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글먹하고 싶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기지개를 펴며 소리지르자, 바닥을 닦고 있던 레프리콘이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레프리콘과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뻘쭘해진 듯 뒤통수를 긁었다. 레프리콘은 걸레를 접어든 뒤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물었다.


"글먹이 무엇인가요, 주인님?"


그녀가 레프리콘 기종 특유의 붉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남자는 약간 찡그린 얼굴로 어떻게 대답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오, 왜 이 녀석이 있다는 걸 잊어먹어서.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며칠 전, 부모님이 사람 노릇이라도 하고 살라며 보내준 퇴역 레프리콘. 성격도 온순하고 말도 잘 듣는 기종이건만 모듈에 이상이라도 있는 건지, 이렇게 자신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들으면 묻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대답을 거절할 성격이 못 되어, 그녀가 묻는 것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글' 써서 돈 벌어 '먹'는다는 뜻이야. 물론 나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지."

"주인님께서는 글을 잘 쓰신다고 생각합니다."

"말이라도 고마워. 그렇지만 이 바닥에는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엄청 많거든."


남자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현재 웹소설 시장은 바이오로이드가 나오기 전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유례 없는 레드오션이었다. 웬만한 직종들을 바이로이드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결국 인간들이 비벼볼 수나 있는 직종은 예술 쪽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접근성이 높은 웹소설 시장은 엄청난 신인 작가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젠장. 이번 공모전 경쟁률이 백만 대 일이란다. 이게 정상적인 경쟁률 맞아?"

"주인님......"


모니터에 띄워진 공모전 요강을 보며, 남자가 머리를 숙였다. 레프리콘은 그런 그가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모님한테 이번에 입상 못하면 깔끔하게 포기한다고 큰소리 떵떵 쳐놨는데. 레프리콘, 너는 날 믿지?"

"물론입니다, 주인님."


레프리콘이 대답하자, 남자는 눈을 맞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과, 순식간에 감겨오는 혀. 그 감각은 막막한 현실도 잊게 해줄 만큼 달콤했다.


"오늘 안전하지?"

"그럼요."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남자는 마음 속으로 그리 변명하며, 오늘도 레프리콘을 안았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노을이 지고 있던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남자가 코를 골며 자고 있을 때, 레프리콘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모니터를 켰다. 


'이것이 주인님의 소설이구나.'


모니터에 남자가 쓴 글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레프리콘은 이 글을 복사하고 새 문서에 붙여 넣은 뒤 소설을 고쳐 쓰기 시작했다.


'내가 히로인이라면, 나를 구해 준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했을 거야.'

'여기서는 화폐 단위를 조금 더 확실하게 해야겠어.'

'쓸데없는 엑스트라는 삭제하고 히로인이 이 대사를 하는 걸로 바꿔야겠다.'


남자가 쓴 소설을 바꿔 가는 레프리콘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군에서 복무할 때, 짧은 휴식시간에 읽은 웹소설들은 그녀가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신의 주인이 된 남자가 웹소설 작가를 지망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의 소설은 그동안 읽어 왔던 소설들에 비하면 필력과 재미가 떨어졌지만 더 좋게 고쳐서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소설 고쳐쓰기는 레프리콘의 취미가 되어 있었다.


'내가 인간님이었다면 이 소설을 공모전에 내서 주인님을 행복하게 해드렸을 텐데.'


레프리콘은 이런 생각을 날려버리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감히 바이오로이드인 자신이 인간님들과 경쟁하려 들다니. 불경한 마음을 품었다는 생각에, 레프리콘은 부지런히 놀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그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그 소리를 듣고 모니터를 끄려던 것보다 남자가 일어나 묻는 것이 빨랐다.


"레프리콘, 너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주인님! 바이오로이드 따위인 제가 감히 소설을 쓰려고 했습니다. 용서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남자가 묻자, 레프리콘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휙, 하고 남자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곧 발로 차일 것을 예상하고 몸을 웅크린 레프리콘이었지만, 남자는 그녀가 쓴 소설에 홀린 듯 천천히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뭐야, 이 소설은......"


남자는 무릎을 꿇은 레프리콘을 뒤로 하고 마우스 휠을 돌렸다. 분명히 같은 세계관에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었건만, 레프리콘이 고쳐 쓴 것 하나로 소설은 훨씬 매력적으로 변해 있었다. 


