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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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에 보트가 정착했다. 

밤이 어두워져 누가 내렸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빨간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나에게로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홍련이었다. 내 무릎 위에서 자고 있는 것인지, 기절해 있는 것인지 모를 미호를 보고 오고 있었다. 

아니, 미호를 보자 더욱 거세게 걸어오는 것이었다.

 

 

 

“하아… 하아…

… 사령관… 님…”

 

“홍련이구나.”

 

“제 이름을… 아시는 군요…”

 

“모를 리가 없지.

내가 말했잖아. 너희는 모두 내 소중한 사람이라고.”

 

“…”

 

 

 

홍련이 고개를 푹 떨구며 모래 사장 위로 주저 앉았다.

 

 

 

“…”

 

“왜 그래? 미호 때문이야?”

 

“아… 아뇨…

그냥… … 그 아이는…

…”

 

“미호가 왜?”

 

“…”

 

 

 

주저 앉은 홍련의 검은 스타킹이 조금 찢어졌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던 망사도 툭 하고 풀어져 길고 붉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흩어냈다.

 

 

 

“… 제가 무슨 낯짝으로 그 아이에 대해 사령관님께 말하겠나요.

제 발로 반군에 간 아이인데… …”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것 같아?”

 

“… … 아뇨. 사령관님이라면 분명 괜찮다고 하셨겠죠.

하지만… 설령 그렇지 않으신다 한들…

… 제가 괜찮다고 입을 열 자격 같은 건 없겠죠.”

 

“…”

 

“미호는… … 여린 아이에요.

… 죄송해요… 제가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야 했는데…”

 

 

 

홍련이 기어오듯이 내 곁으로 와 미호의 길고 긴 머리카락을 섬세하게 매만졌다. 

자신의 얇고 긴 손가락으로 미호의 엉킨 머리카락을 쓰다듬듯이 풀어주며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려 하는 것이었다.

 

족히 수십 센티미터는 될 듯이 길고 땋은 미호의 머리를 홍련이 다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행위가 홍련에게 얼마나 익숙한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

…”

 

“홍련이 잘못한 건 없어.

미호도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겠지.”

 

“… 그리 생각해주신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

 

“미호가 얼마나 여린 아이인지는 나도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그냥 엄마 얼굴 한 번 볼 수 있게 해주려고 데리고 온 거니까.”

 

“엄마라…"

 

“미호는 너를 엄마로 생각했잖아.

다른 몽구스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니니?”

 

“…”

 

“내가 잘못 안 건가?”

 

“… 아뇨… …

분명 예전에는 그렇게 했었죠…

… 그냥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면 부끄럽다며 숨기고 다녔던 것인데... ... 

... 사령관님께서 알고 계신 게 신기했을 뿐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지.”

 

“… 사랑… …”

 

 

 

홍련은 고개를 떨궜다. 미호의 머리카락을 다시 풀고, 그러고 묶고, 말없이 그 행동만 반복했을 뿐이다.

 

 

 

“왜 그래?”

 

“… … 엄마란 건 뭘까요…?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도 없는데, 저를 엄마라고 부른 이유가 뭘까요…”

 

“엄마라…

… 글쎄,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란 뜻이겠지.

엄마란 건 그런 거잖아.”

 

“… …”


"그리고 그 이유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

 

 

 

말을 나누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홍련은 그새 미호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전부 땋았다. 

내가 조금 손 보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깔끔하게 말이다.

 

 

 

“… 사령관님께서도 어머니가 계셨겠죠…”

 

“그랬지.

지금은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으니까.”

 

“… … 그렇죠…

인류는 멸망했으니까…”

 

“… …”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약한 분이 아니셨다. 내가 본 어떤 사람들보다 강인하고, 또 악독한 분이셨다. 

돌아가신지 오래라 이제는 다시 보려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기억 한켠에 남아두고 있는 분이다.

 

 

 

“엄마… …

홍련은 그 단어가 싫어?”

 

“…

… 아뇨. 이 아이들이 저를 좋아해주는 만큼, 저도 이 아이들이 좋으니까요.

저희에게 엄마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면 기쁘게 했을 거에요.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

 

“…”

 

“… …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제가 그리 좋은 엄마는 아니었겠죠.

전 사령관의 폭정에서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전장으로 내몰기만 했으니까…”

 

“그건 네 탓이 아니잖니.”

 

“그래도 엄마가 감수해야 할 일이겠죠.”

 

 

 

두 갈래로 나눠진 양 갈래 머리를 각각 한 번씩 묶고 풀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홍련은 내게로 조금 더 가까이 나가와 앉았다.

 

 

 

“… … 이 아이들에게 같이 있어줄 좋은 아빠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그 인간이 그럴 수는 없었겠지.”

 

“… …

… 바이오로이드 주제에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엄마라면, 누군가는 아빠가 되어주면 좋을 텐데.

나 혼자서 못할 일을 이 아이들의 아빠가 해주면 좋을 텐데.

말 못할 고민이 있으면, 그 아빠가 내 곁에서 조용히 들어주고만 있어도 좋을 텐데.

… 우스운 이야기죠.

그냥 혼자 하기가 힘들었던 것일 뿐인데 아빠 타령이라니…”

 

“…”

 

“미호는…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매를 많이 죽인 아이에요.

