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달그락



티없는 흰색 도자기로 만들어진 접시와 은으로 된 포크가 


부딪혀 나는 소리 속에서 고소한 계란의 냄새와 커피향이 풍겼다.



아멜리는 그다지 입맛이 없었다. 


아니, 사실 그녀가 아침에 입맛이 있던 역사가 없었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그녀는 유복한 집안의 사람이라면 으레 받는 오리진 더스트 시술마저 받지 못했다.


집안 어르신들을 담당하는 주치의가 죄송스러운 얼굴로 주절주절 내뱉은 자세한 이유는 이해 못했지만


다섯살에 남동생이 가지고 놀던 공을 차보려고 힘주던 순간 빈혈로 쓰러졌던 이후부터


그녀의 인생은 건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열 두살에 김나지움(Gymnasium)에 입학 하던 순간에도


열 여섯살에 자신이 약혼식을 올렸던 순간에도


스물 두살에 뮐러가(家)에 시집 왔던 순간에도



그녀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약한 것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좋은 집안에게 시집 간 것도


딱히 그녀가 이룬 일도 아니었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32세의 지독한 가을감기가 지나간 지금 인생 네번째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 없어."


"...알겠사옵니다."



샤락



후추와 바질의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흰색 머리는 정중하게 접시를 치우며 사라졌다.



"한입 정돈 들어보지? 소완의 요리는 미식가들도 감탄한다고?"

 

"...아니에요."



맞은편에 앉은 남편 루카스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짐짓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오버하긴.


미안하긴 하나봐?


어젯밤엔 굉장했나보지?



신혼때 이후로 오랜만에 들어본 루카스의 걱정을 한귀로 흘리며 아멜리는 대답했다.



"주치의가 지금 먹는 약에는 유제품이나 달걀은 먹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 하긴 어디서 들었는데 동물성 기름이 약물이 흡수하는걸 방해한다고 하더라고. 내 친구중에 옥스퍼드 의대를 나온..."



솔직히 들어주기 힘들었다.


루카스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걸 지독히도 싫어했기에 둘러댄 거짓말이었지만


어젯밤 자신의 외도에 대한 고해성사를 하듯 과장된 좋은 남편 연기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솔직히 루카스의 외도에 일말의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차라리 밖에서 부끄러운 꼴 안보이고 집안의 바이오로이드에게 그 엄청난 성욕을 푸는게 다행이랄까.



어쨌건 아멜리는 들어줘야 했다.


왜냐면 그녀의 기분보다 루카스가 당장의 죄책감을 풀어내는것이 중요했으니깐.



오 맙소사 이젠 자신의 동창 자랑이군.



"주인어른."


"저번에 학회에 발표한 논문에도...응?"


"이번에 내온 커피는 최고급 품종이라 식으면 맛이 달아나옵니다."


"오! 그렇지 내가 품위없는 짓을 했군."


"..."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과장된 행동으로 신문을 치우고


이내 커피를 홀짝였다.



그리고 소완은 루카스가 안보이는 뒷편으로 물러나며 아멜리에게 싱긋 미소지었다.


뱀같은 인상에 안어울리는 상냥한 미소였다.



"..."



아멜리는 익숙치 않은듯 커피를 홀짝였다.


소완은 그날 밤 이후부터 자꾸 이런식으로 자신의 배려를 해주었다.


강렬했던 첫인상과 대비된 탓일까 참으로 익숙치 않은 배려였다.



그래도 뭐...


나쁘진 않았다.



루카스의 받아주기 힘든 추잡한 성욕도


가끔 자신이 하던 요리에 잡던 자잘한 트집들도



그녀가 온 뒤로 모두 깨끗하게 사라졌으니깐.



커피를 마시면서 아멜리는 소완이 처음으로 왔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안녕하시옵니까? 주.인.어.르.신의 주방장을 맡게 된 소완이라고 하옵니다."


꽈악


"..."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 바이오로이드는 뭘까? 였다.