"대박이잖아! 레프리콘, 왜 이런 재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바이오로이드가 인간님들의 공모전에 소설을 낼 수는 없으니까요."


기쁨이 섞인 그의 목소리에, 레프리콘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일어나, 레프리콘. 결정했어. 이 소설로 공모전에 나갈 거야."

"정말입니까? 하지만 저는......."

"그 문제라면 괜찮아. 내 이름으로 투고하면 되니까."


어째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바이오로이드인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낼 수 없다면, 남자의 이름을 빌리면 된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너도 나도 행복해지는 거야. 어디보자, 대상 상금이 천만 원이었나?"

"처, 천만원이라고요?"

"그래. 이걸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놀러도 가는 거야."


남자가 레프리콘을 껴안았다. 싱글벙글 웃는 남자의 얼굴에, 자신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았다.


*


 며칠 후, 남자와 레프리콘은 컴퓨터 앞에 앉아 최종 점검을 진행하고 있었다.


"작품 소개글은?"

"방금 작성했습니다."


"오탈자는 없지?"

"없습니다."


"그럼 1회 등록해도 괜찮겠어?"

"네, 주인님."


레프리콘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등록' 버튼으로 커서를 옮겼다. 그녀가 소설을 쓰면, 그가 읽은 뒤 세계관 설정이나 맞춤법에 대해 조언했다. 둘이 힘을 합치니 가히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참. 필명을 아직 안 썼네."

"주인님이 평소에 쓰던 필명으로 등록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지. 이건 너와 나의 합작인걸. 내가 홀랑 먹을 수는 없잖아."


남자는 잠시 고민한 후, 한 타 한 타 정성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레프시우]? 이건 무슨 뜻인가요, 주인님?"

"네 이름인 [레프리콘]과 내 이름을 합친 거야. 어때, 괜찮지?"

"네. 정말 멋진 필명이에요."


남자가 등록 버튼을 눌렀다. 0.1초도 걸리지 않은 로딩이 끝나고, 소설이 업로드되었다. 


"휴, 드디어 올라갔다. 일단 눈 좀 붙여야겠어. 며칠 밤을 샜는지 참."

"저는 다음 회차를 쓸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주인님."


레프리콘은 침대에 누워 잠에 빠진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이 소설이 입상한다면, 둘은 행복해질 수 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다음 날, 마법이 일어났다. 소설을 올릴 때마다 하룻밤에 100개의 선호작이 박혀 있기를 바랐던 남자. 그의 소원이 이뤄졌다. 


"레프리콘, 일어나 봐! 우리 소설이 1위야!"

"1,1위라뇨?"


믿기지 않는 순위에 레프리콘이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눈을 비비고 모니터를 확인했다. 실시간 베스트 1위에 남자와 레프리콘이 쓴 소설이 당당히 올라가 있었다. 


"이 기세로라면 입상도 가뿐하겠어.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주인님 덕분이죠."


겨우 공모전 첫날이었지만, 둘은 벌써 대상이라도 탄 듯 설레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에 한 편, 레프리콘의 소설이 회차를 더해 갈 수록 선호작 수와 추천수는 끝도 모르고 올라갔다. 


[댓글 1,683개]

ㄴ웹소설 시장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ㄴ재밌어요! 선작 추천 박고 갑니다!

ㄴ와.. 이게 사람 머리에서 나온 거임?

ㄴ소재는 신선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쉽게 용두사미가 되고 말지요. 거기에 감정묘사가 빈약해서 주인공이, 히로인이 무엇을 느끼고 표현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는 않지만 1위라는 순위는 과대평가라고 여겨지네요. 저는 여기에서 하차합니다.

ㄴㄴ일침충 ㅄ새끼

ㄴㄴ그건 니가 난독이라 그런거고ㅋㅋㅋㅋㅋ

ㄴㄴ저 찐따ㅅ끼 댓글 진지하게 읽은 사람 없제?

ㄴ윗댓 신경 쓰시지 마세요ㅠㅠ 힘내세요!

ㄴ다

ㄴ음

ㄴ화

ㄴ다음화 내놔!!!


