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나한테 가족이야."


사령관이 옆에 앉은 콘스탄챠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하였다. 콘스탄챠는 사령관의 말에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퀭한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사령관은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찍혀져 있는 사진. 사령관이 그 어떤 물건보다도 애지중지 하는 것들이었다.


"콘스탄챠, 그리폰, 포츈, 마리처럼 나와 처음부터 함께한 사람들 뿐만이 아니야. 가고시마에서 합류한 브라우니 7743, 열심히 일해주는 더치걸, 묵묵히 순찰 돌아주는 램퍼트 4호기...전부 내 가족이야."


콘스탄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새가 떠올랐다. 알에서 막 깨어난 새. 흔히들 각인이라고 말하는 현상. 새가 태어나서 처음 본 존재를 자신의 어미로 인식한다는 그것 말이다. 콘스탄챠는 알고 있었다. 사령관이 오르카호의 사령관직을 맡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매일 밤새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서적들과 자료를 찾아보았다는 것을. 지휘관급 개체들이 합류하고, 오르카호의 인원이 늘어나고, 그 인원의 갑절만큼 적들이 늘어날때마다 점점 잠을 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온갖 일과 바이오로이드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항상 '아무도 죽지 않는' 상황에 전념했다는 것을. 


콘스탄챠만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사령관의 지휘를 따르는 오르카호의 모든 인원들은 알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단 한명의 죽음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얼마나 뜬구름 잡는 소리인지. 허무맹랑한, 꿈속 꽃밭에나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나 할법한 소리란 것을. 


그렇기 때문에 사령관이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자신들을 이끌어 주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 한켠에는 무시 할 수 없는, 고마움과 걱정이 뒤섞인 응어리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사령관의 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령관은 우리를 지켜야할 존재로 느끼느라 너무 큰 부담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콘스탄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몸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태산을 짊어지고 가는 듯 보였다.

온몸이 찢어져 나가는 것을 모르고 가시 투성이의 아이들을 있는 힘껏 끌어 안고 울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무엇과 비교해도 설명하기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우리들의 주인이자 동반자이자 가족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무너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픔과 더불어 어딘가 죄스러움이 콘스탄챠의 몸에 스며들어왔다.


"내가 잘한다면, 내가 무리한다면, 내가 더 노력한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잖아? 누가 가족들이 죽기를 바라겠어...그래서 나는 그렇게 해왔었는데..."


사령관이 흐트러진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부러지고 깨져버린 손톱들과 찢어진 손등이 콘스탄챠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랐어."


그렇게 말하는 사령관의 모습은 어째서인지 낯설었다. 콘스탄챠는 사령관의 양손을 맞잡고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하였다.


"주인님..."


"그래, 콘스탄챠."


"주제 넘는 말이기는 하지만...너무 주인님 혼자 떠안으려 하지 마세요."


본인이 말하고도 너무나도 진부한 말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옳은 말들이 진부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것이 맞는 말이기 때문에 모두들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령관은 짐짓 놀란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빙긋 웃으며 콘스탄챠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콘스탄챠는 오르카호 인원들의 유능함, 모두들 사령관을 걱정하고 있음을, 언제든지 사령관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말할 기회를 놓쳤다.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콘스탄챠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손을 잡고 사령관실 밖으로 나섰다. 불꺼진 오르카호의 복도를 정처 없이 걸으면서 콘스탄차는 지금 잡고 있는 이 손을 놓기 싫었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지만, 지금 이 손을 놓으면 앞으로 두번 다시는 이 손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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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RL의 장례식 날에는 비가 내렸다. 줄줄 쏟아지는 비에 사령관은 참석하고 싶은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각자 위치에서 조의를 표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 누구 하나 참석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오르카호의 갑판을 한치의 빠짐 없이 빼곡히 채운 AGS와 바이오로이드들은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우산을 피거나 우의를 입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 상복을 지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순전히 그들의 의지대로 정복 차림으로 비를 맞았다. 빗소리에도 가려지지 않은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일렬로 서있는 지휘관들 역시 예외는 없었다. 메이는 연신 훌쩍이며 비에 섞인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칸은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서 있었고 마리와 레오나는 묵묵히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비에 섞여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무표정한 레오나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고 모자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마리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용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서 칼자루에 손을 얹어 놓고 멍하니 서있었다. 아스널은 항상 호쾌하던 그녀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슬픈 표정으로 오열하고 있었다. 지휘관들의 뒤에 서있는 거대한 알바트로스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푸른 안광이 꺼져 있었다. 라비아타, 홍련, 콘스탄챠, 블랙 리리스를 대동하고 사령관이 나타나자 오르카호 일동의 시선은 사령관을 향하였다.


