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약간 매운 맛

*리리스의 마지막 편지 이거 후속 편으로 써봄

 안 읽어도 딱히 상관은 없을 듯



선선한 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내 손에 들려있는 담배가 치익 소리를 내며

타 들어간다. 가끔 오르카 호가 부상할 때는 실내 흡연장이 아닌 이렇게 밖에서 담배를

태우며 바닷바람을 맞는 것. 이것이 내 유일한 취미 중 하나였다.


"후우~~"


입 밖으로 뿜어지는 희뿌연 담배 연기. 메케한 담배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면 눈살을 찌푸릴 만

하지만 곁에 있는 리리스는 그저 웃는 얼굴로 내 옆에 서 난간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냄새 심할건데."


'괜찮아요.'


"담배 싫어 했잖아."


'주인님이 피운다면 괜찮아요.'


그녀에게 멀리 떨어져 있거나 돌아갈 마음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항상 묵묵히, 내 곁에서..

손만 뻗으면 바로 닿을 그 거리. 보폭으로는 한 걸음 정도 되는 이 거리를 그녀는 항상 유지했다.


"항상 그렇게 내 곁에 있는거 힘들지 않니?"


'저는 주인님과 멀어지는 게 더 힘든걸요?'


생긋 웃으며 대답하는 리리스. 리리스의 그 말이 귀찮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익숙해 져 그녀가 곁에 없으면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래... 넌 항상 내 곁에 있었지."


다시 한 모금 깊게 담배를 태운다. 손 끝에서 붉은 빛을 뿌리며 타 들어가는 담배.

그 담배 끝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시 숨을 내뱉는다.


"후우~"


폐부에서 느껴지는 니코틴과 타르가 빚어내는 타격감. 이 느낌이 좋아서 담배를 태운다.

이 한 모금이 수많은 현실들을 잊게 만들어주니까..


"왜 넌 날 좋아했어?"


'음... 글쎄요. 사랑하는 것에 이유가 필요할까요?'


"이유.... 인가."


그녀의 대답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긴, 누군가 사랑하게 되는 건 이유가 없다.

그저 좋아하니까. 그저 곁에 머물고 싶으니까.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겠지.


"그래.. 이유는 필요 없겠지. 너와 내 사이처럼."


'후훗. 역시 그렇지요? 주인님을 사랑하게 된 건 저에겐 운명과 같았어요.'


"운명?"


리리스의 뜻 밖의 대답에 서서히 짧아지기 시작한 담배도 잊은 채 귀를 기울였다.


'전 항상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분을 주인으로 만나고 싶었거든요.'


"지킬만한 가치... 그런 게 내게 있었어?"


'그럼요~ 주인님은 제가 이 세상에 눈을 뜨고 만난 유일한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분 이었어요.'


리리스가 방향을 돌려 나와 같이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선선한 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기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저희 바이오로이드를 그저 도구가 아닌 인격체로 존중해 주시는 분. 만들어진 우리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는 분. 그리고...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신 분.'


"리리스..."


'주인님은 항상 노력하셨죠. 저희들이 다치는 게 너무 싫다고. 그것도 자신의 무능 때문이라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주인님은 그저 방관하셔도 되셨어요. 그저 소모품이 소모된 것 뿐,

그 뿐인 것으로 치부하고 넘겨도 되셨어요.'


리리스가 거기까지 말하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밝은 빛을 뿜어내는 달을 움켜쥐듯 제스처를 취했다.


'주인님께선 유일하게 남겨진 인간. 저희들은 그저 만들면 그만 인 바이오로이드. 따라서 주인님은

저희들에게 저 하늘의 달 같은 분이세요. 늘 고고히 떠 있는 달... 무수히 많은 별 들 사이에서

홀로 외롭게 떠 있는 달.'


"달 같은 사람이라..."


'후후훗, 너무 어렵게 말 했나요? 그치만... 전 더 어울리는 표현은 모르겠어요. 그도 그럴것이...

주인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많지만, 주인님은 단 한 사람 뿐이니까요.'


하긴, 리리스가 한 말과 비슷한 소리를 자주 듣기는 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난 그 아이들의 사랑에 응답해야 하지만 난 혼자 남은 인간. 내 사랑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주인님은 먼저 저희들에게 다가오신 분이세요. 그 누구도 쓸쓸하지 않게.

그래서 더 주인님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거 좋아해야 하는 건가?"


'글쎄요? 저희들은 그런 주인님을 사랑하지만... 주인님은 항상 외롭고 고독해 보였어요.'


리리스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얼굴을 돌렸다.


'그래서 더 주인님의 곁에 있고 싶었답니다. 외롭지 않도록, 힘들때면 기댈 어깨를 빌려주기 위해서.'


어느덧 담배를 쥔 손가락에 열기가 느껴졌다. 벌써 그 심지가 다 타 들어가고 필터에

뜨거운 열기를 전하고 있었다. 나는 남은 꽁초를 털어내고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어."


'아아~ 주인님도 결국 제 매력에 푹 빠지셨구나~'


장난스러운 음색, 그녀를 바라보며 그저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낸다.


"하지만 이젠 너가 싫어."


'어머! 그건 슬픈데요.'


우는 시늉을 하며 리리스가 혀를 찔끔 삐죽거렸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몸짓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하하! 그도 그럴게 넌 이제 내 곁에 없잖아."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늘 곁에 있어야 했는데.'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가슴팍에 있는 속 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냈다.


"이때는 정말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갖은 기분이었어."


그 사진에 있는 나와 곁에서 팔짱을 끼고 함께 웃는 리리스. 이젠 낡아서 빛이 바랬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사진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후우~~"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요. 밤바람이 차답니다. 이제 들어가세요.'


"조금만 더 있으면 안될까?"


'후훗, 그럼 저도 좋지만... 안된답니다. 주인님을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이 걱정해요.'


"그래... 그렇겠지..."


나는 그녀의 말에 마지막 연기를 입으로 뿜어내고 담배를 바닷가로 던졌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그녀의 모습... 그리고 아직 내 곁에 남아있는 수많은

다른 아이들... 나는 남겨진 사람으로서 그녀들을 지켜야 한다.


"정말이지...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사라졌구나. 마치 담배 연기처럼..."


곁에 언제나 함께 있었던 리리스가 담배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녀를 떨치지 못한 내 자신이

웃기게 느껴졌다. 리리스는 부디 내가 그녀를 잊기를 바라고 또 바라겠지. 항상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걱정하던 그런 아이니까.


"그럼... 다시 일 하러 가볼까."


정복의 모자를 다시 굳게 눌러 쓴다. 곁을 떠난 이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남아서 함께 하니까.

이제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쏟을 시간이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사랑해."


'저도 사랑합니다. 주인님.'


그녀의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 울려 퍼진다.

그녀는 내 곁에서 사라졌지만, 마음속에 늘 함께 한다.


늘 곁에 있었던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