전 사령관이 발키리 양이 없는 날이면 언제나 미호를 불러 재미 삼아 자매들을 죽게 했으니까요.

족히 세 자리 수는 될 거에요. 이 아이가 죽인 자매가.

… 그래서 늘 불안해했죠.

쉬는 날이면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 싸고 소리 죽여서 울고 있었으니까…”

 

“… 그래, 많이 여린 아이니까 그랬겠지… …”

 

“그럴 때마다 제가 뭘 해줄 수 있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어요.

물 한 잔 가져다 주기, 좋아하는 초콜릿 가져다 주기, 네 잘못 아니라고 껴안아 주기.

… 네, 고작해야 이정도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단 걸 그제서야 깨달았죠.

엄마, 엄마.

수도 없이 그렇게 불려졌지만 정작 제일 엄마가 필요할 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저는 진짜 엄마가 아니니까요.

… … 이 아이도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거에요.”

 

 

 

홍련의 말 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아니, 파도가 부숴지는 소리가 조금 커진 것이겠다.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다.

 

 

 

“…

… 사령관님.”

 

“왜?”

 

“… 그렇게 숨기고 계시지 않아도 돼요.”

 

“뭐를 말이야.”

 

“그 아이.

… 뭔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건 알고 있어요.”

 

“… 알고 있었어?”

 

“이곳에 오기 전에 레오나 지휘관님께서 알려주셨죠.

… 자세한 건 사령관님께 여쭈라 하셨지만…”

 

“… …

그럼 미호가 무슨 일을 한 건지도 알아?”

 

“아뇨, 그건… ...

… 레오나 지휘관님도 말씀해주지 않으시더군요.

그걸 자기가 말할 자격은 없다면서.”

 

“…”

 

“대신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가야 할 거라 말씀하셨어요.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하셨으니…”

 

 

 

그렇게 말하며, 홍련은 자신이 쓰다듬고 있던 미호의 머리를 보곤 잠시 멈칫거렸다. 살을 꿰맨 바늘 자국이었다.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홍련은 알았다는 듯이 눈을 꼭 감았다.

 

 

 

“… 말해줘?”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 말씀해주세요.”

 

“… …”

 

 

 

두려움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는 어두운 것이 아주 약간의 각오와 함께 섞여, 홍련의 입을 타고 흘러 나왔다. 그 어두운 것이 꼭 이 밤과 어울렸다.

 

 

 

“…

… 나를 죽이려고 했어.”

 

“… …”

 

“내가 배 갑판 위에서 말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 그 때 내가 말을 잘못 했거든.

바이오로이드한테는 인간의 말이란 게 엄청 위험한 거라면서.”

 

“… 그래서…

… 그래서 쏜 건 가요…?”

 

‘… … 그랬지.

자기 머리를 칼로 쑤셔가면서 말이야.”

 

“…”

 

 

 

일부로 조금, 아주 조금 돌려서 설명했지만 그것이 홍련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 말을 듣고 기겁을 한다던가,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딸의 상처 난 머리를 쓰다듬었을 뿐이었다.

 

 

 

“… … 이제 이 아이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난 이 애와 약속을 했어.

그러니까 약속한 대로 엄마랑 만나게 해줘야지.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도록 해줘야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홍련에게 말하자, 그녀는 천천히 주먹을 꽉 쥐었다. 가죽 장갑이 늘려지는 소리가 파도 소리에 묻히면서 기묘한 소리로 바뀌었다. 

 

 

 

 

 

---쏴아아아----

 

잠시의 침묵이 있었다. 미호의 머리카락을 빠질 것처럼 강하게 쥐고 있던 홍련이 파도 소리가 아득해질 때까지 그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미호가 그 자극에 내 무릎 위에서 몸을 뒤척였고, 홍련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그녀는 입을 열었다.

 

 

 

“… … 안 돼요.”

 

“뭐?”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사령관님을 죽이려고 했던 시도는 철충 외에는 없었어요.

이 아이가 스스로를 위험 인물이라 시인한 것이니… …

… … … 죽여야겠죠…”

 

“뭐? 아니, 안 그래도 돼!”

 

“… 사령관님께서 저희를 위해 얼마나 많이 참으셨는지 알고 있어요.

반군이 이리도 무례하게 굴 때도, 감히 사령관님을 포로로 대우하고 있을 때도,

그럴 때마다 모두 참아주셨죠.

그러니 이제는… … 사령관님의 위엄을 위해 참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네 아이잖아!”

 

“… … … 결국은 누군가는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겠죠…

… 고작 제 사사로운 감정 같은 것이 더 이상 사령관님께 짐이 되게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사령관님.”

 

 

 

그녀가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울었다. 

눈물이 모아지는 것을 막지도 못했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두 눈을 똑바로 치켜 뜬 채, 나를 쳐다 본다.

 

 

 

“미호가… 미호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고는 계신 건가요…!”

 

“그건… 알지만… …”

 

“안다면… 절대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 아이를 감싼다면 그건 사령관님을 따르는 모두에게 먹칠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그렇게 바보처럼 선하게 계실 생각인가요…!!”

 

 

 

그 어느 때보다 그녀는 강하게 나를 쏘아붙였다.

 

 

 

“그래요, 그 동안 제가 사령관님을 뵐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단 거, 사실이에요.

그래서 제가 사령관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도 인정할게요.

