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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할 물건.

   

여자가 며칠간 매달린 보수공사의 결과물에 붙인 총평이었다. 이건 아주 염병할 물건이다.

   

그녀는 자신이 나름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손가락만한 디저트의 모양을 잡고, 그 위에 완벽한 장식까지 곁들여 눈도, 혀도 즐거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본업이었으니. 그렇기에 그녀는 깨진 통유리를 대신하여 목공 작업으로 벽을 만드는 계획을 세울때도 자재의 부족을 걱정했을지언정 결과물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가 미시적인 규모의 손재주는 뛰어났어도 거시적인 계획을 잡는데엔 소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노력은 거대한 나무판자 덩어리가 되어 돌아왔다. 자세히 보면 마감 디테일은 제법 잘 되어 있다. 중간중간 그녀의 취향인지 제법 앙증맞은 장식도 용케 집어넣었다. 깨진 통유리를 제대로 철거하지 못해 보기 흉한 부분도 꽤나 솜씨 좋게 가려놓은 부분도 그녀가 제법 고민을 많이 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체를 보면, 대규모 작업에 필수인 일관성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거다, 싶은 컨셉이 없이 직관이 얼기설기 얽힌 모습. 그렇게 맥락없는 온갖 잡동사니가 덕지덕지 뭉친 목재 외벽 덕에 몇 십 미터정도 떨어져 바라본 그녀의 매장은 하나의 예술처럼 보였다. 예술의 장르가 행위예술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

   

<우리 가게 정상영업 합니다> 그녀의 작품에 붙일 제목은 이 정도면 되겠다. 플랜카드로 만들어 걸어두면 딱 맞을 것이다.

   

여자는 머리를 싸맸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눈치를 못 챘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막대사탕 모양 장식을 만드는데 시간을 쓰기 시작한 부분일까, 아니면 대머리 인간의 캐리커처를 조각하며 낄낄거렸을 시점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결국 그녀는 그 모든 것이 문제였다는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로 그날을 마감했다. 오늘의 페기는 의사당 하이브리드 1갑이었다. 그녀의 기분을 고려했을 때, 냉장고만 멀쩡했다면 폐기에 술이 하나 덧붙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 미친, 이게 다 뭠까?”

   

다음 날 아침, 개점시간에 꼭 맞춰 찾아온 13670번 브라우니의 첫인상도 그녀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누구나 내면에는 이상의 예술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그녀의 행위예술을 평가하는데에 그렇게까지 대단한 미적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빌어먹을 진상년. 그때 총을 맞더라도 뺨을 한 대 후려쳤어야했다. 13670번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장식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어제의 고뇌가 떠올라 다시한번 치미는 짜증을 억지로 밀어넣는다. 됐다. 말을 말란다. 여자는 입구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꼬나물었다. 칙, 칙. 매캐한 첫 연기를 푹 뱉어내니 13670번의 시선이 느껴진다.

   

“뭘 봐요?”

   

답지않게도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이다. 끓어오르는 가래를 대충 삼키며 여자는 그 얼굴을 바라본다. 대가리 속이 꼭 꽃밭인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잘 보면 이마에 또 혹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고집을 부리다가 그 빨간머리 선임에게 또 혼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 니가 뭐가 잘못이겠냐. 널 빡통으로 만든 사람이 잘못이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의 고민은 그닥 오래가지 못했다. 13670번은 한숨을 푹 쉬고는 냅다 말을 꺼냈다.

   

“미안하게 됐슴다.”

“뭐가요?”

“거, 이것저것 있슴다. 참치캔 건도 그렇고.”

   

그녀의 시선이 표류한다. 내가 속알머리가 없어보이려나, 싶지만서도 여자는 13670번에게 담뱃갑을 쥔 팔을 쓱 내밀었다. 그만 됐다. 어차피 서비스직이란 속없이 실실 웃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일이다. 하나하나 고민하고 담아뒀다간 고리짝에 속이 다 타서 날아갔을 것이다. 단골 하나 유치하는 셈 쳐야지.

   

“됐네요. 됐고, 한 대 펴요. 이건 서비스다.”

“잘모씀다?”

“한 대 피라고. 내가 백 년 만에 처음 하는 서비스니까 영광인 줄 알아요.”

   

13670번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왼손으로 담배를 하나 뽑아들었다. 자, 불도 받으시고. 여자가 내미는 라이터 불도 의외로 군말 없이 받는다.

   

“잘 피겠슴다.”

“거, 나중에 그 빨간머리 선임도 와서 한 대 피라고 그래요. 내가 손님을 하도 오랜만에 받아서 잘 못대해줘 미안하다고도 전해주고.”

“알게씀다.”

   

13670번은 그 뒤로 말이 없어졌다. 여자는 판자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그렇게 망할 물건처럼 보였는데 하루만에 정이라도 들었나보다. 부분부분 붙어있는 장식이 지금 보니 제법 잘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꼴이 좀 엉망이라 그렇지, 그녀가 대충 만들지는 않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튼튼하기도 제법 튼튼할거다. 저번처럼 1톤에 육박하는 쇳덩이가 날아오지만 않으면 오래오래 버텨줄테고, 다 뜯어버리지 않으려면 정을 붙이는게 차라리 낫겠지. 그녀는 빈 손으로 대머리 장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슬까슬한 나무의 느낌에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사포질을 좀 하는게 누가 다칠 일이 없지 않을까. 여자는 다음 재고 충원때에 사포를 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시내의 지도를 되새기느라 여자는 13670번의 목소리를 좀 늦게 깨달았다.

