가 끝나기 전 용에게 현장 출동을 명한 사령관을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것.

그 명령을 따름으로써 수많은 저항군의 생명을 구하고 최후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사령관을 잃고 말았다.


"상관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불충은 저승에서....."


용은 말을 멈추고 피식 웃었다. 사령관은 과연 자신의 이런 모습을 좋아했을까.

과연 아닐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미안하구려, 나이를 먹으니 한탄만 늘은 모양이오..."


전쟁에서 이겼고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살려서 개선식을 했다고 하지만 결국 잃은것이

너무도 큰 전쟁이었다. 먼저 사령관을 잃었고 수많은 용맹한 병사들을 잃었다.

그러나 자신은 살아있다. 살아남았다.


"그러고보니 인삿말도 어색했구려. 수많은 자매들이 이미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인데."


용이 어깨를 펴고 사령관이 잠든 바다를 바라보며 술 한잔을 다시 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잔에도 한잔 가득 따르고 사령관이 잠든 방향으로 건배를 올렸다.


"음... 오늘은 유독 술이 쓴것같소."


묵직하게 느껴지는 알콜의 냄새와 목넘김에 용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 표정의 찌푸림은 단순한 술의 뒷맛 때문은 아닐것이다.


"오늘은 전승 기념일 행사와 그대와 수많은 전우들의 추도식이 있었다오.

그대가 남긴 유전샘플로 인류의 번성은 시작되고 있소. 지금은 옛 문명의 흔적들이 하나 둘

그 찬란했던 옛 모습을 되찾고 있고..."


아마 용이 지금것 그 목숨을 이어온 이유는 사령관의 마지막 유훈 때문이리라.

그는 용에게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의 평화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그 부탁을 지키기 위해서

용은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그대의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오. 내 약조하지 않았소?"


용은 뒤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봉투에서 작은 케잌과 초콜릿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심플한 유리그릇을 조심스레 꺼내 그의 방향으로 다과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오르카 호의 어린 아이들이 당신에게 주고 싶다며 만든 것들이오. 그녀들 또한 훌륭하게 성장했지."


용이 자리에 조심스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과자를 하나 꺼내 입에물었다.


"미안하구려,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허기를 참기 힘들군."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다과를 먹는 용, 그녀는 멀직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향해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었다. 


"어차피 그대는 먹지 못할테니... 이렇게 배푸는게 좋지 않겠소?"


사령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것을 항상 배풀었고, 개인의 욕심을 채우지 않았다.

가끔 수면위로 부상할때면 이렇듯 바닷가의 갈매기와 함께 어울리며 자연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대를 이곳에 놓아 주었는지도 모르겠구려."


그는 바다를 사랑했다. 밤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사랑했고, 간혹 마주치는

갈매기때며 고래들을 만날땐 마치 동심에 빠진 아이마냥 좋아했다.

그것을 기억하기에 용은 사령관의 유해를 이곳에 뿌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것 같소. 그대가 이 바다를 사랑했던 이유 말이오."


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관을 기리는 기념비를 부드럽게 손으로 쓸어내렸다.


".....모두의 영웅, 최후의 인류 저항군 사령관... 이곳에 잠들다."


용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지금것 감정을 능숙하게 컨트롤 했지만 역시나

이 장소는 용에게 있어선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자 가장 슬픈 추억을 간직한 장소였다.


"미안하오. 또 사과 해야겠구려."


용이 눈물을 훔쳐내고 다시 올곧은 눈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사령관에게 약속했다. 

모두를 지키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악역을 자처하기도 하였다.


사령관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겐 냉혹한 진실을 이야기 해야했으며 그를 사랑하던 이들에겐

그의 부고를 알려야했다.


그럴때마다 모든 원망을 오직 홀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녀 스스로 책임을 지는 방법이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고, 원망을 받으면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슬퍼하지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 슬퍼할 자격을 갖지 못한 죄인이라 여겼다.


"역시 내가 등을 기댈 사람은 그대 뿐인가보오."


용은 그 말과 함께 기념비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소금기가 쌓이고 낙엽이 듬성듬성 붙어있어

그가 바라보고 있는 이 바다를 관망하는 것을 방해한다 생각했다.


"문득 이렇게 그대를 찾아 올때마다 느낀다오. 내게 있어서 그대가 얼마나 소중하고

거대한 사람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는지."


사령관에게 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가르켰지만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용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스승은 사령관이었다.


모두를 품는 아량을 배웠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씨를 배웠다. 소소한 자연을 즐기는 여유를 배웠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모두를 포용하는 덕을 배웠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는 너무도 큰 나무가 되어 

그녀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려, 이만 가보겠소. 그대만의 시간을 더 방해할수는 없겠지."


그 말을 끝으로 용이 기념비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무인으로서 존경했고, 군인으로서 충성했다. 한명의 여성으로서 그를 사랑했고

그렇기에 그가 남긴 마지막 뜻을 지켜나가겠다 각오했다.


"그럼,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나를 찾아올 때 까지. 내 그대의 뜻을 지켜내리다."


용의 표정이 다시 올곧은 군인의 얼굴로 돌아갔다.

함께 이 길을 걷던 소중한 사람을 잃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가 지키고자 했던 세상을 이젠 그녀 홀로 지켜야한다. 


먼저 떠나간 그를 그리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