하지만… 하지만… …”

 

“…”

 

“… 그렇다고 사령관님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

 

 

 

말 끝이 흐려졌다. 눈물 하나가 무심하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 제발 이 아이를 죽여주세요… 제발… …

저는… … 더 이상 이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할 자신이 없단 말이에요… … …

밤마다 죽은 자매들 때문에 비명을 지르던 이 아이에게 버팀목이 될 수가 없다고요... ...”

 

“…”

 

“그냥… 그냥 사령관님을 사랑하는 것만 할 수는 없는 건가요…?

그것만 할 순 없나요…?

그 엄마라는 짐이 이제는… 너무 무겁단 말이에요… …”

 

“… 홍련…”

 

“그러니까 제발… 제발 죽여주세요…

사랑하는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냔 말이에요…

저도 제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제발… 제발… …”

 

 

 

홍련은 한 주먹 가득 모래를 쥐었다. 

하지만 강하게 움켜쥘수록 손 밖으로 빠져 나오는 모래만 많아질 뿐, 결국 손 안에 남는 건 몇 줌 안 되는 모래 알맹이들이었다.

 

 

 

“죽여도 돼요… 아니, 죽여야 해요.

그러니까 그냥… … 저는 아무 것도 모른 거로 할 게요.

사령관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하세요… 

제발… 부탁이니까… …”

 

“… …"


"제발요... 사령관님 제발... ..."




홍련은 빌듯이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고개를 숙인 채 내 얼굴은 바라보지도 않고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

...

... 안 돼.”

 

“…”

 

 

 

그녀는 모래를 움켜쥐는 것을 멈추었다.

 

 

 

“… 왜… 죠…?”

 

“미호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 또 다시… 자기를 희생할 생각인가요…?”

 

“난 이걸 단 한 번도 희생이라 생각한 적 없어.”

 

“그리 생각하신 적 없다…

..

그럼… 그럼 저희는요… …!!!!

그러는 사령관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타 들어가는 저희 마음은요!!”

 

“…”

 

“매번 그렇게 스스로를 깎아 내리시고, 혼자서 억울한 일은 전부 담당하시려는 모습을 무력하게 봐야만 하는 저희 마음은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저희는 어떻게 하냔 말이에요!!”


"... ..." 


 

 

홍련은 커다란 눈물을 쏟아내며 나를 끊임없이 쳐다보았다. 눈에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손에 있는 미호의 머리카락을 떼어내지 않았다.




"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단 말이에요!!!

이 아이가... 이 아이가 아파서... 힘들어서 괴롭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할 수 있는 게 고작 물 한 컵 떠다주는 것 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 아이가 아무리 힘들다고 피를 토해도...!! 

... ...

...

...

저는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단 말이에요... ..."


"..."


"... 너무... 너무 많이 죽였어요.

저 아이는 죽이면 안 될 자매들을 너무 많이 죽였어요...

이건... 그냥 저주에요. 죽으면 안 되는 아이들을 죽였기에 받은 저주.

...

... 사는 게... 사는 게 지옥인 아이에요.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아이란 말이에요... ..."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게 나를 의미하는 거였을까, 아니면 이 미호를 말하는 거였을까? 

 

 

 

“…

… … 그러니까… 제발… …”

 

 

 

자신의 손으로 자기 딸을 죽이려는 마음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할 말을 하는 것뿐이었다.

 

 

 

“… … 내가 무슨 말을 할 거 같아?”

 

“…”

 

“난 미호를 버릴 생각 없고, 이 애는 분명 너를 보면 좋아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늘 그랬던 것처럼 해.”

 

“… …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어요.”

 

“그게 정상이야.

혼자서 애 키우는 집 중에 정상인 집 많지 않거든.”

 

“…”

 

“그러니까 내가 아빠 역할 해줄 테니까 포기하지마.”

 

“… !”

 

 

 

홍련의 눈이 반짝였다.

 

 

 

“엄마 역할... 쉽지 않은 거 나도 알아.

그래, 쉽지 않지.

...

...

... 그러니까 같이 하자고.

애들이 아무리 힘들게 굴어도 엄마 아빠가 같이 있으면 버틸 수 있을 거야.

지금처럼 혼자 있을 필요도 없어.”

 

“그… 그런 건… …”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정말 미호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주저 앉으면 안 되지.”

 

“… … 하지만 저는…”

 

“알아, 내가 이런 말 할 자격 없지.

홍련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모르는데 포기하지 말란 소리나 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단 거 인정할게.

네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나서 미호를 죽이라 했을 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단 것도 인정할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 못 하겠어.”

 

“… …”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참자.

이번에는 혼자 참지 않아도 돼.

같이 참자. 힘들었던 것도 미안했던 것도 같이 참자.

그러면 내가 약속해줄게.”

 

“뭐를… …”

 

“홍련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가 될 거라고.”

 

“…

… 행복이라고…요… …”

 

 

 

홍련의 눈은 반짝이는 원석과도 같았다. 눈물 방울이 툭툭 떨어질 때마다 그 원석이 깍여나갔다.

 








 

 

“… …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자격?

그런 건 누가 주는 거야?

내가? 네가? 아니면 이미 죽어버린 다른 아이들이?”

 

“…”

 

“물론 슬퍼해야겠지.

