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느 늦은 밤, 대원들을 실은 수송기가 작전지역에 도착했다.

곧 착륙해야 할 지점엔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슬레이프니르는 당연한 듯 고글을 장착한 뒤 이렇게 말한다.


"내 불빛을 보고 잘 따라와야한다?"


적들에게 쉽게 노려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당돌하게 옷에 부착된 발광체를 작동시킨 뒤 그대로 낙하를 시작했고, 이 모습을 본

다른 대원들 또한 그녀를 따라 차례대로 낙하했다.


살갖을 찢을 듯한 추운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저 앞에서 보란듯이 붉은 빛을 내뿜고 있는 슬레이프니르를 따라가자 철충들은 이를 눈치채고 

환영인사를 시작했다.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포격음과 기분 나쁜 비명소리, 그리고 폭우처럼 쏟아지는 탄환들이 그녀들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고, 전방에서 길잡이 역할을

맡고 있는 슬레이프니르는 보란 듯이 철충들이 미처 조준하지 못하는 포인트들을 골라 낙하포인트를 잡아갔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붉은 빛은 어느새 한 지점에서 깜빡거리며 그녀들을 안내해주고 있었고, 흐레스벨그, 그리폰, 마지막으로 하르페이아까지

무사히 착륙을 마친 뒤에야 붉은 빛은 어둠속에서 사라졌다.


1시간전 무전이 끊긴 작전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파견된 상황이었으나, 오늘 밤을 넘기면 생사가 불분명해질 것을 염려한 사령관은 기동력이

우수한 스카이나이츠를 이용해 이번 작전을 수행해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사령관의 결정을 그녀들이 거부한다고 해도 납득은 갔을 것이다. 공중전에서의 활약이라면 모를까, 지상전까지 상정하고 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뿐 더러, 그녀들의 전문분야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걸 알고 있음에도 그녀들은 이 임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그녀들의 전대장은 전장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길을 밝혀주며,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지상에 도착한 대원들은 이전까지 사용하던 무기들과 상당히 다른 경기관총과 수류탄 그리고 근접전용 무기들을 챙긴 뒤 신속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신속한 이동을 위해 기동장비를 벗은 그녀들은 사실상 일반 보병들이나 마찬가지의 전투력이었지만, 그녀들은 게의치 않았다.


정글도로 덩굴과 나뭇가지들을 가르며 앞장서는 슬레이프니르는 무전에 찍힌 마지막 좌표로 계속해서 이동하였고, 얼마 안가 진지를 치고 대기중인

대원들과 조우했다.


다행스럽게도 철충들이 이 곳까지 발견하진 못한듯 보였으나, 무전이 끊겼다는건 이 근처에 방해전파를 발생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

이 곳에서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신속히 대원들을 데리고 복귀하려던 그 순간, 뒷면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해 둔 크레모아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녀석들이 이 곳을 발견한 것이다.


희생을 감수하고 도주를 하는것이 현명한 판단이었겠지만, 대원들은 그러지않았다. 

닿을지 안닿을지 모를 지원요청을 보낸 뒤 경기관총을 장전 후 서로의 등을 맡긴 채 참호속에서 녀석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모두들 숨죽이고 대기하고 있던 그때, 하르페이아의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철충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들은 일제히 수류탄을 전방으로 던진 뒤 탄약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와 총알이 도탄되어 튕겨나가는 소리, 그리고 악에 받친 슬레이프니르의 비명소리와 철충들이 찢어지는 소리가 뒤섞여 

말그대로 생지옥을 만들고 있었다.


철충들을 향해 쏟아붓던 탄환은 금새 바닥이 났고, 가지고 온 크레모아도, 수류탄도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 

남은건 몸뚱이와 철충들에게도 먹히는 대검이 전부.


다들 절망하고 있던 순간에도 슬레이프니르의 눈빛은 밝게 빛났다. 마치 자신만 믿어보라는 듯한 눈동자로 그녀는 비행장비도 없이 철충들을 향해 달려갔고,  그녀가 지나간 자리엔 0.3초 정도 늦은 둔탁한 소리와 철충들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비도 없이 저런 식으로 몸을 혹사시키는건 말그대로 미친 짓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건 중요치않았다.

그녀는 단지 이 작전을 끝마치고, 대원들과 함께 돌아갈 것이다 라는 굳은 의지로 몸을 혹사 시키고 있던 것이다.


그녀의 의지에 감탄하며 전원 대검 착검 후 그대로 돌격해 철충들의 숫자를 줄여나갔지만, 저 멀리서 밀려오는 철충들의 지원부대를 보며

이젠 끝이다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대원들은 망연자실해하며 널부러진 철충들의 시체 옆에 쓰러졌지만, 슬레이프니르만큼은 힘이 안들어가는 다리를 억지로 세워가며 

당장에라도 달려갈 기세로 대검을 고쳐잡았다.


그녀의 대검 너머로 햇빛이 드리우며 번쩍였고, 이 아침이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날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던 그때,

한통의 무전이 걸려온다.


"버텨줘서 고맙다"


지난밤 보낸 무전의 답이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령관은 직접 편대를 이끌고 그녀들의 머리 위에 모습을 비췄고,

손짓 한번에 철충들은 포격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간단하게 화력으로 제압해버릴 정도로 싱거운 전투였지만, 만약 스카이나이츠가 시간을  끌어주지 못했더라면 이번 작전은 구출이 아닌

보복이 되었을 것이다.


철충들이 포격에 전부 박살이 난 것을 본 슬레이프니르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전투의 여파로 3일이라는 시간동안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얻은 것이라곤 온몸에 남은 자상과 끊겨진 근육들이었지만, 일어난 그 순간에도 후회하는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