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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디좁은 허름한 판잣집.

이곳에는 본래 존과 아놀드, 두 형제가 살고있었다.

길가에서 왠 여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 그러고보니 제 이름을 말안했네요. 전 베키라고 해요. 두 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마냥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거는 여성. 이에 존은 귀찮다는 듯 나가버리고, 아놀드가 그를 대신해 대답을 했다.




"전 아놀드고, 제 동생은 존이에요. 존의 행동에 너무 상처받지는 마세요. 워낙 험하게 자라온 탓에..."




"아뇨, 괜찮아요. 저렇게 대하셔도, 내면은 착한 사람이잖아요."




베키가 배시시 웃어보이자, 아놀드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 블랙존이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저렇게 미소를 짓다니... 머리 속이 꽃밭인게 분명하리라.



"여기도 꽤나 아늑하네요. 밤에 춥지는 않겠어요."




그 말이 꿑나기 무섭게, 벽의 균열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어왔고, 베키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 두 분은 평소에 무슨 일을 하시나요? 마냥 집에 계시지만은 않을텐데..."




"저는 주변 길거리나 도심에서 쓸만한걸 주워와요. 그렇게라도 해야 먹고 살만하니까."




"아, 그렇구나... 그럼 존 씨는..."




"존도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물건을 주워와요. 그러다 가끔 건달들과 시비가 붙으면 상대 물품을 갈취하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




"...집은 건달들한테 빼앗겼다고 했죠?"




"아, 네. 살해당할까봐 뒤도 안보고 도망쳤어요."




"그럼, 저희랑 같이 지내죠. 사람은 많이 있을수록 좋으니까."




그 때,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존.

그는 눈을 부라리며 아놀드에게 소리쳤다.



"형,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 년을 받아들인다고?"




"존, 힘든 상황일수록 뭉쳐야 해."




"형, 우리 둘이서도 겨우 먹고 사는데 이 년은 어떻게 챙기려고? 지금 상황에서 식구가 늘어봐야 짐짝일 뿐이야!"




"존... 그런 말 하지마."




"형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생각하란 말이야! 이 년이 우리한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집에 들여? 무슨 이득이 된다고!"




버럭 소리치는 존. 이에 베키는 어쩔 줄 몰라하며 눈치만 살폈고, 아놀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존, 스콧 할아버지가 왜 우릴 받아줬을거라 생각해?"




"왜 할아버지 얘기가 나와."




"할아버지에게도 우린 짐짝일 뿐이었어.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우릴 받아줬어. 힘든 사람을 껴안아주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아놀드의 말에 존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베키에게 말했다.




"너, 우리 집에서 사는건 좋은데, 마냥 안에서 뒹굴거리지는 마라. 형 따라가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거나 해."




"아니, 베키 씨는 너랑 다니는게 좋을 것 같아."




"이건 또 뭔..."




"넌 싸움 잘하잖아. 너랑 다니는게 더 안전할거야."





"씨발..."





그렇게 존과 아놀드 형제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




그 후로도 베키와 같이 다니는 존.

베키는 마냥 해맑게 웃으며 존에게 수시로 말을 걸었고, 존은 그런 그녀가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답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베키가 쓸만한 물건을 찾았다며 혼자 뛰어가다 건달 무리들에게 붙잡혔던 적도 있었고, 언제는 근처 노숙자들에게 둘러싸여 성희롱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존이 부리나케 뛰어와 건달 무리를 물리쳐 그녀를 구해주었다.

존은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 화를 냈지만, 그녀는 그저 존이 구해줘서 고맙다며 웃어줄 뿐이었다.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존은 이전보다 더욱 신경쓰며 그녀를 지켜주었고, 베키 역시 그를 생각해 혼자서 위험한 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흘러...

어느덧 베키와 지낸 지도 두 달이 넘어가던 어느날.



"존, 이거 좀 봐요. 완전 귀엽죠?"



베키가 버려진 장난감 하나를 주워와 존에게 건네주었다.

태엽으로 작동하는 새끼 오리 모양의 장난감. 존은 그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뭔 다큰 어른이 이런걸 가지고 와? 갔다버려."




"에이~, 존. 귀엽잖아요. 자, 가지세요."




"이 년이 짬을 때리네... 버릴거면 그냥 버릴 것이지 왜 나한테 줘?"




"무슨 소리에요~. 제것도 있죠."




그녀는 주머니에서 다른 장난감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다른 주머니에서 또다른 장난감을 꺼내 존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아놀드 씨 꺼~. 존, 나중에 형님에게 잘 건네주셔야 해요."




"그래, 형은 좋아하겠네. 형은 쓸데없이 동심이 넘치니까."



언젠가 받았던 장난감. 존은 그걸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





"오, 이거 나한테 주는거야? 존, 네가 왠일이냐?"




