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버프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난 겸 + 엘리라는 떡밥을 물고 썼습니다.




...

첫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엘리는 밝게 웃었다.

폭탄은 무사히 제거됐고 근처에 있던 요원이 그녀를 위해 손뼉을 쳐주었다.

떨리는 의수를 감싸 쥐며 엘리는 요원의 인도를 받으며 현장을 떠났다.

"축하해요. 보통 첫 시작이 중요하거든요. 당신과는 오래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시라유리라는 이름의 요원은 그런 말을 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엘리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마주 미소 지었다.


두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엘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폭탄은 무사히 제거됐다. 사람들은 무사했다.

임무가 끝나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시라유리가 합류했다.

"어머. 고생했어요. 저번보다 훨씬 빠르게 제거하셨네요.

홍차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복귀 전에 잠깐 마시러 갈까요? 근처의 괜찮은 카페를 안답니다."

엘리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엘리는 흐르는 식은땀을 손수건을 들어 닦았다.

폭탄은 무사히 제거됐다. 사람들은 무사했다.

뺨에 살짝 닿은 의수의 감촉은 차갑고 서늘했다.

무전을 통해 오늘은 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들었다.

합류 지점은 알고 있었다. 엘리는 양산을 접고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은 웃고 날씨는 밝았다.

그 모습을 보며 엘리는 미소 지었다.


네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엘리는 긴장으로 인해 떨리는 몸을 감싸 안았다.

폭탄은 무사히 제거됐다. 사람들은 무사했다.

겉면에 보이는 타이머의 시간은 3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언니. 괜찮아? 이제 현장에서 복귀하면 돼. 혹시 문제가 남아있어?"

무전을 통해 닥터의 목소리가 들려와 엘리는 정신을 차렸다.

"아뇨.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겨우 타이머로부터 눈을 떼고 엘리는 양산을 접었다.

몸을 일으킨 엘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공원의 풍경이 엘리의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있던 아이 하나와 눈이 마주친 엘리는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해 보였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바로 말해줘. 언니는 이제 소중하니까.

...아니. 언니는 언제나 소중했어. 그러니까 뭔가 이상이 있으면 말해줘!"

"네. 문제없으니까 괜찮아요. 복귀하겠습니다."

엘리는 천천히 공원을 걸어가며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과 따스한 햇볕을 느꼈다.


엘리는 다섯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폭탄은 무사히 제거됐다. 사람들은 무사했다.

타이머의 시간은 1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엘리는 차분하게 폭탄을 끝까지 해제한 자신의 두 의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형 폭탄이었다. 명백하게 해제하는 쪽을 의식하고 만든 위험하고도 복잡한 폭탄이었다.

역장의 전원을 끄고 엘리는 몸을 일으켰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폭탄을 회수하러 온 시라유리가 말했다.

"훌륭했어요. 역시 엘리네요. "

"네. 저는 완벽하니까요. 저는 마땅히 무고한 시민 여러분을 지켜야만 하니까요."

"........."

엘리가 미소 지으며 한 말에 시라유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그런 엘리의 머리에 손을 올려 조심스럽게 쓰다듬고는 말했다.

"복귀 전에 약간 시간이 비는데 같이 홍차라도 마시겠어요? 미리 알아둔 고풍스러운 카페가 있답니다."

"네! 저는 좋아요."

엘리는 기쁘게 답했다.


엘리는 여섯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폭탄은 무사히 제거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폭탄은 곰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변은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였다.

만약 이 폭탄이 본래 의도대로 작동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엘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평범한 곰 인형이 된 인형을 들고서 엘리는 생각했다.

대체 왜 폭탄을 이런 형태로 이런 장소에 두는 걸까 하고.

그 악의를 엘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평온한 오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엘리는 복귀를 명령하는 무전에 응답했다.


엘리는 일곱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폭탄은 무사히 제거됐다.

이번 임무에서는 폭탄 제거를 위한 실전을 지켜보기 위해 자신의 동형기이자 후배가 역장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여기 물 좀 드세요."

"고마워요."

웃으면서 하는 후배의 말에 엘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물병을 건네받았다.

