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이른 아침, 각 부대의 간부진들이 사령관 앞에 모여서 정렬을 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진행되는 아침 점호.

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사령관으로서의 의무이기에 그는 항상 이렇게 점호를 실시하고 있다.



"스틸라인 보고!"




"보고."




가장 먼저 마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힘차게 보고를 올렸고, 그렇게 순서대로 각 부대의 간부진들이 사령관에게 현황을 알렸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간부가 있었으니...




다른 이들보다 한참 작은 신장.

이에 대비되는 당찬 태도. 레오나가 발할라 부대의 맨 앞열에 서서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걱정이 되는 발키리.




"대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대신 해줄 수도 있습니다."




"발키리, 너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구나. 내가 아무리 어려졌어도, 엄연히 발할라의 대장이야. 보고 정도는 어렵지 않아."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레오나. 발키리는 그런 그녀를 반신반의했다.




그렇게 여러 부대가 보고를 올리고, 마침내 발할라의 차례가 왔다.

사령관의 시선이 레오나에게로 향했고, 레오나는 내심 긴장하며 차렷 자세로 보고를 올린다.




"시스텁..."




이런, 혀가 꼬여버렸다. 레오나는 물론, 발키리 역시 당황하였으나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는 와중, 사령관은 아무런 표정변화없이 묵묵히 보고를 기다렸다.




"...다시! 시스터즈 옵..."




제차 발생한 실수. 아무래도 어려지면서 발음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두 번이나 실수하자 곳곳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레오나는 눈물이 핑 돌아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모두 정숙."




진중한 목소리로 모두를 침묵시키는 사령관. 그는 여전히 발할라의 보고를 기다렸다.




"으음, 다시! 시스터즈 오브 발핣..."




기어코 터진 세 번째 실수.




"풋..."




"큭..."




실수가 세 번이나 연속되자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 이에 레오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어떻게든 참아내고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자 사령관은 표정이 돌변하여 웃음소리가 들린 곳을 훑어보았고, 순식간에 현장은 싸늘한 기류가 맴돌았다.




"대장님, 오늘은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레오나가 진행할 수 없다 판단한 발키리는 결국 그녀를 대신해 보고를 올렸고, 그렇게 모든 부대의 점호가 끝났다.


점호가 끝나자 조금씩 어수선해지면서 술렁이기 시작하고, 사령관은 탁자를 쾅 내리치며 정숙시켰다.





"...방금 웃은 녀석들 빼고 다 나가."




좆됐다...!

여느 때와 달리 무게감이 실린 목소리. 그녀들은 알 수 있었다. 사령관이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방금 웃은 인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봐 두려워 부리나케 현장을 빠져나왔고, 발키리 역시 레오나를 데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이내 쩌렁쩌렁 들려오는 사령관의 호통소리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가는 레오나와 발키리.

레오나는 어깨가 축 처진 채 바닥을 보며 터덜터덜 걸어갔고, 발키리는 안절부절하며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여느 때보다 급격히 침울해진 레오나. 굉장히 속상한 듯 보였다.




"저... 대장님..."




"......."




레오나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배게에 얼굴을 파묻더니...




"으윽... 끄흐으으윽... 우아아아아아앙!"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평소보다 훨씬 서럽게 우는 레오나. 이에 발키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굴렸고, 그 울음소리를 들은 다른 대원들도 하나둘 나오면서 어리둥절하기 시작했다.




"발키리 님, 대장님께서 왜...?"




"그, 그게... 보고를 올리던 중 실수를 세번이나 하셔서..."




"사령관님이 혼내셨나요?"




"아, 아니요..."




"어, 어떡하면 좋지...?"




다른 대원들도 어떻게해야 그녀를 달랠 수 있을 지 몰라 골머리를 앓던 중, 알비스와 안드바리가 도도도 달려와 레오나에게로 향했다.



"대장님!? 왜 울고계세요?"




"어어, 대장님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준다고 마리아 아줌마가 그랬어요!"




둘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꺼이꺼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 레오나. 그러자 안드바리 역시 울음에 전염된 듯 같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고, 이내 똑같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흐윽... 대장님... 울지마요... 흐으윽, 으아아앙!"




대략난감. 발키리는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아이를 달래는 법을 몰라 발만 동동 굴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발키리도 서럽게 우는 둘을 보며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알비스가 주머니에서 초코바 두 개를 꺼내더니 각각 레오나와 안드바리에게 건네주었고, 그제서야 둘 다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한다.




"안드바리, 대장님! 초코바 드세요. 맛있는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해맑게 웃으며 초코바를 건네주는 알비스. 그러자 레오나와 안드바리를 울음을 겨우 그치고는 훌쩍이며 초코바를 한입씩 베어물었다.



그러자 알비스는 둘을 꼬옥 안아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고는 천진난만하게 웃음지었다.




