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은 첫사랑이 누구야?"

시작은 레오나였다. 간단한 티타임 및 근황확인 겸 모였던 자리에서 레오나는 당돌하게도 저런 소리를 자연스럽게 말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가 되기 직전이었고, 평소 별다른 내색한번 보이지 않던 칸 마저도 눈을 희번득거리며 레오나를 노려보았다.

"에이, 나한테 그런게 어딨겠어. 난 그냥 너희가 첫사랑이고 끝사랑이야"

눈치 빠른 사령관은 레오나의 말을 곧장 받아쳤지만 레오나는 이미 예상한 듯 씨익 웃으며 맞받아쳤다.

"그거야 당연한거고. 그래도 한명쯤은 있을거아냐? 오르카호 내에서"

사선에서 도망치는 사령관의 발목을 붙들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한마디,

'오르카호 내에서'

이건 필시 이 자리에서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레오나의 선전포고였다.

난처한 말을 먼저 꺼내게 된다면 사령관의 성격상 싫은 소리는 절대 하기 싫어 상대의 기분에 맞춰 이야기 해줄 것이라 여긴 레오나는 일종의 도박수를 이 자리에서 던진 것이다.

물론, 레오나의 예상대로 사령관은 그녀의 기분에 맞춰 이야기를 해줄까 하는 고민을 안한건 아니다.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말해버렸다간 티타임이 끝나지 않는 윤간의 연속이 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레오나도 심했다. 이런 자리에서 그러기야??"

사령관은 답변 대신 피하기를 선택했다. 메세지에 대한 답 대신 메신저를 직접 공격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는 방법을 택했고, 이 작전은 어느정도 들어맞는듯 보였다.

"사령관님의 말씀이 맞네, 괜한 트집은 관두시게"

사령관의 말에 먼저 동조한 것은 마리였다.
애초에 이런 대화에서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갈리가 없단걸 파악한 마리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해 바로 공격에 들어갔지만, 전혀 예상밖의 복병이 숨어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적기라 생각합니다. 사령관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는것도 좋을것같습니다만"

그건 바로 칸이었다. 이런 주제를 논할때 나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칸은 이 주제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하며 적극적인 태도로 전면에 나섰다.

"음, 일리있군. 문답무용. 이 자리에서 이야기 하는것도 좋은것 같소"

게다가, 비교적 최근 합류한 무적의 용까지 이 기세에 합류하였고, 다들 기피할거라 생각했던 이 민감한 주제는 서로의 착각속에 자신이 주인공이 될거란 강한 확신을 가지고 사령관을 옭아멘 뒤 사랑이란 이름의 구덩이로 밀어넣었다.

"하.....하하하, 진짜 다들....이런걸 좋아하는구나. 당혹스럽네"

"당혹스러울게 있나??사령관은 그저 '세 글자'만 말하면 끝인데"

"잠깐, 세 글자라니 이상하군. 한 글자 아닌가??아...별칭이면 세 글자군. 흠흠"

칸은 사령관이 지어준 칸구리란 별명이 떠오른 듯 찡그렸던 미간을 풀며 얼굴을 붉혔다.

"별칭이면....호오, 그렇군!!흠하하하"

무적의 용 또한 지난번 그럼용 사태를 떠올리며 분명 자신일거라 생각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모인 이들은 사령관의 입술만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이 압박감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사령관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아....."


"오!!역시 강렬한 관계는 쉽게 잊기 힘들지"

아 라는 단어에 아스날이 치마를 걷어올리며 반응했고, 다들 설마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순간,

"안드바리.....안드바리가 내 첫사랑이야"

사령관의 말 한마디에 모였던 이들은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사령관을 바라보며 말없이 밖으로 빠져나갔고, 단 한명, 마리 만큼은 사령관을 이해하는 듯 어깨를 토닥여주며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안드바리는 켈베로스들과 함께 사령관이 있는 방으로 들어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