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조명이 꺼진 어두운 사령실, 은은하게 타오르며 주변을 밝히는 담배.

술을 잘 못하는 내게 담배는 언제나 그 몸을 태워 자신을 희생해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친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후우...."


내 입과 코를 통해서 뿜어지는 회색의 연기. 그 연기에 가슴 속 깊이 잠겨있는

슬픔을 녹여 흩뿌린다.


치이익-


최초의 흡연은 다소 가볍게, 호기심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하루 한 개비로

시작한 담배는 어느덧 하루 반 갑으로... 시간이 더 흘러서는 하루 한 갑이 모자랄 지경까지...


"골초... 라고 했던가."


언제나 내 곁에 머물던 바닐라가 했던 말. 그래, 난 속 된 말로 '골초'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하루에 한 갑을 가뿐히 태우는 만큼 그 말에 대해서는 딱히 이견이 없다.


"그렇게 끊으라고 잔소리 하더만..."


그녀는 담배를 싫어했다. 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건강을 염려해서.

내 눈치를 보며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서도... 확실히 그녀 다운 이유였다. 

나 역시 그런 그녀를 배려해서 적어도 사령실에선 절대로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굳이 꼭 담배를 피워야 한다면 정해진 장소에서 하루에 한 갑 아래로... 인가."


덕분에 별도의 흡연실이 없는 오르카 호 특성상 수면에 부상할 때를 노려 바닷가의

바람을 기분좋게 몸으로 맞으며 담배를 태우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난 사령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사뿐히 물고 있다.


"후우....."


숨을 깊게 마실 때 폐부에서 느껴지는 니코틴과 타르의 타격감.

그리고 숨을 내 뱉을 때 코와 입으로 나오는 연기의 메케한 냄새.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어느 서류를 계속해서 보게 된다.


 "....수복 계획서."


바닐라가 크게 다쳤다. 자신의 목숨보다, 내 명령을 더 중요하게 여긴...

아주 바보 같은 이유로. 그녀는 지금 수복실에서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곳 저곳 너무 심하게 다쳐 의식이 흐려지던 주제에 끝까지 나를 걱정하며 실려갔다.

그저 나를 찾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그렇게 실려갔다.


"꼭 돌아와. 오래 걸려도 좋으니까. 그냥... 그저 내 곁으로 돌아와..."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보며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짙게 깔려있는 어둠과

적막한 사령실에 조용히, 그리고 은은히 울려퍼지는 담배가 타 들어가는 소리.


그녀는 겉으로는 쌀쌀맞고 말을 험하게 하는 편이지만 속마음은 그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진정으로 위해주던 아이였다. 부하를 잃고 좌절하면 옆에서 조용히 어깨를 빌려주고,


고된 일과표에 졸음을 참지 못해 잠시 꾸벅꾸벅 졸 때면 얌전히 무릎을 빌려주던 그녀.

그런 그녀의 따스한 마음씨에 반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풋... 그러면서도 막상 마음을 들키면 창피해 하고는 했지."


그녀는 얼굴이 솔직한 편 이었다. 창피하면 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던 그녀의 모습.

그 귀여운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로 놀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또 그 모습을 보여줘. 제발..."


간절히 염원을 담아 소망 한다. 그녀를 아직 내 곁에서 떠나 보내기엔 내 가슴속의 그녀는

이미 큰 사랑이 되어 깊고 소중하게 박혀있다.


그녀의 용태를 걱정하며 사진을 어루만지던 중 담배를 쥔 손가락에 서서히 열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담배는 그 끝을 향해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이런 사치를 부릴 순 없지."


가뜩이나 쪼들리는 오르카 호의 살림. 귀한 담배를 이렇게 낭비 하다니. 헤비스모커 라면 용납할 수

없는 사치나 다름없다. 애연가인 군인에게 돗대란 생명과 같으니까.


"후우....."


마지막으로 남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다시 내뱉는다. 흰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온다.

내 걱정과 불안을 그 연기에 담아, 모조리 털어낸다.


"믿고 있어. 바닐라... 내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






드르르륵-


"당연히 돌아와야지요! 한심한 주인님을 두고 제가 어떻게 먼저 떠납니까? 

그리고! 제가 말 했지요! 사령실에선 금연! 적어도 나가서 피워 달라고!"


"바, 바닐라..!"


콘스탄챠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이곳 저곳 붕대를 잔뜩 감은 바닐라가

사령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내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돌아왔구나...! 바닐라!"


"꺄앗..! 아, 아파요! 주인님!"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달려나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직 완쾌되지 않았기에

고통을 호소하는 바닐라였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역시 내 허리에 손을 감은 채 조용히 미소지었다.


"주인님께서 금연 하실 때 까지. 계속 옆에 붙어서 잔소리 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 참에 끊으세요."


그녀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안해...."


"이제 와서요? 사과하셔도 소용 없어요. 앞으로 잠수함 내에선 절대 금연!"


'....금연, 못할 것 같아.'


그 말을 속으로 삼키고 바닐라를 품 안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 없는 삶은 아직 내게 잔혹하니까.


그 각오를 담아 바닐라를 더욱 세차게 품에 안는다.

그녀는 내게 가장 소중하니까.


'너의 잔소리가 그리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