"이렇게 댓글을 많이 받아 본적도 처음이야."

"아직은 호평이 많네요. 그나저나 저 댓글은 피드백이라고 봐도 될까요, 주인님?"

"아니. 그냥 멘탈 흔들려고 분탕치는 거야. 무시해."


레프리콘은 독자들의 댓글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읽어갔다. 스틸라인 부대에 있을 때 이런 칭찬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오늘도 그녀는 가슴에 가득 찬 행복감을 느끼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준비됐지, 레프리콘?"

"예, 주인님!"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망의 수상작 발표 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은 마우스에 손을 겹치고, 수상 발표 공지를 눌렀다.


"주인님, 대상이에요......"

"우리가 해냈어!"


남자와 레프리콘은 서로를 얼싸안고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상금 천 만원. 그리고 정식연재. 드디어 '글먹'의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남자는 진심으로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지. 레프리콘, 빨리 밥 먹으러 가자. 내가 봐둔 레스토랑이 있어."

"네, 주인님."


쨍-


창 밖으로 한강이 보이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남자와 레프리콘의 잔이 부딪혔다. 


"우으, 조금 쓰네요."

"술이 그렇지 뭐. 아, 건배사 붙이는 걸 까먹었네."

"건배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한 거 아니냐."


남자는 붉은 와인을 따른 뒤, 잔을 높이 들었다. 


"레프시우를 위하여!"


*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고 하였는가. 평생 갈 것만 같았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상 수상 후, 남자의 집을 방문한 편집자는 소설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금방 눈치채고 말았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소설의 틀을 잡아놓은 것은 남자였을진 몰라도, 세계관을 확장하고 주요한 설정을 추가한 것은 레프리콘이었으니 말이다.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의 운명, 그리고 결말을 집요하게 묻는 편집자에게, 남자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허허, 바이오로이드가 웹소설을 써서 대상을 수상했다.......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편집자 앞에 앉은 남자와 레프리콘은 불안한 듯 그의 눈치를 봤다. 편집자가 이 사실을 밝힌다면? 수상 취소는 물론, 대필로 고소까지 당하는 것 아닌가? 불안이 파도같이 밀려와, 남자는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레프리콘의 소설을 투고하자고 한 것은 접니다. 저는 몰라도 레프리콘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제가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주인님이 이럴 일도 없었어요. 저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 주인님만은 용서해 주세요."


편집자는 부지런히 손을 비비는 남자와 레프리콘을 찬찬히 뜯어 보았다. 바이오로이드가 주인의 세계관을 빌려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냈다. 저 둘의 입만 막는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편집자는 머리에서 계산기를 두들겨본 후,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 대신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


 연재 사이트와 출판사의 높으신 분들의 회의가 끝난 후, 레프리콘은 해당 출판사의 전속 대필작가가 되었다. 틀만 던져주면 그 틀 안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데 특화된 그녀의 재능은 여러 소설에서 발휘되었다. 


레프리콘이 활약했던 전투에 관한 소설이라면 연재 사이트 탑을 찍었고,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현대 판타지는 물론 남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무협이나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도 좋은 실적을 냈다. 


인간님의 소설을 대신 써 준다는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좋아하는 소설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레프리콘은 기뻤다. 이렇게 쓰고 쓰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관을 무대로 한 소설을 정식으로 연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레프리콘은 키보드를 두들겼다.


"주인님, 그럼 소설 쓰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와 반대로, 레프리콘이 모르는 사이 남자는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


 '작가님, 아니 시우 씨가 해 드릴 일은 없습니다. 그저 저희에게 레프리콘을 빌려 주고 수익 일부를 받아가시면 됩니다.'


레프리콘이 소설을 대필해줬다는 사실을 들키고 재계약을 진행하던 날. 그날 편집자에게 들은 말은 아직도 남자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씨발. 내가 할 일이 없다니."


남자는 맥주를 마시다 말고 캔을 벽에 던졌다. 확실히 레프리콘이 소설을 쓰면서 살림은 나아졌다. 부모님도 드디어 아들이 사람 노릇 하게 되었다면서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 상황이 죽도록 싫었다. 