지금도 쥐어터질듯 말듯 자신의 치맛단을 잡으며 위협적인 인사를 건내는 모습은


흡사 김나지움에서 수업 첫날 자신에게 시비를 걸던 패거리가 연상되었다.



흠.


대체 뭘까? 이 바이오로이드는.



"그렇게 힘주면 안아프니?"


"후훗 그렇게 말씀하셔도 주인어르....예?"


"안아파?"


"..."



여유로운 미소로 뭔가 답하던 소완은 잠시 입을 헤 벌렸다.


바이오로이드라서 그런지 그런 모습조차 그림같았지만 


아멜리는 지극히 자신의 상식에 기반한 행동을 했다.



"입닫아 먼지 들어가."


"..."




그녀의 백옥같은 턱을 들어 입을 손수 닫아주자 


소완은 황망한 얼굴로 쳐다볼 따름이었다. 



"따라와 주방 알려줄께."


"아...으...네. 알겠사옵니다."



하필이면 메이드장인 엠마나 집사 스튜어드가 자리를 비웠을때


삼안에서 주문한 최고급 바이오로이드가 도착했다기에 


자잘한 일을 하는 사용인들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자신이 안내를 맡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소완은 복잡한 얼굴로 뭔가 따라오고 있었다.


삼안의 기술력이 집약된 최첨단 바이오로이드라 하길래 뭔가 빈틈없는 분위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허술한 아가씨였다.



주방의 위치를 알려주고 저택에서의 규칙이나 


자신의 약과 맞지 않은 음식들을 일일이 설명하던 도중이었다.



"저..."


"응?"


"어째서 마님께서 직접 지시하시는지요...?"


"내 집이니깐 내가 설명하는걸?"


"이,이런것은 보통 아랫사람들이 대리로 보내서..."


"오, 그런것도 아니? 3달전에 만들어졌다면서?"


"아니 소첩은...하아, 아니옵니다."


"...어차피 이집에선."


"...네?"


"...이 저택에선 루카스를 제외하면 모두 똑같아."


"..."


"그이가 말하는 대로 이뤄지고 아니면 버려져."


"..."


"지금은 없지만 엠마와 스튜어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몇개월 못버텨. 그래서 내가 설명하는게 빨라."


"...알겠사옵니다."



잠시 주저하던 소완은 묵묵히 아멜리의 설명을 경청했다.


설명했던것을 모두 잘 이해했는지 그날 저녁은 참으로 호화스러운 만찬이었다.




"으음..."



아멜리는 더부룩한 가슴을 움켜잡으면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오랜만에 먹은 고기가 너무 기름졌던걸까?


입이 짧은 자신도 감탄하면서 먹을 만큼 참으로 맛있는 요리였다.


하지만 원망스러운 이 몸은 그마저도 게워내기 위해서


아멜리에게 어서 소화제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메스꺼운 속을 붙잡고 엠마의 방에 연결된 호출벨을 눌렀다.



"..."



반응이 없다.


한번 더 눌러 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하아..."



차라리 자신이 일어나 부엌에서 소화제를 꺼내는게 빠를 지경이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광활한 자신의 방을 천천히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각방을 쓴지 4년째인 지금은 발끝에서 느껴지는 적막한 한기가 익숙해져서 괜찮았다.



저벅저벅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냉막한 복도를 걷던 아멜리의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아니, 그것은 아마 아까부터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건 소완이었다.



"...소완?"


"...마님."


"..."



강박적으로 육감적인 몸매를 구속하듯 입었던 낮의 정복과는 달리


지금은 하늘하늘한 속옷 아래 그녀의 굴곡이 비쳐보이는 차림새였다.


마치 신방에 찾아가는 첫날밤의 신부처럼...



하지만 눈에는 물기가 살짝 어려 있었고 뺨은 빨갛게 부어있었다.



"..."


"..."



처음에는 놀라움, 그다음은 수치심을 느낀듯 고개를 돌린 소완이었다.



아아...이 아이 루카스에게 거절 당했구나.



병약한 자신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성욕을 가진 루카스가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바이오로이드를 거절할리가 없을터...