아무리 그 개자식 때문에라고는 하지만 우리 손에 죽어간 사람들을 잊는 건 안 될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 말란 뜻은 아니잖아.”

 

“하… 하지만 행복할 수가…

… … 눈만 뜨면 그 아이들이… 아이들이 제 눈 앞에 어른 거리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는 거죠…??”

 

“몰라.

그러니까 같이 찾아야지.”

 

 

 

충분한 눈물이 있다면, 그 원석이 보석이라 불릴 날도 머지 않았으리라. 

이미 그리 불리기 부족함 없을 만큼 홍련의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건 검붉은 루비 같았다.

 

 

 

“… 제 이기심 때문에… 너무 많은 자매들이 죽었어요.

몽구스 아이들도… … 마찬가지였죠…

… 이 미호와 똑 닮은 아이도 제 무기로 얼어 죽어갔죠.

그 인간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게 네 탓이란 생각은 버려.”

 

“하지만 그건… …”

 

“그건?”

 

“…

… … 너무 이기적이에요…”

 

“무엇 때문에?”

 

“… … 봤으니까요.”

 

“뭐를.”

 

“…

… 죽어가는… … 그 아이의 얼굴을 봤으니까요.”

 

 

 


순간, 그 고운 얼굴 위에 있던 두 루비가 어두운 베일 속으로 사라졌다. 눈은 검을 뿐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엄마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이… …

… 딸이란 아이를 제 손으로 죽였다고요…

죽어가는 그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 … 어떻게 행복해지는 것이 이기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겠어요…?”

 

“…”

 

“다른 자매들을 죽일 때는… 그래도 계속 이기적인 년으로 있을 수 있었어요.

누군가를 죽여야 할 때마다 제 팔 근육을 끊어버리고, 어깨에 칼을 박아버리면서 참았으니까요.

그렇게… … 그렇게 최대한 명령에서 저항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그걸로 스스로를 추하게 위로할 수는 있었다고요…”

 

 

 

홍련은 자신의 가죽 장갑을 벗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것을 건넬 때, 나는 홍련의 손목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자상을 볼 수 있었다.

 

 

 

“… 제가 누군가를 죽여야 할 때마다 칼로 손목을 긋고, 또 그었어요.

죽여야 한다면… 저도 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매들인데…”

 

“…”

 

“하지만… 하지만… … 

미호 그 아이를 죽여야 했을 때는… …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니, 그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던 거죠.

지금까지 내가 했던 짓은 같잖은 자기 위로일 뿐이란 걸…”

 

“… … 언제적 일이야?”

 

“… ... 참 오래 됐죠.

사령관님께서 오시기 훨씬 전의 일이었으니까요.”

 

“…”

 

“하지만 그렇다고 제 죄가 가벼워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다른 누구보다 많은 자매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제가 무슨 낯짝으로 고개를 들겠나요…”

 

“… …”

 

“그러니까… … 

… 정말 저를 위하신다면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주세요.

제가 행복해지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역겹기 그지 없으니까요.”

 

 

 



그제서야 이 아이를 죽이란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인 미호를 죽여 자신을 끝없는 고통의 구렁텅이로 내던지라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고통스러웠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런 고통 속에 살게 내버려두란 뜻이었다.

 

엄마의 역할이 그리고 힘들었다 했던가? 엄마라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아니, 홍련은 누구보다 엄마의 자리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고통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 고통을 바라고 있었다.

 

 





 

“…”

 

“… … 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겠죠.

지난 긴 세월 동안… … 저는 다른 지휘관님들처럼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른 모든 부대가 생존을 위해 철충을 죽여야 했을 때,

저희 몽구스는 생존을 위해 다른 자매들을 죽여야 했어요.

... 그러니까 행복해질 자격 같은 건 ...

...

... 처음부터 없었던 거에요.”

 

“…”

 

“제게 행복해질 자격을 누가 주는 것인지 말씀하셨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자격이 제게 없다는 건 알 수 있어요.

제 마음이 이토록 텅 비어있으니까 말이에요.”

 

“홍련… …”

 

“… … 제가 행복해진다면, 저 때문에 죽은 자매들이 끝없이 저를 저주할 거에요.

그리고 그 중에 미호가… 그 아이가 가장 많이 저주하겠죠.

죽였다면… 죽임 당하는 것이 맞아요.”

 

“…”

 

“이 미호가 사령관님을 위협했다면… 죽어야겠죠.

그게 이 아이에게는 구원이에요.

그리고... 저 때문에 그토록 많은 자매들이 죽었으니… 저 역시 죽어야겠죠.

최대한 고통스럽게... 저 때문에 죽은 자매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게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홍련은 내 손에 다른 어떤 것을 쥐어주었다. 

파랗게 생긴 통. 아주 차가웠다. 

그 안에는 꼭 그렇게 차갑게 생긴 액체가 조심스럽게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건…”

 

“제 얼음 볼트에요.”

 

“이걸 왜…”

 

“제 머리를 향해 던지시면, 바로 얼어 붙을 거에요.”

 

“… 뭐?”

 

“그러면 저도 틀림 없이 죽을 수 있겠죠.

제 손에 죽어갔던 자매들처럼… 얼음 속에서 말이에요.

그거라면... 충분히 고통스러울 거에요.”

 

“… 나보고 지금… 너를 죽이라고 종용하는 거냐…?”