소설로 인정받은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은 똥글이나 싸제끼는, 미래가 없는 지망생일 뿐이었다. 레프리콘을 만나기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몸만 컸지 자기보다 한참 어릴 바이오로이드에게 소설로 뒤쳐졌다는 사실이, 자신의 소설이 그녀의 소설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이 남자를 감쌌다.


"좆같아. 다 좆같아......"


분명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글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울까. 남자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레프리콘이 쓴 소설은 내 소설이 아니니까."


남자의 머릿속에서 결론이 그렇게 났다. 대상을 받고,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소설은 그의 소설이 아니었다. 그때, 남자는 작가 [레프시우]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그의 눈이 번뜩였다.


"맞아. 이게 내 소설이야. 인형 따위가 쓰는 소설은 진짜 작품이 아니라고!"


그동안 머릿속에서 몇 번을 써 왔던 '진짜' 소설. 남자의 손가락이 신들린 듯 키보드 위에서 움직였다.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소설이 술술 잘 써지고 있었다.


*


[댓글 15,826개]


ㄴㅅㅂ 뭐냐 이 똥글은

ㄴ장난하냐? 이게 어딜봐서 연재소설임?

ㄴ편집부 단체로 미친 거지? 이딴걸 검수도 안하고 올리다니

ㄴ결국 미래를 본 사람은 저밖에 없었네요. 이 소설은 이렇게 끝나는 게 맞아요. 이런 수준 낮은 글이 연재된 것 자체가 웹소설 시장의 불명예입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작가님.

ㄴㄴ이번만 봐드리겠습니다

ㄴㄴ오랜만에 맞는 말 하노ㅋㅋㅋㅋ

ㄴ그냥 편집부 다 잘라라

ㄴ댓글 싸움 보는 게 본편보다 재밌네ㅋㅋ

ㄴ연

ㄴ중

ㄴ해

ㄴㄴ아니면 멀쩡한 회차를 들고 와


남자가 글을 올린 다음 날, 레프리콘이 연재하는 소설 댓글창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부드럽게 이어져 가던 레프리콘의 글이 아닌, 갑자기 튀어나온 조잡한 남자의 글은 이용권까지 구매해 가며 소설을 읽던 독자들을 분노하게 하기 충분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레프리콘, 미쳤나? 어떻게 이딴 걸 올릴 수가 있지?"

"죄송합니다. 주인님은 결코 나쁜 의도를 품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지랄 마!"


편집장이 태블릿 PC를 레프리콘의 머리에 던졌다. 바이오로이드의 튼튼한 두개골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지만, 그녀는 무릎을 꿇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주인님은 제가 잘 타일러 볼 게요!"

"잔말 말고 네 주인 데리고 와. 네년 말고 니 주인의 사죄를 들어야 겠어."

"네, 편집장님......"


레프리콘은 줄줄 흐르던 눈물을 닦은 후 남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술에 취해 잠든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주인님......."

"레프리콘 왔냐?"

"주인님, 할 말이 있어요."


남자가 말해 보라는 듯 몸을 뒤집어 레프리콘을 바라봤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방금 편집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편집장님께서 주인님이 직접 사과하라고 하셨어요. 안 그러면 소설을 자르겠대요...... 주인님, 저를, 아니 우리 둘이 함께 쓴 소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 번만 사과해 주세요."

"'우리 둘이 함께 쓴 소설'? 큭큭큭! 하하하하하!"


갑자기 남자가 실성한듯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성큼성큼 레프리콘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약간 주춤해 뒤로 물러났다.


"개소리 하지 마! 그게 왜 네 소설이야? 그건 처음부터 내가 쓴 내 소설이야!"

"하지만, 주인님!"

"명령이다. 거기 가만히 있어."


그동안 같이 살면서 한 번도 '명령'을 내린 적이 없는 남자. 레프리콘에게 손을 올리며 악귀같은 표정을 짓는 그는 그녀가 아는 남자가 아니었다.


"이 악물어."


쫘악-! 쫘악-!


남자의 손바닥이 레프리콘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명령 때문에 그녀는 가만히 서서 그 손길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주, 주인님."

"입 닥쳐!"


이번에는 남자의 주먹이 레프리콘의 배에 꽂혔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그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붕 날아가 현관에 떨어졌다.


"커헉!"

"내가 명령했잖아! 가만히 있으라고!"


