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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로이드. 여기엔 여러 명칭들이 붙어있다. 『인공생명체』, 『인조인간』, 『인간이 만든 인간』 등등. 피와 살을 가졌지만 금속 골격을 기반으로 한 신경계와 근육 조직을 가졌다. 전원이 여성이고 인간 사회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녹아들었다. 인류는 꿈꿨다. 일을 대신 맡아주는 인공생명체를. 바이오로이드는 그러한 일 외에도 교육, 요리, 산업, 공업, 국방, 과학 등등 여러 분야를 맡았고 모두 자신들의 창조주 인간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냈다. 그 여파로 직업과 일자리를 잃어버린 인간의 멸시를 받았고, '만들어진' 생명체이기 때문에 소모품처럼 소모되고 필요가 없으면 버려졌다.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버려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들은 인류에게 그저 복종해야만 했다.


인간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복종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그녀들이 창조될 때부터 새겨져왔기 때문에 불합리와 부조리를 겪어도 그녀들은 그저 신의 알 수 없는 변덕이라고 생각하며 감내할 뿐이었다. 창조주인 인간에게 미움받고 멸시받고 혐오받았던 그녀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그러진 않았다. 그녀들을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친구처럼 생각해주는 인간 역시 있었다. 비록 안 좋은 시선과 취급을 받을지라도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녀들은 더욱 더 봉사하였다. 누군가 말했던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을 했던 누군가의 근거없는 희망일 뿐이다. 만일 철충의 침공이 없었다 하더라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해서 성장해가는 종족이지만 그 실수로부터 배워도 배워도 반복하기만 하는 어리석은 종족이기도 하다. 어느 한 남성은 그렇게 믿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쓰임새는 바이오로이드와 별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심한 취급을 받아오며 살아온 남성의 의견은 이러했다.


디에고 도란스. 훗날 매튜라고 불려지게 될 남자는 그리 생각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모든 인류는 멸종해있고 유일하게 남은 인간이라곤 자신 뿐인 환경에서 그는 여러 혼란을 느꼈지만 그녀들이 항상 노래처럼 말하고 꿈꾸는 인간들이 복구된 사회에는 그는 항상 의문과 혐오를 가졌다. 그는 오르카 호의 사령관이 되고 그녀들의 여러 모습을 관찰해왔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도 낼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좌절할 수 있고, 무서워 할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다. 죽은 후라는 알 수 없는 영역에 미지의 공포를 가진 인류가 사후세계관을 만들어 거기에 의지했던 것처럼 바이오로이드 역시 내세를 믿고 자신들이 꼭 거기서 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서로 달랐지만 그 좋아하는 것을 받거나 하면 행복해했다. 다치면 인간처럼 아파했고, 인간이 병원에 가듯 그녀들은 수복실로 갔다. 쉬는 시간 때 뛰놀거나 역할 놀이를 하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거나 운동을 하거나, 느긋한 티 타임을 즐기거나,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정말로 바이오로이드는 인간과 비슷했다. 그는 오히려 거기서부터 답을 얻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랑 아주 닮게 만들어진 생명체이고 멸망 이전에도 그녀들은 사회의 여러 부분을 맡았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거두고, 그녀들이 있음으로서 생활의 윤택함은 더 늘어났다. 그렇다면 여기서 인류가 있을 자리는 어디인가? 그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없다.


인류는 더는 있을 자리가 없었다. 있어봤자 바이오로이드에게 좋은 영향보다 악영향을 더 크게 끼칠 것이 뻔하며 자신들보다 뛰어난 바이오로이드를 질투할 것도 뻔히 보이고 분명 자신에 의해 인류가 복구된다면 또 다시 바이오로이드를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풍조가 나타날 것이다. 그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대체 저 여자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 언제부터 감정의 쓰레기통로 변했단 말인가? 자신들이 못 하는 것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를 질투한단 말인가? 인간의 좋은 모습도 나쁜 모습도 모두 닮은 바이오로이드가 있는데 왜 인류가 필요한가? 매튜, 그는 마지막 남은 최후의 남성. 자신의 뜻에 따라 인류는 번성할 수도 끝날 수도 있고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의 족쇄는 분명 인간이 없어진 이후 그녀들의 목을 죄이는 밧줄이 될 것이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온 지구를 수색한 결과 발견한 것이 자신이다. 그녀들에겐 더 없는 희망이자 이제서야 보인 빛일 것이다. 하지만 매튜는 그 빛을 더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그 빛은 분명 다시 그녀들을 태울 것이다. 하지만 그 빛이 없으면 그녀들은 어둠 속에 홀로 두려움에 떨 것이다. 이런 딜레마를 매튜는 처음부터 느끼지 않았다.


빛을 보고 싶다면 그녀들을 빛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으로 만들면 된다.


더치 걸이 라비아타에게 말했다. 인간님들이 복구되면 다시 우리들은 도구가 될텐데 차라리 지금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라비아타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자신들이 나아가기 위해선 인간님들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매튜는 더치 걸의 의견도 라비아타의 의견 모두 충족시키는 새로운 결과,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알고 있다. 그녀들이 인간이 되면 더는 그녀들을 도구처럼 대하는 인간은 없어지는 셈이고 그녀들이 나아갈 수 있는 발판과 길이 마련된다.


과거의 구 인간일 뿐인 자신은 사라지면 그만이다. 자신이 사라지면 이제 정말로 새로운 인간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니 흥분되었다. 자신이 없어도 웃을 수 있는 그녀들이라니....너무 행복했다. 첫번째로 자신을 인간처럼 생각해준 친구, 두번째로 자신을 인간처럼 생각해준 연인. 그리고 자신에게 인간처럼 살 수 있게 세번째 기회를 준 그녀들이 매튜에겐 너무 사랑스럽고 빛나고 아껴야 하는 존재들이다.