"내가 주운게 아니고, 여기 옆에 있는 년이 주웠어."




다시 판잣집으로 모인 세 가족. 존이 아놀드에게 장난감을 건네주자 아놀드는 활짝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베키 씨, 고마워요. 잘 간직할게요."




"헤헷, 좋아하시니 다행이에요."




"자, 슬슬 배고플 때지? 빕먹자. 이번에도 먹을만한걸 구해왔어."




그렇게 세 가족은 차디찬 바닥에 서로 마주보며 앉는다. 아놀드가 버려진 배달음식 용기와 먹다남긴 과자 등을 꺼내 나눠주었고, 존과 베키는 그것을 받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존은 아놀드를 보며 물었다.




"형, 형은 왜 안먹어?"




"응, 난 따로 먹을려고."




아놀드의 어색한 반응. 이에 존은 그를 의심하며 몸을 수색했다. 털어도 나오는건 먼지 뿐. 이에 존은 눈을 부라리며 그에게 말했다.




"왜... 왜 없는거야? 설마..."



"...오늘은 위험했거든. 설마 총을 가져올 줄은 몰랐지. 그래서 도망치느라 많이 못챙겼어."




"이 멍청한 새끼가... 그럼 우리한테 줄게 아니라 같이 나눠먹어야지!"




존은 먹던 것을 내려놓았고, 베키 역시 음식에서 손을 때었다. 




"무슨 소리야, 존. 나는 요새 배가 아파서 많이 못먹어. 그러니까 괜히 착각하지마. 나는 나중에 너희들보다 맛있는거 먹을 테니까~."




장난스레 상황을 흘려넘기는 아놀드. 존은 그런 그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음식들을 긁어모아서 정확히 삼등분을 나누었다.




"존, 난 괜찮다니까..."




"형, 난 이제 어린애 아냐. 그러니까 괜히 고생하면서 챙겨주지 말라고. 어서 먹어."




"...그, 그럼 베키 씨. 베키 씨가 더 드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아뇨. 아놀드 씨, 저희는 이제 가족이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먹어야죠. 어서 드세요, 아놀드."




이에 말문이 막한 아놀드. 그는 결국 음식을 주워들어 입에 넣기 시작한다.



그가 식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다시 식사를 시작하는 존과 베키.

그날 아놀드는 내심 생각했다.



지금껏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고.





***





늦은 밤, 모두가 자고있을 시간.

아놀드는 홀로 지붕 위로 올라가 도심을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이내 그 옆에 앉는 존.




"건강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들켜버렸네. 좋은 모습을 보여야하는데."




"이 양반은 내가 아직도 애새끼로 보이나... 형, 뭘 그런걸 신경쓰고 있어. 이제 난 나 알아서 할 수 있어. 그러니까 형은 이제 하고싶은대로 하면서 살라고."




쓰읍, 하아...

아놀드가 뿌연 연기를 내뿜었고, 연기는 밤바람을 타고 날아가 산산히 흩어진다. 연기가 흩어지고 다시 눈을 비추는 도심의 야경. 언제봐도 은하수 같이 빛나는 것이 실로 절경이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고있어."




"...형, 왜 그리 바보같이 사는거야? 낮에도 기껏 구해온 음식을 나와 베키에게 몰아주고... 자기자신부터 챙겨 좀."




"그게 어때서. 내가 내 가족들 더 먹이겠다는데."




"으휴, 그러다 나중에 피본다. 난 신경쓰지 않아도 좋으니까 차라리 베키나 챙겨줘."




"하하, 이미 네가 잘 챙겨주잖아."




"무슨 헛소리야."




"넌 모르는구나. 베키 씨는 너 없을 때마다 항상 네 얘기만 한다고. 네가 친절하다느니, 항상 구해주러 나타난다느니... 마치 슈퍼히어로 같았덴다!"




아놀드가 껄껄 웃자, 존은 혀를 차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쯧, 여기로 굴러들어온 이유가 있지. 그렇게 쉽게 사람을 믿어서야 원..."




"그럼 존은 아직도 제가 싫으신가요?"




그 때, 불쑥 나타나 존 옆에 앉는 베키.

존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언제 올라온거야?"




"방금이요. 자다 깼는데 두 분 다 안계셔서 얼마나 놀랐다고요."




"하하, 미안합니다, 베키 씨. 저희는 종종 여기서 밤을 보내거든요."




"여기있으면 뭐가 좋나요?"




베키의 물음에 아놀드가 손가락으로 도심의 야경을 가리켰다.


베키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이후 화려한 야경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정말 예쁘네요..."




"그렇죠? 여기서 보는 야경은 아주 장관이죠. 존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랑 저랑 같이 올라와서 야경을 봤었죠. 그럴 때마다 프렌치 토스트와 크림수프가 그렇게 먹고 싶다며 얼머나 징징대던지~."