갑자기 배에 가해진 충격에 레프리콘이 구토하기 시작했지만, 남자는 그런 그녀를 몇 번이고 발로 찼다. 그렇게 한참을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야, 남자는 멈출 수 있었다.


"......사과는 하러 갈 거야. 네 말대로 우리의 소설은 지켜야 하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맞아서 온 몸이 멍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한 마디에 레프리콘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말없이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이후로 남자는,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


 "왜 이를 세우냐고, 썅년아!"

"우브븝...... 죄송합니다, 주인님......"


오늘도 남자의 고성이 '처벌의 방' 안에서 울려퍼졌다. 그가 레프리콘의 소설 대신 자신의 소설을 업로드하는 대형사고를 치고 사과한 이후, 남자는 달라졌다. 


그녀가 소설을 쓰고 돌아온 어느 날, 남자는 자신이 만든 '처벌의 방'에 레프리콘을 데리고 들어왔다. 방음이 완벽해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처벌의 방. 그 방에서 남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레프리콘을 학대했다.


어느 날은 온 몸의 뼈가 다 부러질 때까지 레프리콘을 두들겨 팼다.


어느 날은 자신의 소변을 개처럼 핥아먹도록 했다.


어느 날은 술병을 성기에 넣고 배를 발로 찍어내렸다.


어느 날은 손목을 묶은 뒤 토사물이 든 대야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학대가 이어지던 어느 날, 레프리콘은 미쳐 버렸다. 본인은 '전생을 기억해 냈다'라고 주장했지만, 편집자들이 그 말을 믿어 줄 리는 없었다.


*


 "곧 대공 전하께서 나를 구해주러 오실 거야...... 목걸이는 뭐로 하지? 핑크 다이아몬드? 블루 사파이어? 아니야. 목걸이보다 먼저 드레스를 골라야지."


레프리콘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썼던 소설의 여주인공이 되어 남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드레스를 찾는답시고 남자의 옷장을 헤집기 시작했다. 편집자는 한숨을 쉬며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시우 씨는 저게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요......"

"쯧쯧. 바이오로이드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정신이 나갔답니까. 어쨌든 계약은 파기입니다. 저런 것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편집자가 계약서를 반으로 쭉 찢었다. 남자는 망연자실하게 찢어진 계약서를 들고 쳐다 보았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노파심에 말하건대 집 좀 잘 정리하고 사세요. 그러니까 바이오로이드가 저렇게 되지."

"레, 레프리콘이 낸 손해는 제가 메꾸겠습니다! 지금은 펜을 꺾었지만 레프리콘의 소설을 이어 쓰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남자가 편집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다. 하지만 편집자는 매몰차게 그를 떼어낸 후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누가 당신이 싸지른 쓰레기 글을 본다고 그런 말을 해요? 바쁘니까 빨리 놓으시죠."

"아니야, 내 소설은......."


'쓰레기'라는 한 마디에 남자의 눈이 뒤집혔다. 편집자가 말이 너무 심했다고 변명하려 했을 때, 이미 그의 손에는 모니터가 들려 있었다.


"쓰레기가 아니야!"


빠악!


모니터가 편집자의 머리를 세게 쳤다. 남자의 옷에 편집자의 피가 튀었다.


"내, 내가 무슨 짓을."

"헤헤헤, 대공 전하. 드디어 저를 데리러 오셨군요. 저예요. 론스타인 후작가의 장녀 엘레나......"


남자에게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가 편집자의 머리를 후려친 곳은 처벌의 방이 아닌 현관이었다. 남자가 편집자의 머리를 치는 소리가 온 아파트에 들렸고, 금방 경찰과 시티 가드가 와서 그를 체포했다.


"저 T-3 레프리콘 기체는 어떡하죠, 경정님?"

"어떡하긴. 소유자가 용의자 송시우 씨의 부친으로 등록되어 있으니 돌려 줘야지."

"알겠습니다!"


사디어스의 명령에 켈베로스 두 기가 레프리콘을 부축해서 데리고 나왔다. 


"너는 플로라? 이거 놔! 아무리 원작 여주라고 해도 나를 잡아갈 수는 없어! 전하, 대공 전하! 어떻게 저를 버리고 저년에게 가실 수 있어요!"

