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arca.live/b/lastorigin/33247365

주의: 인 게임의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이 분위기, 상당히 좋지 않다. 내가 살면서 상당히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만났고 지금과 같은 이 싸늘한 시선도 예전에 느껴본 적이 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였다. 하지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첫 인상, 여기서 내가 주춤거리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지도 모른다. 


"안녕, 티아멧. 난 이 오르카의 사령관이야. 잘 부탁..."


이 냉랭한 분위기를 어느정도 환기시키려 밝게 인사를 건냈으나 눈 앞의 이 소녀는 상상 이상으로 내가 싫었나 보다.


"X-00 티아멧, 오늘 부로 본 기가 귀하의 부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전투, 탐색, 정찰. 전부 수행할 수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길."


"그래, 오는 길이 힘들었을테니. 오늘은 일단 푹 쉬고..."


"언제든지 출격 가능하니까 괜찮습니다. 맞다. 팀으로 움직이는 것보단 혼자 움직이는게 편하니 되도록이면 단독 명령을 내려 주세요. 전달 사항은 여기 있고, 제가 쓸 방의 위치는 이미 전달받았습니다. 그럼 전 이만."


"어어, 그래. 나중에 보자."


질풍노도와 같은 일방적인 자기 소개가 끝나고 서신을 내게 준 티아멧은 쏜살같이 자기 방으로 갔다. 이 서신은 나중에 열어보도록 하자.


제길, 염려했던 상황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최악의 첫 만남! 서로 데면데면해도 모자랄 판에 전달할 거만 빠르게 전달하고 그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자기 방을 향해 사라지는걸 보면 내게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그나저나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생긴게 좀 별로인가? 그건 아니다, 내 얼굴이 절세의 미남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생겼으니 외모는 일단 아니다. 설마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나? 아침에 씻고 나왔으니 그럴리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님?"


"옷이 별로인가? 아냐. 그럴리는..."


"인님..?"


"밥 먹고 입 주변을 안 닦았나? 그건 절대 아니고..."


"저기... 사령관님?"


톡, 톡.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진동에 퍼뜩 놀라 뒤를 보니, 겨우 정신을 차린 내 눈 앞엔 걱정하는 표정의 콘스탄챠와 골머리를 싸쥔 미나가 있었다.


"아, 미안해. 생각 좀 하느라..."


"주인님, 너무 충격 받으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대신 사과드릴게요. 나중에 제가 한 번 주의를 줄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에요."


"아냐, 첫 만남이라 긴장한 걸지도 모르지. 혼내지는 말고 일단 쉬게 냅두자.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피곤했겠어."


"오자마자 한 건 크게 저질러 주시네. 내가 못 살아, 진짜..."


그리고 이 때, 수첩에 적어놨던 모든 문장이 내 직감을 토대로 하나의 실처럼 연결되었다. 티아멧은 대인관계가 서투른게 아닌... '인간'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것도 상당히.


예전에도 내게 저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레이시였다. 멸망 전 과학자들에게 온갖 실험을 당했던지라 나를 싫어하는게 당연했다. 솔직히 그게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준다면 나를 혐오해도 상관 없었지만 그녀와 같이 왔던 훌륭한 중재자 덕택에 지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네오딤, 노래 부르는걸 좋아하는 강철을 두른 양과 같이 유순한 아이. 나와 레이시의 중간에서 얼마나 고생을 해줬는지... 지금도 그 때 얘기를 하면 셋이서 같이 웃고는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뭐 어떠랴. 둘 다 요새는 브라우니들이랑 같이 다니던데, 별 탈 없겠지? 오랜만에 셋이서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겠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엔 네오딤 같은 조력자가 없다. 아니다. 한 명 있다. 그것도 바로 내 옆에.


"미나야."


"네? 사령관님, 부르셨어요?"


"방금 전에 티아멧과 같이 지냈다고 했지?"


"네."