"형,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아놀드와 존의 대화에 베키는 의아해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라면..."




"저희를 키워주신 소중한 가족이셨죠. 그 분은..."




"형, 그런걸 왜 말해."




"존, 베키 씨도 이제 우리 가족이야. 이 정도는 괜찮잖아."




"쯧, 알아서 해."




그렇게 아놀드는 베키에게 스콧과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얘기해주었고, 베키는 눈에 불을 밝히며 경청했다.

마냥 무심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던 존 역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옛일들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겼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럼 스콧 할아버지는 지금..."




베키의 물음에 아놀드와 존은 말없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어댔다. 이에 베키는 뒤늦게 아차하고는 어쩔 줄 몰라하며 진땀을 뺐다.



"죄, 죄송해요... 그럴 의도는 아니였는데..."



"...됐고, 너도 담배피냐?"



그런 그녀에게 담배를 건네는 존. 이에 베키는 조심스레 그것을 받았다.




"의외네. 담배도 피고."




"저도 엄연히 성인이라고요. 제가 스무 살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너 하는 짓이 애새끼 같아서 헷갈렸어."




"너무하시네요... 그나저나 불이..."




"여기."




존이 자신이 피던 담배를 가리키자, 베키는 배시기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그의 담배와 맞대었다.

곧이어 불이 붙어 연기가 피어오르고, 셋은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앉아 야경을 보며 쓰디쓴 니코틴을 빨아들였다.




"그럼, 아놀드 씨와 존은 아직도 도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나요?"




"하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건 알지만, 원래 꿈은 크게 가져야 좋죠."




"그럼 존도...?"




"...개소리하지마. 도심은 무슨. 죽지 않고 사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야."




"그럼 프랜치 토스트와 크림수프는 지금도 드시고 싶으신가요?"




"자꾸 쓸데없는..."




"존은 지금도 프랜치 토스트와 크림수프를 입에 달고 살아요. 겉으로는 어른인 척해도 아직 애새끼에요~."




"아 좀! 뭔 소릴 하는거야?"




그렇게 셋은 달빛 아래서 웃고떠들며 긴밤을 뿌연 담배연기에 태워 흘려보냈다.




***





도심 어딘가의 팬트하우스.


늦은밤, 침대 위에 두 남녀가 하나로 포개여져 격렬히 몸을 움직였고, 여성의 거친 신음이 방안을 가득 매웠다.


배불뚝이 남성이 거칠게 허리를 흔들 때마다 그 앞에 엎드려있는 바이오로이드, 블랙 리리스가 눈이 풀린 채 교성을 질렀다.



그렇게 거친 밤일을 마치고, 단 둘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배불뚝이 남성이 팔을 벌리자 그의 품에 파고들어 팔을 베게삼아 눕는 블랙 리리스.



남성은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뒤, 리리스에게 말했다.




"리리스, 다음 주 일정이 뭔지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절 테스트하신다고 하셨죠?"




"그래, 똘똘한게 기억력도 좋아. 다음 주에 실전 테스트를 할거야.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는게 좋을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어떤 상태에서든 항상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뭘하면 되는거죠? 설마 누가 기습이라도..."




"아니, 네가 할일은 쓰레기들을 치우는 일이야."




사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블랙 리리스. 사내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설명을 덧붙였다.




"넌 블랙존으로 가서 쓰레기 50마리를 치우면 된다. 너도 블랙존에 대해서 들은 적 있지?"




"네, 사회에서 배척당한 인간..."




"리리스, 실수하는군.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야. 내가 말했지, 쓰레기라고."




"네, 쓰레기들이요."




"넌 다음 주에 블랙존에 가서 쓰레기 50마리를 치우기만 하면 돼."




"혹시 그 외의 특이사항은 있나요?"




"없어. 어차피 다 같은 쓰레기들이야. 그냥 보이는대로 50마리 처리하고와. 좋은 성과를 내면 포상을 주도록 하지."




"아..., 주인님의 포상... 어떤 건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이에 사내는 블랙 리리스를 껴안고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다면 지금 맛보기를 보여주지."




"아,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님..."





***





담배를 피우고 난 뒤, 다시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어가는 셋.

아놀드가 먼저 잠이 들고, 뒤이어 존과 베키도 곧 잠에 들려고 했다.




"존~."




"왜."




베키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는 존. 그러자 베키의 손가락이 존의 뺨을 콕 찔렀고, 이에 존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베키는 그런 그를 보며 재밌다는 듯 킥킥 웃어보였다.




"이걸 걸려버리네~."




"새끼가... 어서 자라."




"존."




"왜."




"전 지금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셋이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헛소리는 그 쯤하고 자라."




"잘자요~."




"....그래."





그렇게 둘도 깊은 잠에 빠지고, 달빛은 서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


본 내용은 공식설정과는 전혀 무관함.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매워지기 시작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