"경정님, 이거 제대로 맛이 간 것 같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끌고 가.:


사디어스를 죽일 년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레프리콘. 남자는 그런 그녀를 보며 눈물을 떨궜다.


*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후, 남자의 사건과 창작물을 쓰는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법안이 부쳐졌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었다. 이 법안은 대충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의 이름을 빌려 창작물을 쓰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남자의 부친은 그 뉴스를 본 체 만 체 하며 레프리콘을 데리고 테마파크 중개인 앞에 섰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아드님이 아끼던 바이오로이드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말이죠."

"아끼던 바이오로이드는 무슨. 우리 아들 잡아먹은 천하의 못된 년인데. 빨리 데리고 가시오. 저년 면상을 쳐다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

"알겠습니다. 판매비는 바로 입급해 드리겠습니다."


남자의 부친이 현관문을 닫자, 중개인은 재빨리 레프리콘에게 바이오로이드용 구속구를 채웠다.


"이거 풀어! 나는 론스타인 후작가의 장녀이자 소후작, 엘레나야! 일개 병사 따위가 날 구속해?"

"맛이 갔다는 게 사실이었나. C구역행이 확실하군."


중개인은 조용히 전기충격기를 들어 레프리콘의 뒷목에 댔다. 전류가 흐르고, 레프리콘은 의식을 잃었다.


*


 "그거 아나? 자기 바이오로이드한테 웹소설 대필시키다가 편집자 죽이고 빵 간 그 놈 말이야."

"왜? 그게 이거랑 관계 있어?"

"당연히 있지. 저게 그 대필작가 바이오로이드였거든."


테마파크 C구역. 레프리콘을 찢고 뜯으며 놀던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찌나 즐겁게 가지고 놀고 있었던지, 그녀에게 원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대...... 대공 전하가...... 너희 같은 천것들의 입에 오르실 분인 것 같아? 황족 모독죄로 처형...... 감이라고!"

"저거 또 뭐라냐."

"왜. 좋은데. 자기를 로맨스 판타지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바이오로이드, 신선하지 않냐? 그 뭐였더라. 드라큐리나. 그거보다 훨씬 재미있잖아."


빠루를 든 남자가 낄낄거리며 발로 레프리콘을 툭툭 찼다. 벗겨진 살갖은 툭툭 치는 자극마저 민감하게 받아들여, 그녀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긴 그렇지. 그나저나 존나 시끄럽네. 레프리콘 기종이 저랬었냐?"

"알 게 뭐람. 이보십시오, 엘레나 소후작님."

"그래. 드디어...... 나를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러 주는구나. 후후후....... 빨리 머리를 조아리고....."

"그런데 그거 알아?"


그가 천천히 레프리콘에게 다가갔다. 도리깨를 든 남자가 얼굴을 바싹 들이대자,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사모하던 '대공 전하'는 죽었어. 칫솔을 갈아서 자기 배때지를 쑤셨다는데?"

"아, 아니야...... 대공 전하가 그럴 리 없어....... 나를 만나러 오신다고 했는걸......?"


그녀가 부정하자, 빠루를 든 남자는 스마트폰을 켜 보여주었다.


"이거 봐. [화제의 편집자 살인범 옥중에서 자살]. 이래도 거짓말같아?"

"아니야! 아니야아아아! 대공 전하! 저언하!"


레프리콘이 마지막 힘을 실어 남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쇠몽둥이를 든 남자는 귀를 틀어 막았고, 빠루를 든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시끄러운데 조용히 좀 시켜. 그러길래 왜 그걸 보여줘서."

"알았어, 알았다고. 자, 소후작님! 대공 전하 곁으로 갈 시간이옵니다!"


그는 빠루를 골프채처럼 들고 레프리콘의 목을 겨눴다. 빠루가 공중에서 휘둘러지자, 레프리콘의 머리가 날아가 바닥에 굴렀다.


"휴. 이건 여기까진가."

"그동안 잘 놀았잖아. 못 쓰게 되었으니 다른 거 찾아야지."

"클래식하게 더치걸은 어때?"

"좋지. 어서 가지러 가 보자고!"


두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새 놀잇감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놀다 간 자리에 남은 레프리콘의 잘린 머리가, 짓이겨진 몸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주...... 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