 

“… …”

 

 

 

아무 말없이, 홍련은 내 손 위로 동일한 병을 두어 개 더 쥐어주었다.

 

 

 

“… … 몽구스의 아이들은 전부 감정적인 아이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엄격하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죠.

지금은 그런 감정적인 아이들은 없으니까… 그럴 필요도 없지만…”

 

“… …”

 

“그 아이들도 이제는 다 컸을 거에요.

엄마 없이도 잘 살아가겠죠.

사령관님이란 아빠가 있다면… 분명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야!!”

 

 

 

그저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그건 고작 이 작은 병 세 개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들었던 어떤 말보다도 소름 끼치는 말을 내뱉는 홍련의 입 때문이었다.

 

 

 

“… …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뻔뻔하게 살았으니까… … 사령관님 앞에서도 그렇게 뻔뻔하게 있을 줄 알았어요.

… 그런데…

… … 그렇게 쉽게 되지가 않네요.

사랑 하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런다고 지금 나한테 너를 죽이라는 거야!??”

 

“… …”

 

 

 

홍련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자고 있는 미호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 아뇨. 사령관님께서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한 마디만 해주시면 충분해요.”

 

“무슨 한 마디.”

 

“죽어도 된다는 한 마디를 말이에요.”

 

 

 

눈을 감은 채, 홍련은 세 개의 병을 들고 있는 나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병이 닿은 피부가 하얗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바이오로이드는 자살할 수 없어요.

사령관님 같은 분께서 계신다면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죠.”

 

“야… 지금 얼굴이… …”

 

“아마 앞으로도 사령관님은 승리하실 거에요.

그게 반군이 되었든, 철충이 되었든 상관 없겠죠.

그럼 저희들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고, 사령관님께서는 더욱 저희를 사랑해주시겠죠.”

 

“지금 네 얼굴이 얼어붙고 있잖아!!”

 

 

 

온 힘을 다해 내 손을 피려고 했다. 

계속해서 홍련의 얼굴을 얼어 붙게 만드는 이 작은 병을 내 손에서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홍련은 내 손을 더욱 거세게 쥐었고, 나는 무력하게 그 꼴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죽을 수 있다면 지금 말고는 없을 거에요.

아무도 저를 바라보지 않고… 아무도 저를 찾지 않는 지금이… …”

 

“지금 내가 너를 보고 있잖아!

내가 너를 필요로 하고 있다잖아!!

무슨 쓸데 없는 소리야!!!”

 

“… … 죽지 못해 살았어요.

그저 힘들어서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죄송해요… 사령관님… …

이제는 엄마 노릇도… 작전관 노릇도 지쳤어요.”

 

 

 

홍련이 나를 쥐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조금만 더 강하게 쥐면, 아주 조금의 힘만 더해진다면 이 연약한 병이 그대로 깨져버릴 것이었다. 

그저 바이오로이드였기에 여기서 멈추고 있을 뿐이었겠지,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병을 깨어버릴 것이었다.

 

몽구스 팀. 스틸라인이 가장 많은 대원을 잃은 부대였다면, 몽구스는 가장 많은 대원을 죽인 부대였다. 

그 인간은 대테러부대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원들을 심심풀이로 죽였다. 

자신이 죽이고자 하는 자들의 수가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는 자들의 수를 넘어가자 그 때부터 몽구스 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저격수들은 표적을 볼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도록 훈련된다. 

그래야 그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척살 대상으로 명 받은 자들을 죽일 때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자매들이었다면?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대원들이었다면?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미치광이 사령관 밑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동료들이었다면?

 

 

 


“제발… 제발… … 

죽여주세요… …”

 

 


 

홍련은 크지막한 눈물을 떨어뜨렸다. 

누가 자기 딸 아니랄까 봐, 미호가 흘렸던 눈물과 똑 닮은 눈물을 흘렸다.

 

죽여달라는 그 잔혹한 부탁. 이제는 그것이 미호가 아닌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아주 조금의 힘만 주어도 터져버릴 병을 부들거리는 손으로 쥐고 있으면서도 미호를 바라보는 눈을 결코 감지 않았다.

 

 

 

“… …”

 

 

 

화가 났다.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게 나는 화가 났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꺾이지 않을 의지를 봤기 때문이었을까? 다른 지휘관들처럼 말해주지 않은 홍련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나는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을 상대했다. 

죽어가는 부하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지휘관들을 보았고, 희망이 꺾이는 그 끔찍한 감정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았다. 

고통에 하루하루 신음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봤고, 그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봤다. 

하지만 홍련은 그 어디에서 속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많은 자매의 피를 자신의 손에 묻혀서 그랬을까?

 

죽어가는 것이 아닌, 죽이는 자의 끝이 이러한 것이구나. 

원치 않은 죽임으로 끝없이 자신을 좀먹어간 사람의 말로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아니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망가져버리는 것이구나. 

나는 끊임 없이 눈물을 쏟아 내는 홍련의 모습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그러니 나의 어줍잖은 위로 하나가 무슨 도움이 되었겠나.

 

 

 












“… … 홍련.”

 

“…”

 

손 떼.

 

“…!!”

 

 

 

멈칫거린다. 그로테스크한 맥동이 나를 쥐고 있는 손을 타고 흘렀다. 

