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바람과 대화하는 양치기


별을 지붕삼고 푸른 목초지를 카펫삼아 누워 밤을 지세던 날들.

귓가를 속삭이는 바람을 친구삼아, 양들을 벗삼아 지세던 날들.

나는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풀숲을 스치는 바람은 습기와 짐승의 냄새를 머금고, 숲짐승과 내일의 날씨에 대해 속삭여준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는 오늘, 하얀 파도를 타고 온 바람은 푸른 풀들 스치고 절벽을 가로지르며 소금기와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한아름 안고, 언덕을 넘어 내게 안기었다.

나는 이 바람의 손에 이끌러 오늘도 언덕을 넘는다.


철퍽철퍽 금빛 모래를 때리는 파도를 지나 모래사장에 인장을 찍듯 흔적을 남기고, 적당한 바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다.

말을 타고 창을 들며 숲을 누비는 귀족적인 사냥은 아니지만, 양을 치며 시간을 보내던 지난날을 추억하는 나만의 사냥이다.

수평선 너머에 넘실되는 파도는 풀이요, 파도를 타는 물고기는 양이니라.

이 순간, 나는 의무와 명예를 벗어던지고 한 사람의 양치기가 된다.


뛰어난 시계공이 만든 정교한 시계처럼, 주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시계처럼 정교하게 맞물린다.

시계바늘의 축은 지구고, 시침은 태양이요, 분침은 달이다.

지금, 주의 시계는 저녁을 가리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나는 텅 빈 양동이를 들어올리고, 낚싯대를 거둬들인다.

자박자박, 서류에 인장을 찍듯이 모래사장에 발자국이 남을 수록, 의무와 명예는 망토처럼 내 몸을 감싼다.

내가 온 방향으로 되돌아온 바람은 도시의 냄새를 한아름 안고 온다.

재빵소의 고소한 냄새와 제과점의 달콤한 냄새.

그리고 푸줏간의 피냄새와 여러 오물 냄새.

이러한 도시의 냄새를 안고 온 바람은 내게 의무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게 또다른 의무를 내려주신다.


태양과 달이 만나는 수평선 너머. 

피처럼 붉은 바닷속을 나무토막들과 참나무통들이 둥둥떠다닌다.

마치 시체가 떠다니는 것 같은 불길한 상황.

나는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저 붉은 태양은 내 발목을 잡는다. 

태양과 수평선이 겹치는 저 너머, 가녀린 인형의 형상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분명 시체일 것이다, 굳이 못볼 것을 볼 필요가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말려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낡아빠진 양동이와 낚싯대를 집어 던지고 셔츠를 벗어던지는 내가 있다.

피처럼 짜고 비린 바다를 가르고 파도의 주먹을 맞으며, 마침내 거룩한 주의 피조물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질좋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검고 긴 머리카락과 매끄러운 흰 피부, 그리고 희고 고급스러운 옷은 그녀의 고귀한 신분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건 내 품에 안긴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다.

주님께서는 아직 그녀에게 삶을 허락한 것이니라.

나는 주의 자비에 감사드리며 다시 바다와 파도의 손아귀를 뿌리친다.


한참이 걸려 겨우 땅을 밟았건만, 바다는 내 옷자락을 붙잡고 나를 끌어들인다.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지만, 바람은 내 등을 떠민다.

나는 해변을 뒹구는 물건들을 내버려둔 체 몸을 일으며, 그녀를 소중히 들어올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내 의무가 기다리는 곳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주의 시계는 어느세 밤을 가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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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산책시키다 떠오른 소재임.

씨벌 싸질러만 놓고 재대로 완결낸 적이 없는데 이건 한번 해봐야지.

철남충이 인어공주를 만나고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는 내용임.

지금은 6화정도 예상하고 있음.

씨벌 이번 연후 내내 공구리 쳐야 해서 존나 피곤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