삽시간에 물을 다 들이켠 엘리는 한숨을 쉬었다. 후배가 그런 엘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나요? 훈련에서 나온 폭탄과는 조금씩 다른 폭탄이?"

"대부분이라고 보시면 돼요."

"어떻게 하면 저도 선배님처럼 훌륭히 제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조언을 구하는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엘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걸 기억하면 돼요. "

그런 말을 하고 엘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 한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둘의 곁으로 많은 사람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간 후배가 알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 양산도 없다고 생각하고 말이죠? 역시 선배님이시네요.

모두가 선배님이 최고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

엘리는 낯부끄러운 칭찬에 얼굴을 붉혔다.


엘리는 여덟 번째 임무를 마쳤다.

폭탄들은 제거됐다.

근처에 떨어져 있던 주인 잃은 양산을 조심스럽게 집어 든 엘리는 고개를 떨궜다.

양산의 주인을 엘리는 몰랐다. 기관에서 교육이 아닌 이상 동형기를 마주하는 건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상할 수는 있었다. 폭탄이 터지기 직전까지 멈추지 않았을 생각들과 두려움을.

어쩌면 엘리가 했던 교육을 직접 받았던 후배였을지도 몰랐다.

받았던 교육과 실습을 쉴새 없이 되뇌며 의수를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주변을 둘러봤을 것이다.

엘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로 차 있던 공항은 대피 명령조차 내리지 않고 있었다.

경비 AGS 몇이 작업 중이라고 길을 막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벽의 그을음과 몇몇 잔해들이 남아있는 것을 지우기 위해 청소용 로봇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상황이 종료됐음을 무전을 통해 알린 뒤

엘리는 청소 로봇이 무언가가 있었다는 흔적을 지우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엘리의 아홉 번째 임무가 끝났다.

몸을 일으키고 기폭 장치가 해제된 폭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엘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 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엘리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가 사라졌다.

아무런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전이 들려왔다.

"이번 임무도 수고 많았어. 언니."

"닥터. 하나 물어봐도 괜찮아요?"

"응. 어쩐 일이야? 뭐든지 괜찮아. 내가 모르는 건 어떤 것도 없으니까."

"몇 번 정도 더 임무를 끝내면 세상에 평화가 찾아올까요?

의무를 수행하거나 이런 일에 불만이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제가 하는 일이…."

엘리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말했다.

"농담이에요. 닥터. 돌아가면 티타임을 가져도 괜찮을까요?"

"아…. 응. 물론이야. 시라유리 언니도 부를게!"


열 번째 임무가 끝났다.

열한 번째 임무가 끝났다.

열두 번째 임무가 끝났다.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무 번째 임무가 됐을 때부터 엘리는 몇 번째 임무인지 세지 않기로 했다.


임무가 끝났다.

엘리는 해제된 폭탄을 수거용 가방에 넣었다.

"끝났습니다. 복귀하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가 우물쭈물하며 물어왔다.

"어떻게 하면 선배님처럼 그렇게 훌륭하게 제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엘리는 예전에도 비슷한 물음을 들어봤던 것만 같아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때 뭐라고 답했는지 엘리는 기억할 수 없었다.

대신 미소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집중하세요. 목표 앞에 도달했을 때는 다른 생각은 하지 마요.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돼요."

엘리는 그러면서 후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 개체는 무사히 임무를 해낼 수 있을까.

아니 해내더라도, 언제까지?

살짝 당황하는 듯한 청록색의 눈동자 안.

그 안에서 비치는 잔잔한 자기 눈동자를 바라본 엘리는 빙긋 웃었다.

"함께 힘내요."

"네! 저도 선배님처럼 훌륭하게 의무를 수행할 수 있게 노력할게요."

당찬 대답에 엘리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임무를 끝내고 복귀 전, 폭탄이 설치됐던 쓰레기통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엘리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시라유리 님. 네. 그간 별일 없으셨나요? 저는 잘 지냈어요."

엘리의 곁에 시라유리가 다소곳이 앉았다.