피가 역류하는 듯이 움찔거리던 손이, 이내 내게서 떠나갔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너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

 

“그런데, 내가 너를 죽게 내버려두면 그게 무슨 의미일 것 같아?”

 

“… 저는 죄인이에요.

죽음만이 유일한 속죄인 죄인이라고요…!”

 

“속죄라고?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 …”

 

“살아가면서 속죄하라는 구차한 말을 할 생각은 없어.

네가 죽음만이 유일한 길이라 느낀다면, 네 말이 맞겠지.

사람 한 명 안 죽여본 내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속죄에 대해 논하겠어.”

 

“그럼… …”

 

“난 네게 속죄 같은 걸 바라지 않는다.

행복. 그 빌어먹을 시간에 대한 보상.

네가 누릴 자격이 있는 그 감정들.

그게 내가 네게 유일하게 원하는 거다.”

 

“…”

 

 

 

그 말을 들은 홍련은 작게 숨을 내뱉었다.

 

 

 

“… 행복?

보상이라고요…?”

 

“그래.”

 

“… 보상… 보상…

… 그래요. 보상.

... 좋은 것이죠.

힘든 시간을 견딘 지휘관님들이나, 다른 자매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이죠.”

 

“…”

 

“… 하지만 제가 뭘 잘했다고 그런 걸 누리겠나요…!!

나쁜 년이다!! 내가 나쁜 년이다!!!

그렇게 스스로 자위질 하면서 다른 자매들을 죽이던 년이 뭘 그리 잘했다고 보상을 받겠냔 말이에요!!!”

 

“너는 죽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잖아.”

 

“제 손에 죽은 자매들의 수만 세 자리가 넘어가요!!!

그 딴 같잖은 변명이 통할 것 같아요??!!”

 

“… 같잖은 변명?”

 

 

 

나는 내 무릎에서 미호를 떼어 놓았다. 그러고는 볼과 눈이 잔뜩 빨개진 홍련의 양 볼을 세게 움켜 쥐었다.

 

 

 

“같잖은 변명??!!

아니!! 그건 변명이 아니라 네가 했던 모든 것의 본질이다, 홍련!!”

 

“… 그게 무슨…”

 

 

 

커진 내 목소리에 홍련이 짐짓 놀란 듯 했다.

 

 

 

“나는 그 개새끼가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럽다!!

그런데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말들을 봐!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행위는 그 새끼의 짐을 같이 지는 것 밖에 안 된다고!!!”

 

“그… 그런 건…”

 

“네가 죽였다고?? 네가 죽여??

아니!! 네가 죽이려는 건 네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없잖아!!”

 

“… 

...

... ...”

 







“정 그렇게 못 믿겠다면, 네가 직접 봐라.”

 

 

 

나는 홍련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잠들어 있는 미호의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네가 죽이라고 종용한 아이야.”

 

“… …”

 

“날 죽이려고 했으니까 사형이 당연하다고 말했지.

내가 필요 없다고 했으면서 말이야.”

 

“…”

 

“다시 봐라.

네가 진짜 죽이고 싶었던 게 뭔지 말이야.”

 

 

 

홍련을 자리에 앉혔다. 

부드러운 모래 사장 위로 무릎을 꿇은 홍련에게 나는 쓰러져 있는 미호를 건넸다. 

내 무릎보다 그녀의 무릎이 더 편했던 것인지, 미호는 몸을 뒤척이며 자신에게 편한 자세를 찾아갔다.

 

 

 

“내기 하나 하지.

만약 그 아이가 일어나 너를 원망한다면, 그 때는 내가 직접 너를 편하게 보내줄 거다.”

 

“…”

 

 

 

홍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손은 미호의 머리에 가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때는 내가 죽기 전까지 죽을 생각 못하게 될 거야.”

 

 

 

살인자. 홍련을 나타내는 말이 있다면 그것만큼 어울리는 것이 없겠지. 

하지만 그녀는 살인자가 아니다. 죽여야 했기에, 아니 더 원초적으로, 죽이기 위해 태어났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넘길 때까지 살인을 했다. 고작 미치광이 한 명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홍련은 내가 본 어떤 아이들보다 뒤틀리고, 더럽혀졌다. 

행복이 아닌 불행을 원했다. 편안함보다 고통을 원했다. 

그것이 그 동안의 살인의 대가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엄마로서의 자리를 포기하고, 내가 주는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뒤틀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모습을 원치 않았다. 

내가 그러했고, 이 미호가 그러했다. 

엄마를 보러 가자는 말 한 마디만으로 얼굴에 화색이 돌던 아이다. 

그러니 나는 홍련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여전히 자신이 엄마로 있을 수 있다는 고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고통을. 

 

그건, 오직 홍련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다. 

 









 

 

 

 

 

 

 

 

 

 

 

 

 

“… … 으으…

… 사… 사령관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두운 밤이 조금 밝아졌다.

미호가 눈을 비비며 부스럭거렸다.

 

 

 

“… …!!!”

 

“…”

 

“…

… … 어ㅁ…?!”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미호는 순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 엄마…?”

 

“…”

 

“엄마… 엄마 맞지…??”

 

“… …”

 

“지… 진짜야… 진짜 엄마다… …!”

 

 

 

미호가 바들거리는 손을 힘겹게 뻗어 홍련의 뺨을 매만졌다.