"안드바리, 대장님.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준데요. 그러니 초코바 먹고 그치세요! 안그럼 알비스가 선물 몽땅 가져갈테니까!"




알비스가 둘을 부둥부둥하며 달래주자, 그제서야 한시름 놓는 다른 대원들. 발키리 역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대장님... 자꾸 우시면... 저도 울 것 같다고요..."




"어어, 발키리 언니도 울면 안되는데..."




그렇게 알비스가 발키리도 똑같이 껴안아주면서 겨우 상황은 진정되는 듯했다.




***




하지만, 레오나는 여전히 당시 상황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언제나 프라이드 넘치도 긍지 높았던 발할라의 지휘관인 본인이 초보자같은 실수를 세 번이나 저지르다니...



그녀는 지금껏 지켜왔던 자존심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실감했고, 사령관 앞에서 추태를 보였단 생각에 지금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흐윽... 달링 앞에서 멋있는 모습 보여줘야 하는데..."




다시 터져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애써 삼켜내는 레오나. 그 때, 복도 끝자락에서 사령관이 리리스와 함께 걸어오는 것이 보였고, 사령관 역시 그녀를 발견한 듯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어, 레오나!"




하지만 레오나는 그대로 획 돌아서서 도도도도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러다 발을 헛디뎠는지 그대로 콩 하고 넘어져버린다.


이에 화들짝 놀란 사령관이 빠르게 달려와 그녀를 일으켜세우려 했으나, 레오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벌떡 일어나 쌩 하고 달아나버린다.




"왜, 왜... 도망가는거지?"




"혹시, 주인님께서 무언가 잘못하신게...?"




리리스의 말에 적잖이 충격받은 사령관.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 실수를 한건가 싶어 생각에 잠겼다.




"내가, 내가... 잘못을 했다고? 대체 뭐지?"




***




언제는 발키리가 레오나를 데리고 버터밀크를 사주고오던 길이었다.



레오나는 틱틱 대면서도 발키리의 손을 꼭 잡은 채 걸어가고 있었는데, 건너편에서 사령관과 콘스탄챠가 걸어오자 갑자기 발키리의 다리 뒤로 숨어버렸다.



이에 의아해하던 사령관는 꿇어앉아 레오나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레오나, 왜 그래? 혹시 내가 뭘 잘못했어?"




그러나 사령관에게서 등을 지고 앉아서 웅크린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레오나. 길쭉한 발키리의 다리 뒤에 숨어서 나름대로 몸을 감추려는 것 같다.




"대장님, 왜 그러세요? 사령관님께서 당황하시잖아요."




발키리는 자신의 다리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레오나를 번쩍 들어올리자, 레오나는 싫다며 버둥버둥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이익, 이거 놔!"




그렇게 격렬히 몸부림치며 겨우 내려온 레오나는 다시 쌩 하고 도망가버렸고, 발키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사령관에게 허리굽혀 사과했다.



그런데, 사령관은 그대로 제자리서 굳어버렸고,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각하...?"




이에 콘스탄챠가 그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억장이 무너지셨어요. 인간님들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딸내미에게 미움받은 아버지같은 마음이신 거에요."




"상당히 충격을 받으셨단 말씀이군요..."




그렇게 사령관은 울먹이다 이내 추욱 처져 콘스탄챠의 부축을 받으며 쓸쓸히 떠나갔다.




***




이번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사령관은 레오나의 마음을 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평소 자주 마시는 버터밀크와 최근 맛들리기 시작했다는 아우로라의 쿠키, 그리고 아이들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모모 장난감에 오드리 특제 꼬까옷까지.



레오나의 마음을 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레오나에게로 달려가는 사령관.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발할라 숙소로 향한다.




그렇게 찾아간 발할라 숙소.

사령관은 양손에 선물을 한가득 가져온 채 숙소 안으로 들어섰고, 레오나가 누워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레오나~. 사령관 왔어요~."




이불 속에 파묻혀서 나올 생각을 않는 레오나. 이에 사령관은 다시 한번 더 그녀를 불러보았다.




"레오나~."




"저리가!"




쩌적.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는 소리. 사령관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정신이 아찔해졌으나, 겨우 마음을 다잡고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가져와 앉고는 말을 걸어보았다.




"우리 레오나가 왜 이럴까~? 혹시 사령관이 나쁜 짓 했니?"




"......"




"음... 그럼 혹시 발키리가 야구르트 안사줬니?"




"......"




"아, 알비스가 초코바 훔쳐먹었구나!"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대답. 사령관은 눈물이 핑 돌아 시야가 흐려졌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레오나의 이불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흐음... 레오나가 이렇게 조용히 있으면 사령관도 슬퍼할거에요... 흐윽... 흑흑..."