"이번 폭탄도 회수하러 오신 건가요? 급조폭발물이라 그럴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요. 근처에 다른 일이 좀 있어서. 그쪽 일을 마쳤는데 마침 당신이 근처에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찾아온 거예요."

"저를 일부러 보시러 오신 건가요?"

"네. 닥터에게 들었거든요. 요즘 무리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번 모습을 좀 봐달라고요."

"걱정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괜찮아요. 이게 제 의무니까."

흐릿한 미소를 지은 뒤 엘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인간님들이 괜찮으신지는 잘 모르겠네요."

엘리는 짧게 웃었다.

"전 분명 잘 해내고 있을 텐데. 많은 사람을 구하고 제 의무를 수행하고 있을 텐데.

내일도. 그리고 내일도. 그리고 내일도.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사람들은 악의를 담아 폭탄을 만들 거고, 저는 그곳으로 걸어가 그것을 해제하겠죠.

우리의 어제가 그 모든 게 먼지로 돌아간 것을 보여주어도.

촛불들이 덧없게 꺼지듯.

불행한 배우가 백치처럼 분노에 차 떠드는 이야기와 같이."

"맥베스인가요?"

시라유리의 물음에 미소로 답한 엘리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는 언제든 제 의무를 다할 준비가 됐습니다.

그것이 고귀한 일이든 아니든,

제가 마침내 견디지 못할 날이 올 때까지."


엘리는 먼저 복귀했다.

홀로 의자에 앉아 있던 시라유리는 깊은 한숨을 쉬고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곧 통신이 들어왔다.

"어때? 엘리 언니는?"

"어떤 게 말인가요? 닥터 양.

139번의 임무 수행 능력을 말하는 건가요?

같은 개체 중 가장 훌륭하다고 할 수 있죠.

단가로 따지자면 이미 더없이 훌륭한 기관의 요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제없겠죠. 그러한 요원이 존재하지 않기 전까지는."

"혹시 화났어?"

"네. 이상하게 짜증이 나네요."

시라유리가 미소 지은 채로 말을 이었다.

"정을 붙일 만한 개체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정이 붙은 개체들은 주기적으로 멀쩡한지 확인해봐야 하는데

그나마 남은 것도 저 옛 시구나 읊는 귀염성도 없는 139번뿐이라니."

시라유리는 투덜거리듯 말을 이었다.

"80번은 끝까지 힘내겠다며 웃는 모습이 예쁜 아이였는데 말이죠.

200번은 그나마 무섭다고 울 정도로 솔직한 아이였고.

어제 죽은 321번은 티타임을 늘 권했던, 성가시긴 해도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고….

제가 본래 해야할 임무도 바쁜데 좀 적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안해. 언니. 내가 굳이 알고 싶다는 바람에."

"닥터 양의 잘못은 아니에요. 임무에 쓸데없이 감정적으로 된 제 탓이죠.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구제불능한 테러리스트들 탓이고.

어쨌든 139번이나 저나 아주 오랫동안 봐와서인진 몰라도 쉽지 않네요.

어떤 보고를 올려야 할지 말이죠."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시라유리는 짐짓 엄숙한 투로 말했다.

"To be, or not to be.

어떤 쪽이 더 고귀한 것인가."

"......."

"하지만 저도 엘리 양과 같은 의견이에요.

어느 쪽이 고귀한 일이든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테니까.

그리고 저도 궁금해졌거든요.

과연 엘리 양이 몇 번이나 폭탄을 해제하면 세상이 더 나아질지 말이에요.

후후. 이렇게 감정적으로 되어서는 안 되는데.  이 정도 투정은 그러려니 해줘요. 닥터 양."

"응. 고마워. 시라유리 언니."

"천만에요. 저도 금방 복귀하겠습니다."

시라유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개와 같은 구름이 점차 하늘을 채워가고 있었다.

멀리서는 폭동으로 짐작되는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


전쟁이 악화되고 테러가 빈번하게 벌어질 때면 폭탄 제거만을 위해 만들어진 엘리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써봤습니다.


시라유리 역할은 원래 니키가 맡을 예정이었는데, 시라유리가 더 어울리는거 같아서 바꿨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니키가 했어도 괜찮았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