"그게 어느 정도 쯤 됐어?


"한 2년쯤 됐을거에요."


"본론만 말할게, 나 좀 도와주라."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축하해요. 고생길이 열리셨네."


"너도 고생길일거다. 그리고 도와줘서 고마워. 오늘 비번인데 수고 많다."


"사령관님도요. 나중에 필요해지면 부르세요."


그렇게, 최악이였던 첫 만남이 끝났다.


------


"하아..."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우리 대장님께서 오자마자 큰 일 하나 저지르셨다.


"나중에 어쩔려고 저런담..."


X-00 티아멧. 말도 별로 없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는, 무슨 짓을 해도 절대 깨지지 않는 금강석. 강철을 깎아서 여자아이를 만들었다면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친구일거다. 게다가 우리 사령관님은 겉돌게 될 운명일 쟤를 어떻게든 도우려고 나에게 도와달라 하시는데 이거, 완벽한 오산이다.

나도 돕고 싶다. 아니, 무조건 도울거다. 같은 팀 동료가 따돌림 당하는 상황은 절대 보고 싶지 않다. 근데 문제는 솔직히 나도 쟤를 잘 모른다. 이건 아는게 이상한거다. 말도 한 마디 없고 표정도 무표정인데다가 평소엔 어디에 있는지 자기 전 점호나 아침 아니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행동 하나 하나가 놀랍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걷다가 어느새 내 숙소 앞까지 왔다.


"..."


그렇게 도착한 내 숙소 안엔 주인 없는 방에 자기 짐 정리를 가지런히 해두고 그새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티아멧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냐, 너. 나랑 같이 지내는 거야? 이렇게 같이 지내는 것도 오랜만이네? 오기 전에 방 같이 쓴다고 말 좀 해주지 그랬냐. 뭐라도 좀 준비했을텐데."


"나도 몰랐어."


"아, 그건 그렇지. 내 방이 어딘지 말 안해줬으니까."


그때 우리 셋 다 티아멧의 처음 보는 일면에 당황해서 하려던 말을 다 못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생각해보니 사령관님은 오늘 얘를 진짜 처음 보셨구나.


"그나저나, "그 사람"은 어디 있어?"


"사령관님? 좋아, 말 나온 김에 오르카호 한 번 싹 둘러 보자."


"지금?"


"나 내일 출격 있어서 오늘 아니면 시간 안 나. 게다가 너,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안 둘러보면 언젠간 길 잃을걸?"


"가자."


"좋아, 그럼 일단 식당부터 가 보자. 불 끄는거 잊지 말고!"


"응."


그렇게 예정엔 없던 오르카 구경을 하게 됐다. 언젠간 할 거였으니 지금하는게 시간상 차라리 낫나.

그리고 오랜만에 본 티아멧은 언제나의 티아멧이였다. 한결 같아 다행이다.


그렇게 식당, 출격 대기실과 캐터펄트, 공방, 복도와 수많은 방들, 회의실 등등을 보고 마지막으로 함교로 갔다.


"여기야?"


"응, 근데?"


"이제 돌아갈래."


"야, 여기까지 왔는데 어딜 도망가!"


"다음 번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알아서 올... 꺄악!"


얘는 왜 사령관님을 피하는 건지. 왼손으로 도망치려는 티아멧의 옷 뒷덜미를 그대로 붙잡고, 남은 오른손으론 함교의 문을 벌컥 열었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


"안녕하세요, 사령관님! 다시 만나게 됐네요."


"요, 미나 아냐? 방금도 그렇고 비번인데 바쁘게 돌아다니네."


"미나, 그렇게 벌컥 들어오는 건 예의에 어긋납니다. 에의범절도 모르는 바보는 사령관님 하나면 족해요."


"미안미안, 얘가 오늘 막 왔는데 오르카 구경을 하고 싶다는거 있지? 그래서 안내하는 중이였어."