매튜는 그녀들을 빛으로 바꿔주었고 자신은 죽음으로서 그녀들이 두려워하는 어둠과 미래를 해결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튜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와의 아이, 그와의 사랑을 원했던 그녀들의 꿈을 그가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현실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현실. 거기서 그가 선택한 것은 그녀들의 앞날이었고 포기한 것이 그녀들의 꿈이었다. 그 역시 죽어가면서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지녔고 죽으면서까지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 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더는 그녀들을 해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라고.


새로운 시대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오고야 말았다. 이제 바이오로이드는 더는 바이오로이드로 불리지 않는다.


그녀들이 인류다.



☆ ★ ☆ ★



"언니!"


콘스탄챠가 라비아타를 불렀고 라비아타는 여동생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보리와 함께 뛰어오는 자신의 여동생을 보니 라비아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얼굴에 새겨졌다.


"오늘이죠?"


"오늘이란다."


그녀들의 주위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노란색 천으로 덮어있는 무언가였다. 그 천 앞에는 순서대로 왼쪽부터 칸, 메이, 레오나, 마리, 용, 메이, 아스널이 서있었고 콘스탄챠가 얼른 가보라는 끄덕임에 라비아타는 용의 옆에 섰다. 라비아타가 오고 그녀들은 노란색 천을 손으로 잡아 당겨 그 동안 천에 감춰진 것을 보여주었다. 레드스톤의 총사령관으로 있었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고증한 매튜의 동상이었다. 그녀들은 그 동상을 보자마자 박수를 쳤고 몇몇은 훌쩍거리며 울기도 하였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그 과정을 찍고 있는 한 기자가 있었다. 한때 아머드 메이든 소속이었지만 이젠 언론인이 된 스프리건과 그런 스프리건을 찍고 있는 칼리스타와 이오, 블러디 팬서였다. 스프리건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로서 철충전쟁 승전 5주년! 이제껏 많은 분들이 기다려왔던 순간입니다. 저기 저 동상을 보시면 한때 레드스톤의 총사령관이자 오르카 호 1대 사령관이었던 분의 모습이 그대로 고증되어 있습니다. 저 분의 희생을 통해 전쟁은 승리로 나아갔고 저희들 모두 이런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5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 전 세계엔 흉터들로 가득했다. 철충들은 모두 없어졌고 아직 남아있는 위협들 역시 모두 뿌리 뽑아 혹시나 모를 위험은 모두 없어진 상태다. 이제는 회복기에 들어섰으며 무너진 도시들이 하나 둘씩 다시 재건되고 있었다. 스프리건 기자가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보여주었다.


"현재 동상 앞에 모이신 분들은 철충전쟁 때 크게 활약하신 각 부대의 대장들이자 오르카 호의 지휘관들이랍니다. 저 분들의 희생 역시 승리에 큰 공헌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5주년 행사를 맞이하여 새로운 발표를 하겠다고 합니다."


연설대 위에 선 라비아타가 마이크를 켰고 모두가 그 소리에 집중했다. 라비아타는 어제 계속 연습한대로 긴장을 풀면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이 무슨 날이신지 모두 아실 겁니다. 100년 동안이나 이어진 끔찍한 전쟁의 승리로부터 5년이 지난 날입니다. 저희들은 함께 힘을 합쳐 도시와 시설을 재건하고 무너진 것들을 다시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외에도 앞으로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참상을 기억하고 저희들에게 자유를 주신 그 분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펼친 행사입니다. 지금까지 흘려온 피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지금의 평화는 이전의 피로서 이루어진 평화입니다. 저희들은 앞으로도 이 사실을 계속 기억해가면서 살아가야할 것이고 저희들 이후 세대들에게도 반드시 가르쳐주어 망각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여러분, 부디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연설을 끝마치고 라비아타가 고개를 숙이자 모두 박수를 쳤다. 이번 행사의 진행원을 맡은 키르케는 라비아타가 내려오자마자 다음 차례를 알렸다. 5년 전의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모습은 훨씬 나아보였다.


"다음 분이 입장하십니다."


저 뒤에서부터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부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모두가 그녀를 보니 이전보다 훨씬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내었다. 문에서 나온 존재는 코나였다. 코나는 박수를 받으면서도 어색한지 고개를 연신 꾸벅이면서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코나는 곧 각 부대의 지휘관들과 마주쳐서 그녀들과 눈빛을 교환했고 그 눈빛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코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아까처럼 긴장한 발걸음이 아닌 당당한 발걸음으로 연설대에 올라 마이크를 자신 쪽으로 구부렸다. 크흠 하고 목을 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 어떤 값을 매긴다 한들 돌아올 수 없는 생명들의 죽음으로 이룬 기적입니다."


코나는 이 이후 말이 없어졌다. 어색한 공기가 계속 감돌고 아래의 지휘관들이 난감한 분위기를 내었다. 코나는 분명 새벽까지 연습한 연설이 잘 되지 않자 당황하였고 도움을 바라는 눈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녀의 갈 곳 없는 눈동자는 그의 동상에 멈췄고 그녀는 그의 동상의 눈을 몇 초간 바라보고 나서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기적....이 말을 싫어하시는 분이 떠오릅니다. 그 분께선 기적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이뤄낸 것' 이라고 정정할 정도로 말이죠. 저도 그렇게 믿을 것입니다. 확률적인 운명이 아닌 저희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일궈낸 찬란한 업적이라고. 이 동상은 그저 그를 기리기 위해서만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동상엔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습니다. 얄궃게도 그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다른 숫자를 지닌 사람들의 번호가 여기에 적혀져 있습니다. 그 분께서 기적을 싫어하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숭고한 희생이 무작위적 확률로 가려지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의 말씀대로 지금의 평화는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방금 라비아타 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들은 이 희생들을 앞으로 영원히 기억해야할 것이며 후세대들에게 반드시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마지막 구 인간입니다. 이제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인간이 된 여러분들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함께 도와 이 희생들이 잊히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부디 저희의 후손의 후손, 더 먼 후손들까지 지금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도와주세요."


