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소년의 일기 1
부족소년의 일기 2

부족소년의 일기 3



기록 18일차 
기록기님 전 관찰자 부족이 무슨 동물들과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그런 부족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죠.
몇일 더 함께 다니는 대신 무엇이든 도와드리겠다는 제 말을 들은 아델리 아저씨의 동생인 훔볼트 누나가 그럼 자기일을 도와주겠냐는 말을 하며 왠지 모르게 측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을 때 알아들었어야 했어요.

훔볼트 누나는 자기는 거점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면서 관측 카메라? 라는 이상하게 생긴 말뚝을 여기저기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확인하는게 임무랬어요.
저는 그때까지 말뚝 여러개를 들고다니는 것만 빼면 그저 평소에 하던 산속을 뛰어다니는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 말뚝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는 것과 한 여름인 지금도 눈이 녹지 않은 산 꼭대기로 올라가야 하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전 눈 덮힌 산을 꼬박 하루동안 올라가 훔볼트 누나가 이미 꼽혀있는 말뚝을 확인하고 재충전?이란걸 하는 동안 미리 지시받은 위치에 단단히 꼽는 일을 하루종일 했어요.
그리고 내려오는데도 하루가 걸렸죠.
전 므네모시네 누나가 보고싶었던 건데 삼일동안 누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구요.



기록 19일차
다행히 저보고 수고했다며 오늘은 쉬라고 하네요.
저는 저번부터 달라붙어 오는 늑대의 푹신한 털에 업드려 느긋하게 관찰자 부족민들을 구경했어요.
관찰자 부족은 우리 부족 처럼 여러 가족이 모여 울타리를 치고 마을을 만들어 사는 대신 열명에서 스무명 정도가 뭉쳐서 유랑하며 천막에서 생활하는데 제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조상들의 임무를 이어받아 세상과 자연을 관찰하기 위해서래요.
그리고 겸사겸사 그 과정에서 얻은 다른 부족들이 모르던가 잊어버린 지식을 주는 댓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얻는대요.
우리 조상님들은 누군가를 지켜주는게 임무였다고 듣긴 했지만 지금 우리 부족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는데 관찰자 부족은 뭔가 멋진 느낌이네요.

펜리르 대모님은 요 몇일간 관찰자 부족민들에게 사냥기술을 가르치고 계셨나봐요.
해가 진 후에 대모님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저에게 한탄하셨거든요.
대모님은 그나마 힘쓸 줄 알고 재빨라 보이는 몇명을 데리고 숲에서 기술을 가르쳤는데 전부 제가 처음 기술을 배울 때의 발끝에도 못따라 온다며 성질을 내셨어요.
그런데 솔직히 대모님을 따라하는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네요.
맨손으로 제 허리만큼 굵은 나무를 부러뜨리시는 분인데...

대모님이 잠드신 후에 저는 혹시 누나를 볼 수 있을까 싶어 저번에 갔던 물에서 풀들을 기르던 천막으로 갔어요.
제 예상대로 므네모시네 누나는 기르던 꽃을 손질하고 있었죠.
무표정에 가까운 누나지만 꽃을 볼 때 만큼은 뭔가 따뜻해 보이는 미소를 띄고 있었어요.
전 누나를 부르며 다가가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러면 또 무표정한 누나로 돌아올거 같아 몰래 웃고있는 누나를 보다가 펜리르 대모님이 주무시는 천막으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대모님은 주무시고 계시지 않았어요.
대모님은 삼일만에 보는데 왜 사라지냐고 저에게 쏘아붙이셨죠.
여기서 대모님의 가족인건 저희 둘 뿐인데 이렇게 얼굴보기 힘들 줄 알았다면 여기있는걸 허락하지 않았다며 투정부리는 대모님을 달래기 위해 저는 천막 주변을 돌아보고 난 뒤 대모님께 애교를 부렸어요.
집안 막내인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애교로 마음이 풀리신 대모님을 보면 정말 나이 많으신 할머니 같기도 하고 저보다 나이가 조금더 많은 여자아이 같기도 해서 신기했죠.



기록 20일차
드디어 오늘은 므네모시세 누나와 단 둘이 있게 되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훔볼트 누나랑 아델리 아저씨가 등에 짐을 지고 두리번 거리길래 숨어다니니 아델리 아저씨가 바닥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던 메인 누나를 발로 툭툭 차더니 손님도 일 도와주는데 제발 일좀 하라며 데리고 갔어요.
숨어있지 않았으면 제가 끌려갔겠죠.


그리고 므네모시네 누나에게 가서 도와줄 게 있냐고 했더니 산 중턱에 설치한 관찰카메라의 중간정검을 할 겸 야생화 군락지로 간다고 했어요.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이때다 싶어 짐꾼이라도 할테니 같이가자고 했죠.

누나는 별 다른 얘기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저는 므네모시네 누나의 옆에 있던 배낭과 주머니들을 들쳐맸어요.

산 중턱으로 떠나는 순간 대모님이 오늘은 제가 사냥기술의 시범을 보여줘야 한다며 절 찾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무거워 졌어요.



<기록 종료>





"일단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스콜은 기록기를 배낭에 넣고 앉아있던 바위에서 내려왔다.

"어라? 이게 뭐지?"

-원수의 기운이 느껴진다. 움직여라 나의 육신이여. 최후의 임무를 완수하여야 한다.-

스콜은 자신이 앉아있던 바위에 매우 생소한 무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탁한 회색 바탕에 흉터같기도 혈관같기도 한 붉은 줄이 곡선을 그리며 그어져 있었다.