오늘 부관은 바닐라였다. 맨날 다른 사람들 말고 사령관님만 갈구던데 왠지 짠해 보인다. 힘내세요, 사령관.


"그나저나 티아멧도 왔어?"


"네, 문 앞까지 와서 도망치려던 걸 겨우 붙잡아 왔지만요. 얌마, 내 뒤에 숨어도 너 안 가려져."


어떻게 먹히긴 한 것 같다. 그나저나 고작 1cm 차이 나는데 그게 가려지겠냐, 으이구. 매번 냉철하고 과묵해 보이지만 의외로 얼빠지고 단순한 구석도 있다. 얘랑 같이 지내면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 중에 하나다.


"활기 넘치는 미나한테 끌려다니느라 고생이 많겠네. 애 힘들어하는게 눈에 보인다. 이제 좀 보내주는거 어때?"


사령관님이 웃음을 애써 참으면서 말을 이어가셨다. 하긴 방금 전엔 세상 차갑게 굴던 소녀가 지금은 친구 뒤에 숨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으니, 웃긴 상황이 맞긴 하다.


"그건 걱정 마세요! 다 둘러보고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그 넓은 오르카를 다 둘러봤다고? 대단하네. 둘 다 오늘은 쉬고, 나중에 용건 생기면 연락 줄게."


"맞다, 그리고 하나 더. 티아멧?"


"예... 옙!"


"방금은 말 못했지만 오르카호에 온 걸 환영해. 잘 지내보자."


"..."


또 꿀먹은 벙어리가 되셨다. 진짜 얘는 하나 하나가 신비하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볼게요. 바닐라도 잘 있어."


"다음 번엔 조용히 와주시길. 가뜩이나 산만한 주인님이 업무에 집중을 더 못하시니까요."


"알겠어, 다음부턴 조심할게. 그럼 안녕!"


"아... 안녕히 계세요..."


나오자마자 티아멧이 쏜살같이 도망쳤다. 한 번 왔던 길을 완벽하게 외운거냐. 저걸 어찌할꼬....


------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오르카 구경이 끝나고 지칠대로 지친 우린 숙소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넌 사령관이 싫어?"


"...응."


"이유는?"


"말 못해."


"나한테도?"


"응."


나한테도 말 못할 이유가 있다니, 뭔진 몰라도 함부로 캐는건 별로 좋지 않을것 같다. 별로 좋지 못한 행동일뿐더러,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


"너, 나랑 내기 하나할래?"


"무슨 내기?"


그냥 던져본 한 마디에 바로 낚였다. 이건 예상외다.


"너가 한 달이 지나도 사령관을 싫어할지, 아닐지."


"그러면 보상은?"


"밥 한 끼 쏘는 거지, 뭐."


"그 날 하루 식비 대신 내는거 어때?"


"하핫, 너 강하게 나온다? 너가 이길지 어쩔지 어떻게 알고?"


"그런건 해봐야 아는거지."


의외로 강하게 나온다. 얘, 진짜 뭐 있나? 항상 침착했던 예전과는 완전 다르다.


"그럼 넌 어디에 걸건데? 난 아니다에 건다."


"난 그 반대."


"좋아, 한 달 후에 보자."


얼떨결에 걸었지만 어차피 내가 이긴 내기, 그 날 뭘 먹을지 고민이나 해야겠다.


"그나저나 저녁 시간이네, 밥 얘기 나온 김에 밥 먹으러 가자."


"그래, 가자."


그 날, 나 혼자 있던 고요한 내 방에 몰아치는 폭풍처럼 티아멧이 왔다. 그리고 내 앞날도 그 날을 시작으로 송두리째 바뀐다는걸, 난 아직 모르고 있었다...

-1화 끝.-

드디어 1화. 쓰기 졸라 빡셌음.
나중에 2화 다 쓰면 돌아오겠음.


And I also 스트라이커즈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