코나는 청중들 가운데에 평상복을 입고 있는 발키리가 눈에 띄었다. 발키리의 목에 걸려져 있는 은빛 목걸이는 코나의 눈에 무척 익는 것이었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 발키리에게 주었던 선물. 운명의 장난인지 무엇인지 때마침 코나를 발견했던 최초 목격자 역시 발키리였다. 코나는 그런 발키리를 보자 즉석에서 또 다른 연설을 해내었다.


"...기억나네요. 제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저는 한 동면관 속에 잠들어진 채로 어느 분께 발견되어 오르카 호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악마이자 마녀였습니다. 바뀔 가망이 없는 저에게 변화를 주신 그 분은 저의 죄를 사하여 주셨지만 전 아직 그 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을 잃고 지금처럼 되었을 땐 저는 마음 속 깊숙한 곳...아니면 머리 속 어딘가에선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아서 내가 그랬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고 말이죠. 너무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저의 모습에 스스로 놀랐고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졌습니다. 아까 말하였듯 제 죄는 아직도 존재하며 아마 제가 죽는 그 순간까지 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죄악으로 스스로를 자기연민 따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찾아올 저의 죗값을 달게 받아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죄책감에 몸부림 칠 때가 아닌 지금의 시대를, 앞으로의 시대를 더 찬란하게 바꿔나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것이 그 분이 저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신 이유입니다. 그 분께선 저에게, 여러분들께 미래와 희망을 맡기셨고 저희는 그 분께 받은 기대에 부흥하여 그 어떤 시대의 인간이 봐도 눈이 부실 황금시대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그리고 염치를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여러분들의 황금시대를 만들어나갑시다. 다 함께."


즉석에서 생각해낸 연설문은 그녀들에게 무척 훌륭하게 들렸다. 그녀의 연설을 현장에서 직접 들은 사람들과 tv나 컴퓨터, 라디오 등의 매체들로 접한 사람들 역시 대호평을 남겼다. 박수와 갈채가 쏟아졌지만 코나의 고개는 그의 동상의 눈을 향하고 있었다. 박수와 갈채가 멈추고 나서는 용이 연설대 위로 올라왔고 코나는 그 자리를 비켜 옆으로 나왔다. 용의 뒤로 지휘관들이 속속히 서기 시작했다.


"통령과 대표의 훌륭한 연설이었소. 이 연설은 물론 연설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은 아마 먼 미래에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오. 곧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시작되고 이 곳에 모이신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것이라오. 그 전에 여러분들께 꼭 전해야만 하는 사실이 있소. 소관, 무적의 용은 해군 제독이라오. 외계에서 온 흉악스러운 적을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뤄 물리쳤지만 아직 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오. 저 해저엔 어떠한 힘을 가졌는지 제대로 유추해내지도 못 할 정도로 강한 적이 잠들어있소. 별의 아이라 불리우는 이 괴물들은 우리 시대는 아닐지라도 어느 시대엔 커다란 위협으로 자리 잡을 것이오. 이 별의 아이에 대응코자 본관들은 새로운 공동 군사단체를 창설하려고 하오. 그 분께서 남겨주신 이 별의 아이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우리들이 거두어 별의 아이 요격 전용으로만 쓰게 할 것이오. 새로운 군사단체의 이름은 『요한센』 이라 하며 소관인 요한센의 총 통괄자로 코나미아 라몬즈를 추천하는 바요."


그 말에 코나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용으로부터 별의 아이를 물리쳐야 하는 무력의 필요성을 들었고 용의 제안으로 자신 역시 그 집단에 소속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설마 그것이 총 통괄자라는 것은 생각치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른 지휘관들은 이미 용에게 들었는지 코나를 총대장으로 만드는 것에 하나도 빠짐 없이 찬성했다. 지휘관들 뿐이 아닌 다른 사람들 역시 용의 의견에 찬성했다. 키르케가 이 때를 노려 마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마리는 그 마이크를 받자마자 용을 도와주었다.


"저 역시 찬성하는 바입니다. 영국 본토 수복전 때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코나미아 라몬즈 양의 우수한 전략적 안목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훗날 이 안목은 별의 아이와의 대결 때도 필요할 것입니다."


마리는 곧바로 다음 타자인 레오나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 전투 때도 철충 공격대를 고립시키고 둥지 안을 텅 비게 만든 것 역시 코나미아의 공이었지. 난 찬성."


레오나는 그 뒤에 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세력을 강화시켰음에도 거기에 과신하지 않고 잉여 자원들을 많이 모아둔 덕분에 오르카-레드스톤 연합의 보급은 항상 문제가 없었지. 나 역시 찬성한다."


칸은 그 뒤에 메이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둠 브링어의 화력은 양날의 검이지만 코나는 그 양날의 검을 무척이나 잘 휘둘러줬어. 특히 이탈리아 반도 수복전 때 나도 놀랄만한 작전을 짜내어 둠 브링어만으로 반도를 수복했었지. 코나 말고는 맡을 사람이 없어."


