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무적의 용 이로군.


 

불굴의 마리.


 

지난 여름 이후로는 처음 아니오?


 

벌서 그렇게 되었나.


 

혹 시간은 되는가?


 

같이 커피나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내지.


 

그 동안 쌓인 회포가 많은 지라.


 

음. 본관도 마침 한가해진 터.


 

다른 지휘관과의 교류는 언제나 환영이라오.


 

하핫. 기쁘군.


 

잠시 기다려주게. 커피를 내려오지.




 

향이 참으로 좋소. 귀한 원두로 내린 것 아니오?


 

알아 주니 기쁘군.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나중에 귀한 고기를 잡으면 보내도록 하겠소.


 

고맙지만 정중히 사양토록 하지.


 

우리 부대는 병사부터 장군까지 동일한 음식을 먹음으로서 결속을 다지는 지라.


 

하하, 커피라는 기호품을 마시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살짝 변명하자면 내 사비로 내려 마시는 거라네.


 

훌륭한 마음가짐이오.


 

내 듣기로는 해군은 병사와 장교의 대우가 천지차이라 하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라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함장의 권위를 최대한 존중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소.


 

과거 인간님들만으로 군대를 구성하던 시대에는 함장의 상급자라도 배에서 만큼은 함장의 권위를 존중했다고 하오.


 

이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다 보니 바이오로이드들로만 구성된 지금의 해군에서도 병과 장교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오.


 

하지만 군의 역사를 따져보면 계급간의 차이에 따라 대우에 차이가 있는 쪽이 더 흔한 일이지.


 

그래서 본관이 그대를 존경한다오.


 

그런 사소한 차이가 권위를 부여하는 법인데,

그대는 그런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행동으로 존경을 이끌어내어 권위를 세우지 않았소.


 

하핫! 불패의 지휘관 무적의 용에게 그런 평가를 받으니 감개무량하군.


 

이 기회에 묻고 싶은 것을 다 물으려고 하는데. 물어도 되겠는가?


 

얼마든지.


 

불패란 무슨 기분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오.


 

알겠지만...나는 결코 불패가 아니지.


 

불패가 무어란 말인가. 사령관 각하께 합류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패주하는 것이 일상이던 패전 담당 지휘관이지.


 

끝없이 몰려드는 철충의 파도 앞에 자매와 같은 부하들을 남겨두고 혼자 비겁하게 도망쳤던 전투도 있었다.


 

'서서 죽는다.' 스틸라인의 구호를 가장 크게 외치면서 도망치는 꼴이 참으로 우습지.


 

그래서 유일한 생존기이고, 그래서 유일한 비겁자가 나지. 살아남음은 곧 비겁함의 증거.


 

그러니 들려주게. 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


 

불굴의 마리.


 

그대는 나를 통해서 자신을 질책하려 하는 것이오?


 

......그럴 지도 모르지.


 

무의미하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겠지.


 

그 말이 아니오.


 

무슨 말이지?


 

그대는 훌륭한 지휘관이란 말이오.


 

패배가 일상인 장군은 훌륭한 지휘관이라 할 수가 없지.


 

그대는 훌륭한 지휘관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 승리하는 지휘관.


 

그것도 답이겠지.


 

허나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지휘관의 요건은 다르오.


 

뭐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지휘관.


 

승리는 지휘관이 추구해야 할 것이라오.


 

허나 승리는 결과지 진정으로 훌륭한 지휘관은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오.


 

패배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의무라오. 죽어야할 자리에서 죽어야하는 것도 의무라오. 그리고 반대로.


 

모든 불명예를 짊어지더라도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것도 의무라오.


 

그대의 기록을 보았소.


 

압도적인 물량의 철충과 매일같이 싸움에도 끝까지 지휘체계를 유지했던 그대의 역량은 역대 인간님의 장군들도 감탄할 것이오.


 

그리고 그대가 지휘체계를 유지한 덕분에 주군의 저항군 활동을 용이케 하였소.


 

패배하고 도주한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그대는 그럼으로서 그대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소?


 

그대가 일찌감치 죽었다면 전세가 어떻게 되었을 지 상상해보았소?


 

......


 

그런 것이오. 그러니 스스로 질책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소. 


 

하지만 부하들을 남기고 도주한 것은......


 

그대가 살아남음으로서 같이 살아난 부하들도 생각하시오.


 

......


 

불패가 어떤 기분인지 물으셨소?


 

부끄러워서 어떻게 그대에게 말을 할 수 있겠소.


 

본관에게는 옛 인류가 남긴 최강의 군세가 남아있소.


 

그리고 철충은 바다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런 내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내던 그대 앞에서 어떻게 불패를 논할 수 있겠소.


......


 

옛 상관에게 이런 평가를 받으니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았던 패배 정신이 뽑히는 느낌이로군.


 

본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대를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오.


 

훈련이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내는 병들을 제외하면 말이지.


 

실전에서는 감사하게 될 것이오.


 

커피잔이 비었군. 한 잔 더 하겠나?


 

감사히 마시도록 하겠소.






지난 여름 이벤트에서 마리랑 용이 대화하던 거 보고 삘 받아서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