"아, 이거 바위가 아니라 버려진 로봇 아닌가?
오오오...신기하다..."

-저 가증스러운 살덩이를 멸절시키리라, 철의 교황이시여 제게 힘을!-

"어...저번에 로봇도 밥이 필요하댔는데...움직이는 걸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이게 맞나?"

스콜은 가방에서 예비전지라고 들은 묵직한 막대를 꺼내 로봇으로 보이는 것에 연결하여 전원을 올렸다.

"므네모시네 누나~ 여기 와봐요!
여기 신기하게 생긴 로봇이 버려져 있어요!"

스콜은 멀찍이 떨어져 있던 므네모시네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몸이 움직이는 도다! 교황 성하께 영광을!
각오하라 원수여! 나의...우리의 성전은 내가 살아 움직이는 한 끝나지 않는다!-


"스콜군 신기하게 생긴 로봇이라 하여도 정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좀 더 명확한 묘사를..."

한손에 들꽃을 들고 스콜의 부름에 응답하며 다가오던 므네모시네는 그자리에 얼어붙었다.

"그그윽...죽...어라...저주받은...살덩이...그긱..."

스콜의 등 뒤에 여기저기 부서져 땅에 반쯤 파묻혔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철충이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총구를 움직이고 있었다.

"응? 누구 목소리지...?"

"도망쳐......스콜, 도망치세요."

"네?...으악!"

머리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본능적 위기감을 느낀 스콜은 몸을 비틀어 옆으로 굴렀고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타는듯한 열기와 함께 불덩이가 터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스콜, 고개 숙이세요."

"네?...으아아아앗!"

스콜은 므네모시네의 지시를 따라 몸을 숙여 바닥에 기다시피 달렸고 곧바로 자신의 목덜미 위로 열기가 순간 지나가자 마자 얼어붙는 듯한 한기가 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누나?"

므네모시네의 손에서 서릿발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와 눈앞의 철충을 뒤덮고 있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고 바닥에서 자라던 키 작은 식물들은 얼다못해 바스라지고 있었다.
일대의 기온은 마치 한겨울이 온 듯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극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화염을 쓰는 폴른 타입 대형 철충, 식별명 '빅 칙 캐논'으로 추정 됩니다.
화구의 크기로 보아 매우 약화된 상태이나 화염으로 인한 기본적인 위험성이 존재하니 신속히 제 뒤로 대피하시길."

"철충이요? 대모님이 그건 전부 사라졌댔는데..."

"동면에 들어간 철충이 에너지 원을 얻어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예측됩니다."

"아...설마..."

얼어붙어 가던 철충은 이따금 들썩거리며 얼음 틈으로 화염을 내뿜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주변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기를 몇분, 결국 철충은 얼음더미에 파묻혀 앞으로 꼬구라졌다.

"후우우...적대유닛 활동 정지, 끝났습니다."

"오...와...와아...누나 정말 대단하네요. 대모님 보다 더 대단한거 같아요!"

므네모시네는 숨을 깊게 내쉬며 철충에서 등을 돌렸다.

"펜리르양 이었다면 더욱 신속히 저 철충을 침묵시켰을 겁니다.
그리고...출력 조절을 못해 기능에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부끄럽군요.
...상황파악을 하겠습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스콜?"

므네모시네는 새어나오는 냉기를 주체못하고 부들거리는 손을 애써 숨기며 스콜에게 다가갔다.

"누나 덕분에 멀쩡해요.
아 그, 그게 저 철충이 움직인거 전부 저 때문..."

"기이익...이리 끝낼 순 없다...이렇게도 허망하게...
기긱...적어도 너희들 만큼은...너희들 만큼은! 내 최후의 불꽃에 삼켜져라!"

"누, 누나 위험해요!"

철충의 목소리가 들렸던 인간의 후손이었기 때문일까, 스콜은 얼어붙은 철충의 최후의 몸부림을 알아챘고 본능적으로 므네모시네의 팔을 잡아당겼다.
철충은 끈질기게도 얼음에 뒤덮힌 몸을 움직여 아직 막히지 않은 상부 포탑에서 포탄을 쏘아냈다.
포탄은 스콜과 므네모시네의 머리위를 지나쳐 위쪽 능선에서 폭발하여 부서진 돌 무더기를 쏟아냈다. 
철충은 스콜과 므네모시네가 화염과 쏟아지는 돌덩이를 피해 바닥을 구르는 사이 그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고 거대한 흑철 괴물은 마지막 화염을 토해내며 산화하였다.

폭연이 걷힌 후 두 남녀가 있던 자리에는 반쯤 부서진 얼음더미가 대신 자리잡고 있었다.

"허억...허억...더 이상은...능력을 사용하긴 힘들것 같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겠군요.
스콜군, 상태는 어떤가요? 스콜군? 대답해주세요, 스콜군?"

혈관을 파고 든 냉기로 인해 터져나온 살얼음 낀 피가 흘러나오는 두 손을 겨우 지탱하며 자신들을 덮은 얼음더미를 보강하던 므네모시네는 스콜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천천히 돌아보았다.





"어...어윽...누...나...으윽..."

그곳에는 폭발의 충격에 튕겨나온 얼음방벽의 일부였던 고드름에 복부를 꿰뚫려 바닥을 피로 적시고 있는 스콜이 있었다.




므네모시네의 냉동빔!

효과는 굉장했다!


철충의 대폭발!

스콜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근데 불 쏘고 곡사포 쏘다가 자폭하는 애 빅칙 캐논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