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관련 없음

먼저 떠나간 이를 그리우며 무적의 용

말하지 못한 사랑을 품고 당신을 그리우며 그리폰

넓은 초원에서 그를 그리우며 

언제나 곁에 있었던 그를 그리우며 리리스


"반가워 달링. 최근엔 영 바빠서 자주 못왔어."


눈이 내리는 하얀 설원, 레오나가 넓은 공터에 마련된 묘비 앞에서

꽃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그 앞에 조신하게 앉았다.


"....미안, 사실 그냥 달링이 원망스럽다 생각해서 찾아오지 않았어."


담담하게 자신의 심경을 말하는 레오나. 하지만 원망한다는 말과는 다르게 표정은

온화하고 첫사랑을 곁에 둔 풋풋한 소녀의 그것이었다.


"신기하지? 올때마다 슬퍼지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 그렇게 결정했는데... 계속 찾아오니까."


그 말과 함께 평소 사령관이 좋아하던 레드와인을 꺼내드는 레오나.

그녀는 와인잔도 따로 챙겨와 그의 묘비 앞에 하나를 놓고 자신의 잔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한 잔, 괜찮지? 내 술상대를 해 줄 누구씨가 매몰차게도 먼저 떠나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홀로 마셔야 한다니까?"


레오나가 자신의 잔 안에 든 와인을 입 안에 털어넣고 그의 빈 잔에 자신의 잔을 살포시 부딪치며 말했다.


"후후, 건배가 늦었네. 미안해."


레오나가 비어있는 사령관의 잔을 바라보며 다시 자신의 잔에만 붉은 와인을 채워넣었다.

그것이 사령관과 레오나의 거리감을 표현했다. 살아있는 남겨진 자와 먼저 하늘로 떠나간 자.

그와 그녀의 거리감.


"달링과 이렇게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이럴때는 참 멀게만 느껴져."


그 말을 끝으로 레오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무치는 그리움, 원망, 그의 죽음앞에 너무도

무력하고 무능했던 자신에 대한 뼈저리는 자기혐오.


"미안해...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그랬었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하고 품어주던 넓고 깊은 사람.

항상 고고하게, 완벽하게 있어서 사랑한다는 그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일생에 다시 없을 사랑이라고 맹세한 그를 이곳에 묻었다.


"나도 참... 어리석다니까. 가장 소중한 장소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묻는다니."


그녀가 양쪽 무릎을 가슴팍에 끌어 모으고 차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 장소는 사령관이 그녀에게 프로포즈 했던 장소다. 그녀에게는 여러모로 가장 소중한 장소로

힘든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적에는 늘 이곳에서 홀로 자신을 달래고는 했다.


"그때도 그랬지."


씁쓸한 독백, 과거 부하들을 허무하게 잃고 좌절하던 자신을 이 장소에서 사령관이 달래주었다.

그리고 그때 했던 첫키스, 첫경험.


"후훗, 그때 서로 너무 창피해서 한동안 피해다녔던 것 기억해?"


그녀는 너무도 행복했던 그리운 기억들에 최근들어 지어본 표정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그때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준건 달링 이었잖아."


늘 그랬다. 항상 자신보다는 그녀를 더 생각하고 배려해주던 남자. 힘들때면 품에 품어주었고

슬플때면 기대어 울 가슴을 제공해 주었다. 


"아, 내 정신좀 봐. 오늘은 아이들이 달링에게 주겠다고 과자를 만들어 왔어."


코트의 주머니 속에서 작은 포장지를 꺼내는 레오나, 그녀는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열고

묘비 앞에 깔아놓았다.


"맛있어 보이지? 안드바리와 알비스가 만들어 줬어. 달링한테 전해 달라더라."


사령관이 죽고 그녀는 남겨진 이들을 위해 악역을 자처했다.

어린 아이들이 사령관을 그리워하면 잔혹한 진실을 이야기 해 주었고

왜 곁에서 지키지 못했냐며 원망하는 목소리는 그저 입을 닫고 들어주었다.


"그런 것들로 그녀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치유된다면...."


하지만 그것으로 좋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레오나 역시 뼈가 시릴 정도로

그리움에 사무쳤고, 그저 발산할 곳이 없는 원망이 가슴 한켠에 남아 그녀를 옥죄었다.


"역시, 난 달링처럼 그렇게 마음이 넓지 못한가봐."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는 레오나.

원망스럽다. 고통스럽다. 왜 사령관은 자신에게 이런 슬픔만을 남긴 것일까.


"미안... 미안해. 달링."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에게 미안했다. 그는 늘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최후도 그랬다. 자신의 목숨과 모두의 목숨들 중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병력을 살리는 쪽을

선택했다. 끝까지 만류하지 못한 자신의 결정을 원망하면 숭고한 그의 뜻을 더럽히는 짓이다.


"모두 달링을 영웅으로 생각해. 그리워하고, 또 존경하고 있어."


-모두의 영웅, 사령관 이곳에 잠들다.

짧은 묘비명이지만 그만큼 그의 행적을 나열하기 쉬운 문구는 없을 것이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야. 그동안 고생많았어. 남은 일들은 걱정말고 내게 맡겨 

이젠 내가 달링이 남긴 것들을 지킬거야."


레오나가 눈물을 손등으로 쓸어내고 평소의 도도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돌아가야겠어, 달링. 남겨놓고 온 일이 많이 남아있거든.

하아~ 원래 누군가 씨가 해야 될 일이었지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그의 묘비에 쌓여있는 눈을 치워주었다.

그가 사랑했던 이 세상을 바라보기 편하도록, 앞으로도 그가 바라볼 세상을 위해.


"달링, 안심하고 편히 쉬도록 해. 전장의 여신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하얀 설원과 북방의 암사자. 그녀의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그가 남긴 세상을 위해, 암사자의 발톱은 다시한번 날카롭게 빛을 발한다.


한 겨울, 사랑했던 그를 그리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