 

 

 

“… 미호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

… 내가 몰래 나간 거야…!!!!!

미안해… … 미안해…”

 

 

 

오랜만에 안겨보는 품이라 그런 것일까, 미호는 매달리듯이 홍련의 어깨를 움켜 쥐었다.

 

 

 

“… …”

 

“봤니. 홍련.”

 

“… …”

 

 

 

홍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이는 미호에게 다가가 그 앞에 편하게 앉았다.

 

 

 

“미호야. 내가 엄마 만나게 해준다고 했지?”

 

“으… … 흐으윽… 

… 엄마… 엄마야… …”

 

“미호는 엄마랑 떨어지고 싶니?”

 

“… ?!!!

아… 아니에요!!!... 흐으윽... ...!!

... ... 딸꾹... ...

...

...

저... 저는 그럴 생각은 하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손사래를 치는 미호였다.

 

 

 

“그럼 왜 혼자 반군으로 온 거야?”

 

“그건… …

...

...

… 너무 힘들어서 그랬… 어요…”

 

“힘들었어?”

 

“… … 네에…”

 

“뭐 때문에?”

 

“…

… 엄마가…”

 

“엄마가?”

 

“…

… … 엄마가 힘들어 하는 걸 보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나갔어요…”

 

 

 

미호는 눈을 감았다. 내가 때리기라도 할 줄 알았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것이 내가 아는 소녀라기보다는 아이 같았다.

 

 

 

“… 홍련.”

 

“… … 네, 사령관님.”

 

“이걸 봐도 죽고 싶냐?”

 

“…”

 

“네 걱정으로 여기까지 온 애를 두고 죽고 싶냐고.”

 

“… …”

 

“네가 죽은 자매들이 아니라 이 아이들을 봐라.

네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준 애들을 보라고.”

 

“…”

 

“그럼 너도 알 수 있겠지.

죽는 건 속죄가 아니야.

그냥 무책임한 거지.”

 

 

 

때가 되었다. 해가 스멀스멀 땅거미를 몰아내며 기어올라오는 그 때가 오고 있다.

하늘이 점차 파랗게 변해가는 때가 온다.

 

 

 

“네가 힘들었다는 건 알고 있어.

내가 차마 이해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도망치고 싶다는 것도 알고, 네 손에 죽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괴롭히는 것 같다는 것도 알고 있어.”

 

“…”

 

“나도 그 마음을 알아.

내 성급함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되었을 반군의 아이들이 죽었으니까.”

 

“… … 흐윽…”

 

 

 

포격 소리.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내 말 한 마디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그 참상이 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홍련이 고개를 떨궜다.

 

 

 

“그래서 나도 반군 안에 있으면서 끝도 없이 생각했어.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내가 용서해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내가 이 아이들을 품을 만큼 커다란 사람일까?

그 대답이 뭐였을 것 같아?

아마 너도 알고 있겠지.”

 

“… …”

 

 

 

홍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 그런 걸 우리가 받을 수는 없지.

죽였으면, 죽인 거야.

다른 어떤 이유가 있을 수도 없다는 거, 네가 가장 잘 알잖아.”

 

“… … 그래요. 그랬죠.”

 

“그럼 하나 물어보자.

나도 내 손은 피를 위해 네가 말한 ‘속죄’를 해야 하는 걸까?”


"... !!"

 



홍련은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빨게진 그 얼굴이 내게 선명하게 보였다.




“…!!! 그건…!!”

 

“아니야?”

 

“… 그건… ... 

… 사령관님께서는 그럴 상황이… …”

 

“그만.”

 

“…”

 

“내가 방금 뭐라 그랬지?

죽였으면?”

 

 

 

홍련이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행여나 자신의 텅 빈 마음이 눈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을까, 그것이 미호에게 보이지 않을까, 눈을 꼭 감은 채로 말이다.

 

 

 

“… 죽인 거다.”

 

“그래. 내 손에 죽은 사람들과, 네 손에 죽은 사람들이 뭐가 다르겠어.

죽인 거야. 그 이상의 변명은 필요 없잖아.

그래서 네가 지금까지 고통 받은 거고.”

 

“… …”

 

“그럼 다시 물어보자.

내가 속죄해야 하는 걸까?”

 

“…”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줘?

넌 내가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냔 말이야.”

 

“…

… … 제발… 제발 그만…!!!!”

 

 

 

드디어, 루비를 감싸던 베일이 고개를 들었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그만 좀 하세요!! 사령관님!!!!

그렇게 말하면 제가… …!!!”

 

“그만.”

 

 

 

홍련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답답하니?”

 

“… 그걸 지금…!!!”

 

“힘들어?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 …”

 

“그 마음.

답답하고 힘겨워서 터져버릴 것 같은 그 마음.

그게 지금 내가 네게 느끼는 마음이다.”

 

“… …”

 

“너는 너의 의지로 죽인 것이 아니지.

아무리 많은 자매들을 죽였다고 한들, 그것은 네 의지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는 나보다 났지.

나는 내 의지로, 너희를 지키겠다는 내 의지로 사람을 죽였다.

그것이 흥분과 성급함 때문이었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어.

난 내 의지로 죽였다. 너희를 지키겠다는 내 욕심을 위해 죽인 거라고.

