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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지금 뽀끄루를 본다면 한 때 유약하고 가련했던 여자라는 것을 강하게 부정했을 것이었다. 검붉은 불과 우악스러운 채찍으로 과거의 동료였던 백토를 몰아세우는 모습은 진심어린 마왕의 모습이었다. 순박함과 울음대신 조소와 피로 이 곳을 메운 그녀는 하찮다는 한숨을 내 뱉으며 채찍으로 백토를 멀리 날려보냈다.


굉음과 함께 벽에 박힌 토끼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움찔거렸다. 이미 그을려 군데군데 화상자국들이 짐승에게 물린 듯 서서히 번져나갔고 채찍에 긁힌 몸뚱아리에서 서서히 새어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셔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이는 자신이 진정한 마왕에 걸맞는 이라는 것은 과시하듯 아무런 상처하나 없이 서 있었다.


분함의 한숨과 경멸스러운 것을 보는 눈빛이 교차했다. 백토에게 다가가는 구두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긋한, 여유가 넘치는 자신감이 말을 꺼냈다.


“참으로 가련하구나. 마법소녀여. 무엇을 바라느냐? 가지지 못하는 것을 탐하는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거늘.”


“뽀끄루 대마왕...! 나와 젠틀맨은 너를 믿었는데!”


“그런가? 본좌는 한시도 그대들을 믿은 적이 없거늘. 어리석도다. 기대를 하기에 배신을 당하는 것이거늘.”


“뽀끄루!”


백토의 손에서 매지컬 핑크 문라이트가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몸이 박혀있던 벽을 박차고 자신의 적을 향해 달려나갔다. 격하게 공회전하는 톱니가 순식간에 휘둘러졌다. 몇 번의 바람소리가 울렸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뽀끄루은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강하게 내려쳤다. 한 번 내려칠 때마다 마법봉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돌의 파편이 튀는 소리가 울렸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강하고 빠르게 휘둘었다. 하지만 정확히 다섯 번째로 내려쳐졌을때, 마법봉은 형체를 잃고 이곳 저곳에 제 몸뚱아리를 쏟아내었다.  그럼에도 백토는 굴하지 않았다. 부서져버린 자신의 반을 버려두고는 주먹을 내질렀다.  턱 없이 미약한 힘이었지만 마법소녀로써의 의지가 그녀를 움직였다. 무의미한 행위였지만.


뽀끄루는 그것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채찍 대신 손에 불을 쥐었다. 불타오르는 불꽃이 주먹에 일렁거렸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숙적의 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확히 들어간 공격은 살태우는 냄새와 자국을 남기며 다시 백토를 벽에 박아넣었다. 명확한 힘의 차이였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이것이 본좌니라. 사악한 밤의 여왕이자 달 없는 밤의 지배자. 하찮은 마법소녀와 금속 생명체들이여. 친히 이몸이 지배해주도록 하지. 나의 불꽃과 힘 앞에서 무릎 꿇어라.”


“젠틀맨...”


“아직도 말할 기력이 남아있는가? 적이지만 훌륭하도다. 본좌의 수하 골타리온도 보고 배웠으면 하는군.”


그녀는 천천히 벽에 박혀 정신을 잡지 못하고 있는 토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목을 잡혀 우악스럽게 뽑힌 마법소녀는 그저 발버둥 칠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목을 옥죄는 팔목을 붙잡고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뽀끄루는 조금 불쾌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토끼는 토끼답게 살아야 하는 법이거늘. 맹수에게 이빨을 들이밀면 아니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가. 참으로 빈약하다. 빈약해. 조금이라도 본좌에게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젠틀맨을... 구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라도...”


“헌데, 어찌 본좌의 전리품을 그런 격식 없는 이름으로 부르는가? 참으로 불쾌하도다. 네년 따위가 가지거나 부를 수 있는 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젠 본좌의 소유다.”


“뽀끄루... 대마왕...!”


이번에는 벽이 아닌 바닥에 굉음과 먼지가 울려퍼졌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움찔거리고 있는 백토와 하찮다는 듯이 지켜보는 뽀끄루. 이미 싸움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법소녀는 패배했고, 악은 승리했다. 그녀에게는 더이상 마(魔)를 막을 힘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대마왕이 자신의 반인 매지컬 젠틀맨을 빼앗기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뽀끄루도 그것을 잘 앍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자비를 베풀기로했다.


“마법소녀여. 본좌는 오늘 기분이 좋으니,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대신 그곳에서 똑똑히 지켜보도록 하라. 경배하라! 바로 오늘, 이 지구에 마가 강림할 것이니. 오늘 밤은 참으로 각별할 것이다.”


뽀끄루는 천천히 문을 열며 두팔을 벌려 웃었다. 만월이 떠 있는 밤 아래에서, 백토는 천천히 감기는 두 눈 사이로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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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꿈을 꿨어요. 사장님...”


“... 혼란하네.”


사령관과 뽀끄루는 문을 등지고 있는 좁은 소파에 앉아 한적하게 쉬고 있었다. 그는 무릎에 그녀를 앉혀두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꽤나 당황스럽고 혼란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무릎에 앉아있는, 토끼와 고양이를 섞어 놓은 여자가 그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가서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게 좋겠는데?”


“그렇죠...? 만에 하나라도 백토가 듣게 된다면...”


“큰 일 나겠지...?”


“큰 일 날거에요...”


둘은 가벼운 한 숨을 쉬며 다시금 서로에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더욱 적극적인 뽀끄루에 사령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이 전리품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마왕님?”


“네...? 네? 아니... 그런걸 원하신다면... 후후후... 전리품이여. 나의 총애를 바라느냐? 그렇다면, 오늘 밤 본좌의 시중을 들거라. 이렇게요...?”


“예. 마왕님. 그러도록하... 어?”


순간적으로 두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미세하게 울리기 시작하는 전기톱의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본 뒤편에는,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백토가 서 있었다.


“백... 백토야...? 언제...?”


“매지컬 뽀끄루... 젠틀맨... 결국 마의 마수에 넘어가고 만 것인가! 걱정하지마라. 이 매지컬 핑크 문라이트로 정화해줄테니!”


그 날, 사령관실엔 전기톱 자국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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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느와르가 아니라 그냥 '써줘' 들고와봄 요즘 소재 떨어지니까 이런거라도 줏어 먹어야 문학 쓰게되더라


지금 1차 목표가 문학 한 50편 정도 써 보는거임


천천히 하나씩 써 가다 보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읽어줘서 고맙다 추석 잘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