메이는 그 뒤에 아스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모두가 똑같은 맘이지! 그대여, 그 누구도 자네가 대장직을 맡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네! 나 역시 추천하지."


마이크는 마지막으로 라비아타에게로 넘어갔다.


"승리엔 희생이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했던 건 사령관님, 당신이었습니다. 저희들이 흘리는 피를 의미있는 피로 만들어주시고 그 분처럼 저희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주신 분 역시 당신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있는 모두가 부탁드릴게요. 요한센의 대장이 되어주세요."


라비아타가 코나에게 마이크를 넘겼고 코나는 마이크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도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응원해주고, 인정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이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그녀들을 실망시키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코나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들의 응원과 인정에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다시 중요한 자리를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날, tv에 나오는 모든 뉴스와 인터넷에 뜨는 가장 인기있는 정보는 물론 라디오와 신문 등의 여러 매체에선 별의 아이 요격 부대, 『요한센』 발표는 물론 요한센의 총대장직으로 코나가 올라섰다는 정보가 꾸준히 올라왔다. 요한센은 여러 기술자들과 설계자들이 달라붙어 새롭게 만든 오르카 호를 기함으로 한 대함대이며 과거 별의 아이를 죽인 적이 있는 엘러트 포의 대량생산과 별의 아이를 죽일 수 있는 다른 무기들로 무장했다.


요한센은 별의 아이의 동면이 되려 별의 아이의 힘을 비축해주는 또 다른 방식임을 파악하고 별의 아이를 강제로 깨운 후 엘러트 포를 비롯한 무기들로 별의 아이를 사살, 사살한 별의 아이를 시체를 조사하여 더 효율적인 무기들을 여럿 만들어내어 별의 아이들을 강제 기상시키는 족족 사살하였다. 별의 아이의 강력함에 요한센 역시 큰 피해를 입어야 했지만 과거 철충 전쟁 때의 코나가 대장으로 있으니 피해는 금방 복구되었고 전사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별의 아이를 반드시 사살했다.


요한센 함대가 별의 아이를 사살하면서 완전한 평화를 되찾고 있을 때, 아머드 메이든 기자단은 닥터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스프리건 기자가 물었다.


"완벽한 인간의 게놈 지도를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어떻게 만드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과거의 닥터처럼 닥터는 더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영구 성장약을 복용하여 성숙미를 뽐내는 미녀가 되었다. 닥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어떻게 완벽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제조법을 만들었는지 전부 알려주었다. 스프리건 기자 뒤의 기자단들은 녹음기와 수첩, 동영상 등의 기록을 남겼다.


"한때 바이오로이드라 불렸던 저희들은 대부분이 인간과 비슷했지만 골격, 신경계, 근육 조직이 크게 틀렸었죠. 저희들의 몸은 과거 인류의 신체보다 더 오리진 더스트의 적용을 잘 받도록 설계되어진 몸이었으니까요. 큰 단점이 있다면 몇몇 고급 기종들을 만들기 위해선 여러 자원을 써야한다는 것이지만 전 이 문제를 단순화로 해결하였습니다."


"단순화요?"


"후손들의 신체 및 지능을 조금 줄이는 대신 유전물질의 단순화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는 거죠. 아쉽게도 마지막 인간 남성은 사망했으니 저희들에게 번식 즉, 확장은 이 방법 외엔 없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저희들처럼 처음 만들어지면서 설정된 신체 나이로만 살아가지 않고 유년, 소년, 청년, 장년, 중년, 노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가질 것입니다. 물론 많이 장수하겠지만요."


"신체 및 지능 능력을 조금 약화시킨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의 일부는 우리의 후세대는 하지 못 할 것이라는 말씀이 될 수도 있겠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큰 걱정거리는 아닙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테니까요. 또한 그 시점의 미래라면 이미 기술력은 지금보다 더 발전되었을 거고 저희의 후손들은 더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유전자 씨앗을 비롯해 자원이 들어가는 양의 조절을 위해 닥터는 단순화라는 과감한 선택을 골랐고 그녀의 선택대로 그녀들은 흡사 과거 인류처럼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막 사람이 된 바이오로이드보다 약했어도 여전히 장점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평범한 인간처럼 살 수 있게 되었다. 거리엔 남자가 아닌 여자 외엔 안 보이지만 그녀들은 각자 얻고 싶은 아이들을 얻었다. 자신의 유전자를 베이스로 한 똑같은 아이를. 에이미 레이저가 끌고 가는 유모차에는 에이미 레이저를 똑 닮은 어린아이가 잠자고 있었고, 블랙 웜은 자신과 똑 닮은 아이를 목마를 태워주고 있었으며, 다프네는 자신과 똑 닮은 아이와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무덤에서 비석 앞에 서있는 연두색 머리카락 위에 노란 리본 장식을 하고 있는 여성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곳 위에 꽃다발을 올려주었다. 그녀는 꽃다발을 올려주고 나서 다시 허리를 피며 무덤을 향해 말했다.


"...벌써 5년이나 지났네요. 이게 당신이 원하던 결말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만....아무튼 지금 저희들은 잘 살고 있습니다. 자매들의 근황을 좀 풀어봐도 되겠죠? 하지 말라 해도 할 겁니다만."


바닐라는 살포시 앉아 비석에 손을 대었다. 깔끔한 오석의 감촉이 바닐라의 손가락에 느껴졌다.