   

“……역시, 미안하게 됐슴다.”

“아까 했던 말이잖아요.”

“아니, 그게 아님다.”

   

또 뭐가 미안했단 것인지 물으려던 여자는 그녀의 표정이 뭔가 다름을 깨달았다. 이건 미안한 얼굴이 아니다.

   

미안 얼굴이다.

   

*

   

편의점 앞이 이렇게 사람으로 부대끼는게 얼마만일까. 여자는 하릴없이 생각했다. 저게 다 손님이라면 얼마나 좋을는지. 그러나 그녀들은 그녀의 편의점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들의 관심은 지주핀이 잘 꽂혔는지, 배수로는 잘 조성되었는지, 윤형 철조망이 잘 깔렸는지 등의 잡다한 것들에 죄 집중되어있었으니 그랬다. 야, 씨발, 용마루 똑바로 안 올리냐? 흉터 투성이 갈색 머리 하나가 다른 갈색머리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여자의 뇌를 거치지 않고 도로 흘러나갔다. 왁자지껄하고 번잡한 군인들 사이에서 여자의 가게는 버려진 종교의 상징물처럼 보였다. 어떠한 명백한 의지로 세워진, 그러나 이제와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언가.

   

여자는 자신의 편의점 앞이 왜 임시 주둔지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동의를 한 적이 없는데.

   

“3개월 정도 뒤에 철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자신을 소대장이라고 소개한 푸른 빛이 도는 은발의 군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번 봄은 마가 낀게 틀림없다. 아니면 이번에 깨진 유리창이 사실 가게의 액막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깨진 지금 그동안 피해왔던 모든 액운이 들이친걸지도. 13670번 브라우니였던가, 내 담배 돌려내라고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지금은 무죄가 되지 않을까.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거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제 6038 탐색소대의 주둔지가 이곳으로 이전된다는 13670번 브라우니의 말에 여자는 죽을 힘을 다해 반대했다. 문제라면 13670번이 그녀의 거부를 접수할 수 있는 위치의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르르 몰려온 군인들 앞을 막아선 여자에게 소대장이란 자는 차가운 결론을 지어주었다.

   

하나. 이 부동산의 소유권이 해당 편의점의 점주에게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둘. 그러나 점주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로 일백여 년이 경과하였으며, 이는 법적으로 소유권이 소멸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셋. 점주는 유사시의 소유권 양도에 대해 별도 설정을 하지 아니하였으며, 현재 편의점을 점유중인 바이오로이드 아우로라 모델은 해당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

넷. 이상의 논리에 따라 본 부동산은 공유지로 취급된다. 따라서 제 6038 탐색소대가 3개월간의 탐색을 위한 주둔지로 사용함에 있어 법적 하자는 없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요약하면 대충 ‘내 마음이고 권한도 없는 년은 상관마라’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리고 여자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 예. 부외자는 신경 안 쓰시겠죠. 맘-대로 진행하시길 바라요.”

“저희도 이렇게까지 이곳에 장기간 머물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특기할만한 요소가 없었던 이곳에 갑자기 철충 출몰이 보고되었던 만큼, 상부에서는 관찰이 더 필요하다고 결정했습니다.”

   

소대장이 여자를 측은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불쌍하단 것일까. 미안하단 생각이라도 하고있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여자는 그걸 빌미로 이들에게 실컷 바가지를 씌워버릴 생각이었다. 주인 취급도 안 해주겠다는 말에는 꽤나 화가 났기는 했다만, 아무튼 돈 받는 사람이 결국엔 이기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이들이 참치캔을 꽤나 소중히 여기는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 악성 재고를 죄 털어버리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대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최대한 드릴 생각입니다.”

“그러시겠죠. 그럼 제 맘대로 일거리를 좀 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가능한 선에서는 도와드리겠습니다.”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여자는 그래서 레모네이드를 만들기로 했다. 아주 시어빠진 레모네이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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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아우로라

주인공. 편의점 알바 겸 매니저 100년 경력자. 원래 판촉 행사등에 사용하던 쇼케이스 바이오로이드였으나 모종의 성격적 결함으로 편의점 점주에게 헐값에 팔림. 원래는 결함을 감안해도 그렇게 나쁜 성격이 아니었지만 100년동안 혼자 고생하면서 살다보니 성격이 많이 더러워짐. 그래도 이유없이 아무한테나 틱틱대는 정도는 아니고, 여러 이유로 자본주의에 충실한지라 영업용 태도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음. 복장은 게임에 나오는 그 옷은 아니고, 그냥 편의점 유니폼 수준. 머리도 어깨높이정도로 확 쳐서 뒤로 묶음.


편의점 운영에 있어 허가된 자유는 대충 짬 되는 매장 매니저 수준. 마이너스가 나지 않는 수준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예산을 소모해서 수리나 벌충을 할 수 있음. 숙식은 매장 내에서 해결. 멸망 전에도 마찬가지였음. 점주는 평범한 소시민 성격이었고 주인공을 대충 사정상 일을 그만두면 안 되는 알바생 정도로 여김.


전투용 개수는 되어있지 않으며 일반적인 비전투 바이오로이드 정도의 신체능력밖에 없고, 역장도 5kg 이상의 무게는 움직이기도 어려운 수준. 편의점이 있는 도시는 시민 소개가 빠르게 이뤄져서 덜 부숴지고 깔끔하게 망했고, 도망가는 인간 무리 쫓아가느라 철충도 싹 빠졌기에 주인공이 100년간 조용히 살 수 있었음. 철충이 계속 있었으면 아마 1년도 못 버티고 죽었을 것.