여전히 초췌한 인상이었지만 사령관의 눈에는 결연한 각오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폰과 에이미, 요안나가 LRL이 누워있는 관을 사령관의 앞에 내려놓았다. 사령관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서서 관에 손을 얹었다. 사령관의 말을 전달하기 위한 마이크 너머로 사령관이 애써 참으며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사령관은 모두가 서있는 곳을 보며 말하였다.


"너희들은 전부 내 가족이야."


모두에게 연설할때는 언제나 격식과 어조를 갖추던 사령관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실 말하는 나랑 듣는 너희들은 느끼는게 다를 수 도 있어, 그냥 뻔하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가보다 할수도 있지만...난 정말 그렇게 생각해."


사령관이 잠시 말을 끊고 모두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다시금 말하였다.


"여기있는 너희들 모두 내 가족이야."


사령관의 말에 몇몇의 브라우니들이 더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말리려던 레프리콘들 역시 울음을 터트렸다. 레드후드는 그 모든 광경을 못본체 하고 넘어갔다 그녀 역시 브라우니들 처럼 목 놓아 울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내 가족들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무와 작전에 임했어. 한명이라도 누군가 다치거나 잃을 것 같으면 중단하고 애초에 대규모로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실행도 하지 않았다."


마리는 앞에 서서 말을 이어가는 사령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은 늘상 봐왔을 때 보다 더 결연해보였고, 그래서인지 더 불안해보였다.


"가족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원했으니까. 조금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더 잘하고, 내가 더 노력하고, 내가 더 힘들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LRL의 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모자랐어..."


사령관이 말을 멈추자 매섭게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사령관은 관을 몇번 쓰다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일전의 어조와는 다른, 분노가 서린 상처입은 맹수가 가르랑 거리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거다."


사령관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부터 벌일 일들은 효율도, 합리적인 명분도, 냉철한 판단도 없을 것이다."


다시 고개를 든 사령관의 눈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매우 위험하고 무모하며 성공할 가능성이라고는 희박하기 짝이 없는, 일종의 내 분풀이에 불과하다."


움켜진 사령관의 주먹에 힘줄이 솟아났다.


"그래, 이건 그저 분풀이다. 복수다. 내 일방적인 복수에 제군들의 목숨을 담보로 맡기지는 않을거다."


사령관은 오르카호의 인원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강요하지 않겠다, 원하지 않는 자들은 남아서 오르카호를 지켜주면 된다..."


사령관의 말을 끊고 오르카호 한켠에서 천둥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죽여버릴거다!"


타이런트가 포효하며 말하였다.


"맹우를 위한 피의 복수를!"


타이런트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글라시아스가 포효하였다.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격정적인 목소리였다. 타이런트와 글라시아스를 필두로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외쳤다. 사령관은 무표정한, 하지만 깊은 곳에 슬픔이 자리잡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비는 멈출 기미가 없었고 이제는 벼락과 천둥까지 내려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태풍인 듯 불안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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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챠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을 때 콘스탄챠가 사령관에게 질문하였다.


"그런데 주인님..."


"응?"


사령관이 발걸음을 멈추고 콘스탄챠를 바라보았다. 콘스탄챠는 불안에 찬 눈길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사령관에게 질문하였다.


"모자랐다는게...무슨 뜻인가요?"


콘스탄챠의 질문에 사령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령관이 대답이 없자 당황한 콘스탄챠는 횡설수설 말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그 모자라셨다는게 마치...뭔가를 더 하시겠다는 말로 들려서...그렇게 생각하니까 안그래도 주인님이 무리하고 계시는데 더 무리하시는게 아닐까 걱정이 된 나머지..."


"모자랐으니까..."


사령관이 콘스탄챠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모자랐으니까 내가 더 강해져야지..."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령관의 슬픈 미소를 보자, 콘스탄챠의 마음 한켠에 일렁이던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을 옥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