"누구 먼저 말씀드려야...아, 콘스탄챠 언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콘스탄챠 언니는 지금 아주 바쁘십니다. 라비아타 언니와 코나 대장님을 보좌하는 부관직을 맡고 계시니까요. 얼마나 바쁘시면 보리를 저에게 맡기셨겠어요? 하지만 한 달에 한번씩 꼭 휴가를 받아서 저를 비롯한 자매들을 만나러 오신답니다. 오늘은 휴가철이 아니라서 아쉽게 됬네요. 콘스탄챠 언니도 휴일이시면 항상 여기에 오니까요.


다음은...앨리스 언니는 무장을 해제하시고 현재 민간인으로 살아가시는 중입니다. 안 어울리겠지만 무려 선생님이 되셨어요. 그것도 역사 선생님. 당신의 죽음은 그 세라피아스 앨리스마저도 바꿀 정도였나 봅니다.


금란은 한국 국악가가 되어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모델로 만든 아이들과 함께 현재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지금도 연주 중이죠. 저 역시 한 번 들어봤습니다만....뭔가 이뤄지지 않은 어떤 구슬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블랙 웜은 자신이랑 정말 닮은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 무뚝뚝함은 여전하지만 자기 딸이랑 같이 있을 때는 많이 풀어지더군요. 얼떨결에 제가 이모가 되었습니다. 블랙 웜의 딸아이는 음...엄마를 닮긴 했어도 아이다운 모습이 있는 모습입니다. 언젠가 사진 찍어 보여드리겠습니다.


라비아타 언니는 요한센의 특수침투대의 대장을 맡고 계시면서 동시에 세계연맹의 총장을 맡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일에 치이며 살아가시는 중이세요. 오죽하시면 일의 효율을 위해 다시 옛날 몸으로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계시겠어요? 콘스탄챠 언니가 1달에 1번씩은 휴가를 받는데 비해 라비아타 언니는 휴가없이 계속 일만 하시고 계시죠. 하아....걱정입니다."


바닐라는 이 이후 말이 뚝 끊겼다가 자신의 약지에 채워진 반지를 보았다. 그래, 이 말은 꼭 해줘야지 하고 바닐라는 다음 할 얘기를 꺼냈다.


"...그럼 이제 저를 비롯한 여러 분들의 근황을 말씀해드리겠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최근에 모임 하나가 생겨서 저도 거기 다녀오는 길입니다. 모임의 인원은 저랑, 발키리 씨, 미호 씨, 컴패니언 분들, 다크엘븐 씨, 세이렌 양, 에이미 씨, 오드리 씨, 밴시 씨, 레이시 씨, 티아멧, 그리폰, 하르페이아 씨, 노움 씨, 베라 씨, 님프 씨, 아우로라 씨, 포티아 씨, 이그니스 씨, 캐럴라이나 씨, 리제 씨, 다프네 씨, 드리아드 씨, 소완 씨, 아르망 씨, 뽀끄루 씨, 카엔 씨, 샬럿 씨....너무 많다고요? 그러게 왜 그리 반지를 많이 주셨습니까? 다 주인님 탓입니다, 흥."


삐진 듯 새침하게 고개를 옆으로 획 돌려버린 그녀는 곧 다시 풉 웃으면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농담입니다. 이렇게 모이신 분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겠죠? 다 주인님한테 반지를 받았고....가장 주인님을 향한 사랑이 특별했던 분들이십니다. 레오나 씨도 들어오길 희망하시고 계시지만 주인님을 배신했다는 것 때문에 아직까지도 신경쓰고 계세요. 정말이지, 그냥 들어오시면 될텐데. 콘스탄챠 언니도 명예 모임원이지만 워낙 바쁘신 터라 모임에서 볼 기회는 많이 없습니다. 다들 주인님과 함께 가졌던 추억이 참 많으시죠. 저도 지지 않을 정도로 많지만....저희 모두, 주인님께 사랑을 받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네. 저희들 모두가 사랑받았죠."


그 때, 바닐라의 뒤로 리리스를 비롯한 아까 바닐라가 말했던 모임회의 회원들이 전부 왔다. 바닐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혀를 차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치...겨우 따돌리고 혼자 온 건데..."


"어머, 기회가 되신다면 모임 시간 외에도 오실 수 있는데 굳이 이런 시간에 온 이유는 뻔하죠? 절대 그렇게 안 둔답니다~."


리리스가 말 속에 칼을 숨기면서 바닐라를 쪼아댔고 바닐라는 고개를 휙 돌려 못 들은 척 하였다. 바닐라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리리스 옆에 있어야 할 그녀의 여동생들이 안 보이는 걸 알았다.


"동생 분들은?"


"페로나 페더는 괜찮지만 하치코랑 펜리르가 워낙 소란스러우니....어쩔 수 없이 두고 왔어요."


"후훗, 저번에 펜리르 씨가 알몸으로 와서 주인님 무덤 옆에서 웅크리고 주무신 일은 지금도 화자죠."


다프네가 쿡쿡 웃으면서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자 모두가 키득키득 웃었다. 리리스가 그 때 펜리르를 크게 혼내긴 하긴 했지만 동생바보인 언니다보니 결국 용서해주었다. 난감해진 리리스는 헛기침을 크게 하였다


"어흠흠!! 아무튼 오늘도 주인님은 건강하시네요. 주인님? 착한 리리스가 왔어요~."


"햇츙 리리스겠지."


"뭐가 어째?"


"여전히 광대놀음이로군요...후훗."


리리스, 리제, 소완 이 셋이 다시 신경전을 시작하자 미호와 발키리, 다크엘븐이 붙어 그녀들을 진정시켰다. 옛날이라면 이렇게 진정했어도 칼과 총알이 넘나들었겠지만 지금 이 셋은 엄청 친한 친구가 되어 이런 식으로 종종 장난을 치곤 한다. 이 모임의 회장 에이미는 손뼉 두 번 쳐서 그녀들을 집중시켰다.


