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관련 없음

먼저 떠나간 이를 그리우며 무적의 용

한 겨울, 사랑했던 그를 그리우며 레오나

넓은 초원에서 그를 그리우며 

언제나 곁에 있었던 그를 그리우며 리리스


"착각하지마.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러본 것 뿐이야."


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요즘. 하늘에서도, 바람에서도 가을의 냄새가 풍겨오는

들판 한 가운데에 그리폰이 내려왔다.


"내가 건방지게 먼저 떠나버린 인간이 뭐가 이쁘다고 일부로 찾아오겠어?"


잔뜩 토라진 목소리, 그러나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들고온 봉투를 곁에 내려놓고

어느 비석 앞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들었다.


"영웅은 무슨! 내가 다 낯간지럽네!"


비석에 쓰여있는 -모두의 영웅, 오르카 호의 사령관 이곳에 잠들다- 라는 글귀를 읽은 

그리폰이 투덜 거리지만 그녀는 아주 섬세한 손길로 구석 구석 쌓여있는 낙엽과 먼지들을 닦아나갔다.


"아이고~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해!"


한동안 그의 비석을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닦아준 그리폰이 허리를 풀어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들고왔던 봉투를 뒤적였다.


"자! 인간이 좋다고 했던거야. 이거 맞지?"


맥주를 두 캔 꺼내 그의 비석 앞에 한 캔을 내려놓고 자신의 몫을 집어드는 그리폰.

그녀는 맥주를 가볍게 따고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크흐~ 난 이거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르겠어!"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그리폰, 사실 그녀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들어선 자주

술을 찾게된다.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면 미안함 때문일까.


"그립기는 뭐가 그리워! 인간따위...."


그리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아려오는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마지막 전투에서 사령관과 이별하는 최후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렇게 걱정했으면서...."


사령관은 그리폰을 걱정하며 몇번이고 조심을 당부했고, 그리폰은 그런 사령관의 모습에

내심 기쁘면서도 평소대로 툴툴 거렸다. 사실 그 당시 아주 위험한 임무를 맡았기에

죽음을 각오하는 심정 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죽었고 자신을 살아남았다.


"왜.... 왜...! 인간이! 인간이 나보다 먼저 죽어버린거야!"


그것을 기점으로 그리폰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그를 위해서 살아왔다. 그가 전사했다는 소식에 몇날며칠을 울었는지 모른다.


그를 따라갈까 하는 나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남긴 행복하게 살아주었으면 한다는 말이

가슴 한켠에 깊게 남아 그를 따라 죽지도 못했다.


"후우.... 그때 우리들이 곁에 남았어야 했어. 인간이 뭐라고 해도... 남았어야 했다고."


그 당시 가장 근처에 남아있던 편대는 그리폰이 속해있던 스카이나이츠 편대였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사령관이 내린 마지막 명령은 자신의 안위는 포기하고

최전선의 화력지원에 최선을 다 할것.


"그렇게 죽어버린 주제에 행복하게 살아달라니... 역시 인간은 참 나쁜놈이야."


그리고 사령관이 최후의 순간 그리폰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 늘 그래왔듯이 푸른 하늘을 지켜줄 것. 그리고 항상 사랑했다는 것.


"지 할 말만 하고선 그렇게 죽어 버리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그리폰이 곁에 놓여있는 봉투에서 초콜릿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달달한 맛이 입안에 퍼지며 감정을 다스린 그리폰이 사령관의 비석 앞에다 초콜릿을 내려 놓았다.


"평소에 달콤한 것이라면 사족을 못썼잖아. 인간은."


그는 달콤한 것을 좋아했다. 그런 부분에선 그리폰과 같았기에 그는 늘 출격하는 그리폰에게

초콜릿을 쥐어주고는 했었다. 아마도 다른 이들 몰래 까먹으라며 쥐어주고 바보같이 웃는 모습에

그리폰의 마음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그 초콜릿들 정말 맛 있었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 부끄러워서 매몰차게 대하며 말했었던 '맛 없다.' 대신 꼭 전하고 싶었던 진심.


"나도 매일 보고싶어."


매일같이 마주친 주제에 계속 보고싶다며 바보같이 웃어주던 그의 미소.


"나도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어."


가끔씩 힘든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면 꼭 끌어안고 고맙다고 하던 그의 목소리.


"나도 너무 그리워."


가끔 임무가 길어져 오랫동안 보지 못하면 지나칠 정도로 화상연락을 걸어오던 그의 얼굴.


"나도 사랑해..."


그의 침실에서 사랑을 나눌때면 그가 늘 속삭여주던 말. 


모든 것들이 그립고 가슴에 멍울져 남았다. 그의 마지막 뜻 모두를 꼭 지켜주고 싶었지만

자신을 잊어달라는 그의 그 말 만큼은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흥! 인간도 내가 돌아올때까지 꼭 살아 있으란 말 못지켰잖아!"


그 말을 끝으로 그리폰이 눈물을 대충 옷소매로 닦으며 일어났다.


"....그래도, 지켜줄게! 인간이 지키고자 했던 이 세상!"


꼭 이루어주고 싶었던 그의 유일한 꿈. 반드시 지켜주고 싶은 그의 마지막 부탁.


"나도 인간을 계속 사랑했어. 아니, 사랑할거야. 영원히."


그 말을 끝으로 그리폰이 자리를 정리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역시 나밖에 없지? 인간."


그리폰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 오겠지만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그가 지키고자 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맡기고 남겨둔 것들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말하지 못한 사랑을 품고 당신을 그리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