그 결과를 알았든, 몰랐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 사령관님…”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온 세상이 검게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가리고 있던 것이 벗겨졌을 때, 오히려 세상이 가리워진 것처럼 어두워졌지.

숨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그게 내가 느낀 감정이었어. 

너는 다른가?”

 

 

 

빨간 눈이 베일에 가려졌다. 그 붉은 빛이 가리워졌다.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그러했다.

 

 

 

“… 아뇨…”

 

“그럼 내가 어떻게 저기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걸까?

내가 무슨 낯짝으로 아직도 살아 있을 수 있겠냐고.

내가 사람이니까?

내가 인류 부흥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니까?

아니지.

인간 혐오가 극에 달한 반군 아이들이 그딴 사실에 관심이 있겠어?

오히려 멸망했으면 멸망하길 바랬겠지.”

 

“… …”

 

“난 숨지 않았다.

숨고 싶었지만 참고 견뎌서 그 애들 앞으로 다가갔다.

500이 넘는 아이들 앞으로 뻔뻔하게 걸어 나갔단 말이다.

미안했으니까.

정말 사과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미호가 내게 총을 쏘아도, 다른 누군가 나를 위협해도 꾹 참고 견뎠다.

다리가 부들거려서 쓰러지고 싶은 걸 참고 견뎠단 말이다.”

 


“…”


 

“난 구차하게 살아남아서 그 아이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내가 죽인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살아서 그들 앞에 섰단 말이다.”


 

“… …”




 

“그게

우리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살아남는 것. 우리의 죄가 사과 받을 때까지 살아남는 것.”








 

“… 흐윽… 흑… …”

 

“그러니, 이제 눈을 들고 네 딸을 봐.

네가 버렸다고 했던 그 아이가 지금도 너를 증오하는지 말이야.”

 

“… 흑흑… 흐으으….”

 

 

 

눈물이 모아지는 중에도, 홍련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자신의 눈을 떴다. 

잔뜩 무거워진 눈꺼풀이 그녀를 짓눌러 조금 느릿한 속도였지만, 끝끝내 그 붉은 눈을 반짝였다.

 

 

 

“… … 미호야…”

 

“엄마… 괜찮아…?”

 

“…

… 하나만 물어봐도 되니?”

 

“… 응.”

 


“미호는… 

...

...

... 

... ... 내가 밉니?”

 

 

 











해의 절반이 수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는 밤이 아니다. 붉은 태양이 바다를 집고 일어난다.

 

 

 

“아니… …!! 

내가… 내가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 엄마 생각만을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거기서 얼마나 외롭게 버텼는지...!!

...

...

... 엄마가...  알아…?”

 

 

 

붉은 태양이 눈을 떴다.

붉은 그녀가 붉은 눈을 떴다.

이제 그 눈에 베일은 없다.

 

 

 

“… 고마워.”

 

 

 

홍련이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의 엄마가, 그제서야 소리 내어 우는 방법을 배웠구나.

 

 

 

 

 

 

 

 

 

 

 

 

 

 

 

 

 

 

 

 

“… … 사령관님.”

 

“왜?”

 

“왜 반군에 가신 거죠?”

 

“말했잖아.

사과하려고.”

 

“… 사과라…

… … 반군이 그걸 받아줄 것이라 알고 계셨나요?”

 

“그건 우리가 생각할 내용이 아니잖아.

난 그냥 해야 했으니까 했던 거야.”

 

“… 신기하네요.

저는 그토록 오랜 시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나야 말 몇 마디로 그랬지만, 홍련처럼 내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여야 했다면 조금 달랐을 거야.

도망칠 수 있을 만큼 도망쳤겠지.”

 

“그럴까요?”

 

“나는 내가 죽인 아이들을 그저 숫자로 봤을 뿐이야.

그 아이들의 흔적과 눈빛을 직접 마주했다면 이렇게 당당하게 있지 못했겠지.”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

… 그냥 운이 좋았던 거라 하자.”

 

 

 

하늘을 보며, 또 자신의 얼굴을 내게 기대어 홍련은 모래 사장 위에 앉아 있었다. 

미호는 그 무릎 위에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렇게 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나니 이 붉은 아가씨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오늘따라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그 덕분인가, 공기도 조금 더 시원해진 기분이다. 

이 작은 섬에 사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이 해안가까지 널리 퍼져 나온다. 

 

홍련에게 죽은 아이들이 모두 홍련의 입장을 이해해줬을까? 

내게 죽은 아이들이 모두 나의 입장을 알아줬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겠지. 그러니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악당이었을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하양보다는 검고 붉은 빨강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이토록 파란 하늘을 보며 하얗다고 하지 않는다. 하얀 하늘은 그저 구름 낀 하늘일 뿐, 곧 비가 올 날인 것이다.

 

나도 나 스스로를 선하다고 하지는 않겠다. 난 그저 하양이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일 뿐이다.

 

날이 유독 파랗다. LRL의 낡은 옷이 생각났다. 

하얗지 않다면, 내 기꺼이 파란 하늘을 위해 고개 숙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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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몽구스 팀은 나올 예정이 없었다.

하지만 저격수로 미호를 잡자마자 직감했다. 

몽구스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겠다는 걸...

덕분에 2만자가 또 늘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주인공이 좀 더 주도적으로 주변 인물을 구원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슴.

그만큼 성장했다는 거지.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