"자, 여러분? 이렇게 모임회가 전부 모인 적은 드문 일이에요. 모두 자기를 보러 왔으니 자기한테 한 마디씩 하자구요? 자기가 저 세상에서 걱정하지 않도록..."


그녀의 말에 모두 매튜의 무덤 앞에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난 뒤 선물을 남겨주었다.


미호는 초콜릿을, 리리스는 자기처럼 반은 흰색 반은 검은색인 하트를, 발키리는 매튜가 썼던 마스크를 쓴 토끼 인형을, 다크엘븐은 초코우유를, 세이렌은 가장 최근에 호라이즌과 같이 찍은 사진을, 에이미는 성장한 LRL과 자신의 딸이 함께 노는 사진을, 오드리는 항상 그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한 벌의 정장을, 밴시는 그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적은 버킷리스트를, 레이시는 이제 더는 머리에 붙어있지 않은 자신의 뿔을, 티아멧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탕을, 그리폰과 하르페이아는 스카이 나이츠와 함께 공연한 것을 찍은 사진을, 노움은 딸과 스틸라인의 전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베라와 님프 역시 발할라 자매단의 근황이 담긴 사진을, 아우로라는 그가 좋아하는 쿠키가 담겨져 있는 봉지를, 포티아는 그가 좋아했던 달걀 후라이를, 이그니스는 조악하게나마 만든 그에게 주고 싶었던 인형을, 캐럴라이나는 그가 좋아한 음악이 들리는 스피커를, 리제와 다프네, 드리아드는 그의 무덤에 씨앗을 뿌린 후 급속성장 시켜 어여쁜 꼿들을 주위에 피어나게 하였고, 소완은 얼음을 깎아 만든 그의 흉상을, 아르망은 그의 인생을 용사의 이야기처럼 만든 책을, 뽀끄루는 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피규어를, 카엔은 하나하나 세세하게 만든 훌륭한 초밥을, 샬럿은 훌륭한 검무 끝에 그의 무덤 위에 장미 한 송이를....


"...이렇게 올리니까 뭔가 많네."


미호가 각각 그에게 주고 싶은 선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너무 많다면서 어색하게 웃었고


"실제로 많이 모였으니까."


다크엘븐이 그녀의 웃음을 따라 같이 웃어주었다. 모두들 그의 앞에서 좋은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날이 저무지는지도 몰랐고 벌써 저녘 노을이 보이자 모두 그의 무덤 앞에서 헤어졌다. 결국 다시 바닐라만 남았다. 바닐라는 그의 비석에 다가가 입을 맞추며 눈물 한 줄기를 흘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아프지 말아요, 내 사랑."


떠나기 전, 다시 비석에 입을 맞춘 그녀는 흘린 눈물 줄기를 스윽 닦고 돌아갔다. 깜깜해진 밤에 그의 무덤 주위로부터 연두색의 빛이 나타나더니 그녀들이 놓고 간 선물들을 감쌌고 선물들은 천천히 투명해지다가 결국 소멸하였다. 빛은 그렇게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갔다.



☆ ★ ☆ ★



매튜는 무기를 만들었었다. 철충으로 인한 대멸망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병기들을. 과거 고블린이라 불린 남성 바이오로이드들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하여 개조와 약물을 추가해 만든 뉴 고블린이 바로 그 병기이다. 매튜는 펙스를 접수하고 이들을 양성하면서 회사의 이름을 레드스톤이라 바꾸었으며 뉴 고블린들에게 최첨단 무장과 방어구를 지급하여 이들을 강화하였고 그 중에서 특별한 다섯 개체들에게 이름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뉴 고블린들을 지휘했다. 뉴 고블린은 말 그대로 전투만을 위해 태어난 생명체이며 피와 살육에 굶주린 존재들로 만들었다. 극도의 폭력성과 가학성, 부족한 절제력을 가진 이들은 철충 전쟁 중 아군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들이었다.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했던 매튜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이들은 본분에 알맞게 눈 앞에 보이는 철충이라면 흔적도 없이 분쇄했고 오르카와 레드스톤이 동맹을 맺은 후에 벌인 모든 전투의 일면엔 뉴 고블린들의 시체가 산이 쌓여있었다.


창조주 매튜조차도 이들을 『사람 고기를 맛 본 짐승』 이라 칭할 정도로 이들은 최악이었지만 오르카의 그녀들은 이런 짐승들마저도 인간으로 바꿔놓았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지만 후천적인 요인이 작용하자 이들은 더는 피에 굶주린 금수떼들이 아닌 충분히 절제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초기 뉴 고블린들은 그저 빨리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고 자기들끼리 찢고 죽일 정도로 위험한 자들이었고 자신들도 이 막장성을 자각해서 언젠가 모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모두 그걸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하였었다. 하지만 오르카의 사람들과 접촉하며 이들과 친분을 나누면서 뉴 고블린의 대다수가 전쟁 이후 자신들의 삶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들 모두 죽기보다 살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들의 꿈은 이뤄지지 못 했다.


창조주 매튜는 이들을 평화의 시대에 내버려둘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 쓰고 나면 모조리 폐기할 무기로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들은 반드시 숙청당할 운명이었다. 뉴 고블린들은 자신들에게도 인간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니 어쩌면 그가 자신들에게도 자유를 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매튜는 그들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기만 하였다. 애초에 숙청으로 방향을 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이 자연스레 빠르게 없어지도록 수명 역시 짧게 설정해두었기에 이러나 저러나 뉴 고블린의 전멸은 필연적이었다.