아마 거절당했다면 그 이유는...아...



"...실례하겠사옵니다."



분함이 섞인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방으로 가려던 소완을 불러세웠다.



"저기..."


"..."


"루카스는..."


"...큿..."


"...입으로 하는걸 싫어해"


"...?! 그게 무슨..."



자신을 지나쳐서 방으로 돌아가려던 소완이 쳐다보는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멜리는 소완을 등진채 조용히 말했다.



"...열아홉살에 성인식날, 루카스하고 첫경험을 가졌을때..."


"..."


"그이가 입으로 해달라고 부탁해서 뭣 모르고 허락했거든."


"..."


"생각해보면 웃기지? 처음인 여자애에게 다짜고짜 펠라라니..."


"..."


"아무튼 그이의 물건이 입에 들어왔을때 갑자기 기침이 나오는거야."


"..."


"무의식적으로 입에 물고 기침을 하다 그만 그이의 물건을 좀 세게...물어버렸어."


"..."


"그때 기억이 트라우마로 박혔는지 그뒤론 입으로 해주는 여자들에게 발작하더라고."


"..."


"아마 가문의 자존심도 있어서 나에게는 내색하지 않지만...그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다소 난폭해져."


"..."


"...그러니깐 너무 상처받지 마. 다 내탓이니깐."


"어째서..."


"응?"


"어째서 그런말씀을 해주시는 것이옵니까?"


"..."



뒤돌아보니 소완은 이해가 안간다는듯 쳐다보고 있었다.


찡그린 미간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일까.



"소첩은 주인어른을 사모하옵니다."


"그렇구나."


"소첩은 마님의 자리를 빼았을 생각을 하고 있사옵니다."


"루카스랑 섹스리스인지 4년째거든?"


"소첩은 질투심도 많고 성격도 더럽고...그리고...그리고..."


"저기말야."



소완의 손을 꼭 잡아줬다.



"안아파?"


"...!"


"그렇게 힘주고 있으면..."


"..."



소완의 꼭 쥔 손을 주물러줬다.



"있지. 난 너가 참 부럽다고 생각한단다."


"..."


"바이오로이드 입장에선 웃기겠지? 하지만 그래..."


"...마님."


"평생 힘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사는 사람한테 너는 참 빛나보여."


"...마님."


"그러니깐 이 저택에 널 싫어하는 사람은 없단다."


"..."


"루카스도 아마 내일이면 전부 잊어버릴꺼야."


"흑..."


"그이가 성욕이 참 강해서 힘들었어. 아마 널 싫어하는 일은 없을거야."


"흐윽...읏..우윽..."


"그러니 힘 좀 풀어도 괜찮아."


"으윽...가,감사합...흑..."



아멜리는 피식 웃었다.


어깨에 힘이 빠진채 야한 속옷을 입고 콧물을 흘리는 소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이뻤다.


바이오로이드라서 그런가?



그날밤 이후로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주인을 사랑하는 주방장은 기묘한 공생관계에 놓이게 됐다.



싱긋



"...뭐야."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웃어?"


"마님과 함께 있으니 기뻐서 웃어사옵니다."


"얘가 닭살 돋게...그런건 루카스한테나 얘기하렴."


"주인어른에겐 다른 종류의 말을 하는데 마님도 듣고 싶사옵니까?"


"됐다 됐어."



손을 팔랑 팔랑 흔드는 아멜리를 보면서 소완은 쿡쿡 웃었다.


그리고 한적한 정원에서 아멜리와 소완은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주인어르신께서는 왜 자리를 비우셨는지요?"


"글쎄...갑자기 하늘에서 무슨 벌레가 나타났다고 하던데?"


"벌레 말이옵니까?"


"응, 베를린 방위군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깐 뭔가 맡겨야 할일이 있나봐."


"그렇사옵니까..."



아멜리는 잠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봤다.


참으로 맑았다.


옆을 돌아보니 소완은 잠시 생각중인것 같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낮인데 벌써 별이 보이네?"


"별말이옵니까?"


"응, 저기 저 검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