진짜 우는지 연기인지 모를 울음소리. 행동은 연기일테지만, 그 감정은 어느 정도 진심이리라.



그러자 이불 밖으로 빼꼼 나오는 레오나의 머리.

그러자 사령관은 레오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조곤조곤하게 물었다.




"레오나, 무슨 일이 있었어? 요새 나만 보면 도망다니잖아..."




"...나, 발할라 대장 그만둘레."




"뭐!? 왜? 부하들이 괴롭혔어?"




"...아니."




"그럼...?"




사령관의 물음에 부스스 이불을 걷으며 몸을 일으키는 레오나. 그녀는 지금껏 울었던 모양인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나... 점호 시간에 보고도 제대로 못하고... 달링 앞에서 창피한 모습만 보여줬어... 나, 대장 실격이야...!"




다시 울음이 터질려하는 레오나. 사령관은 그녀를 꼬옥 껴안아 무릎 위에 앉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레오나가 얼마나 멋있는데! 점호 시간에도 열심히 하고, 항상 도도하고 카리스마 있다고!"




"그치만... 그 때 다들 비웃었는걸..."




"그런 녀석들, 이 사령관이 혼쭐을 내줬으니까 신경쓰지마! 지금껏 발할라를 이끌고 멋있게 지휘한게 누군데. 바로 레오나, 너야. 네가 없으면 발할라도 없고, 다른 자매들도 못 살거라고."




그 때, 조용히 구석에서 지켜보던 발키리가 끼어들어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대장님은 항상 카리스마 넘치시고, 그 누구보다 저희 자매들을 아껴주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대장님이 안계신다면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겁니다."




그러자 레오나는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사령관의 품에 파고들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앙! 미안해, 달링~! 나, 나... 달링이 나한테 실망할까봐 무서웠어~!"




"어이구~, 우리 레오나는 언제나 멋있는데 어떻게 실망을 하겠니? 아 참, 내가 선물을 가져왔는데... 한 번 볼래?"




그렇게 말하고는 발키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사령관. 그러자 발키리는 허둥지둥 모모의 마법봉 장난감을 꺼내들었다.




"뾰, 뾰로롱~!"




발키리가 버튼을 누르며 휘두르자 마법봉이 반짝거렸다. 레오나는 그것에 흥미를 보이다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탄두는 안날아가?"




"실물은 위험해요~. 나중에 모모한테 보여달라 하자~. 그리고 저거 말고도 예쁜 옷들이랑 까까도 가져왔어요~."




발키리가 대신해서 꺼내주는 쿠키와 버터밀크, 꼬까옷. 레오나는 그것에 흥미를 보이더니 이내 울음을 뚝 그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흥, 달링의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쿠키 하나를 집어들고 오독오독 씹어먹는 레오나. 사령관은 마법봉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레오나의 환심을 샀고, 레오나는 이를 보며 따끔하게 한 마디했다.




"달링, 난 북방의 암사자야. 이런 유치한걸 갖고놀리가 없잖아?"




"으음~, 그럼 다시 가져가야 겠네?"




"하지만,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줄게. 착각하지마. 절대 갖고싶은게 아니라구."




그렇게 말하고는 마법봉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레오나. 사령관은 그녀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





다음날, 아침 점호.

모두가 정렬하여 점호를 준비하고, 발할라 부대 역시 점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레오나는 저번처럼 맨앞에 서서 보고를 준비했고, 발키리는 뒤에서 조용히 응원을 했다.



"스틸라인부터 보고."




"스틸라인 보고!"




그렇게 시작된 점호.

차례로 여느 때처럼 보고를 이어갔고, 마지막으로 발할라의 차례가 찾아왔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보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보고!"




이번에는 실수없이 또박또박 외치는 레오나. 발키리는 뒤에서 감격의 눈물을 조용히 훔쳤다.




그 후로도 또박또박 유창하게 보고를 마친 레오나. 사령관은 순간 활짝 미소를 지을 뻔하다 겨우 표정을 감추고는 점호를 마쳤다.




그렇게 모두가 점호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발키리가 슬쩍 사령관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어제 찍은 것들입니다."




"훌륭하군, 발키리."




그것은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에는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오른 레오나가 쿠키를 오독오독 씹는 모습과, 사령관이 없는 동안 신나게 마법봉을 가지고 노는 장면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사령관은 그것을 보고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더니 이내 조용히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아버린다.




"각하?"




말없이 잠들어버린 사령관. 이에 발키리가 당황하고, 콘스탄챠가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런, 심장이 멈추셨네요..."




"다시, 깨어나시겠죠?"



"아마도요...?"




그렇게 오르카호의 활기찬 아침이 시작되었다.




***



사령관이 사진을 모으는 이유는 나중에 레오나가 다시 어른이 되었을 때 보여주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