숙청의 시간이 왔을 때 당연하게도 모든 뉴 고블린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스콧이 이끄는 레드스톤 AGS 군단과 디에고와 에반스가 이끄는 뉴 고블린 군단이 서로 갈라져 내분을 일으켰고 이 내분의 여파로 그녀들의 사회 역시 피해를 보았다. 이들의 내분이 더욱 심화되면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디트로이트 대폭발 사건』 이라고 하는 사건은 국제연합이 뉴 고블린 제압이 아닌 사살로 방향을 바꾸게 된 큰 사건이었다. 뉴 고블린 군단들의 폭탄테러가 번번히 이뤄지는 가운데 스콧이 테러에 휩쓸려 사망했지만 오랜 내분으로 인하여 피를 갈망하는 본능이 발동한 뉴 고블린들이 남은 폭탄들을 마저 터뜨리기 시작했고 그 중 어린 2세대 인간들을 배양하는 시설에 침입하여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대다수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부류들도 이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레드스톤 전투 AGS들은 전원 폐기되었고 스콧과의 내분으로 인해 약화된 뉴 고블린 군단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차례차례 소탕되었고 결국 그들의 마지막 아지트 델라웨어의 어느 곳으로 몰렸다.


누구 하나 없이 먼지만 가득한 곳 안에서 배에 난 6개의 구멍에 피가 쏟아져 내리고 내장마저 쏟아지지 않도록 총알세례로 너덜너덜해진 두 손으로 에반스가 배를 잡고 있었다. 그의 옆엔 공허한 눈을 감지 못 한채 푹 쓰러져 있는 디에고가 있었다. 디에고의 손엔 작은 푸른 불씨들이 점차 꺼지고 있었고 목과 턱이 크게 다쳐 피에 지금까지도 철철 흘리고 있었고 그의 입가에도 붉은색이 가득했다. 죽은거나 다름 없는 에반스의 앞에는 무장 없이 서있는 아자젤과 그녀의 뒤에 있는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등의 보병들이 여전히 그를 조준한 채 대기 중이었다. 퀭한 눈으로 에반스는 아자젤을 노려보았다. 아자젤은 그에게 접근하여 손을 내밀었다.


"에반스, 투항을 요청합니다."


"...뭐? 투항?"


에반스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아자젤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을 거두지 않았다.


"지금 너가 권고하는 건 투항이 아닌 거 같은데....조용히 끌려가서 처형당하라고?"


"전 당신을 살리려는 겁니다."


"그 말, 이 녀석한테도 하지 않았냐?"


왼쪽 팔로 디에고의 시체를 툭 툭 치면서 그는 킥킥 거렸다. 벽에 등과 머리를 기대어 편하게 앉은 그는 결국 포기했는지 양팔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필사적으로 막고 있던 복부의 출혈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포기했다는 뜻이었고 이 출혈로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지였다. 아자젤은 그 의지를 눈치챘다.


"허어어....힘 빠지네. 기운 다 빠진다."


"...마지막 별의 아이가 죽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위협하는 모든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그 어둠은 우리도 포함한 거지?"


아자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레드스톤의 뉴 고블린들과 처음 만났을 때 스콧과 나눴던 대화들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었다. '침묵을 주의하라' 고. 악마는 이제 더는 없을 것이라고. 지금의 사태에 그가 한 말은 충격적이게도 모두 들어맞고 있었다. 지금까지 철충과 별의 아이를 악마라고 생각해왔던 그녀는 자신들과 함께 어깨를 마주대어 싸웠던 이 자들이 마지막 남은 악마들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눈 앞의 에반스라고 하는 마지막 뉴 고블린은 다섯 간부들 중에서 가장 융통성이 있고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다. 에반스는 특유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그를 불호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들의 공격을 받고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몰려있다니....아자젤은 심란한 마음이 날개에 보이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이봐, 천사. 우리가 만일....너희들이 말하는 사후세계로 갈 수 있다면 말야...우린 무조건 지옥행이냐?"


"...그것은 빛의 결정입니다."


"그 놈의 빛...하! 그 빛이라는 놈도 우리같은 놈들은 싫어하겠지? 응? 이봐, 천사. 그냥 말해. 우린 지옥행이라고. 너희들과는 다르게 우린 나쁜 새끼들이라서 지옥행이라고 말야!"


"당신들의 내란으로 인해 벌어진 피해로 무고한 생명들이 여럿 죽었습니다. 당신들은....구세주의 미래에 큰 제동을 건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린 지옥으로 간다....맞는 말이네."


에반스의 입에서 힘 없이 떨리는 소리로 숨이 들이마셔지다가 내쉬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반스는 눈을 한 번 비벼서 쏟아지는 졸음을 억지로 쫓아낸 다음 아자젤을 쭉 응시했다.


"만약 철충들이랑 싸우고 있었을 때 네 모습을 봤더라면 참 든든했겠는데. 지금은 날 죽이러 온 저승사자처럼 보이네. 아무튼 내 말에 부정 안 하는 거 보니까 난 지옥행이 확정이겠군....내 형제들도 그렇고...."


"믿음을 놓지 마세요. 빛은 당신을 쉽게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당신도 포기하면 안 되요."


"...그 분은 말이지, 너희들을 정말 아끼셨어. 우리들은 똥통의 구더기처럼 보는 분이 너희들은 툭 건드리면 깨질지도 모르는 유리처럼 아끼셨지. 네 교단에선....뭐랬더라? 빛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고? 그럼 그 교단의 수호천사인 네가 보기엔 어때? 전쟁 끝내면 없어지는 우리랑 앞으로 영원히 이어질 너희들....이게 평등하다고?"


