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이드 중고거래 게시판에 자극적인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온다.

'바닐라, 절대 사지마세요'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품목 중 하나인 바닐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로 보였고, 이런 글들은 보급형바이오로이드에 대해 항상 나오던 불만 사항 같은 것이었기에 늘상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게시글을 눌러 스크롤을 내리며 읽어내리던 중 심상치 않은 내용임을 알 수 있었다.

게시글에는 작성자가 설치해놓은 CCTV영상이 첨부되어있었고, 영상을 재생하자 음식을 조리중인 바닐라가 보인다.

약 30초정도 요리하는 장면이 끝나고 그 뒤로 벌어진 장면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바닐라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치마를 걷어올린 후 요리가 담긴 냄비에 쪼그려앉아 소변을 보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취하고 있던 것이다.

이 장면만으로도 문제였지만, 게시글의 내용들은 더 가관이었다.

자신이 자는 동안 뜬 눈으로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던가, 옆집에서 이사 온 기념으로 떡을 돌리러 온 포티아가 실종되었다던가.

글에 적힌 내용들은 도저히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곤 상상도 못할 수준의 일이었다.

내용이 워낙에 강렬해서였을까?? 게시글에는 영상부터 조작이라는 내용에서부터 시작해 요즘 특이취향을 노리고 이런식으로 광고를 하는 악덕업체들이 있다던가 하는 식의 댓글들이 주를 이뤘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진지하게 게시자에게 조언을 해주려는 듯 장문의 글을 올렸다.


'지금 게시글 올리신 분, 거래할때 직거래로 하셨는지부터 알고싶네요. 일단 모델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신거면 모델명부터 확인해주세요. 바닐라모델의 경우 정수리부분을 보면 B로 시작해 숫자 6자리로 구성된 모델명이 보일겁니다.
만약에 B로 시작하는 모델명이 아닐 경우, 확인 후 즉시 그 자리를 피하시고, 가능하시면 국외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시길 추천합니다'

꼭 저렇게까지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답글을 단 이는 자세한 대처법까지 적어주었고, 상황이 점점 커지자 작성자는 최근 유행한 사제 바이오로이드 커스텀샵에 방문했다가 생긴 문제 갔다며 논란을 일축한 뒤 게시글을 삭제하였다.

혹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바이오로이드 구매자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올린 글이었지만 비슷한 사례는 커녕 기분 나쁠 정도로 세세한 조언에 게시자는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냉장고에 있던 맥주나 한잔하고 잠이나 다시 자야겠다 생각한 게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고, 주방에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바닐라가 보였다.

".....정수리에 코드가 있다고 했나??"

찝찝하긴 했지만 아까 본 답글이 신경쓰이던 게시자는 조심스럽게 바닐라의 정수리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 머리를 더듬거렸고, 바코드와 함께 조그마한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바닐라모델은 B로 시작해서 숫자가 6자리.......잠깐, 왜 S로 시작하지?"

바코드 밑에 S로 시작하는 12자리의 코드명과 함께 뿌리부근에 선명하게 자리잡은 은빛 새치들을 본 게시자는 온몸이 굳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약차차~들켜버렸사옵니다. 주인님께선 그저 소첩의 봉사만 받아주셨으면 될것을.....이번 주인님도 꽝이라 소첩, 마음이 천갈레 만갈레 찢어질듯 괴롭사옵니다"

게시자의 목덜미에 주사기가 꽂혔고, 그는 그렇게 목슴만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의 생체 인형이 되었다.

"이번 주인님께선 얼마나 버텨주실지 모르겠사옵니다만, 절 위해서라도 최대한 오래오래 살아주셔야하옵니다. 안그러면...다른 주인님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야만 한답니다"

그저 억, 억 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사내의 품에 안긴 정체불명의 바닐라는 그를 협박하듯 나지막히 귀에 속삭이며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켰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바이오로이드게시판에는 게시자의 명의로 된 판매글이 올라왔다.

'중고 포티아 판매합니다'


"빨간색은 좀 별로긴하지만, 어쩔수없죠"

뼈만 앙상하게 남아 말라죽은 사내를 뒤로 하고 바닐라는 초록빛 머리를 붉은 빛으로 염색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