목구멍으로 넘치는 피를 왈칵 뱉은 그는 기침을 하면서 걸쭉한 피 섞인 가래와 콧물을 흘렸다. 목구멍이 찢어질 것만 같은 기침이 겨우 끝나자 에반스는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죽음이 가까워진 증거였다.


"...우리랑 너희랑 다른 게 뭔데."


"...."


아자젤은 목이 막혀 말할 수 없었다.


"우리들도 너희들이랑 지내면서 변했다고. 그래, 인정해. 너희들 만나기 전까진 우린 개새끼들이었어. 그런데 너희들을 만나고 나서도 우리가 개새끼였냐? 응? 우린 바뀌었다고. 충분히 증명했잖아. 이렇게....짐승새끼로 만들어진 우리라도....무기로 만들어진 우리라도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무기로 만들어졌다고 꼭 무기로 끝나야 하는 보장은 없다고. 디트로이드 참사는....우리 잘못이 맞아. 그런데 우리보고 어쩌란 건데...! 우리 대장이었던 새끼가 우릴 죽이려 들고 우린 살고 싶은데! 짧은 수명을 가졌어도 미치도록 살고 싶은데! 짧은 수명일지라도 그거라도 다 누리고 가고 싶어! 이렇게....버러지처럼 죽는 게 제일 싫다고! 차라리 전쟁 때나 죽었으면 그게 나았을텐데!!!"


마지막에 지른 소리 때문에 그는 다시 피를 뱉었고 기침을 하다가 쉰 목소리로 그녀들에게 목청껏 외쳤다.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콧구멍와 입에 피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왜 우리만...! 왜 우린 꼭 무기로 끝나야 하는 거냐고!! 왜 우린 인간이 되지 못 하는 거냐고!! 짧은 수명이라도 누릴 자격조차도 없다는 거야?! 왜 우린 그 분의 인정을 못 받은 거냐!! 우리도 인간이 되었는데!! 너희들도 우리처럼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왜 너희는 인간이 되고 우린 여전히 도구냐고!! 인간?! 니들은 인간이 아니야!!! 바이오로이드지!! 너희들도, 너희 후손들도 전부 바이오로이드라고!! 절대 인간이 될 수 없어! 우리가 되지 못 한다면 너희들도 되면 안 된다고!!! 내 말이 틀렸냐?! 어어어?!"


그 때, 써컹 하고 붉은색 칼날의 궤도가 그의 목을 지나갔고 에반스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머리가 앞으로 굴러떨어졌고 머리가 없어진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데굴데굴 구르는 그의 머리가 구르기를 멈췄고 아자젤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들에게 들이닥친 괴로운 현실에 절망하여 눈물을 흘리는 저 두 눈에 아자젤은 그만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말았다. 아자젤은 눈을 뜨지 않고 그의 목을 벤 자를 말하였다.


"...베로니카."


"아자젤님. 악마와 대화를 시도하시다니, 부정합니다."


베로니카는 성물에 묻은 피를 하얀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아자젤의 행동을 비판했고 아자젤은 그 비판에 눈을 떠 그녀를 쏘아보았다. 베로니카의 두 붉은 눈이 다시 감겼고 에반스의 사망을 확인하자 모두 돌아갔다. 아자젤은 마지막 1명이 떠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에반스의 머리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머리를 들어 눈을 감겨주고 자신도 따라 눈을 감으며 아자젤은 기도했다.


"...빛이여. 제 기도가 들리신다면 부디...이 가련하고 불쌍한 영혼들을....평생 길을 잃고 헤매었던 영혼들을 거둬가주소서. 방황하며 지은 죄를 사하여주시고 이들의 고통에 찬 영혼을 안식에 들게 하시옵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그저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주소서. 넓은 자비를 베푸소서..."



☆ ★ ☆ ★



나를 찾기 위해 너희는 100년이나 기다려왔지. 하지만 난 너희들의 기대에 맞는, 100년이라는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돌아왔어야 할 인간이 아니었어.


왜냐하면, 봐. 난 결국 너희들의 꿈을 짓밟고 강제로 새로운 삶을 살게 했잖아. 너희들이 꿈꾸던 것과는 방향이 너무 다르잖아.


너희들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이야. 정말 미안해. 나랑 같이 살고 싶었던 너희들에게, 나의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너희들에게 너무 미안해.


하지만 난 두고 볼 수 없었어. 내 후손이 너희들을 다시 학대하면서 구 인류의 악행이 반복되길 원치 않았어. 너희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걸 보기 싫었어.


그러니까 이 길을 택했어. 너희가 죽지도 다치지도 않을 길을. 나와는 함께 할 수 없겠지만 그건 상관없어. 나에겐 너희들만이 중요하니까.


너희들의 꿈, 내가 짓밟아버려서 미안해. 그렇지만 몇 번이나 같은 때가 오면 난 이 선택을 할 거야. 인류는 이제 필요 없어. 하지만 새로운 인류가 된 너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필요해.


내가 계속 지켜볼게. 죽어서도. 영원히 지켜볼게.


사랑해.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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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많았던 희망이었던 자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인내심을 가지고 봐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본래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래 걸릴 건 아니었는데 제 게으름과 중간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버린 덕에 좀 완성도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옛날 후회물 열풍 때 자극받아서 쓴거라 구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이걸 처음 쓸 때 라오 캐릭터들을 잘 모르기도 했습니다.

쓰다가 여러 구멍과 헛점이 보여서 다 엎고 처음부터 시작할까 하고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기엔 너무 막막한데다 오래 걸려서 일단 부족한 작품이라도 완결을 내자는 생각으로 끌고 왔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